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51화 (51/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51화

[어디 그것뿐입니까, 그들의 핵연료 재처리 시설의 보유조차도 결국엔 막지 못했죠. 그 결과 이미 일본은 당장이라도 핵무기로 전용이 가능한 수십 톤의 플루토늄을 보유 중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겐 고작 사거리지침 폐지조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말입니까?]

그녀는 차마 대꾸를 하지 못하고 입술만 씹어댔다.

분위기로 봐선 딱 여기까지가 한계.

이젠 압박보다는 우리의 미사일 사거리 제한 폐지가 가져올 이점들을 거론하는 것으로 대화의 패턴을 바꿔야 할 때다.

[만약 우리가 중국 전역을 타격 가능한 미사일을 보유하게 되면 미국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그들을 견제할 수 있습니다. 하니 어정쩡한 개정보다는 차라리 이 기회에 완전철폐를 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중국이야 그렇다 쳐도 일본은 어쩌고요. 일본 정부가 그걸 두고만 볼 거라고 여기는 건 아니겠죠?]

[물론 일본의 반발이야 당연하겠죠. 하지만 그거야 장관님께서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미국에서 충분히 제어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최악의 경우 일본은 이미 실질적으로는 장거리 미사일 기술을 보유 중인 상황임을 강조해야죠.]

[…….]

그녀의 눈빛이 서서히 흔들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들 무렵, 대뜸 그녀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미안하지만 전 잠시 백악관의 분위기를 좀 살펴야 할 것 같군요. 참, 그 전에 우리 한 가지만 확실히 하죠. HVP의 기술이전 품목에 유도시스템과 AESA 레이더까지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겠죠?]

[그야 물론이죠.]

벌떡!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이내 우리에게 양해를 구한 그녀는 곧장 방을 나섰고, 한참이 되어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하아…… 이거 피가 마르는군요. 비록 우리에게 일임하시긴 했지만 아마 각하께서도 지금쯤 무척이나 초조해하실 겁니다.”

국정원장은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슬며시 쳐다본 내 손 역시도 흥건한 상태.

손수건을 꺼내려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는 차에 국정원장이 내 손에 쪽지 한장을 건넸다.

-그나저나 설마 AESA를 있는 그대로 넘겨줄 생각은 아니겠죠?

당연히 그럴 생각은 없다.

우리가 만든 AESA는 고고도에서 떨어지는 탄도미사일 요격까지도 상정하여 만들어낸 물건.

게다가 효율적인 전력 운용을 위해 TR모듈의 소자도 질화갈륨을 기반으로 했는데, 그걸 달랑 사거리 지침개정과 바꿔먹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당연히…….

나 역시 주변을 살피며 종이를 건넸다.

순간 국정원장의 눈이 커다랗게 떠지며 나를 쳐다본다.

“가능합니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TR모듈의 소자를 다시 갈륨비소로 바꾼다던가…….여타 몇몇 기능들을 제거하면 충분히 가능하지.

뭐 사실 상관은 없다.

어차피 극적인 기능 하락은 없을 테니.

딱, 저들이 원하는 수준. 그것만 맞춰 주는 거다.

게다가 저들은 우리가 개발한 AESA의 정확한 스펙도 모르는 상황인데.

국정원장은 안도의 빛을 내비쳤다.

내심으론 그도 우리가 가진 패가 모두 소모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던 것일 테다.

-한데 진 전무 생각은 어떻습니까. 미국이 과연 완전한 철폐를 받아들일까요?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 특히나 일본의 영향력이 막강한 민주당 정권에선 더더욱. 그렇다고 또 우리가 인정하지 못할 수준을 제시할 수는 없을 테니 일단은 두고 봐야죠.

국정원장은 쯧 하고 혀를 차며 주고 받던 메모지를 구겼다.

나라고 그 마음을 이해 못 할까.

중국이고 일본이고, 매번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저들이 나로서도 지긋지긋하다.

벌컥!

그때, 통화를 위해 밖으로 나갔던 국무장관이 다시 들어왔다.

이내 그녀는 갑자기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쳐 놓더니 한껏 진중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흠…….]

그녀는 말을 뱉어내기에 앞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이내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일단 백악관의 의견을 전해드리죠. 한미 미사일 지침의 완전한 철폐는 불가능합니다.]

[…….]

[단, 탄두 중량 제한의 완전한 해제. 그리고 사거리를 최대 3000킬로미터까지. 즉 MRBM의 개발까지 허용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딱 우리가 수긍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어차피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할 것도 아닌 마당에야 사실상 그 이상의 사거리는 의미가 없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그녀가 갑자기 입매를 뒤틀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미스터 진이 주장한 것처럼 일본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고체연료를 기반으로 한 우주 발사체의 개발 역시 허용합니다. 어때요, 이쯤이면 만족합니까?]

