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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44화 (44/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44화

[잠시만요.]

눈빛이 돌변한 알렉세이가 주변을 향해 손짓했다.

동시에 국정원장 역시 요원들을 향해 무어라 속삭이자 일제히 방을 빠져나갔고, 이제 남은 것은 알렉세이와 나. 그리고 국정원장뿐이었다.

“여기 도청에 대한 염려는 없는 거겠죠?”

그럼에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국정원장을 향해 물었다.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인 그는 손가락으로 방금 사람들이 빠져나간 문을 가리켰다.

“여긴 창문도 없고, 문은 소리가 전혀 새어나가지 않는 완벽한 방음 시설을 갖춘 곳입니다. 게다가 하루 네 번씩 감청방지를 위한 작업을 하고 있고. 사실 말이 위장 사업체지. 국정원 본부와 거의 같은 수준의 보안 수준이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제야 안심이 됐다.

긴장을 풀어주려는 걸까, 원장은 손수 따른 커피 한잔을 나와 알렉세이의 앞에 내려놓는다.

[사실 러시아가 각오가 그 정도라면 우리도 얼마든지 교환에는 응할 수 있습니다.]

막 커피잔을 집어 들던 알렉세이를 향해 말했다.

슬며시 들리는 그의 얼굴엔 환한 표정이 지어지고.

하지만 정작 중요한 말은 지금부터다.

[단, 우리가 건네준 자이로 기술을 적용한 무기의 경우 향후 5년 안에는 세상에 드러내서는 안 됩니다.]

[그건 또 무슨…….]

알렉세이는 황당하다는 투로 나를 쳐다봤다.

[그게 내정 간섭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우리로서도 최소한의 안전장치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만약 러시아가 우리 기술로 만든 결과물을 당장 세상에 내놔버리면 미국이 우릴 의심할 텐데, 그럼 그 후폭풍은 누가 감당하겠습니까.]

[젠장……. 하지만 우릴 믿을 수는 있겠소? 만약 우리가 약속을 깨고 그 안에 결과물을 내놓는다면 어쩔 생각이오.]

[그땐 우리도 우겨야겠죠. 그건 우리가 건네준 것이 아니라 도난당한 기술이라고. 그것도 러시아 해외정보국에 의해서.]

[…….]

[그리고 만약 미국이 그걸 핑계로 러시아를 제재하는 것에 동참하라고 하면 지체하지 않고 따를 겁니다.]

[허허…….]

알렉세이는 황당하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갑자기 그의 표정이 한껏 진지해졌다.

[조건은 그것뿐이오?]

[뭐, 지금은…….]

[그럼 일단 나도 윗선에 그 점을 보고하죠.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건 내 손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닌 것 같으니까.]

알레세이는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기술 교환은 결국 현실이 될 거다.

그리고 이후 저들이 어떤 선택을 하던, 나로서는 상관이 없다.

약속을 지키면 지키는 대로 좋은 거고.

설사 약속을 깬다 해도 우리가 취할 행동에 대해선 미리 경고를 해두었으니까.

[아마 시간은 좀 걸릴 겁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러시아의 정치권 사정이 무척이나 복잡한 편이라서. 아무튼, 최대한 빨리 내가 다시 연락을 드리죠.]

서두르는 그에게선 공항에서 보여줬던 여유로움은 남아 있지 않았다.

아니 미처 예상치 못했던 상황 전개에 여유가 싹 날아가 버린 거지.

아니나 다를까, 돌아선 그의 입에선 차마 웃지 못할 불평이 쏟아졌다.

[젠장, 기왕 온 김에 그 유명하다는 때밀이 목욕이나 하면서 푹 쉬고 가려 했더니, 아무래도 그건 포기해야 할 것 같군.]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오전 국방부는 대한민국의 차기 공격헬기 사업을 자체 개발하는 쪽으로 결론 내렸다고 발표했습니다. 개발을 담당할 업체는 재우 에어로스페이스이며 총사업비의 규모는 4년에 걸쳐 최대 3조 원에 다다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며칠 후, 뉴스에서는 재우 에어로스페이스가 대한민국 대형공격헬기 사업자로 선정되었음을 알려왔다.

한동안은 각계각층에서는 사업의 성공 여부를 두고 토론이 이어졌지만, 결국 미국의 아파치 판매 거부로 인한 다른 대책이 없다는 여론이 우위를 점해가며 논란은 사그라들었다.

“축하합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에어로스페이스는 여전한 우려 속에서 본격적인 공격헬기 개발 체제로 들어섰다.

우스운 것은 미국의 반응.

내내 콧대를 높이던 미국은 그제야 아파치의 판매 가능성을 넌지시 열어 보였지만.

이번엔 외려 우리 정부가 그들이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기술이전을 조건으로 내세워 결국엔 물러서게 만들었다.

“이거 내가 감당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새로 에어로스페이스의 대표로 취임한 사람은 윤상현 대표였다.

목적은 이제 시작된 공격헬기 사업을 총괄하기 위해서.

