소설리스트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59화 (59/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59화

사실 아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시기의 KAI는 항공 3사의 통합과정을 거쳐 이제 막 출범한 상태였는데, 정부에게 일정 지분을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간다면 얼마든지 딜이 가능할 테니까.

‘우리 유보금이 얼마나 되지?’

생각이 그에 미치자 그 점이 궁금해졌다.

다행인 것은 최근 벌려놓은 사업들이 결과들을 내면서 제법 많은 돈이 쌓여있다는 사실.

아무리 못해도 KAI 정도 인수할 금액은 충분할 거다.

스윽.

마침 생각난 김에 그동안 쌓인 유보금에 대한 현황파악에 나섰다.

노트북을 켜고 사내 전산망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재우가 진행 중인 사업들의 진척 상황이 눈에 들어온다.

철갑탄과 스마트 포탄의 수출과 우리 군 납품 수량.

공격용 헬기 개발사업의 진척도와 HVP 구축사업의 현황.

특이하게도 현무 탄도미사일 개발사업의 진척도와 전투기 부품 소재 개발사업. 그리고 러시아와의 대공미사일 개발사업은 빠져 있었는데, 그건 아마도 기밀로 진행되는 사업들이기에 그런 것일 터다.

‘유보금 항목이…….’

쭉 스크롤을 내려 재무 상황을 클릭했다.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엄청난 금액대의 유보금 내역.

혹시나 해서 몇 번이고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다.

“3조?”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금액대였다.

하긴, 그동안 받은 달러들과 수출금액. 그리고 군 납품을 통해 들어오고 있는 돈이 얼만데.

더군다나 최근 수출 품목들은 죄다 영업이익률이 30퍼센트에 가까웠던 것들뿐이라 유보금이 쌓이는 속도가 기하급수적이었을 거다.

‘아직 사업이 끝나지 않은 것들이 수두룩한 상황에서도 이 정도 유보금이면…….’

막상 넘치는 유보금의 규모를 보고 있자니 욕심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돈이 없다면 모를까, 3조에 이르는 유보금을 보유 중인 상황이면 사업확장에 관한 욕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문제는 그사이 끼어든, 좀 더 현실적인 사업 분야들이 자꾸만 마음을 끌어당긴다는 거다.

‘사실 우리가 당장 KAI를 인수한다 해도 당분간은 적자를 벗어날 방법은 없지. 게다가 정부와의 협의를 거치는 시간도 만만치는 않고. 그럼 어쩐다? 차라리 자체개발이 확정되고 난 이후 딜을 걸어? 그사이 난 차라리 다른 분야로의 확장을……’

생각해 보니 그것도 나름 괜찮을 듯싶었다.

어차피 몇 년이 소요될지 모를 상황이면 유보금을 그냥 묵히느니 그사이 다른 곳에 먼저 전용하는 것.

최악의 경우 KAI를 대상으로 한 정부와의 협의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어 자금압박이 와버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그 경우엔 내 개인 자금들을 동원하면 된다.

‘그러고 보니 연구소의 수익이 얼마나 되지?’

기왕 확인하고 나선 김에 이번엔 연구소의 수익을 따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바쁘다는 것을 핑계로 올라온 결산 보고서들을 거들떠보지도 못했던 상태.

암호화된 파일을 풀고 찬찬히 살피던 순간 눈이 확 떠졌다.

“연구소 영업이익이 1조 원을 넘었다고?”

놀란 마음에 항목들을 살폈다.

탄소섬유를 비롯한 여타 소재들의 민간 공급으로 인해 매달 폭발적인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는 터.

그에 더해서 HVP의 개발로 군사용 반도체의 수요증가가 큰 몫을 차지했다.

‘그럼 미국에서 HVP를 본격적으로 구축하는 시점엔 어떻게 되는 거지?’

아마 그때가 되면 연구소의 이익은 몇 단계는 더 점프할 거다.

