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53화
“…….”
늦은 밤, 아니 새벽에 갑작스레 찾아온 나와 진현철을 바라보는 진 회장의 표정은 당황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긴, 서로 같은 자리에서 밥도 잘 안 먹으려 노력했던 관계였던 존재들이 떡하니 함께 나타났으니 뭐.
더군다나 당장 병원으로 가자는 재촉까지 있던 와중이라 혼란은 더해졌을 거다.
“안 가.”
“왜 또 고집을 피우십니까, 아버지.”
단호히 거부하는 진 회장을 향해 진현철이 설득에 나섰다.
좀처럼 볼 수 없던 진현철의 진심 어린 모습.
그럼에도 진 회장은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아직은 그리 급한 상황은 아니니 걱정할 것 없어. 설마 나 죽을 때까지 공여자가 안 나올까.”
“원장님 말씀 못 들으셨습니까? 두 번째 이식은 최대한 위험부담을 덜어야 한다지 않습니까.”
“설사 그렇다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하겠어. 이러려고 자식들 거뒀냐는 말들을 안 할 것 같아?”
“그런 말을 왜 신경 쓰십니까? 일단은 아버지께서 살고 봐야죠.”
진 회장과 진현철의 논쟁은 거세졌다.
거부하는 진 회장도 진 회장이지만 그걸 끝내 설득하려는 진현철의 노력을 보며 난 이제껏 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내려놨다.
그래, 욕심은 누구나 있을 수 있는 거지.
정작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가치 앞에 그걸 내려놓을 수 있느냐는 것이 중요할 뿐.
“쓸데없는 소리들 할 거면 가서 잠이나 자. 이 시간에 우르르 몰려들 와서 대체 뭐 하는 짓들이야?”
“아버지!”
끝내 거부하는 진 회장의 태도에 진현철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곧 진 회장이 다시 몸을 돌리려는 차, 난 툭 하고 말을 던졌다.
“오는 길에 원장님과 통화 해보니 대기자들이 어마어마하더군요.”
“…….”
그 말에 사위가 조용해졌다.
곧 미간을 좁힌 진 회장이 다시 돌아섰고, 난 그 시점에 말을 이었다.
“다시 말해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아버지께서 살아나실 방법이 없다는 소립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불법을 자행할 성격도 아니시니 그거야 당연하겠죠.”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결국, 방법은 가족 간 이식뿐인데, 왜 그렇게 고집하십니까? 혹시 형님 것이 싫으시면 제 것이라도 받으시든지요.”
“…….”
진 회장은 황당하다는 듯 쳐다봤다.
쐐기를 박기 위해 한마디를 더 보탰다.
“그리고 어머니 생각은 해 보셨습니까? 만약 아버지께서 지금 돌아가시면 어머니는 그대로 낙동강 오리 알 되시는 겁니다.”
“……뭐?”
“아닐 것 같습니까? 어차피 둘 다 혼외자식인 마당에 우리 중 누가 어머니를 제대로 모실 것 같습니까.”
그 말에 진 회장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얼핏 눈이 마주친 김 여사의 얼굴에선 순간적으로 미소가 엿보였다.
“아버지도 아시죠? 어머니가 얼마나 세상 물정 모르시는 분인지. 그런데도 마음 편하게 가실 수 있으십니까? 그리고 어머니 가슴에 대못을 두 번이나 박으셨으면 보상은 충분히 하고 가셔야죠.”
진 회장의 눈빛이 한순간에 달라졌다.
다른 무엇보다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린 듯.
역시나 힐끗 김 여사를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선 강한 동요가 일어났다.
“진심이냐?”
“뭐가요?”
“나 죽으면 네 어머니 안 모실 생각이냐고.”
“모시기야 하겠죠. 하지만 어디 친아들처럼 살갑기야 하겠습니까? 아마 그건 형님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스윽.
진 회장의 시선은 즉시 진현철에게로 향했다.
