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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43화 (43/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43화

“저기 오는군요.”

텁텁한 바람이 부는 어느 날, 조립이 완성된 소방헬기. 아니 소방헬기를 가장한 레이더 테스트용 KA-32A가 경기도로 날아왔다.

이미 2차 불곰사업이 승인 난 직후부터 기체적응을 위한 교육 인원은 확보가 된 상태.

멀리서 봐도 안정적이다, 싶을 정도로 기장의 운용능력은 탁월했다.

“바람이 많이 부는 것 같은데?”

희원의 말처럼 기상 조건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유유히 제 자리를 찾아 착륙하고 있는 기체를 보고 있노라니 동축 반전 로터의 능력이 새삼 대단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소프트웨어 이식은 끝났습니다. 사전에 러시아가 보내준 소스코드들을 우리 하드웨어에 맞게 업데이트를 해봤는데, 다행히 운용상의 문제점들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서 얻은 것은 단순히 공격헬기 기술만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 저런 정도의 능력을 가진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있었던가.

막상 일이 진행되자 연구소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중 하나가 유독 뛰어난 실력을 드러냈다.

“희원아. 방금 저 친구 이름이 최인배라고 했던가?”

“맞아, KAIST 출신인데, 한때 노키드 마틴에서도 영입을 제안했을 정도로 항공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 쪽으로는 탁월하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재빨리 낚아챘지.”

그게 사실이라면 대단한 인물이긴 했다.

아니, 아무리 검증된 것이라곤 해도 하드웨어가 바뀌는 마당에 그걸 불과 몇 개월 만에 운용상의 문제점이 없을 정도로 적용에 성공했다면 그건 가히 천재라고 해야겠지.

“신원은 확실한 거겠지?”

“그야 당연하지. 집안부터 시작해서 개인사까지 아무런 문제 없는 인물이야. 더군다나 노키드의 제안을 단번에 거절한 것으로만 봐도 돈에 팔릴 인물은 아니고.”

그 정도면 사실상 믿을 만은 했다.

그나저나 개천에서 용이 난다더니.

왠지 자꾸만 관심이 간다.

“레이더 운용 테스트 결과 나왔습니다.”

그로부터 보름 후, 무려 서른 번이 넘는 비행과정에서 얻은 테스트 결과가 내 손에 쥐어졌다.

탐지거리는 물론 합격.

알고리즘을 통한 위협목표물의 선정과 그중 우선 공격대상을 구분하는 능력 역시 충분히 합격점.

문제는 간혹 발생하는 표적의 구분능력 저하 현상인데, 그건 애초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상의 문제기에 러시아가 직접 해결을 해야 할 거다.

“국정원장님?”

난 즉시 도출된 결과를 국정원장에게 알렸다.

그러자 국정원장은 휴민트를 통해 러시아와 접촉했고, 다음 날 은밀히 서울로 찾아온 것은 예전 헬기 수송책임자로 부산항에 왔었던 알렉세이 러시아 해외정보국장이었다.

[다른 인편을 통해 접촉하시겠다더니 이번에도 직접 오신 겁니까?]

[어쩌다 보니 일이 그렇게 됐습니다. 그간 잘 지냈습니까?]

알렉세이는 한껏 반가운 표정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얼핏 그의 뒤편에 보이는 몇몇 사람 중엔 정보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자들도 끼어 있던 상태.

아마 받아갈 자료들의 검증을 위한 인물들인 듯했다.

[그런데 오늘은 지나치게 당당하게 입국을 하신 것 아닙니까?]

그의 이번 방문에선 지난번과 같은 용의주도함은 엿보이지 않았다.

물론 무역관계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입국을 하기는 했지만, 미국이 작심하고 달려들면 그걸 못 알아챌까.

한데 예상했던 질문이었던지 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우리의 위대한 미국 친구들은 지금 나는 물론이고 한국도 신경 쓸 여력이 없습니다. 중국 문제만으로도 골치가 아플 테니까요.]

[중국이 왜요?]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툭 내 어깨를 건드린 알렉세이는 잠시 주변을 살피더니 한걸음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어제 중국에서 미국 방산 업체들을 대규모로 해킹한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거든요. 그 때문에 지금 아시아 지부에 있는 모든 미국 정보 관련 기관들이 죄다 그쪽에만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피해가 큰 모양이죠?]

질문을 한 이는 국정원장이었다.

나와는 달리 뭔가 소식을 들은 것이 있는 듯 그의 눈빛은 초롱초롱했다.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당장 나를 감시 중이던 시선들마저 죄다 사라진 것을 보면 피해가 적은 것은 아닌 모양이더군요.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단순히 해킹만 한 것이 아니라 인편을 통한 기술유출도 있었다더군요.]

그건 중국의 전통적인 기술탈취 수법이었다.

각 분야의 인재들을 미리 유학생으로 보내는 것은 물론 현지 업체에 취업하여 신뢰를 쌓아두는.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자료들을 빼내어 뒤통수를 쳐버리는 수법.

