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46화
“벌써 7월 1일이군.”
찌는 더위에 본격적인 여름이 다가왔음이 실감 났다.
청와대를 다녀온 것도 어느덧 한 달 전.
다음 달로 예정된 대통령의 미국 순방 길 동행을 위한 준비로 그동안엔 눈코 뜰 새도 없었다.
“전무님, 연구소 김희원 박사님에게서 방금 연락이 왔는데, HVP 통제 레이더 시제품의 최종 조립이 완료될 예정이니 오늘 꼭 방문해 달라십니다.”
바빴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애초 11월로 예정되어 있던 포병용 AESA 레이더의 최종 조립이 무려 3개월 이상이나 앞당겨진 상태.
매번 통화 때마다 연구원들이 영혼을 갈아 넣고 있다는 말을 해대더니 그게 영 농담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시부레…… 얼굴 한번 보기 더럽게 힘드네. 아무리 바쁘다고는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
희원은 거의 좀비가 되어 있었다.
무릎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은 둘째 치고 체중도 거의 10킬로그램 이상은 빠진 느낌.
언제 감은 건지, 떡 진 머리에선 쉰내가 풀풀 올라왔다.
“수고…… 욱! 많았다.”
“닥쳐! 이젠 그런 입에 발린 말은 사양하겠…… 어라? 이게 뭐야?”
불평하는 희원을 향해 봉투 하나를 건넸다.
내용물이 뭔지는 충분히 짐작할 터.
재빨리 말을 멈추고 봉투를 살피던 놈의 입에선 기함이 터져 나왔다.
“미친! 무슨 상여금이 이렇게나 많아?”
“착각하지 마. 연구원들 모두에게 전달할 돈이니까.”
“그렇다 해도, 이 정도 금액이면 한 사람당 최소 2억 이상씩은 돌아가겠는데?”
“노력에 합당한 대가는 받아야지. 이 시점에서 오너가 인색해지면 반드시 배신자가 나오기 마련이거든. 참, HVP 배치가 본격화되면 그만한 금액의 상여금이 추가로 지급될 테니 그렇게 전해. 혹여 딴생각들은 말라는 소리지.”
“어차피 딴생각은 꿈도 못 꿔. 철저한 분업화 몰라? 게다가 볼펜 하나조차도 마음대로 못 가지고 나가는 상황에서 기술유출은 무슨. 참, 그나저나 이번에도 그 친구의 공이 컸다는 사실은 알아둬라.”
“......”
“최인배 말이야, 전에 밀리파 레이더 테스트할 당시 알고리즘을 손봤던 친구 있잖아. 이번에도 그 친구가 네가 준 소스들을 분석해서 유도시스템을 좀 더 개선했는데, 실력이 진짜 장난이 아니야. 한 20일 정도 그 일에만 매달리는가 싶더니 유도시스템의 정밀도를 기존보다 15퍼센트는 더 끌어 올리더라고,”
“기특한 친구로군. 알겠고, 테스트 장소가 강화도라는 것은 알고 있지?”
“안 그래도 조금 전에 전화 받았다. 지난번 스마트 포탄 테스트를 진행했던 곳이잖아.”
“아마 이변이 없으면 일주일쯤 후에 군에서 수송을 하러 올 테니까 그때까지 이송준비는 마쳐야 한다.”
“젠장, 안 그래도 죽을 판국에 진짜 죽으라고 등을 떠미는구나.”
불평하는 놈을 보고 있자니 왠지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사실 그가 아니었다면 누가 이렇게까지 나를 보조해 줄 수 있었을까.
아무리 급해도 몸보신이나 좀 시키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이후의 스케줄을 취소해버렸다.
“가자, 너 좋아하는 소고기나 먹으러.”
“진짜? 야! 기왕이면 꽃게나 먹으러 가자. 근처에 꽃게 집이 새로 생겼거든.”
피식.
놈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결국, 우리가 향한 곳은 연구소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꽃게 전문 식당.