이런 쪽으로는 딱히 재주가 없었던 듯 그는 연신 허공만 쳐다보고 있었다.
“떠그럴, 자식새끼들 키워봐야 다 소용없다더니…….”
그는 입술을 앙다물며 돌아섰다.
여전히 고집을 피울 생각인가 싶은 생각이 들 무렵, 그가 툭 하고 말을 던졌다.
“그래서, 둘 중 누가 기증하겠다는 건데?”
피식.
******
“두 분 다 푹 주무신다고 생각하십시오.”
며칠 후, 진 회장과 진현철은 나란히 침대에 누워 수술을 위한 안내를 받았다.
누가 기증을 하겠냐는 진 회장의 말에 먼저 나선 것은 역시나 진현철.
나 역시 그냥 넘어갈 수만은 없어 나서봤지만 끝내 그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수술 후 회장님께서는 한동안 면역 억제제를 투여받으실 겁니다. 그 탓에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 해야 하니 그 점을 염두에 두십시오.”
원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 회장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뭘 말하고 싶어 하는지는 익히 짐작이 가는 상황.
회사 문제는 한동안 신경 쓰지 말라는 말로 위로를 건네자 그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이번엔 옆 침대에 누워 있던 진현철을 향해 넌지시 물었다.
희미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 그는 곧 귀를 가까이 대라는 듯 손짓하더니 가만히 속삭였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내가 못 깨어나면 내 방 컴퓨터 좀 정리해 줄래?”
“…….”
“특히 잡영어로 된 폴더는 확실하게 지워줬으면 좋겠다.”
피식.
“자! 수술실로 모시겠습니다.”
시답지 않은 농담을 남긴 그는 곧 수술실로 실려 갔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내내 닫혀 있던 수술실의 문이 열리며 집도를 담당했던 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어려운 경제 여건으로 인해서 침체 되어 가기만 하던 국민 여러분들에게 기쁜 소식을 한 가지 전달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정부는 미국과 맺어졌던 사거리 지침이 대폭 개정되었음을 발표했습니다.]
사거리 지침의 개정 소식은 그로부터 며칠 후에야 발표되었다.
그건 전적으로 미국의 요청 때문이었는데, 아마도 그사이 일본 정부의 로비로 인해 혼선이 있었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 국정원장의 주장이었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의하면 이번 지침 완화는 사실상의 제한 철폐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참 미국도 대단하다는 말이지.
아무리 로비가 횡행한다고 해도 미 정가는 국가의 절대적 이익 앞에선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보여준 셈이다.
“일본은 우리가 아닌 북한을 핑계로 이지스 함정의 수량을 대폭 늘리겠다는 발표를 했는데요?”
뉴스를 지켜보던 김 비서는 들고 있던 신문을 넌지시 내 앞에 들이밀며 말했다.
1면을 장식한 것은 우리의 사거리 지침 변경으로 인한 국제관계의 변화를 예상하는 기사들.
아마 한동안은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반발이 예사롭지 않을 거다.
“미국 군수업체들은 파티 분위기겠군요.”
“왜요?”
“어차피 그 함정에 설치될 통제 레이더는 죄다 미국에서 수입해야 할 테니까. 미국으로서는 꿩 먹고 알 먹기인 셈 아닙니까.”
난 짧은 대꾸를 끝으로 신문을 살폈다.
특이한 것은 러시아의 반응.
그들은 단지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는 발표 외에 이러다 할 반응은 없는 편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그나저나 병원에서 별다른 연락은 없었습니까?”
우려와는 달리 진 회장은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한동안은 경영 일선에 다시 나서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
결국, 이사회는 경영 공백을 막기 위해 진행 중이던 상속작업을 지속해서 추진하기로 했고, 조만간 있을 회장직 승계를 준비하라는 통보를 해왔다.
“회장님께선 오늘 아침 중환자실에서 나오셨다고 합니다.”
“형님은요?”
