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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52화 (52/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52화

이 시기의 차기 전투기 사업이라면 F-15K의 도입을 의미했다.

그걸 대신하여 자체 전투기 개발을 하자?

정작 말을 먼저 꺼냈던 것은 나였어도 막상 그게 현실로 다가오자 왠지 당황스러움이 몰려든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신 겁니까?”

“이번 순방에서 느낀 건데, 이대로 계속 국방 분야를 미국에게 끌려다니다간 끝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물론 우리가 미국이 개발한 무기들을 도입함으로써 남들이 쉽게 넘보지 못할 군사력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어디 공짜로 이루어진 것일까.

더군다나 매번 막대한 지출을 하면서도 큰소리 한번 못 치는 처지가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도입을 고려 중인 F-15 역시도 운용비가 시간당 수만 달러에 달한다고 하던데, 자체개발의 경우엔 그 정도까지는 아닐 것 아닙니까.”

“자체개발이 운용비 측면에선 이익이긴 합니다. 더불어 부품 고장을 즉각 대응하는 것이 가능해서 운용률의 하락도 막을 수 있고요 한데, 정말 마음을 굳히신 겁니까?”

“일단 내 생각은 그렇습니다만, 가능은 하겠습니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차기 전투기 사업의 기종을 선정하는 것은 대략 2002년경. 그리고 시제기가 도입된 것은 2005년.

즉, 7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 셈인데, 결국 그 시간만 맞춰 전력 공백의 위험성만 피하면 되는 것 아닌가.

“가능합니다.”

더군다나 우린 기본을 깔아 놓고 사업을 시작하는 상황이다.

곧 수십 년간 쌓인 수호이의 기술과 운용 노하우들을 통째로 확보할 예정.

더불어 이번 거래를 통해선 완전한 엔진 제작기술 역시 확보하게 되었으니까.

어디 그뿐일까, 무려 2024년까지 전투기 창정비와 운용과정에서 얻은 데이터들은 물론, KFX의 개발과정에서 얻은 경험들도 절대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즉, 어지간한 오류들에 대한 대처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거지.

해서 엔진만 완성 되면 불필요한 과정들은 건너뛰고 곧장 기술실증기를 제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데, 그렇게만 된다면 이후 발생할 운용상의 오류들을 잡아갈 시간도 충분하다.

“그런데 자체개발한다면 F-15와 비교해서 어느 정도 수준일 것 같소. 공군은 필시 그 정도 수준의 폭장량과 작전 능력을 원할 텐데.”

“일단 수호이의 엔진을 베이스로 개량을 거치는 상황이기에 엔진의 힘만큼은 F-15를 능가하는 수준이 될 겁니다. 때문에, 그 부분은 걱정을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런가요?”

“거기에 레이더는 적의 재밍을 회피하는 것은 물론 역재밍을 거는 것이 가능한 수준입니다. 쉽게 말해서 사실상 F-15와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다는 소리죠.”

“…….”

“한가지 사족을 더하자면 우리가 개발할 엔진은 전력생산능력도 뛰어납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

“소프트웨어의 개선 여부에 따라 레이더를 통해서 부분적인 전자전 능력을 갖출 수가 있다는 소리죠. 그 경우 미국을 제외하곤 우리의 제공권 확보능력을 앞설 국가는 없을 겁니다.”

“…….”

대통령은 평소보다 깊게 숨을 내뱉었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거겠지.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다가 아니다.

“만약 사업이 성공하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또 하나가 있습니다.”

“…….”

“KF-16의 업그레이드가 가능해지죠. 만약 개발된 AESA와 무장 시스템을 KF-16에 이식하는 경우엔 전혀 다른 기체가 되는 겁니다.”

“하지만 그 부분은 노키드가 거부하면 불가능한 것 아닙니까?”

“물론입니다. 하지만 저들로서도 F-16이 부활할 기회를 거절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행히 이번에 우리 재우와 노키드와의 관계가 어느 정도 풀린 상황이니 우리가 원한다면 차후 협력은 얼마든지 가능할 겁니다.”

“흠…… 그 부분은 차후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일단은 잘 알겠소.”

대통령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내 휴식을 취하려는 듯 뒤편에 있던 문으로 향하던 그는 잠시 멈칫하고 다시 돌아섰다.

“참, 향후 MRBM 개발을 재우가 담당하는 것은 돌아가는 즉시 명문화될 겁니다. 단, 그것 역시 기밀사업이기에 대외적인 발표는 안 할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겠죠?”

“물론입니다.”

어느덧 대통령의 목소리는 잔뜩 갈라져 있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리.