핵심 부품 중 하나인 군사용 반도체와 일부 부품들은 어차피 재우가 아닌 연구소의 것이라 협상 당시 기술이전 항목에서 제외가 된 상황.

결국, 그것들은 죄다 우리에게서 수입해야 하는데, 그 금액이 최소 수조 원에 이를 테니까.

사실 미국으로서야 그 부분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재우와 연구소는 엄연히 별개인 것을.

“흠…….”

그러고 보니 삼정으로부터 들어오는 금액도 만만치가 않았다.

벌써 로열티로 입금된 금액만 해도 4천억 정도.

삼정의 폭풍 성장세를 감안하면 내년쯤엔 정말로 몇조 원에 이르는 돈이 입금될지도 모른다.

‘이러면 정말로 다른 곳에 먼저 확장을 시도해도 무리는 없을 것 같은데…….’

불현듯 그런 생각이 스쳤다.

무려 3조 원에 이르는 유보금.

그리고 4천억에 달하는 내 개인 자금.

아니, 어차피 연구소가 보유 중인 자금들 역시 사실상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돈이라고 봐도 되는 상황이니 개인 자금만 총 1조 4천억에 달하는 건가.

그럼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돈은 사실상 4조 4천억이나 되는 상황인데, 그 정도면 이 시대엔 어지간한 기업들 두세 개 정도는 인수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럼 남은 것은 어느 분야로의 확장을 먼저 시도하느냐인데…….’

사실 그 부분은 이미 답이 정해져 있었다.

이미 탄탄한 수익구조를 확보한 지상 분야 전문 방산 업체.

그리고 향후 나에게 꼭 필요한 중공업 회사.

즉, 삼정 테크윈과 우영 중공업.

‘그래, 일단 K9을 내가 가져오는 것이 우선이지.’

이 시점에서 K9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이유는 차후 막대한 물량의 우리 군 납품 실적과 수출 물량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은 몰라도 향후 전 세계로 수출길이 열릴 정도로 성능 하나만큼은 보장된 물건이 바로 K9이거든.

특히나 아직은 독일이 일부 중동지역에 자국산 파워팩 수출금지조치를 하기 전.

만약 삼정으로부터 테크윈만 인수할 수 있다면 UAE를 발판으로 시작된 중동의 우방 지역들과의 교류도 대폭 확대할 수가 있다.

어디 그곳뿐일까, 역사적으로 우리가 K9을 수출했던 나라들 전부가 대상 국가가 될 수 있지.

‘문제는 파워팩인데…….’

그 부분은 분명 걸림돌이 될 거다.

뭐 이 시대에야 지금처럼 독일산 파워팩을 달아서 수출해도 상관은 없지만, 미래엔 자체개발을 하지 않으면 각국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한 문제로 수출이 무산될 가능성이 크니까.

실은 그래서 우영이 필요한 거고, 인수 목록에 이름을 올린 거다.

회귀 전, 정확히는 독일의 중동 제재로 인해 그들의 파워팩을 단 K9의 중동 수출 길이 막혔을 때.

우영은 분명 K2전차를 위해 개발했던 1500마력 엔진을 기초로 K9의 1000마력 엔진을 개발했었고, 그 기술은 이미 내게 있거든.

뭐 변속기야 여전히 문제가 되겠지만, 그 부분이야 어차피 차차 해결해야 할 과제고.

‘우영이 필요한 것은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 발전용 터빈. 내겐 우영이 미래에 개발할 것보다 한층 발전된 초내열합금 기술이 있으니 그 분야에선 당장이라도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상황인데, 그럼 사실상 수십조 원의 민간분야의 시장이 열린 것이지 않은가.'

스윽.

마음의 결정을 내리니 속이 후련했다.

그럼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이용문 회장을 설득하는 것.

즉시 그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

“어서 오게.”

며칠 후, 이용문 회장과 나는 강남에 있는 한 호텔에서 만남을 가졌다.