“진현철 대표님도 자택에서 빠른 회복세를 보이시고 계십니다. 월요일부터는 재우건설에 다시 출근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진현철은 에어로스페이스로 복귀하라는 내 권유를 뿌리치고 당분간 건설사의 대표직을 유지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
더불어 혹여 있을지 모르는 대외적인 잡음을 완전히 제거해주겠다는 의도일 거다.
“저, 그런데…… 진현철 대표님께서 조금 이상한 말씀을 전해달라고 하셨는데요.”
“무슨 말을요?”
“있는 그대로 전달을 하자면. ‘그걸 지우란다고 정말로 지우냐?’라고 하셨습니다.”
“쯧, 쓸데없는 곳에 기운 빼지 말고 빨리 장가나 가라고 전하세요.”
“…….”
******
“좋은 아침입니다.”
어느덧 계절은 초겨울로 접어들었다.
그룹 본사로 출근을 시작한 것도 벌써 한 달 전.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강남의 차량 정체는 그야말로 지옥 같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내 직함은 회장으로 바뀌었다.
최종적으로 승계가 마무리된 것은 보름 전.
총 59퍼센트에 이르는 지분의 확보로 1대 주주의 자리도 차지하게 된 것은 좋았으나 정작 증여세가 문제.
결국, 우린 연부연납 제도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고, 그럼에도 세금의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진 회장과 난 거의 거지가 되다시피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회장님.”
나를 따라 그룹 본사로 이동한 김 비서는 비서실장 타이틀을 달았다.
우스운 것은 그녀가 실장을 달자마자 한 최초의 일이 비서실의 입단속.
정작 그녀 역시 매번 회장 비서실의 도움을 받고는 했어도 그게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음은 주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연구소에서 전화 없었습니까?”
공격헬기의 부품개발을 담당하고 있던 연구소에서는 최근 두드러진 성과가 나오고 있었다.
특히나 로터 블레이드의 경우.
러시아에서 넘겨준 기본설계를 바탕으로 탄소섬유를 우리가 개발한 것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시도했고, 그 결과 내구성을 최소 15퍼센트 이상 끌어 올리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안 그래도 연구소에서 오늘쯤 자체 개발한 탄소섬유 증착과 열처리 과정을 시도한다고 합니다.”
“결과 나오면 바로 연락 달라고 하세요.”
“네, 회장님.”
“그 호칭. 왠지 어색하군요.”
김 비서는 매번 대답 끝에 회장님이라는 호칭을 애써 강조했다.
아직은 어색하기만 한 호칭.
아마도 빠른 적응을 도우려는 의도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나저나 핵심엔진부품들의 소재 개선작업은 올 말쯤이면 끝이 날 것 같고, 당장 중요한 것은 대전차미사일인데…….’
난 처음 우리가 개발한 공격헬기에 우리가 2020년경 개발했던 천검을 달아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AESA의 장착으로 탐지거리가 증가하여 사거리 역시 대폭 증가시키는 것이 가능한 상황.
게다가 이미 복합유도 기술들을 개발한 마당에 굳이 레이저 유도방식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어차피 가격대가 비슷하다면 가성비 좋은 물건을 달아야 전력 운용 면에서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
띠이!
한참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사무실의 전화가 요란한 소리를 뱉어냈다.
자신의 손을 거치지 않은 전화가 연결된 것이 의아했던 듯 김 비서는 곧장 비서실을 향해 달려갔다.
“네, 진현승입니다.”
아무리 김 비서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곤 해도 비서실에서 아무 전화나 연결을 했을 리는 없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막상 수화기를 들자 국제 전화임을 알리는 다급한 여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짧은 대기음 끝에 들려온 것은 라이언의 목소리였다.
-그동안 잘 있었나, 현승? 참, 회장님이 되신 것을 먼저 축하해야겠군.
[고맙군. 그런데 왜 사무실로 전화를 한 거야? 휴대폰으로 직접 하면 되는걸.
