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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54화 (54/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54화

오전에 있을 예정이었던 회의를 뒤로 미뤄둔 채 리츠 호텔로 향했다.

평소와는 달리 입구에서부터 경비가 삼엄하다 싶더니 로비에 이르러선 아예 외부인들의 출입 자체가 전면 통제되고 있었다.

“여깁니다, 진 회장님.”

의아한 마음으로 로비로 향하자 마침 나를 알아본 국정원 요원 중 하나가 로비에서 다급히 손을 흔들었다.

그걸 신호로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보안 요원들이 길을 터주더니 곧 국정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찍 도착했군요. 일단 따라오시죠.”

“여기 분위기가 왜 이럽니까. 무슨 사고라도 난 겁니까?”

재빨리 그를 뒤쫓으며 물었다.

뭐가 그리 바쁜지 그는 걸음을 멈추지도 않은 채 대꾸한다.

“사고가 난 것이 아니라 중요한 손님이 방문했습니다.”

“누가 방문했기에 이렇듯…….”

멈칫.

국정원장은 그제야 걸음을 멈췄다.

“오늘 오전에 아랍에미리트의 모하메드 왕자가 비공식적으로 입국했소. 해서 지금 이 호텔 전체가 그들의 일행들로 꽉 들어찬 상태죠.”

“호텔 전체를 빌렸다고요?”

“안전을 위한 조치였다고는 하는데, 실은 나도 놀랐소.”

국정원장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곧 국정원에서 간이로 설치되어 있던 검색대를 지나친 그는 나를 향해 빨리 통과하라는 듯 손짓해 보인다.

“원장님 잠시만…… 혹시 이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순간 휴대폰에서 발견한 물건이 떠올라 즉시 그걸 꺼내 보였다.

동시에 커다래지는 국정원장의 눈.

그는 재빨리 그걸 낚아채더니 저 멀리 있던 다른 국정원 요원을 향해 다급히 손짓하곤 다시 나를 향해 물었다.

“이걸 어디에서 난 겁니까?”

“제 휴대폰 속에서 발견했습니다만, 혹시 제가 생각하는 그겁니까?”

“네, 신호간섭장치에요. 모양으로 봐선 제법 먼 거리에서도 신호전달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든 물건 같은데…….”

그는 말을 채 끝맺지 않은 채 고개를 갸우뚱해 보였다.

이내 한쪽 눈썹이 슬쩍 들리는가 싶더니 표정이 다시 심각해진다.

“왜 그러십니까?”

“이런 상태면 휴대폰 주인이 배터리 교체를 위해서 커버를 열었을 때 바로 탄로가 나게 되어있는데, 누군지는 몰라도 지나치게 허술하지 않습니까.”

“실은 저도 그게 헛갈린다는 말입니다. 일부러 아마추어처럼 위장해서 정체파악에 혼선을 주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실력이 부족해서인지."

"뭐 일단, 분석실로 보낼 테니 결과를 지켜보죠.”

국정원장은 다가온 요원을 향해 장치를 건넸다.

다시 돌아선 그는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나를 향해 말을 이었다.

“혹시 주변에 짐작 가는 사람은 없습니까?”

“……글쎄요.”

아무리 생각해도 내 주변에선 의심이 갈만한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나와 제일 가까운 인물이라곤 김 비서와 양 비서가 전부인데, 그들이야 이런 짓을 할 존재들은 아니고.

혹여 비서실 인물 중 누구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들 역시 늘 내 몸에서 떠나지 않았던 휴대폰에 접근할 만한 기회는 없었다.

“아!”

그런데 그때, 문득 이틀 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사우나를 갔었던 사실.

“가능성이 크군요. 휴대폰이 몸에서 떨어지기 좋은 최적의 공간이니까. 더군다나 라커룸엔 CCTV도 없으니 현장에서 잡아내지 않는다면 범인을 확인하기가 힘들죠. 혹시 사우나에서 우리 직원들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한 사람은 저와 제 경호원들과 함께 탕 안에 있었습니다. 다른 한 분은 라커룸에 남아 있었고요.”

