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50화
다음 날, 우리가 묵고 있던 호텔에서 한미 양국 경제인들을 위한 만찬회가 열렸다.
참석자의 수만도 거의 200여 명.
그중 몇몇은 가끔 우리나라 TV에서도 얼굴을 비추던 인물들이었다.
[오! 이용문 회장님. 이게 얼마 만입니까.]
이용문 회장의 인기는 대단했다.
가뜩이나 삼정이라는 브랜드는 미국 내에서는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던 입장.
게다가 최근 90나노 기반을 세계 최초로 반도체 공정에 적용한 업체다 보니 마치 꽃에 벌이 꼬이듯 관련 업체 사람들이 그의 주변으로 잔뜩 몰려들었다.
[샴페인 한잔 드릴까요?]
만찬 회장은 전형적인 미국식 파티 분위기였다.
영화를 통해서나 듣던 고전적인 음악과 음식들.
쟁반 위에 잔뜩 올려놓은 술잔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파티 도우미들의 모습.
앞으로 닥칠 일만 아니라면 오늘만큼은 나 역시 저 분위기에 녹아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진 전무님.”
잠시 허전한 배를 채우고 있던 와중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의 틈바구니를 뚫고 다가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국정원장.
잠시나마 느꼈던 여유가 홀랑 날아가 버린다.
“가시죠, 국무장관과의 약속장소가 정해졌습니다.”
그의 평소와 다르게 일을 재촉했다.
덕분에 난생처음 느껴보는 여유를 즐기지도 못한 채 곧장 파티장을 빠져나왔고, 우린 곧장 미 국무부에서 보낸 차량에 올라탔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우릴 태운 차량은 곧장 연방대법원이 있는 거리로 직행했다.
그곳에서 한 10분쯤 달렸을까.
어느 대형 빌딩 앞에 잠시 서는가 싶더니 차량이 곧장 지하주차장으로 향한다.
[어서 오십시오.]
문을 연 사내의 덩치는 어마어마했다.
그렇듯 커다란 덩치를 가진 양 비서가 마치 어린아이처럼 느껴질 정도.
귀에 리시버를 꼽고 있는 것으로 봐선 미 정부 산하기관의 요원 같은데, 막상 눈이 마주치자 덩치와는 걸맞지 않게 배시시 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왜 이래.
미안하지만 난 그런 쪽 취향이 아니야.
[12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온몸에 돋는 소름을 털어내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는 상태.
답답함에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여기가 대체 어딥니까?”
“미 국무부 산하기관의 사무처요. 아마 안에 들어서면 국무장관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국정원장은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하긴, 지금 우린 단순히 방문외교 사절단이 아니라, 국가의 주요 이익을 협상하기 위해 온 협상단의 입장이니까.
실은 나도 아까부터 부쩍 목이 마르는 느낌이다.
[어서들 오세요.]
우릴 맞이하는 국무장관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다.
그게 비록 예의상 보이는 웃음이라도 보는 이로 하여금 부담감을 덜어주는 느낌이랄까.
하나 여인의 몸으로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이끌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실상 만만히 봐서는 안 되는 상대임을 명심해야 한다.
[처음 뵙습니다. 재우탈레스의 진현승입니다.]
[제프리 해군 참모총장을 그렇게 애태우신 분이시라더니 생각보다 젊으시군요.]
그녀는 한동안 가벼운 주제들로 대화를 이끌었다.
아니, 절대 가벼운 주제가 아니지.
연평도 포격 사건을 가볍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아무튼, 대략 20분 정도를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던 무력 충돌을 화두로 대화를 잇던 그녀는 어느 순간 시계를 한번 쳐다보곤 본론을 끄집어냈다.
[우리가 왜 이 자리에 함께 있는지는 굳이 말 안 해도 이미 알고 계시겠죠?]
꿀꺽!
어디선가 마른 공기를 집어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힐끗 시선을 주자 임 차장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사실 이 자리에 어울리는 분은 내가 아니라 군 관계자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대화의 결과에 대한 최종 책임자는 나이니만큼 어쩔 수가 없었죠.]
그녀는 말을 빙빙 돌렸다.
내 입에서 먼저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무렵, 갑자기 그녀의 눈빛이 돌변했다.
[백악관에서 우리의 협상 결과를 기다리는 상황이니만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미합중국은 대한민국에서 개발한 자이로와 HVP 시스템의 기술이전을 정식으로 요청하는 바입니다.]
[......]
난 순간 귀를 의심했다.
자이로는 그렇다 쳐도 HVP는 왜.