-나라고 이런 거추장스러운 과정을 거치고 싶었겠나. 자네 휴대폰이 연결이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사무실로 한 거지.
[연결이 안 된다고?]
그 말에 힐끗 책상 위에 둔 휴대폰을 쳐다봤다.
배터리는 완충 상태.
신호가 원활함을 의미하는 안테나의 개수도 최고치에 이른 상황.
그럼에도 이틀 전부터 가끔은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는 했었는데, 아무래도 뭔가 문제라도 생긴 모양이다.
[내 휴대폰이 슬슬 고장 날 모양이군. 그나저나 어쩐 일이야? 단순히 내 회장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서 한 전화는 아닌 것 같은데?]
-역시 눈치 빠른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맞아, 희소식이 있어서 알려주려고 전화했어. 전에 우리가 접촉했던 공화당의 마이클 상원의원이 드디어 해결의 실마리를 잡아냈어. 듣고 있는 거야?
[듣고 있으니 계속해봐.]
난 계속해서 휴대폰을 이리저리 살피며 대꾸했다.
-사사키 재단과 연결된 민주당 의원의 이름은 도넌 제이슨이라는 자인데, 그자가 리처드 NSC 보좌관을 통해 모터시치 건을 일본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는 모양이야.
[그래서, 대책은?]
-다행히 마이클 의원이 NSC 리처드 보좌관의 약점을 잡아냈어.
[무슨 약점?]
-그 친구가 전에 수리를 맡겼다가 이사를 가버리는 바람에 잊어버리고 있던 컴퓨터를 찾아냈는데, 거기서 다수의 아동 포르노를 발견했다더군. 더불어 마약 투약 상태에서 음란 행위를 한 영상도 있고. 그래서 지금 FBI에 수사 의뢰를 하려고 하는데, 저쪽에서 딜을 걸어올 모양이야.
그 정도면 빼박이나 다름없었다.
놀라운 것은 정작 리처드 본인도 잊고 있었다던 컴퓨터를 찾아낸 마이클 의원의 능력.
새삼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아무튼, 곧 자네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올 거야. 사안이 워낙 심각해서 당장 딜에 응하지 않으면 행정부 전체가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을 상황이니까. 이건 여담인데, 공화당에선 지금 소 뒷걸음질을 치다가 대박을 잡은 상황이라서 그걸 이번 일에만이 아니라 두고두고 우려먹을 생각인 모양이야.
라이언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불현듯 떠오르는 것은 곧 소식을 접할 미스비시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기대감.
나도 몰래 빙긋이 미소가 지어졌다.
따르릉!
그때,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이 요란한 벨 소리를 뱉어냈다.
역시나 일시적인 오류였던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통화버튼을 누르자 심한 노이즈 속에 국정원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국정원장님.]
-통화 품질이 안 좋군요. 사무실로 전화 걸겠소.
답답함을 느낀 국정원장은 결국 사무실로 통화를 시도했다.
'분명 목소리가 꽤 다급해 보였는데.'
뭔가 또 일이라도 생긴 모양이다.
-이제야 소리가 또렷하군요. 다름이 아니라 혹시 지금 만날 수 있겠소? 장소는 강남에 있는 리츠 호텔로 오면 됩니다.
“거긴 왜…….”
“멀리서 손님이 오셨는데, 진 회장님을 꼭 만나 뵙고 싶다고 하시는군요. 가능하면 최대한 빨리 와주시면 고맙겠소.”
국정원장은 이번에도 구체적인 말은 하지 않은 채 전화를 끊었다.
당장이라도 나서야 할 상황이건만.
왠지 느낌이 이상하여 자꾸만 휴대폰에 눈길이 간다.
탁!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배터리 커버를 분리해봤다.
순간 드러난 배터리의 모습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
게다가 본체 역시 전과는 상태가 달랐는데, 삐죽이 튀어나온 선 하나가 플라스틱 분리막을 뚫고 보드의 회로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것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