스윽.

국정원장과 난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사실상 그 정도면 지침은 폐지 단계에 이른 것이나 마찬가지의 의미.

자리만 아니었다면 아마 환호성을 내지르고도 남았을 거다.

[자, 그럼 이제 아까 못다 한 기술교환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짓죠.]

잠시 우리의 표정을 살피던 국무장관은 자세를 고쳐앉으며 말했다.

맞아, 아직 그게 남아 있었지.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휘트니 사의 터빈 블레이드 기술이 재우에게 넘어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미스터 진도 잘 알고 있겠죠?]

그야 당연하다.

엔진 기술을 넘겨준다는 것은 재우의 자체 전투기 개발문제에 미국이 더는 딴지를 걸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걸.

실은 그래서 내가 더 그 문제에 매달리는 거다.

최악의 경우 우리가 모터시치를 인수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게 차선책이 될 수 있기에.

[물론입니다.]

[하면 결과를 알려드리죠. 지금 프렛&휘트니 사의 얀센 부회장께서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잘 알겠죠?]

순간 온몸에서 전율이 느껴졌다.

놀란 건 마찬가지인 듯 국정원장의 손이 갑자기 내 손을 턱 붙잡으며 강하게 힘을 준다.

“저걸 허용할 줄은 몰랐는데요?”

나 역시 그건 반신반의했던 문제였다.

사실 엔진 기술은 방금 그녀가 강조한 것처럼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큰 부분이었으니까.

하지만 기어이 그걸 허락한 이유는 아마도 현실적인 이유에서?

즉, 우리가 설사 터빈 기술을 얻어간다고 해도 자신들의 수준에 이르는 엔진 개발은 불가능할 거라는 자신감 때문일 거다.

[축하해요. 결국엔 당신이 원하는 바를 다 가져갔네요.]

하지만 그녀는 지금 내 존재를 간과하고 있다.

이미 미래의 기술을 다수 확보 중인 나.

때문에 우리는 충분히 그걸 만들어 낼 가능성이 크고, 그게 현실화 되었을 때는 아마 오늘의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할 거다.

[결정에 감사드립니다.]

[감사는요. 미스터 진의 말처럼 합리적인 거래가 이루어졌을 뿐입니다. 물론, 기술이전 문제는 의회 승인을 거쳐야 합니다만 그건 염려 안 해도 될 겁니다. 어차피 의회도 우리에게 주어질 이익이 더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또 육군의 요구사항을 끝까지 거부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스윽.

난 즉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마주 잡은 그녀의 손에선 강한 힘이 느껴졌다.

******

“죽겠네…….”

오늘따라 눈을 뜨는 것이 극도로 고통스럽다.

어젯밤, 늦도록 이어진 술자리의 결과.

내가 이 지경인 상황이면 아마 얀센 부회장은 시체가 되어 있을 거다.

피식.

전날의 기억이 하나씩 떠올랐다.

국무장관을 중개자로 삼아 이루어진 기술교환 합의는 순식간에 끝이 났고, 이후 얀센 회장은 끝내 괜찮다는 내 말을 무시한 채 호텔까지 따라왔다.

그리고 이어진 술자리.

그가 돌아간 것이 새벽 3시쯤이었으니 꼬박 5시간 동안이나 술을 들이부은 거다.

‘이럴 줄 알았으면 뭐 하나라도 더 뜯어낼 걸 그랬나…….’

프렛&휘트니의 반응은 내 생각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하긴, 그들로서도 사업 확장의 기회를 놓치기는 싫었겠지.

더군다나 점점 좁혀오는 일본의 기술력도 그들로서는 이제 무시할 상황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차피 일본도 곧 우리와 근접한 수준의 엔진을 만들어 낼 겁니다. 아니, 그들의 기술 수준이면 외려 전력생산 측면에서는 더 뛰어난 것도 만들어 낼 수 있겠죠. 하니 사실상 우리도 몸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때 받는 것이 최선인 상황이었소. 단지, 정부와 의회의 승인이 나지 않아서 못했던 것뿐이지.

문득 그가 술자리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마치 미래를 알고 하는 것 같던 그의 말에 어찌나 놀랐던지.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은 차후 XF-9 엔진 개발에 성공하게 되고, 그 결과 터빈 입구 온도가 무려 1800도. 그리고 180kW 수준의 전력생산 능력을 갖춘 엔진을 만들어낸다.

‘그나저나 끝내 모터시치 이야기가 안 나오는 것을 보면 정말로 일본의 로비가 심하기는 한 모양인데…….’

