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49화
[왜 그런 생각을 하신 겁니까?]
[이유야 많겠지만 그중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지금 미국이 보유 중인 ICBM에 장착된 기계식 자이로가 문제점이 많다는 거요.]
그 점은 나도 알고 있던 바였다.
MIT에서 처음 개발하여 무려 10년에 걸친 개선작업을 거쳐 극강의 정확도를 구축한 물건.
하지만 지나치게 높은 정밀도를 추구한 나머지 구조적으로도 복잡한 것은 물론 부품 또한 희소성이 높은 소재들로 가득한.
전해 들은 바로는 그런 이유 들로 인해서 생산물량이 1년에 고작 다섯 개에 불과하다는데, 그 정도면 가격이 천문학적으로 치솟는 것은 둘째 치고. 자칫 기존 제품들의 고장에 대한 대응조차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요?]
[그 와중에 한국에서 해결책이 될 만한 것을 만들어냈으니 당연히 욕심이 나지 않겠소? 수리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는 것은 물론, 핵 투발 수단에 대한 안정적인 확장도 가능하죠. 게다가 그걸 토마호크 같은 순항 미사일에도 적용할 수 있다면 미국으로서는 그야말로 신의 창을 갖게 되는 거나 마찬가지요. 하니 이 기회에 제대로 된 베팅을 한번 해 보라는 겁니다.]
[…….]
잠시 침묵으로 일관했다.
딱히 그걸 생각 못해서가 아니라 의도가 궁금해서.
엄밀히 따진다면 그는 분명 미국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입장인데, 지금 태도는 그와는 정반대되지 않는가.
[그런 눈으로 볼 것 없소. 내 딴에는 골치 아팠던 문제를 해결해 준 것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해주는 조언이니까. 그렇다고 미스터 진이 갑자기 핵에 관련된 황당한 요구를 할 것도 아니고.]
피식.
웃어 보이긴 했어도 기분은 씁쓸했다.
이 시대의 국제관계를 고려하면 사실 자이로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기술을 준다고 해도 핵과 관련된 것은 용인되지 않을 것임은 나도 인지하고 있거든.
하지만 농담 속에 뼈가 있다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베팅을 하라는 권유를 하는 와중에도 정작 그 부분만큼은 짚고 넘어가는 제프리의 태도는, 다시 한번 문제 해결의 어려움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참, 초대한 손님이 한 명 더 있는데, 잠시 합석을 해도 괜찮겠소?]
[누구를…….]
문득 이어지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동시에 딸랑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웬 은발의 중년인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실은 문제를 확실하게 정리하고 싶어서 노키드 마틴 측 인사를 한 명 불렀소. 이름은 케빈 브라이언. 대외담당 이사직을 맡고 있는 인물이죠.]
사내가 걸어오는 짧은 사이 제프리의 말이 이어졌다.
미처 예상치 못했던 상황.
하지만 뭐라 대꾸도 하기 전에 제프리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난 그나마 예는 지키자는 의도에서 몸을 일으켰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사내는 제프리를 향해 인사를 하곤 곧장 나를 쳐다봤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곧 아차 싶었는지 그가 나를 향해 손을 내민다.
[케빈 브라이언입니다.]
[진현승입니다.]
마주 잡은 손에선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얼핏 얼굴에 스쳐 간 표정으로 봐선 그 역시 이 자리가 그리 편하지만은 않은 느낌.
하긴, 자신들이 그토록 짓밟으려 했던 자와 이런 식의 만남을 갖는다는 것이 편하지는 않았을 거다.
[서서 그러지들 말고 일단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제프리의 말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착석했다.
시간을 아끼려는 걸까, 제프리는 곧바로 케빈을 향해 말했다.
[케빈. 조금 전, 재우탈레스와 미 해군은 주요 협력사업에 대한 합의를 마쳤소. 그게 무슨 뜻인지는 말 안 해도 알고 있겠죠?]
[물론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서 미스터 진에게는 심심한 사과의 뜻을 전합니다. 참고로, 지난번 일을 기획했던 한국 지부의 제레미 정은 이미 파면 조치한 상황입니다.]
[…….]
케빈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
왠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세를 낮추는 모습.
사실상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이라 머리가 멍하다.
[저, 그런데 총장님. 정말로 요구 성능의 재조정은 불가능한 겁니까?]
내게 사과를 전한 이후 한동안 뜸을 들이던 케빈은 제프리를 향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로서는 의미를 알 길이 없는 대화 내용.
잠시 의자에 등을 붙이곤 눈치를 살폈다.
[난 지금 그 이야기를 하자고 당신을 이 자리에 부른 것이 아닙니다. 여기가 그런 이야기를 할 만한 장소도 아니고.]
제프리는 짧은 대꾸를 한 끝에 슬쩍 나를 쳐다봤다.