뭐 미래에는 하도 당해서 결국 미국도 대응책을 마련하기는 했지만, 이 시기엔 그게 무척이나 충격적인 일이었을 거다.

[내가 예상하기로는 아파치와 블랙호크의 기술 일부 정도는 탈취당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알렉세이는 마치 신이 난 아이와도 같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혹여 자신들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하는 건가 싶은 마음에 말을 꺼내려다간 문득 괜한 참견이다, 싶어 다시 입을 다물었다.

[미스터 진 쪽은 좀 어떻습니까?]

[뭐가 말입니까?]

[그 철벽같다는 미국 군수 산업체들을 해킹할 정도면 재우도 안심할 수만은 없을 텐데요?]

물론 그렇기는 하다.

하지만 양자 알고리즘이 적용된 탈레스와 연구소를 해킹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남은 방법이 있다면 인편을 통해 기술유출을 유도하는 건데, 어차피 핵심은 삼엄한 보안이 유지되고 있는 연구소가 담당하고 있고 연구 분야 또한 철저하게 분업화해 놔서 고작 한두 명 포섭하는 것만으로는 기술유출 자체가 불가능하다.

스윽.

게다가 지금처럼 나를 비롯하여 연구원들 하나하나가 국정원 요원들의 감시를 받는 와중에 접촉은 무슨.

다른 건 몰라도 국정원장이 그 부분만큼은 확실한 편이니 걱정할 것은 없다.

[우리도 우리지만 러시아는 대책이 있는 겁니까?]

[우리 사정은 미스터 진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군을 통한 기술유출 수준이 심각하다는 것. 해서 이번 일도 지금처럼 우리 해외정보부가 직접 나서고 있는 겁니다.]

[그럼 전보다는 불법적인 유출의 가능성은 많이 줄었겠군요.]

[꼭 그렇지도 않아요. 어디 돈 앞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단속을 한다고 해도 생쥐들은 나오기 마련이죠.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정부의 대응 방법이죠.]

[…….]

[경우에 따라서 다르긴 하겠지만, 유출자는 물론 그걸 주도한 자들까지도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를 해버리라는 것이 윗선의 명령이거든요.]

말을 뱉어내는 알렉세이의 표정은 조금 전까지와는 완연히 달라져 있었다.

마치 그의 진면목을 보고 있는 기분.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자 그가 툭 하고 다시 내 어깨를 건드린다.

[그런데 저 친구들은 누구기에 아까부터 나를 잡아먹을 듯 쳐다보고 있는 겁니까?]

그의 시선은 내 뒤편에 서 있던 사내들에게로 향했다.

최근 안전을 위해 내가 개인적으로 고용한 경호원들.

군을 전역한 것이 얼마 되지 않은 탓인지 사실 눈빛이 좀 날카롭기는 하다.

[제 경호원들이니 개의치 않으셔도 됩니다.]

[어쩐지 국정원 요원들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더라니. 그나저나 이렇듯 계속 공항에서만 죽치고 있을 건 아니겠죠?]

[아!]

그 말에 국정원장이 길잡이를 자처하며 앞서갔다.

워낙 대 인원이 움직이는 터라 차량만 해도 6대.

한참 후 도착한 곳은 인천에 소재한 국정원의 위장 사업체였다.

[일단 테스트 결과를 한번 확인해보시죠.]

난 도착하자마자 알렉세이를 향해 자료가 담긴 하드 디스크들을 건넸다.

그의 손을 거친 디스크들은 다시 대동했던 몇몇 사내들에게 넘어갔고, 그걸 자신들이 가져온 컴퓨터에 연결하여 한참 결과를 살피던 사내들은 곧 표정을 밝히며 알렉세이를 쳐다봤다.

[데이터상으로는 우리가 기대했던 수준입니다.]

씨익.

알렉세이는 그 말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내 들고 있던 커다란 캐리어 하나를 내게 건넨 그는 대뜸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원시적이지만 그래도 직접 주고받는 것이 제일 안전한 법이죠. 그런데 우리 이러고 있으니 꼭 마약 거래를 하는 사람들 같지 않소?]

피식.

헛웃음을 뱉어내곤 그가 건넨 가방을 살폈다.

특수 재질인 건가.

질감이 왠지 범상치 않은 가방은 각종 보안장치로 무장을 하고 있었고, 그 안에 들어있던, 서른 개의 하드 디스크들은 전부 충격방지용 고무 패킹으로 보호를 받고 있던 상태였다.

[잠시 확인을 좀 해봐도 되겠죠?]

[물론.]

양해를 구하곤 하드 디스크 중 하나를 컴퓨터에 연결했다.

수없이 많은 폴더 들.

그 중, 유독 눈에 뜨이는 것이 있어 재빨리 알렉세이를 쳐다봤다.

[이건 뭡니까?]

[어디 보자, 전투체계 관련 폴더 같군요.]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여기에 왜 R73 공대공 미사일에 관한 자료들이 들어있느냐는 거죠.]