나와 진 회장의 전적인 신임 탓일까, 표면상으로 보면 좌천이나 다름없는 인사이동이었음에도 그의 표정엔 여유로움이 넘쳤다.

“대표님께 무거운 짐을 맡겨드려서 죄송합니다.”

“현승이 네가 처음으로 내게 하는 진지한 부탁인데 어쩌겠어. 그나저나 부품 개발은 자네 연구소에서 직접 한다면서?”

“시간 단축을 위해선 그 방법밖에는 없으니까요.”

사실 개발시간 단축은 허울 좋은 핑계에 불과했다.

무려 총사업비가 3조 원에 가까운 대형 사업을 성공시킨 마당이면 정작 내 연구소에도 떨어지는 것이 있어야지.

어림짐작해도 부품과 소재 개발로만 5천억 원이 넘는 이익을 챙길 기회를 그냥 흘려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하긴, 이 사업 자체가 처음부터 자네 연구소의 기술력을 믿고 시작한 것이니까.”

게다가 지금 연구소의 성장세는 어마어마했다.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으라는 말이 있듯, 이 기회에 연구소의 규모를 확 키우자는 것이 내 바람이고 욕심이다.

‘그나저나 지금 연구소의 가치가 대략 1조 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던가?’

이런 성장세라면 내년쯤 내 연구소 단독으로도 어지간한 국내 방위 산업체들의 규모는 너끈히 넘어설 거다.

“참, 자네 형한테는 별다른 연락 없었어?”

에어로스페이스의 대표직을 사임한 진현철은 최근 건설로 넘어가 있던 상태였다.

딱히 그와는 연락을 주고받던 것은 아니었던 처지.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윤 대표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쯧쯧, 이젠 후계구도도 확정이 난 마당에 형제간의 앙금을 좀 풀어도 되련만.”

“앙금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서로가 얼굴을 맞대는 것이 불편할 뿐인 거죠.”

“그래도 난 자네들이 회장님 봐서라도 좋게 지냈으면 싶군. 사실 현철이가 욕심은 좀 있었어도 상식을 벗어난 친구는 아니잖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정말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으신 겁니까?

마침 말이 나온 김에 물었다.

요 몇 개월, 전과 같지 않게 부쩍 야위어 가는 진 회장의 건강 상태.

하지만 막상 그 질문을 하자 윤 대표는 슬그머니 말을 돌렸다.

“기침하시는 거야 워낙 폐가 안 좋으시니 그런 거고, 일단 서운하시지 않게 자네라도 자주 찾아뵙도록 해.”

짧은 당부를 남기고 에어로스페이스의 사옥으로 들어서는 윤 대표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게 뭔지를 밝혀낼 수가 없다는 것.

오죽했으면 진 회장의 주치의까지 찾아가서 알아봤지만, 그조차도 진 회장의 건강에 대해서는 왠지 말을 아끼고 있는 느낌이다.

젠장, 그렇다고 내가 직접 병원을 끌고 가서 확인해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원.

“응?”

한참 생각에 잠겨 있을 무렵 갑자기 전화기가 울었다.

발신 번호가 길고 요란한 것으로 봐선 국제전화인 듯한 느낌인데, 대충 누군지 짐작이 갔다.

-여! 현승. 나 라이언일세.

예상은 정확했다.

반가운 마음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려는 차, 잔뜩 흥분한 그의 말이 쏟아졌다.

-혹시 자네가 소식을 들었나 싶어서 전화했네. 모터시치 말이야. 결국엔 중국에서 인수시도를 하고 있다는군.

[그래?]

어차피 예상했었던 문제기에 별스럽지는 않았다.

문제는 가뜩이나 기술 탈취사건으로 미국의 눈총을 받는 중인 중국이 너무 생각 없이 달려드는 느낌이라는 것.

아직은 기를 펼 입장도 아닌 그들이 왜 자꾸 무리수를 두는 건지 모르겠다.

[미국 정부 입장이야 당연히 반대겠지?]

-그걸 말이라고. 지금 워싱턴이 그 문제로 난리도 아니야. 가뜩이나 해킹 사건으로 중국에 대한 감정이 안 좋은 상황에서 자꾸 심기를 건드리니까. 덕분에 노키드가 아주 욕을 한 바가지는 먹고 있다더군.

[무슨…….]

-차라리 재우가 인수를 해버렸으면 일이 이렇게 복잡해질 이유가 없잖아. 그래서 말인데, 최근에는 슬슬 자네 생각처럼 흘러가고 있어.

[…….]

-아 왜, 자네가 그랬잖아. 결국엔 미국 정부가 먼저 재우에게 접촉해 올 수도 있다고. 지금 그런 말들이 정부 부처 인물들 사이에서 슬슬 흘러나오고 있어. 그나저나 자넨 이제 어쩔 생각이야?

사실 모터시치 인수는 나에게 있어 중요한 사안이다.