오로지 연평도 산 꽃게만을 취급하는 것을 자랑하려는 듯 문 앞에 설치된 현수막엔 커다란 연평도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멈칫!
그때, 싸한 느낌이 등줄기를 스치며 퍼뜩 역사적인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1999년. 그리고 연평도.
분명 그때 분명 무슨 사건이 있었는데?
그래, 제1연평해전!
“오늘이 7월 1일인가?”
“맞아, 그런데 갑자기 왜 그렇게 놀라?”
역사적으로 제1연평해전이 일어난 날은 분명 6월 15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7월 1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왜 일어났어야 할 사건이…….
‘내가 날짜를 착각할 리는 없는데……’
아주 잠깐은 그런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뒤이어 떠오른 것은 그날이 하필 내 첫 연구과제를 성공시켰던 날이었다는 사실.
하지만 연평해전으로 인해 그 공은 퇴색되어 버렸고, 당시 원망의 눈초리로 뉴스를 봤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어이. 대체 왜 그러냐고.”
“아, 아니…… 피로가 좀 쌓인 모양이다.”
“웃기고 있네. 지금 뻔데기 앞에서 주름잡냐?”
잔뜩 인상을 찌푸리는 놈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내 놈의 등을 떠밀고 식당에 들어섰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역사가 뒤틀린 원인을 찾기 바빴다.
“그나저나 투발 수단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한창 꽃게 살을 파먹던 희원이 지나가듯 물었다.
생각을 잠시 미뤄둔 채 놈의 눈앞에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였다.
“이게 뭐야?”
“탈레스에서 개발한 투발 차량이다. 참고로 이번엔 무인 자동화 시스템으로 제작 중이야.”
“무인 시스템으로 간다고? 아니 왜?”
“접경지의 거리가 지나치게 짧잖아. 만약 북이 방사포를 발사하면 그게 탄착지점에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이 불과 몇 분에 불과한데, 그걸 사람이 대응하려다간 늦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 해서 이번에 탐지 즉시 곧바로 대응 탄을 발사하는 시스템으로 구축했다.”
“아…….”
희원은 뒤늦게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곧 한참을 사진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갸웃해 보인다.
“그런데 자주포의 형태가 아니네?”
“어차피 방어만을 목적으로 하는 마당에 굳이 그 비싼 자주포를 사용할 이유는 없으니까. 해서 군용 트럭을 개조하여 투발 시스템만 얹은 형태야.”
“오오! 이거 괜찮은데? 나중에 박격포도 이런 식으로 자주화해서 개발하면 좋겠다.”
놈의 대꾸에 잠시 뜨끔했다.
실은 이게 바로 그걸 모티브로 하여 나온 결과물이거든.
2020년경 우리 군이 개발했던 자주 박격포 시스템.
이놈 혹시 천재였던 것 아니야?
“왜 그렇게 쳐다봐?”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싱거운 놈.”
놈은 다시 온 정신을 꽃게 에만 집중했다.
덕분에 조용해진 식탁.
머릿속에선 다시 뒤틀린 역사에 대한 고민을 거듭했다.
‘대체 왜 연평해전이 일어나지 않은 거지? 역사의 뒤틀림에 의해 뒤로 밀린 건가? 아니면 아예 그 사건 자체가 없던 일이 되어버린 거?’
******
부우웅!
며칠 후, 완성된 HVP 시스템의 시제품 테스트를 위해 일부 군 관계자들과 난 다시 강화도를 찾았다.
전개와 동시에 작동을 시작한 대포병 레이더.
곧 스크린이 활성화되며 내장된 컴퓨터가 탐색을 위한 준비과정을 시작했다.
“대략 40킬로미터쯤 떨어진 거리에서 타겟이 날아올 겁니다. 탐색 레이더가 곧바로 그걸 잡아낼 것이고, 연동된 자동화 시스템으로 불과 수 초 만에 대응 탄체가 발사될 겁니다.”
“요격에 사용될 초고속 투사체의 속도는요?”
질문을 뱉어낸 이는 해병대 사령관이었다.