[KA-50의 특징이 HMS(Helmat Mounted Sight)와 공대공 시스템 아닙니까. 하니 당연히 그에 연동되는 R73도 포함이 된 것이겠죠.]

HMS는 조종사가 단지 시선을 돌려 적을 락온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의 말처럼 KA-50이 가진 특징 중 하나.

문제는 그 시스템은 나도 보유하지 못한 것이라는 사실.

단지 시스템뿐만 아니라 연동되는 미사일 기술마저 내겐 없는 것들이었다.

[…….]

사실 R73. 즉, 아처 미사일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5세대 공대공 미사일이었다.

추력편향 노즐은 물론 카나드 제어방식까지 사용하여 급격한 기동이 가능한 물건.

그게 얼마나 대단한 물건이냐면, 사실 미국이 아처를 잡기 위해 개발한 AIM-9X도 아처에 비해 무려 20년 후에야 등장했을 정도고, 그나마도 아처에 비하면 성능이 뒤떨어진다는 것이 일부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즉, 지금 러시아는 그들이 가진 또 하나의 심장을 내어 준 것이라는 말이지.

[뭘 그렇게 놀랍니까. 플랫폼을 넘겨주는 마당에 관련 전투체계가 넘어가는 것은 당연하지. 그리고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소. 우린 받은 호의를 절대 잊지 않는다고.]

[…….]

말이야 그렇지만 그걸 고스란히 믿을 바보는 없다.

그동안 러시아가 외교적으로 여러 나라를 상대로 뒤통수를 쳤었던 역사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럼 뭔가 바라는 것이 있다는 건데, 그게 뭔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아무래도 저쪽에선 자이로를 획득하겠다는 생각을 굳힌 모양입니다.”

즉시 국정원장을 향해 속삭였다.

각오하고 있었던 문제였던 건가.

국정원장은 굳은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영문을 모르겠군요.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그걸 원하는지. 이건 단순히 전술핵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건…….”

잠시 대답을 머뭇거렸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도 알아야 할 사실.

결국, 내 짐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전제로 러시아의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개발 가능성을 말해줬다.

“그럼 만약 극초음속 미사일에 핵탄두를 달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사실상 막을 수 있는 건 없죠. 탄도미사일과는 다르게 복잡한 비행경로를 보이는 물체를 잡아낼 기술은 없으니까.”

“하면 어쩔 생각입니까? 저렇게까지 나오는 것은 분명 뜻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 같은데.”

“어차피 우린 결론을 내린 것 아니었습니까?”

“그렇기는 한데, 막상 그 말을 듣고 나니 왠지…….”

“어차피 우리가 아니라도 결국 러시아는 자이로 개발에 성공할 겁니다. 수십 년간 핵을 만져왔던 집단이니까요. 그럴 바에야 애초의 계획대로 팔 수 있을 때 팔아야죠.”

국정원장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러시아의 우정은 고맙게 받도록 하죠.]

잠시 있던 국정원장의 상의를 뒤로하고 알렉세이를 향해 말했다.

우리의 대화 내용을 유추하고 있었던 걸까, 웃음기 맺힌 미소를 지어 보인 그가 넌지시 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전에 내가 제안했던 것은 좀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자이로 문제 말입니다.]

역시나 그는 곧장 핵심을 뚫고 들어왔다.

혹시나 다른 이야기가 또 나올까 싶어 묵묵히 쳐다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

[사실 우리 위원회에서는 이미 결정을 내렸습니다. 만약 한국이 교환에 응하면 최신 버전의 수호이 전투기의 모든 기술이전이 가능하다고.]

[…….]

순간 국정원장과 난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비록 엔진 부품의 내구성이 서방의 1/5에 불과하지만, 기동성과 힘만큼은 압도적인 것이 바로 수호이 전투기.

그건 엔진제어 소프트웨어의 역할이 절대적인데, 그걸 이전해 준다면 나로서는 사실상 더 바랄 것이 없다.

[엔진제어 소프트웨어 소스코드도 포함된다는 말입니까?]

[말했잖소. 관련된 모든 기술을 제공할 생각이라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로서도 우리 동지들의 생각이 잘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동안 5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쏟아부으며 만들어낸 기술들을 왜 그토록 쉽게 넘겨 주려는 건지.]

[…….]

[하지만 내막을 알면 또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경제위기로 쪼그라든 우리의 위상. 자칫 이대로 가면 미국의 군사력에 밀려 영원히 되살아나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 해서 우린 저들이 무시할 수 없는 전략무기를 개발 중인데, 거기엔 반드시 당신들이 만든 자이로가 필요하거든요.]

그 말에 더 확신이 갔다.

지금 저들은 정말로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을 개발 중이라는 것.

지금 상황에서 러시아가 무너진 미국과의 균형을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그것뿐이거든.

[잠시 함께 오신 분들을 자리에서 좀 물려주시겠습니까?]

난 즉시 알렉세이를 향해 양해를 구했다.

의도를 눈치챈 듯 그가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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