오랜 비행을 염려한 비서실장은 슬쩍 내게 눈치를 주었고, 난 결국 짧은 인사를 끝으로 재빨리 자리로 돌아왔다.

“진 전무!”

이제야 휴식을 취할 수 있으려나 싶던 차에 국정원장이 또 내 이름을 불렀다.

차마 대꾸할 힘이 없어 그대로 자는 척을 하려는 순간, 그가 내 어깨를 강하게 흔들었다.

“혹시 전화 꺼놨소?”

“네, 이제 곧 출발할 것 같아서……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당장 본가에 전화해 보시오. 방금 진현필 회장님께서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았소.”

“…….”

******

“그새 퇴원을 하셨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공항까지 나를 마중 나온 김 비서는 생뚱맞은 소식을 전해왔다.

“쓰러지셨다기보다는 일시적인 현기증으로 거동에 불편을 느끼셨다는 비서실의 전언입니다. 해서 잠시 병원에서 조치를 하고 퇴원하셨습니다.”

“다른 이상이 없는 것은 확실하고요?”

“그게…….”

김 비서는 확신을 갖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실은 담당 의사를 통해 물어보기는 했는데, 개인의 의료기록은 누설할 수가 없다고 해서 더는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회장님께서 함구령을 내리시기도 했고요.”

“회장님 비서실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최근엔 거기서도 전혀 정보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회장님께서 직접 단속을 하시는 모양이에요.”

그 정도면 분명 뭔가가 있다.

당장이라도 본가로 달려가려 양 비서를 향해 손을 흔들려는 차, 김 비서의 입에서 대뜸 의미심장한 말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룹 법무팀의 움직임이 좀 이상하긴 합니다.”

“……무슨 소립니까?”

“전무님께서 미국에 가 계신 며칠 동안 법무팀에서 회장님의 지분 전체를 상속했을 경우 발생할 세금 문제를 논의했다고 합니다.”

“회장님의 지분을 상속하다니. 누구에게요?”

“제가 들은 바로는 전무님께 전체 상속을 하신다는…….”

“…….”

상황이 그렇다면 더 이상의 사태파악은 의미가 없었다.

어쩐지, 내내 예감이 불길하더라니.

다급한 마음에 즉시 차에 오르려는데, 느닷없이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요란한 소리를 뱉어냈다.

“안 그래도 전화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진현철이었다.

그도 다급했던 거겠지.

그런데 이건 또 무슨 경우지?

정작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가 한없이 차분하기만 했다.

-미안하지만 아버지를 찾아뵙기 전에 나와 먼저 대화를 좀 했으면 싶구나.

“…….”

******

“어떻게 된 겁니까?”

진현철과 얼굴을 마주한 곳은 강남에 있던 그의 자택이었다.

시간은 벌써 저녁 11시.

하지만 그는 여전히 정장 차림이었고, 테이블 위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찻주전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왔어?”

나를 맞이하는 그의 표정은 평소와는 많이 달랐다.

뭐랄까, 꼭 독기가 잔뜩 빠져 버린 느낌?

단순히 좁아져 버린 입지 때문만은 아닌 것 같고, 뭔가 일신상의 큰 문제라도 터져서 낙심에 처한 사람 같다.

“차 한잔할래?”

자리에 착석하자 그가 찻잔 하나를 내밀었다.

이내 향이 가득한 꽃차를 가득 채운 그는 한동안 말없이 나를 쳐다만 봤다.

“지금 이럴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요.”

“아니, 이럴 상황이 맞아. 아버지를 뵙기 전에 너와 내가 꼭 해결해야 할 일이 있거든.”

그는 짧은 변명과 함께 찻잔을 들이켰다.

곧 고개를 갸우뚱 해 보인 그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너와 단둘이서 차 한잔을 못 마셔봤네. 아니, 차는커녕 술 한잔도 못 해봤군. 미안하다, 형이 돼서 변변찮은 자리 한 번을 못 마련하고.”

“…….”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분위기가 어색해서 슬며시 차를 들이켰다.

피로 때문인 듯 뜨끈한 찻물이 속을 타고 내려가는 느낌에 온몸이 노곤노곤 해진다.

“너 그때 일 기억 하냐?”

“…….”

“네가 처음 사고치고 경찰서에 갔던 날 말이야.”

“갑자기 그때 일은 왜 꺼내는 겁니까?”

무심하게 말하곤 다시 잔을 입가에 가져갔다.

이내 단숨에 비워내자 그가 넌지시 말한다.

“그때 내가 했던 말은 정말 미안하다.”

“…….”

“차마 입에 담지 말았어야 할 말이었어.”

“…….”