가장 먼저 배치가 확정된 연평도의 방어 임무를 담당하는 것이 해병대이니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상황.
아마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 성공을 바라는 인물은 그가 아닐까 싶다.
“최근 장약의 개선작업을 거쳐 최대 음속의 네 배정도 까지는 확보를 했습니다. 그 정도면 사실상 탄도미사일만 아니면 죄다 요격이 가능한 수준이죠.”
“그럼 테스트를 위해 동원한 발사체는 뭡니까?”
“북의 240밀리 방사포를 재현한 것입니다.”
사실 그건 기존에 내가 제공했던 플렛폼의 능력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애초 내가 예상했던 요격 가능 탄체의 직경은 최고 300밀리.
하지만 담당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최인배의 손에 의해 개선된 유도시스템은 이론상 130밀리의 직경을 가진 물체까지의 잡아낼 정도다.
사실상 그 정도면 포탄도 잡아낸다는 의미지.
[방사포 발사준비 완료됐습니다.]
그럼에도 240미리 방사포를 타겟으로 한 이유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 해도 그거야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 당장 확신도 없는 와중에 VIP들 앞에서 그걸 시도했다가 실패라도 하는 날엔 대망신이지 않던가.
[카운트다운 시작하겠습니다.]
잠시 후 안내방송을 통해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숫자가 0이 되는 순간 발사를 감지한 레이더의 신호를 받은 포가 즉시 방향을 틀고.
펑!
곧바로 엄청난 폭음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초고속 투사체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무슨 반응 속도가…….”
불과 수 초 만에 대응 탄이 발사되는 모습을 본 군 관계자들은 일제히 턱을 떨어트렸다.
퍼벙!
곧이어 저 먼 허공에서 날아오던 방사포탄이 폭음과 함께 파편을 비산하자 여기저기서 억 하는 신음이 뱉어졌다.
“2차 테스트는 다수의 방사포탄에 대한 대응상황을 상정한 것입니다. 스펙상 한기의 차량에 설치된 포는 분당 최대 24발의 초고속 투사체를 발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위잉!
설명과 동시에 포가 다시 방향을 틀었다.
저편에서 또다시 방사포탄을 발사했다는 의미.
사람들의 시선이 대응을 준비 중인 차량에 꽂힌 것과 동시에 그 위에 설치되어 있던 포가 연속으로 불을 뿜기 시작했다.
펑펑펑펑펑!
발사된 초고속 투사체의 수는 총 다섯 발이었다.
저편에서 발사한 방사포탄의 수 역시 정확히 다섯 발.
이제 남은 것은 정말로 다수의 표적에 대한 대응이 가능한지를 확인하는 거다.
쿵쿵쿵쿵쿵!
순간 허공에선 총 다섯 번의 폭음이 들려왔다.
단 한 발도 놓치지 않았다는 의미.
놀란 군 관계자들은 눈을 끔뻑이며 나를 쳐다봤고, 그들과 함께 참석한 국방부 군무원 중 몇몇이 득달같이 내게 달려왔다.
“저 정도 발사속도를 포신이 어떻게 버티는 겁니까?”
“포신의 코팅을 기존 크롬 도금이 아닌 탄탈륨으로 대체했습니다.”
탄탈륨 코팅은 내가 연구소를 설립한 이후 제일 먼저 개발했던 것이었다.
애초 목적은 자주포 포신의 성능 개선을 위해서였는데, 그게 이런 식으로 쓰일 줄은 나도 미처 예상을 못 했었다,
“탄탈륨 코팅은 독일만이 가능한 것 아니었습니까?”
“원래는 그랬죠. 하지만 이젠 우리도 가능합니다.”
“그럼 그걸 자주포에도…….”
군무원은 넌지시 욕심을 드러냈다.
내가 그 생각을 안 해봤을까.
실은 조만간에 그 문제로 K-9의 사업 주체인 이용문 회장과 협의를 좀 해볼 생각이다.