그건 애초 시스템 구축을 대신 해주는 것으로 이미 미 해군과 결론을 내린 상황에서.
‘쯧…….’
그때, 돌연 전날 제프리가 내게 해주었던 이야기가 뇌리를 스쳤다.
미 육군이 HVP 구축에 목을 매고 있다던.
아마 그들을 포기시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거라던.
결국, 그거였나.
육군의 청원을 해결은 해야겠고, 그렇다고 우리 생산 능력은 따라가 주지를 않고.
결국엔 기술을 받아서 직접 구축하겠다는.
문제는 그 문제를 국무장관이 직접 거론했다는 건데, 왠지 쉽게 넘어갈 분위기는 아닌 듯하다.
[죄송하지만 이 자리에서 왜 갑자기 HVP 문제가 거론되는 건지 모르겠군요.]
[예정에 없던 문제였음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들려온 말에 의하면 재우탈레스의 시스템 구축능력이 미 해군의 요구물량조차도 채 소화하지 못한다더군요. 그 와중에 우리 육군은 끝까지 그걸 요구하고 있고. 하니 나로서는. 아니 정부로서는 해결방법을 찾아줘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그녀의 말투에선 강력한 의지가 묻어나왔다.
마치 그걸 해결하지 못하면 아무도 저 문을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
사실 미국이 나를 직접 부른 이유가 단순히 자이로 문제 때문만은 아닐 것쯤은 예상하기는 했다만, 그래도 막상 현실로 닥치고 보니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든다.
이건 뭐 말이 협상이지 협박과 다를 것이 뭐가 있어.
[그럼 제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뭡니까?]
[…….]
국무장관은 이렇다 할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이런 반응쯤은 예상했다는 듯.
곧 그녀는 또 다른 압박을 시작했다.
[지금 백악관에선 양국 대통령들께서 한미 미사일 지침의 개정을 논의 중입니다. 우리의 대화 결과에 따라 그게 대한민국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결과를 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꿈틀!
순간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슬며시 국정원장을 쳐다보자 그 역시 탐탁지 않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래서 2차 정상회담과 동시에 우리와의 협상을 진행하는 거로군. 그렇다고 너무 쫄 필요는 없소. 어차피 각하께서도 그 문제에 대해선 나와 진 전무에게 일임하신 상태니까.”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국정원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우리의 대화가 궁금한 걸까, 국무장관의 고개가 잠시 한쪽으로 기울었고, 난 즉시 내 주장을 피력했다.
[그 말씀은, 고작 미사일 지침 개정하는 것을 핑계로 전략기술을 두 개나 요구하겠다는 겁니까? 그것도 정부산하기관도 아닌 민간 업체가 개발한 것을?]
[…….]
그녀는 마지막 말에 허를 찔린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얼핏 당황하고 있는 사이 다시 말을 이었다.
[솔직히 기술을 내어놓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두 기술 모두 우리 정부가 아닌 재우에서 개발한 것이니 그걸 얻어가려면 당연히 우리에게도 합당한 보상을 하셔야죠.]
[흠…….]
국무장관은 미간을 찌푸렸다.
곧 나를 빤히 쳐다보던 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뱉어냈다.
[사거리 지침이 개정되면 재우로서도 합당한 보상을 받게 되는 것 아닌가요?]
[…….]
[어차피 대한민국의 탄도미사일 개발 사업도 정부 산하기관이 아닌 재우가 손에 넣고 있잖아요. 차후 늘어난 사거리만큼 새로운 미사일을 개발하는 작업도 재우가 감당할 것 아닙니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좋아,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문제는 아직 하나 더 남아있다.
[궤변 같기는 한데, 일단은 그 점은 인정하는 것으로 하죠. 그럼 또 하나의 보상은 뭡니까? 전 분명 패를 두 개나 내놓는 상황인데, 아직 미국은 하나만 제시하셨지 않습니까.]
국무장관은 헛웃음을 뱉어냈다.
곧 좌우로 눈알을 굴리던 그녀는 잔뜩 주름진 입술로 말을 뱉었다.
[뭘 원하죠?]
[프렛&휘트니 사의 F119엔진 터빈 블레이드 제작기술. 정확하게는 일체형 성형기술과 초내열합금기술을 원합니다.]
주저하지 않고 말을 뱉어냈다.
차마 예상치 못한 것이었을까, 그녀가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지금 당신이 뭘 주장하는지는 알고 하는 말입니까?]
물론 알고 있다.
난 지금 미국이 가장 유출을 꺼리는 것을 내어 달라는 중이라는 걸.