그 점은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하지만 절망할 필요가 없는 것은 난 이미 우리의 엔진개발 문제에 대한 시비를 차단해둔 상태.

즉, 모터시치를 인수하지 못한다 해도 그 부분에 대한 부담은 덜 한다는 거다.

“흠…….”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다.

이유는 역시 대형 항공기 제작에 대한 노하우 때문.

그게 있어야만 차후 전술 통제기를 만들던 대잠초계기를 만들던 할 것 아닌가.

‘저들과 전력의 판도를 뒤집을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라이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을 깨운 걸까, 피곤에 절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태 자는 거야?]

-말도 마. 어제 밤새 달렸더니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실은 어제 공화당의 마이클 상원의원을 만났거든.

[모터시치 때문에?]

-그럼 내가 미쳤다고 늙은 아저씨와 밤새 술을 먹었겠나.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당연히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지. 마침 마이클 의원이 유명한 반일 파라서 제일 먼저 접촉을 시도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야기를 꺼내자 눈빛부터 달라지더군.

[그 양반은 왜 일본을 싫어하는데?]

-선친이 사이판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목숨을 잃으셨다더군.

상투적이지만 가장 확실한 이유였다.

제 부모를 죽음으로 이끈 존재들에 대한 감정의 골은 사실상 그리 쉽게 매워지는 것이 아니니까.

[수고했어. 그나저나 가능성은 좀 있어 보여?]

-뭐가?

[일본에게 돈 받아먹은 의원들의 약점을 찾는 것 말이야.]

-그 부분은 걱정할 것 없어. 마이클 의원이 그 부분에선 도가 튼 양반이거든.

[그렇다면야 나로선 다행이고. 참, 필요한 경비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즉시 보낼 테니 걱정하지 말게나.]

통화는 그것으로 끝을 맺었다.

시간은 어느덧 오전 11시.

귀국을 위한 집합시간까지는 불과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던 터라 서둘러 짐을 쌌다.

“이쪽으로 오시게.”

도착한 공항엔 이미 대부분의 경제인 단체 회원들이 모여 있었다.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이용문 회장의 손짓.

표정으로 봐선 이번 방문에서 그 역시 꽤 대단한 성과를 올린 듯한 느낌이다.

“만족하실만한 성과가 있었나 보죠?”

“만족하다 뿐인가. 이틀 내내 만난 관련 업계 사람들만 해도 한 트럭은 될 걸세. 물론 그게 전부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개중 협력 관계가 이어지면 삼정의 발전에 도움이 될만한 곳들도 많았지.”

그는 말끝에 힐끗 나를 쳐다봤다.

마치 나는 어땠느냐는 듯한 눈빛.

누가 재계 최고의 정보통 아니랄까 봐, 그 만큼은 나의 미국방문이 특별한 이유가 있었음을 짐작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피식.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곤 일어섰다.

[대한민국 경제인 단체 회원 여러분들께서는 지금 즉시 탑승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침 들려오는 안내방송은 우리의 탑승을 재촉하는 것.

난 한시라도 빨리 지친 몸을 쉬게 하겠다는 욕망에 제일 먼저 비행기에 올랐다.

“진 전무. 잠시 좀 봅시다.”

그런데 막 자리를 찾아가려는 순간 국정원장이 나를 붙잡았다.

쉬기는 개뿔.

내 팔자가 그렇지 뭐.

“무슨 일이십니까?”

“각하께서 찾으십니다.”

“…….”

******

“수고가 많았어요.”

대통령의 얼굴에서는 피로감이 잔뜩 묻어나왔다.

하긴 저 나이에 해외 순방을 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더군다나 사거리 제한 문제로 꼬박 하루를 시달렸을 텐데, 정신적으로 피로가 쌓이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할 거다.

“어젠 수고가 많았습니다. 덕분에 정부가 국민들에게 내세울 것이 하나쯤은 확실하게 생겼어요.”

“수고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어차피 저도 제게 돌아올 이익을 바라고 한 일인데요. 사거리가 철폐되면 새로 개발할 미사일은 당연히 저희 재우가 감당할 것 아닙니까.”

그건 일종의 못을 박아두자는 심산으로 한 말이었다.

막말로 재주는 내가 부리고 이익은 정부만 챙길 수는 없지 않던가.

뜻을 이해한 듯 대통령은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건 그렇고. 실은 진 전무를 따로 부른 것은 협의할 것이 좀 있어서요.”

“어떤…….”

“얼핏 듣자 하니 터빈 기술만 확보가 되면 이제 자체 전투기 개발은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면 대한민국의 차기 전투기 확보 사업을 아예 자체개발로 진행하면 어떻겠소. 지난 번에 진 전무가 주장했던 것처럼.”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