“우리 요원이 라커룸을 지키고 있는 와중에도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겁니까?”

그의 표정은 좀 더 심각해졌다.

“그럼 둘 중 하나의 경우인데…….우리 직원이 한눈을 팔았거나, 상대가 그만큼 만만하게 볼 인물이 아니거나. 젠장, 이거 갈수록 헛갈리네. 그런데 혹시 회장님 경호원 중에는 의심 갈만한 사람은 없습니까?”

“지금처럼 제일 먼저 의심받을 것이 자신들인 건 그 친구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이런 짓을 하겠습니까?”

“그래도 돈에는 장사 없습니다.”

“글쎄요. 어지간한 돈에 움직이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제가 워낙 연봉을 두둑하게 주는 상황이라서요.”

“경호원 연봉을 얼마나 주시기에 …….”

“말했잖습니까. 어지간한 돈에는 저를 배신하지 않을 정도라고.”

국정원장은 눈을 끔뻑이며 나를 쳐다봤다.

잠시 후 스윽 하고 저편에 있던 내 경호원들을 쳐다보는 눈빛에선 자괴감 비슷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건 그렇고, 혹시 그사이에 정보가 유출될 만한 일은 없었습니까? 뭐가 됐든, 지금 진행 중인 사업들에 관한 정보들 말이오.”

“요 며칠은 내내 사무실에서 유통계열사에 대한 업무 파악에만 집중했으니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연구소나 탈레스와 따로 통화한 적도 없고.”

“그나마 다행이군요.”

국정원장은 그 후로도 한참을 더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번 시작된 나를 향한 접근시도가 이걸로 끝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는 거겠지.

실은 나 역시도 이미 머릿속에선 대책을 모색 중이다.

“일단은 이렇게 합시다. 앞으로 휴대폰은 국정원에서 제공하는 감청방지용을 쓰시죠. 그리고 허락하신다면 사무실과 집 전화도 저희가 제공하는 것으로 바꾸고 수시로 점검조치 하겠습니다. 참,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휴대용 감지기도 드릴 테니 수시로 주변을 검사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연구소와 탈레스는 염려 안 해도 되겠습니까.”

“거긴 지금 요새나 다름없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점검하니 우려할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당혹감이 떠나지 않는 걸까, 국정원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똑똑!

잠시 후, 우리가 도착한 곳은 호텔에서도 제일 규모가 큰 특실이었다.

문이 열리자 눈에 보인 것은 흰 터번을 머리에 두른 사내들.

그중 유독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아마 UAE의 토후국 중 가장 핵심 권력을 가진 모하메드 왕자일 거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안 그래도 조금 전까지 국정원장님과 진현승 회장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모하메드의 영어 발음은 무척 훌륭했다.

젊었을 적 대학을 미국에서 다녔던 결과라나.

그나마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두 분의 대화에 앞서 잠시 내가 사전 설명을 드리죠.”

내내 끼어들 타이밍을 노리던 국정원장이 입을 열었다.

상황을 이해한 걸까, 그 순간 모하메드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사실 진 회장님을 이 자리에 부른 것은 한 가지 의논을 할 것이 있어서입니다.”

“뭘 말입니까.”

“아랍에미리트가 이번에 비공식 방문을 한 이유는 자국에 HVP의 구축 여부가 가능한지를 알아보기 위함이라고 하는데, 혹시 가능하겠소?”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미국의 경우는 기술이전을 약속한 상태.

애초 미 해군에 납품을 예정했던 물량이 있으니 국방부만 허락하면 그 부분을 돌리면 된다.

“국방부에선 뭐라고 합니까?”