하지만 내게도 이런 기회는 그리 흔치 않다. 하니 제프리의 말처럼 베팅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미안하지만 F-22의 엔진 기술은 논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누가 엔진 기술 전체를 달라고 했습니까? 전 분명 터빈 블레이드 하나만을 제안했을 텐데요?]
[…….]
그녀는 목이 타들어 가는 듯 앞에 있던 물잔을 쉬지 않고 들이켰다.
뭐 이해를 못 할 바는 아니지.
비록 부품 하나뿐이라곤 해도 사실상 그게 F119엔진의 꽃이거든.
일체형 터빈 제작기술의 경우엔 엔진의 경량화와 부품의 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초내열합금기술의 경우엔 터빈 입구 온도를 무려 1600도까지 끌어 올릴 수 있는, 그야말로 핵심 중의 핵심 기술.
만약 그걸 내가 얻게 되는 경우 우린 완전한 전투기 엔진 기술을 습득하게 되는 거나 다름없다.
‘제발 고개를 끄덕여라!’
굳게 닫힌 그녀의 입을 보고 있자니 속이 타들어 갔다.
사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것은 있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이 바로 초내열합금기술 때문이었는데, 이젠 그 지긋지긋한 짐을 어떻게든 내려놓고만 싶거든.
텅스텐과 티타늄. 그리고 탄티늄과 레늄등.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 절대로 섞이지 않는 금속들을 단결정으로 용융시키는, 그 극악의 주조기술은 과거에도 나로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휘트니 사의 초내열합금기술은 곤란합니다.]
국무장관은 끝내 거부 의사를 내비쳤다.
절망의 한숨이 뱉어지려는 차, 그녀가 실금 같은 틈을 엿보였다.
[그건 우리가 승인한다고 해도 휘트니가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니까.]
[만약 받아들인다면요? 자이로와 HVP 기술을 둘 다 그들에게 준다면 가능성은 충분할 텐데요?]
[…….]
[아주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 않습니까. 어차피 제게 건네받는 기술들을 미국 정부가 소유하려는 생각은 아닐 테고, 결국엔 군수업체로 건너갈 텐데. 그럴 바에는 휘트니 사에 몰아주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된다면 승산은 있을 거다.
오로지 엔진 제작에만 편중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가진 탓에 확장에 한계가 있는 것이 그들의 현실.
하지만 자이로를 통한 미사일 개발사업으로의 진출과 방공망 구축이라는 새로운 사업 분야를 확보하게 되면?
수백억. 아니 미국의 군사 규모만으로 본다면 자칫 천억 달러가 넘을 수도 있는 이익을 챙길 기회를 그들이 거부할 이유는 없을 거다.
[흠…….]
국무장관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똑똑!
때마침,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서선 국무장관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고, 그녀는 곧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우릴 향해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 문제는 잠시 미루고 사거리 지침개정을 먼저 논의하죠. 아무래도 양측 대통령께선 그 문제를 먼저 해결하시길 바라시는 모양입니다. 해서 말인데, 우린 트레이드 오프 방식을 제안합니다.]
[…….]
[어차피 800킬로미터급 미사일은 이미 만들어졌으니 사거리는 그 정도 선으로 제한하고, 대신 탄두 중량을 줄이면 그에 따라 사거리를 늘리는 것으로 하죠.]
그건 내가 기대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나 트레이드 오프 방식은 더더욱.
탄두 중량이 줄어들게 되면 그 파괴력이 현격히 저하되는데, 그럼 설사 사거리가 늘어난다 해도 더는 전략 미사일이라 부를 수가 없게 된다.
[대체 언제까지 눈 가리고 아웅 할 생각이신 겁니까?]
[…….]
국무장관은 그 말에 당황한 눈빛을 보였다.
어차피 뱉어낸 마당에 주저할 것이 뭐가 있을까.
수십 년간 쌓인 울분을 이자리에서 죄다 토해낼 생각이다.
[정작 미국과 전쟁을 치룬 일본에도 없는 사거리 지침은 이제 철폐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말입니다.]
[뭔가 오해한 모양인데, 일본은 사거리 지침이 없어도 어차피 그들의 헌법으로 인해 공격 무기 개발은 불가능합니다. 더군다나 우린 일본을 통제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고요.]
반박하는 국무장관의 표정은 잔뜩 굳어있었다.
내 앞에서 이런 변명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하지만 지금은 그 사실을 들춰낼 때가 맞다.
그래야 내가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으니까.
[그럼 일본이 개발 중인 고체연료 기반 우주 발사체는 어쩌고요. 탄두만 바꾸면 ICBM이 될 텐데, 그걸 공격용 무기가 아니라고 말씀하실 겁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