다른 걸 떠나서 미국이 그걸 허용한다는 것은 우리의 전투기 개발을 용인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거든.

즉, 차후 자체 전투기 개발에 있어서 미국의 간섭을 배제할 수 있다는 소리인 거지.

[흠…….]

물론 애로점은 있다.

터빈 입구 온도 1200도에 불과한 그들의 내열 기술력은 1600도를 넘나드는 서방 엔진에 비하면 지극히 떨어지는 수준.

부품의 내구성 또한 서방에 비한다면 현격한 수준차를 드러낸다.

[제안이 온다면야 당연히 응해야겠지.]

그럼에도 선뜻 결정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대형 항공기제작기술 때문이었다.

어차피 전투기 엔진이야 러시아와의 기술 교환만 성공하면 문제 될 건 없고.

모터시치의 대형 터보팬 엔진과 이중반전 프롭 엔진. 그리고 밀 설계국에 납품 중인 초대형 수송 헬기의 엔진은 그야말로 욕심이 나거든.

만약 그걸 우리가 보유하게 되면 향후 전술 통제기는 물론 수송기와 대잠초계기. 하다못해 민항기 시장의 진출까지도 가능하니까.

하면 남은 것은 터빈의 초내열합금기술을 어떻게 내가 원하는 수준인 1800도까지 끌어 올리냐는 건데, 그건 아마도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거다.

[아무튼, 소식을 전해줘서 고맙네.]

-그런 인사받으려는 의도는 아니었고, 난 그런 소문이 있으니 준비는 하라는 뜻으로 전화를 한 거야. 그나저나 자네 속은 좀 후련해졌겠군. 자네를 그렇게도 괴롭히던 노키드가 미 정부에게 욕을 먹는 상황이 됐으니까. 참, 그러고 보니 알려줄 소식이 또 하나 있군.

[또 무슨 소식?]

-최근 보잉이 축제 분위기야. 이유는 내 입으로 말해줄 수가 없고, 잘하면 향후 시장의 판도가 바뀔 수도 있다는 것만 알아두게나. 그럼, 나중에 다시 전화하지.

[…….]

정작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끊는 이유는 아마도 감청을 우려했기 때문일 거다.

로비스트인 그로서는 미 정부의 감시가 보통이 아닐 테고, 사실상 지금 이 대화도 죄다 NSA에게 감청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쯧.”

사실 그 점을 생각하면 나도 조심할 필요는 있다.

이미 미군을 상대로 사업 중인 내게 과연 감시가 붙지 않았을까.

아니, 감시는 둘째 치고 감청도 허다할 터. 그 탓에 나도 최근엔 주요 업무만큼은 절대로 유선상으로 지시를 내리지 않는다.

‘그나저나 시장의 판도가 바뀔 만한 사건이 뭐가 있다는 거지?’

문득 생각이 난 것은 미국이 지금 진행 중인 해, 공군. 그리고 해병대가 함께 사용할 통합 스텔스 전투기 개발 사업이었다.

아니, 단순히 미국만이 아니라 향후 동맹국들에도 판매하게 되는 물건.

하지만 그 사업은 노키드로 결정이 날 상황 아닌가?

역사적으로는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F-35잖아.

‘그게 아니면 미국 항공기 시장의 판도를 바꿀 만한 일은 없는데……’

피식.

한창 생각을 거듭하다간 헛웃음을 뱉어냈다.

따지고 보면 그게 내게 무슨 중요한 일일까 싶어서.

사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러시아와의 협상 성공과 그로 인해서 자체 전투기 개발이 가능할 것인가가 문제지, 미국 항공사들의 알력 싸움이 문제가 아니지 않던가.

“잠시 나 좀 보죠.”

지끈거리는 머리를 털어낸 채 로비 한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저편에서 대기 중이던 경호실장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네 전무님.”

“오늘은 윤 대표님과 이곳에서 밤을 지새울 수도 있으니 양 비서보고 먼저 퇴근하라고 하세요. 그리고 미안하지만, 경호실장님과 몇몇 분들은 남아계시고요.”

“알겠습니다.”

최근 군을 전역한 경호실장은 아직도 군대에서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매번 습관적으로 대답 끝에 손을 머리에 올려붙이는.

그 탓에 내 손도 얼떨결에 같이 올라간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따르릉.

막 돌아서려는 차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오늘 왜 이래?”

이번에 액정에 뜬 번호는 국정원장의 것.

아마 본격적인 공격헬기 사업의 추진을 축하하는 의미의 전화일 거다.

“네, 원장님.”

-진 전무, 한창 바쁠 와중에 전화해서 미안합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

-혹시 지금 서울에 있으면 청와대로 와 줄 수 있겠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런데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어디요?”

-청와대 말이오. 지금 그쪽으로 임 차장을 보낼 테니 함께 좀 와주시오.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아빠 불곰이 전화를 걸어왔소.

“…….”

-아무튼, 들어와서 이야기합시다. 전화상으로 할 말은 아니니까.

아빠 불곰?

설마……. 러시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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