“산지를 제외한 핵심 방어지역은 여덟대 정도면 커버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나머지는 어차피 우리도 내년 예산분이 배정 되어야 도입이 가능하기에 큰 상관은 없다고 합니다.”

“그럼 가능하겠군요. 한데 UAE에선 그걸 대체 어디에 설치하겠다는 거죠?”

“두바이. 즉, 이란을 경계하는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두바이와 이란은 폭이 50킬로미터에 불과한 호르무즈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UAE와는 우방인 미국으로 인해 관계가 애매해져 가다 보니 혹시 모를 상황에 대처하려는 모양입니다. 최악의 경우, 이란이 두바이를 향해 방사포를 날려대면 대책이 없는 상황이니까.”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두바이를 중동의 꽃으로 만들 생각 중인 UAE로서는 고작 50킬로미터 폭의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이란이 불안하기도 하겠지.

그 와중에 HVP의 등장은 그들에게도 가뭄의 단비 같았을 거다.

“그런데 방사포만이 문제가 아닐 텐데요? 스커드는 어쩌고요.”

하지만 문제는 남아 있다.

이란이 막대한 양을 보유 중인 스커드 미사일.

무려 음속의 일곱 배의 속도로 떨어져 내리는 그것을 HVP로 막아낸다는 건 불가능하거든.

“모하메드 왕자가 우려하는 점이 바로 그겁니다. 해서 그 부분에 대한 상의도 함께했으면 싶어 하더군요.”

국정원장은 그 말을 끝으로 모하메드 왕자를 쳐다봤다.

마치 자신이 할 말은 끝났으니 할 말을 하라는 눈빛.

상황을 이해한 듯 곧바로 모하메드가 말을 이었다.

[우린 전통적으로 미국의 무기를 주로 사용해왔습니다. 해서 원래는 이란의 스커드 미사일을 대응하기 위해 페트리어트를 도입할 생각이었죠.]

[그런데요?]

[걸프전이 그 결정을 주저하게 했습니다. 미국 언론은 마치 페트리어트의 요격률이 뛰어난 것처럼 떠들어 댔지만 그걸 믿을 바보는 없죠. 해서 우린 재우탈레스가 대공미사일의 개발을 해주었으면 싶습니다.]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싶었다.

눈을 끔뻑이자 모하메드가 다시 말을 이었다.

[포탄도 잡아내는 기술이라면 미사일을 못 잡겠습니까. 하니 재우라면 가능할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오해하신 모양인데, 탄도미사일을 잡아내는 건 포탄을 요격하는 것과는 또 다릅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레이더와 유도시스템은 갖추지 않았습니까. 다시 말해서 요격체만 개발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

당황스럽게도 그의 말은 사실과 정확히 일치했다.

어마어마한 탐지거리와 정밀도를 가진 레이더. 그리고 포탄도 잡아내는 유도시스템. 결국, 적절한 요격수단만 존재하면 탄도미사일의 방어까지도 가능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설마 이자가 뭘 알고 하는 말인 건가?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사실 개발은 예정되어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예산 확보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서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만.]

[돈이 문제라면 우리가 해결해 드리죠.]

순간 귀를 의심했다.

고개를 갸웃해 보이자 그가 강조하듯 말한다.

[요격체의 개발비용은 우리가 부담하겠다는 겁니다.]

[죄송하지만 혹시 공동개발을 하자는 겁니까?]

[마음 같아선 그렇고 싶지만, 우리에겐 아직 그럴만한 산업기반이 없습니다. 하니 내 말은 순수하게 우리가 돈을 대겠다는 겁니다.]

[…….]

[물론 조건은 있습니다. 개발에 성공했을 경우 우리가 가장 먼저 배치를 한다는 것.]

난 즉시 국정원장을 쳐다봤다.

"가능한 겁니까?"

"일단 군과 청와대에 알려두기는 했습니다. 아마 그쪽에서도 지금쯤 이 문제에 대한 회의를 진행 하고 있을 겁니다만, 긍정적인 답변을 들을 가능성이 큽니다."