“뭐 네게 사과를 하자면 그게 어디 한두 가지겠냐 만은 그때가 가장 먼저 떠오르더구나.”

“혹시 나 오기 전에 혼자 술이라도 했습니까?”

“아니, 술은커녕 오늘 하루 먹은 것이라고는 이 차가 전부야. 그리고 미안하지만, 아직 사과할 것이 많이 남았으니 끝까지 들어주면 싶구나.”

“…….”

그 말에 침묵했다.

아무리 봐도 정말 술에 취한 것 같지는 않아 보였거든.

묵묵히 쳐다보자 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모터시치 건도 미안하다. 내가 아니었으면 그룹이 그렇게까지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텐데…….”

“엄밀히 따지면 그 문제는 형님 잘못이 아닙니다. 하니, 그 부분은 사과하실 것 없습니다.”

“…….”

그 말에 진현철의 눈빛이 흔들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한참 주저하던 그가 푹 고개를 숙였다.

“이해해줘서 고맙다. 하면 혹시 부탁 한 가지만 해도 될까?”

“…….”

“아버님 좀 설득해 주었으면 싶구나.”

“설득이라니. 뭘 말입니까?”

“제발 스스로 삶을 내려놓으실 생각 좀 하지 말라고.”

순간 뭔가 상황이 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세히 말해보세요.”

“너도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었겠지? 아버지가 지금 상속 준비를 하고 계시다는 것.”

“네, 안 그래도 법무팀을 통해서 지분 일체를 제게 상속하는 것을 진행 중이라는 말은 들었습니다.”

“맞아, 그래서 말인데, 나도 이젠 그룹이 네 위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이젠 반대할 생각이 없다. 단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버지를 살리고 싶은 생각뿐이다.”

“무슨…… 거 속 시원하게 말 좀 하시죠.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답답한 마음에 재촉했다.

그러자 그는 결심에 찬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곧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아버지께선 지금 예전에 이식받았던 신장에 문제가 생긴 상태야. 해서 하루라도 빨리 재이식을 받지 않으면 정말로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그걸 거부하고 계셔.”

“……재이식이라니, 대체 언제 신장을 이식받으셨었다는 말입니까?”

기억엔 없던 일이었던 터라 당황스러웠다.

그는 마치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듯 말을 이었다.

“네가 처음 친모를 떠나 본가에 들어왔던 것이 아마 고3 때쯤이었지? 그때 이미 아버지는 신장 이식 수술을 받으신 상태였다.”

“…….”

“이제야 말해줘서 미안하다. 하지만 네게 그 일을 알리지 말라는, 당시 아버지의 당부 때문에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아무튼, 그래서요. 재이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면 당연히 받아야지 왜 포기를 하신다는 겁니까?”

“문제는 재이식의 경우엔 위험부담이 크다는 거다. 그나마 안전한 방법은 이번엔 가족이 직접 공여를 하는 건데, 내가 아무리 기증을 한다고 해도 아버지께서 그걸 극렬하게 거부하셔. 부탁인데, 함께 설득 좀 해주면 안 되겠니?”

순간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자식이라곤 해도 신장을 기증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당황스러운 마음에 눈을 끔뻑이던 찰나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혹시나 오해할까 싶어 하는 말인데, 공여는 내가 할 생각이니 넌 걱정할 것 없어.”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

그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내 다시 찻잔을 채우더니 상황과는 걸맞지 않은 말을 끄집어냈다.

“다시 말하지만 난 이제 네가 그룹을 지휘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반발할 생각이 없다. 하니 그 부분에 대해서도 오해가 없었으면 싶구나.”

순간 입속이 텁텁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찻잔을 들어 올리려는 차, 또 한 번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아마 너도 그동안 꽤 억울했을 거다. 따지고 보면 어차피 너나, 나나 같은 처지였던 마당에 오로지 너만 차가운 시선을 받아왔었으니까.”

“그건 또 무슨…….”

대꾸를 하려다 문득 입이 다물어졌다.

이내 설마 하는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자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맞아, 나 역시 지금의 어머님과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 즉, 너처럼 혼외자식이라는 소리지.”

“…….”

“솔직히 나도 처음엔 믿고 싶지 않았다. 그걸 알게 된 것도 머리가 다 큰 후였고. 핑계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래서 네게 더 독하게 대했는지도 모르겠…….”

“일어나시죠.”

스윽.

그의 말을 끊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곧 나를 쳐다보는 그를 향해 혀를 차 보이자 그가 머쓱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어딜 가려고?”

“설득하러 가야죠.  왜요, 그럼 이대로 그냥 돌아가시게 둘 겁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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