처음 단순히 잡담에서 시작된 대화는 어느새 삼정그룹의 후계자 승계에 관한 것으로 발전했고, 이후 또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우린 본론을 끄집어냈다.

“전에 하셨던 말씀, 혹시 아직도 같은 생각이십니까”

“뭘 말인가. 아! 방산 부분을 정리하겠다는 것? 여전히 같은 생각이기는 하네만, 갑자기 그건 왜?”

“혹시 제게 넘기실 생각은 없으신지 궁금해서요.”

“…….”

이 회장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막상 자신이 내뱉은 말이 현실로 다가오자 당황스럽기라도 한 듯.

그렇게 한참을 더 침묵하던 그가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내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빠를 줄은 몰랐군. 하지만 인수금액이 만만치 않을 텐데? 자네도 알다시피 K9이 한참 전력화 중이지 않은가.”

“알고 있습니다. 해서 회장님께 아쉬운 소리를 좀 하려는 중입니다. 실은 가진 자본은 한계가 있는데, 인수해야 할 업체는 부지기수거든요.”

“…….”

이 회장은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해서 말인데, 아쉬운 소리를 먼저 하기보다는 깎아내리기 작업을 먼저 해야겠군요. 원래 거래에 앞서 상대방이 가진 물건에 흠을 잡아야 가격이 싸진다면서요.”

피식.

헛웃음을 뱉어낸 이 회장이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사이 난 본격적으로 흠잡기를 시작했다.

“K9의 생산에는 100여 곳에 이르는 업체가 참여 중이죠. 쉽게 말해서 포크를 들고 있는 자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말입니다. 하니, 어지간히 팔아서는 사실 답이 없죠.”

“계속해 보게. 경청하고 있으니.”

“게다가 지금 삼정은 반도체만으로도 정신이 없습니다. 전에 회장님 말씀대로라면 생기는 건 쥐뿔인데 신경만 쓰이죠.”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일 텐데? 설사 우리가 테크윈을 넘긴다 해도 수익을 증가시킬 뾰족한 수가 있겠나?”

“자고로 수익은 판매량이 증가면 할수록 따라서 증가하게 되는 법이죠. 해서 전 K9의 개량을 통해 지금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판매량을 늘릴 생각입니다.”

“우리 군의 납품 완료 시점을 생각하면 당장 눈에 띄는 생산량 증가는 불가능하고…… 쯧, 결국엔 수출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로군.”

이 회장은 역시나 상황판단이 빨랐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그가 다시 옅은 미소를 지었다.

“K9의 개량이라……좋아, 당위성은 그 정도면 충분하니 이제 금액을 제시해보게. 대체 나에게 얼마나 줄 생각을 하고 있기에 흠잡기를 하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니야.”

“죄송하지만…… 전 돈을 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

한바탕 황당하다는 표정이 그의 얼굴에 스쳐 갔다.

하지만 당장 이렇다 할 말을 뱉어내지 않는 이유는 내가 헛소리를 하는 타입이 아닌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터.

슬쩍 테이블 위에 서류봉투 하나를 올려두자 그가 재빨리 그걸 살폈다.

“이건 재우그룹의 유통사 현황 아닌가. 이걸 이 자리에서 왜…….”

“교환하시죠. 재우 유통과 삼정 테크윈을.”

“…….”

“제가 대충 손익 계산을 해봤더니 회장님께서 손해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이건 손해 정도가 아니라……솔직히 말이 유통이지, 고작 백화점 2개뿐인 회사를 테크윈과 바꾸자고? 자네 테크윈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는 있나?”

“계열 화학회사까지 포함하면 3조 원 정도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우 유통의 가치는 그 수준에는 절대 못 미치죠. 하지만 백화점의 입지를 생각하셔야 할 겁니다. 두 곳 모두 서울에선 노른자 땅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

사실 기업교환은 애초 계획에는 없던 것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번개가 치듯 그게 떠올랐고, 아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뒤따랐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만약 이 딜이 성공한다면 어마어마한 현금을 아낄 수 있다는 것.