“수고가 많았습니다. 배치가 시작되면 전방 지역의 긴장감이 엄청나게 줄어들 겁니다.”
테스트과정을 모두 지켜본 국방장관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내 손을 맞잡았다.
이제 남은 것은 본격적인 배치 시기를 정하는 것뿐.
기회다 싶어 그걸 거론하려는 순간 그가 의외의 제안을 해왔다.
“혹시 저 시제품을 연평도에 임시 배치해두면 어떻겠소.”
“임시배치요?”
“실은 최근 연평도 인근 북의 방사포 부대들의 동향이 심상치가 않소. 뭐 우려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문제니 미리 대처를 해둬서 나쁠 것은 없지 않겠소?”
“북한 해군이 아니라 육군의 움직임이 이상하다는 말입니까?”
“북한 해군은 의외로 잠잠한 편입니다. 종종 꽃게잡이 문제로 트러블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거야 매해 있었던 문제고, 당장은 방사포 부대들의 움직임이 더 수상쩍습니다.”
“뭐 상관은 없습니다. 어차피 저희도 이대로 철수하느니 차라리 현장 배치를 해두는 편이 좋기는 하죠. 그럼 수송은 군이 맡아 주시겠습니까?”
“그야 물론이요. 한데 투사체는 확보가 되어 있습니까?”
“투사체는 테스트를 위해 충분히 실험 생산을 해둔 상태니 그걸 보내겠습니다. 아! 그리고 시제 차량도 2대 정도는 더 여유분이 있으니 함께 보내도록 하죠.”
“고맙소. 덕분에 한 시름 놨군요.”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나였다.
어차피 레이더 시제품은 지속적인 성능 테스트로 데이터를 쌓아두는 것이 필수.
빠른 현장 배치를 할 수 있다면 외려 이득이지 않던가.
‘그나저나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네. 정말로 북의 해상 도발은 역사에서 지워지는 건가?’
******
“흐음…….”
간만에 늦잠을 잤다.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온 날들이 1년 반을 훌쩍 넘긴 상태.
아무리 젊은 몸이라지만 피로가 누적될 만큼 누적되자 더는 버텨내지를 못했던 모양이다.
‘더 잘까…….’
더군다나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딱히 일찍 일어난다고 해서 할 일도 없다는 거지.
하지만 이미 깨어난 몸을 다시 잠들게 하는 것은 시간 낭비만 하는 것 같고, 결국 운동이라도 갈 요량으로 몸을 일으켰다.
“응?”
막 집을 나서려던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생뚱맞게도 발신자는 국방장관.
의아한 마음에 통화버튼을 누르자 저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 전무. 혹시 국정원장에게서 전화 못 받았습니까?
"국정원에서 왜요?"
-이런! 그럼 아직 소식 못 들은 상태겠군요.
“무슨 소식이요?”
-북한이 조금 전에 연평도에 어마어마한 포격을 가했소.
순간 들고 있던 전화기를 떨어트릴 뻔했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싶은 마음에.
아니 일어나야 할 연평해전은 안 일어나고 웬 포격.
역사적으로 연평도 포격 도발은 2010년에야 일어날 사건이 아니던가.
“혹시 요격에 실패했습니까? 연평도에는 이미 테스트용 HVP가 구축되어 있지 않습니까.”
-실패한 것이 아니라 단 한 발도 놓치지 않았소. 심지어는 해안포들이 쏟아낸 포탄까지도. 그래서 지금 미 해군은 물론 미 국방부에서 합참으로 사실확인을 위한 전화가…… 아무튼,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소. 젠장, 우린 지금 대응책을 논하느라 정신도 없는 판국에. 지금 당장 그쪽으로 차량을 보낼 테니 급히 합참으로 좀 와주시오.
국방장관은 다급히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TV를 틀었지만, 아직 방송에선 뉴스가 전해지지 않는 상태.
불과 몇 분 전, 또는 몇십 분 전에 일어났던 사건인 모양이다.
“정말로 포탄까지 죄다 잡아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