[흠…….]

혼란스러운 마음에 눈을 끔뻑였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은 회귀 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는 것.

그게 대략 2020년쯤이었나?

아무튼, 당시 ADD는 북의 동굴 속에 숨어 있는 방사포들을 무력화 하기 위해 단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을 시작했고, 그 결과 KTSSM이라는 걸출한 물건을 만들어냈는데, 그걸 UAE가 먼저 수입을 해버리는 황당한 일이 생겼었다.

미처 우리 군에는 배치도 안 된 물건을.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얼마가 들건 상관없습니다. 그렇다고 설마 수백억 달러씩 소요되기야 하겠습니까?]

오일머니의 힘이 절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나저나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거지?

[조건이 나쁘지는 않을 텐데요?]

모하메드는 내 대답을 재촉했다.

뭐 나로선 사실 반대할 이유가 하나도 없지.

어차피 조만간에 러시아와 대공미사일 공동개발을 진행할 예정이었던 상태니까.

그런데 UAE가 돈을 댄다면 나로선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상황 아닌가.

[좋습니다.]

흔쾌히 대답하곤 손을 내밀었다.

남은 것은 구체적인 개발 계획과 대금 지불 방법에 대한 논의.

예정된 모든 스케줄을 취소한 채 거의 반나절을 모하메드와 붙어 있었다.

똑똑!

“원장님. 저 차인수 과장입니다.”

그때, 국정원 직원 중 하나가 다급히 방문을 두드렸다.

곧 방에 들어선 그는 국정원장을 향해 무언가 속삭였고, 잔뜩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인 국정원장은 나를 향해 손짓하며 다른 방으로 이끌었다.

“방금 도청장치에 대한 분석이 끝났는데, 분석관의 말에 의하면 아무래도 범인은 중국 정보부 같다는군요.”

“…….”

“일부 부품을 일본산으로 해서 위장을 했지만, 회로패턴이 중국 정보부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식과 비슷하답니다. 즉, 기술력을 숨길 수는 없는 거죠. 이거 아무래도 중국에서 진 회장님에 대해 관심이 많아진 모양입니다.”

“흠…….”

“아무튼, 앞으로는 조심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이런 일은 현장에서 잡지 않으면 외교적으로 어필하지도 못하니까요. 아까 내가 말했던 수칙은 기억하시겠죠?”

“물론입니다.”

“뭐 귀찮아도 어쩌겠습니까. 이제 그게 진 회장님의 운명인 것을.”

그는 슬쩍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특이한 것은 그에게선 딱히 긴장감은 엿보이지 않는다는 것.

하긴, 정보부처의 수장으로써 이런 일을 어디 한두 번 겪었을까.

아마 나와는 사건을 대하는 기분 자체가 다를 거다.

“아! 그리고. 방금 우리 직원이 한 가지 사실을 더 알려왔는데, 방금 아빠 불곰이 정식 외교 루트를 통해서 진 회장님을 러시아로 초빙했답니다.”

“저를 왜요?”

“이번 자이로와 전투기 기술교환을 위해 임 차장이 러시아로 가기로 했었는데, 아빠 불곰이 임 차장 대신 진 회장님께서 직접 와주었으면 한다는군요.”

연이은 그의 속삭임에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싶은 기분이 들었다.

우스운 것은 상황이 지나치게 절묘하다는 것.

이건 마치 신의 안배처럼 아귀가 딱딱 맞아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잠깐, 설마 정말로 누군가가 내 인생에 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진 회장님. 어쩔 생각이냐고 물었습니다만.”

“……어쩌긴요. 당연히 가야죠. 그런데 부탁이 한가지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그 아빠 불곰이라는 표현은 좀 다른 것으로 바꾸면 안 됩니까? 막상 당사자와는 이미지 매치가 전혀…….”

“흠, 그럼 두목 불곰으로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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