난 지금 어떻게든 이걸 성공시킬 생각이다.

“허허…….”

물론 땅이 넘어가는 것은 아깝다.

하지만 그 땅이 테크윈과의 교환비에 이를 정도로 가격이 오르려면 최소 20년 이상은 걸릴 터.

그럴 바에야 당장은 그걸 넘기고 다른 곳에 투자하는 편이 옳다.

어차피 땅이야 돈만 있다면 얼마든지 다시 사들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식의 기업교환을 이사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 같은가?”

“이사회야 설득하기 나름이죠.”

“무슨 수로?”

“이유야 회장님께서 만들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정 안 되면 삼정 항공의 경우처럼 정부에서 진행 중인 기업 통합을 핑계 대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정부에서 삼정과 재우의 방산 부분 합병을 요구했다고 말입니다.”

“…….”

이 회장의 눈은 순간 동그랗게 떠졌다.

곧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그는 기가 찬다는 듯 한숨을 뱉었다.

“그 말은 꼭 내가 테크윈을 안 내어주면 정부를 통해서 압박하겠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설마요, 전 그저 그런 방법도 있다고만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렇게 정색할 것 없네. 자네가 그럴 위인이 아닌 건 내가 더 잘 알고 있으니까. 그나저나 아무래도 아들놈하고 같이 나올 걸 그랬어.”

“그건 또 무슨…….”

“좋은 광경을 놓쳤지 않은가. 협상을 어떤 식으로 걸어야 성공할 수 있는지를 직관할 기회.”

“…….”

“이 친구 여전히 의뭉을 떨기는. 내가 당장 자네에게 목줄이 잡혀있는 마당에 이번 협상이 틀어질 가능성이 있기는 하겠어? 다시 말해서 자네가 이번 딜을 실패할 거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느냐는 말일세.”

“아니요.”

난 솔직해지라는 그의 말에 즉시 대답했다.

피식 헛웃음을 지어 보인 이 회장은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한 가지만 확실히 하세.”

“말씀하십시오.”

“이사회를 설득하는 일이건 뭐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서류에 사인 한 장만 해.”

“…….”

“45나노 공정 개발에 성공했을 시, 이번에도 삼정을 우선 기술공급대상으로 선정하겠다는 것.”

“그거야 이미 약속드렸지 않습니까.”

“그건 입으로 한 약속이고, 확실하게 서류로 남기자는 말이야. 막말로 자네 마음이 바뀔지 안 바뀔지 그걸 누가 장담하겠나.”

그의 조급함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무리도 아닌 것이, 지금 삼정은 파운드리 분야는 물론 메모리 분야에선 가히 적수가 없는 상태.

그걸 유지하느냐 아니냐가 내 손에 달렸으니 불안한 것은 당연할 거다.

“그렇게 하죠.”

이 회장은 그 말에 화색을 띄었다.

미안하지만 어차피 그 문제가 거론된 이상 나도 할 말은 하고 넘어가야겠다.

“단, 45나노 공정은 90나노와는 로열티 규모가 좀 다를 겁니다.”

“…….”

“왜 그렇게 보십니까. 아무리 제가 삼정과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지만 저도 벌만큼은 벌어야죠.”

“자네가 90나노 공정으로 앞으로 벌어들일 돈이 얼마나 되는지는 계산해 봤고? 솔직히 3년 후쯤이면 개인이 보유한 자산으로는 이 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느냐는 말일세.”

“그사이 삼정의 규모도 엄청나게 커진다는 것을 생각하셔야죠.”

그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나를 노려봤다.

기분이 상한 걸까 싶은 생각이 들 무렵 그가 혀를 차며 말한다.

“……쯧, 아무리 생각해도 아들놈을 끌고 왔어야 했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