곧 케빈의 시선도 잠시 내게로 향하는가 싶더니 그가 갑자기 긴 한숨을 뱉어냈다.
[어차피 내일이면 언론에서도 떠들어 댈 문제인데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나도 속 시원히 말하죠. 만약 우리 해군이 이 시점에서 다시 요구 성능을 상향한다면 그건 일부러 보잉을 밀어내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게 가능할 것 같습니까.]
[하아…….]
케빈은 또다시 한숨을 뱉어냈다.
무슨 생각에서일까, 곧 나를 향해 다시 시선을 준 그는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을 뱉어냈다.
[사람 일이란 모르는 거라더니……. 막상 우리가 이런 처지가 되고 나서야 재우의 기분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군요.]
왠지 진심이 담겨 있는 느낌이었다.
정확히는 해탈의 경지에 이른 자가 자신의 옛 자취를 돌아보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는 느낌.
대체 뭐가 노키드 같은 업체를 저렇듯 기운 빠지게 했는지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일단 전 상관하지 마시고 말씀들 나누십시오.]
[고맙소. 재우그룹과 관계를 푸는 것도 중요한 문제긴 하지만, 당장 우리로서는 이게 더 중요한 문제라서…….]
그는 어색한 웃음을 보이곤 다시 제프리를 쳐다봤다.
이제 내 귀는 의식하지 않기로 작정을 한 건가.
두 사람은 연신 논쟁을 이어갔다.
[그래도 혹여 해군 장관께서 나서신다면……. 총장님께서 그 부분을 좀 도와주십시오.]
[답답한 말씀을 하는군요. 이미 보잉이 요구 성능을 충족해 버린 것을 나보고 어쩌라는 말입니까.]
순간, 갑자기 온몸에서 전율이 돌았다.
아무리 봐도 저 대화는 차기 미군의 통합 전투기 사업에 관한 이야기 같거든.
당황스러운 것은 그게 왠지 역사와는 다르게 돌아가는 느낌이라는 건데, 특히나 보잉이 해군의 요구 성능을 충족했다는 대목은 분명 역사와는 맞지 않았다.
애초 역사에서는 바로 그 대목에서부터 보잉이 패색을 드러냈거든.
하면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설마 X-35가 아니라 X-32가 미군의 차기 통합 전투기가 되는 건가?
[그래도 너무 실망할 것은 없지 않소. 말했듯 아직 최종 선정까지는 2년 가까이 남은 상태인데. 그사이 노키드도 꾸준한 개선을 하게 되면 가능성은 있지 않겠소?]
위로랍시고 뱉어낸 제프리의 말은 그다지 효과가 없어 보였다.
하긴, 말이 개선이지.
무장 탑재량을 조금 높이는 것만도 설계 전체를 손대야 할지 모르는 마당에 그게 어디 쉬울까.
다른 건 몰라도 그 부분만큼은 케빈의 심정이 이해됐다.
[알겠습니다. 미안하지만 전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그는 결국, 짧은 인사말을 남기고 일어섰다.
그대로 자리를 뜨는가 싶더니 불현듯 다시 돌아서선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
[혹시 재우에선 소식을 들었는지 모르겠군요.]
[무슨 소식이요?]
[일본이 사사키 재단을 통해 어마어마한 로비를 하고 있다더군요.]
[…….]
[모터시치 말입니다. 거길 미스비시가 인수하고 싶어 하는 모양입니다. 사실 미스비시가 전부터 민항기 사업 진출을 노리기는 했었는데, 이 기회를 발판 삼을 모양이더군요. 사실 모터시치 인수의 상징적 의미는 재우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니 아마 그걸 노린 움직임일 겁니다.]
[……그런 중요한 정보를 왜 제게 말해주는 거죠?]
[글쎄요, 뭐 일단은 사과의 의미라고 생각하시죠. 아무튼, 아직도 모터시치에 관심이 있다면 대책 정도는 세워둬야 할 겁니다.]
케빈은 그 말을 끝으로 레스토랑을 빠져나갔다.
한동안 지속된 침묵.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제프리였다.
[미안하지만 그건 나도 모르는 일이었소.]
[그러셨겠죠. 그거야 어디까지나 정치권에서 벌어진 일이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 시점에 일본이 왜…….]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케빈이 해주지 않았습니까. 미국 정부가 일본의 모터시치 인수를 허락한다면 일본의 민항기 시장 진출을 용인받는 것과 같다. 하니 그걸 노린 것이라고.]
[하면 그들을 나무랄 일도 아니지 않소. 어차피 재우나 미스비시나 목적은 매한가지인 셈이니.]
[맞는 말씀입니다. 어차피 그들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거니 그걸 탓할 수는 없죠. 죄송하지만 저도 이만 가봐야 할 것 같군요.]
난 짧은 대답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역시 제프리를 향해 짧은 인사를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쩔 생각이오.]
[어쩌긴요. 이해하는 것은 이해하는 거고. 결과적으로 다 지어 놓은 남의 밥상에 수저를 올려놓은 건데, 그걸 두고 볼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그 수저를 똥 밭에 내던져줘야죠.]
[…….]
******
[라이언?]
레스토랑을 나온 즉시 라이언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워싱턴에 있던 그는 내 전화에 득달같이 달려왔고, 우린 그가 자주 가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자네 얼굴이 팍 삭아 보이는군.]
라이언은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젠장, 농담이 아닌 건가?
표정이 왠지 그런 것도 같고.
[요즘 하도 일이 많아서 잠을 못 잤더니 그런 모양이군. 자넨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나도 피곤한 건 마찬가지지 뭐. 배 나온 정치인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일까. 참, 궁금할 것 같아서 미리 말해두는 건데, 케이트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야. 점점 상황이 심각해져서 집에서는 대처가 안 되는 정도라서. 아마 조만간 나쁜 소식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어.]
결국, 그녀의 운명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뭐 내가 병을 가져다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이 불편한 것은 사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병원비를 내가 감당하고 있다는 건데,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나저나 보잉과 노키드는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잠시 들었던 생각을 떨쳐내곤 물었다.
그사이 휴대폰을 보며 딴짓을 하던 그는 즉시 상체를 내 쪽으로 숙이며 말했다.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해주려던 참이었어. 실은 보잉이 X-32의 성능개선에 성공했어. 그 바람에 노키드가 다 된 밥에 코를 박아 버렸지.]
[…….]
[뭐 항간에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노키드가 더 유리할 거라고들 하는데, 그건 모르는 일이야. 특히나 인테이크로 분사 가스가 재유입되는 현상을 완벽하게 잡아서 엔진 출력 문제가 해결된 것은 물론 무장능력도 노키드보다 앞서버렸거든.]
가스 재유입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확실히 보잉에게도 승산은 남아 있다고 봐야 한다.
아니, 무장제어 방면에서는 탁월한 보잉이라면 자칫 판을 뒤집을 가능성도.
이거 잘하면 정말로 역사가 제대로 뒤바뀌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아까 자네가 전화상으로 했던 말은 대체 뭐야? 미스비시가 모터시치를 먹으려 한다니. 난 그런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불현듯 뱉어진 라이언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사실 당장 내게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문제.
즉시 생각을 떨쳐내곤 설명을 이었다.
[정식 로비스트를 동원한 것은 아니기에 자네가 모를 수도 있어. 노키드의 전언에 의하면 사사키 재단이 나섰다는데, 그럼 필시 그들에게 친숙한 민주당의 거물이 연루되었을 거야.]
[흠…… 그럴 수도 있겠군. 사사키 재단은 특히 민주당에 어마어마한 돈을 뿌려대곤 했으니까. 아무튼,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면 재우는 이제 어쩔 생각이야? 일본이 여당인 민주당에 잔뜩 약을 발라 놓은 상태면 뺏어오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럼 우린 공화당을 이용해야지.]
[…….]
라이언은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조금 후, 의미를 이해한 듯 그의 입매가 잔뜩 벌어졌다.
[상원을 통해서 태클을 걸자는 거군. 어차피 지금 상원은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으니까.]
[맞아, 총알은 내가 제공을 할 테니까. 자네는 국방 분야에 입김을 불어 넣을 수 있는 공화당 측 상원의원들을 포섭해줘.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사사키 재단의 돈을 먹은 민주당 의원들의 약점을 잡아.]
[그래서, 그들의 발목을 잡고 딜을 걸자?]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던 듯 라이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다 좋은데 후폭풍은 어떻게 감당하려고? 결국, 희생양이 될 민주당 의원들은 이 나라 정권에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존재들이잖아. 이 일을 계기로 재우가 민주당에 완전히 밉보일 수도 있어.]
그건 상관없다.
앞으로 몇 년 후, 미국의 정권은 다시 공화당이 차지하게 될 테니까.
그리고 어차피 미국의 정치는 돈의 논리에 의해 움직인다.
당장은 조금 밉보인다 하더라도 결국 돈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거지.
[그렇다고 내가 차려 놓은 밥상을 눈뜨고 남에게 빼앗길 수는 없잖아. 문제는 잡을만한 발목이 있느냐는 건데, 가능 하겠어?]
라이언은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곧 피식 웃음을 뱉어낸 그는 불쑥 손을 내밀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자네가 뭘 모르는 군. 이 나라에서 털면 제일 먼지가 많이 나오는 자들이 바로 정치인들이야.]
[그거 다행이군.]
씨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