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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42화 (42/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42화

[진정한 협력?]

[뭐 실은 이 문제는 대한민국 정부와 러시아 정부 사이의 공식적인 협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 재우그룹과 러시아의 군수 업체가 협력을 해보자는 것이지.]

알렉세이는 동그란 눈으로 쳐다봤다.

내 말투에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커피잔을 드는 손도 조심스럽다.

[당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그럼 쉽게 말씀드리죠. 알마즈 사가 지금 개발 중인 대공미사일 말입니다. 일부 기술적 문제로 개발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걸 우리 재우가 해결해 드리죠. 대신 향후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 개발을 재우와 알마즈사가 공동개발 했으면 싶습니다.]

역사적으로 이 시절 러시아는 미국의 페트리어트에 대적할 새로운 대공방어 미사일을 개발 중이었다.

그걸 눈치챈 우리 정부는 러시아에 공동개발을 제안하여 협력을 구축했고.

해서 나온 물건이 우리는 천궁. 그리고 러시아는 비티야즈. 즉, S-350이다.

[허어......]

하지만 난 그 역사를 조금 뒤틀 예정이다.

기왕 공동개발을 시작하는 마당이면 끝을 봐야지.

내가 노리는 것은 그 이후 러시아가 특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개발해낸 S-500. 즉 고고도 미사일 방어시스템인데, 가능하다면 그것까지도 협력개발을 하여 기술 축적을 이룰 생각이다.

그래야 차후 SM3를 대신할, 자체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제의 구축이 가능할 테니까.

[제안은 그럴듯합니다만, 재우에서 구체적으로 뭘 해결해 주겠다는 거요.]

[굳이 대자면 열악한 반도체 기술로 인한 정밀도의 하락을 보완해 줄 수 있겠죠. 특히나 이제 막 진공관 수준을 벗어난 TR 모듈을 우리가 개선해 준다면 러시아로서도 손해는 아닐 겁니다.]

[흠......]

알렉세이는 고민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곧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는 이유는 결국 러시아로서는 우리와의 협력 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을 것이기에.

역사적으로도 S-350의 공동개발 역시 그걸 이유로 이루어졌거든.

[일단 그 문제는 돌아가는 대로 보고를 올리겠소. 그나저나 한국 정보부의 수준이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군요. 우리의 대공미사일 개발 사실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정도라니.]

알렉세이가 대뜸 국정원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시선에 놀란 국정원장은 한참 눈을 끔뻑이다간 슬그머니 나를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진 전무는 대체 그런 정보를 어디에서 얻는 겁니까?”

“러시아 군부에 나름 정보 루트가 있습니다. 실은 이스칸데르의 기술을 입수한 것도 그 친구의 도움이 컸고요.”

“아…….”

국정원장은 수긍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젠장, 거짓말도 자꾸 하면 습관 된다는데.

이러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 튀어나올까 무섭다.

[아무튼, 괜찮은 제안인 건 사실이오. 내 윗선에서도 그렇게 느낄 가능성이 농후하고.]

그때, 예상대로 알렉세이가 슬그머니 긍정의 빛을 내비쳤다.

곧 커피잔을 다시 들어 올린 그는 우릴 똑바로 보며 말을 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돈의 압박에 시달리는 우리 정부로서는 장거리 미사일까지 공동개발할 수 있다면 부담이 확 줄어드는 거니까.]

그의 표정은 왠지 이제까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적의가 사라졌다고 할까.

이후 이어진 대화의 분위기는 실제로 처음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러시아는 신의를 지키는 상대를 절대로 홀대하지 않습니다. 만약 한국이 이 기회에 우리와 좀 더 가까워진다면 얻을 것이 꽤 많을 겁니다.]

다른 건 몰라도 얻을 것이 많을 거라는 말에는 동감한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우린 불곰사업을 통해 북한과 중국의 무기수준을 파악할 수 있었고, 북한에 대한 무기 공급차단은 물론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중지시키는 것에도 성공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그 이상의 수준이다.

하나를 주면 열을 얻어 올 수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러시아 상황.

최후까지 그들의 기술을 빨아먹어야 할 것 아닌가.

[그걸 알기에 이런 제안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알아준다니 반갑군요. 그나저나 기체 제공은 이것으로 마무리가 되었고, 하면 밀리파 레이더 테스트 결과는 언제쯤 받아 볼 수 있는 겁니까.]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알렉세이가 오늘 만남의 핵심 주제를 꺼내 들었다.

따지고 보면 당장 급한 것은 바로 그 문제.

잠시 날짜를 세어보곤 대꾸했다.

[빠르면 3개월 정도면 가능할 겁니다. 우리도 소프트웨어 소스코드를 분석할 시간은 필요하니까요.]

[부디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싶군요. 그것만 확보가 된다면 블랙샤크의 지상 작전능력은 아파치와 대등한 수준에 다다르니 수출도 가능해질 테니까요.]

아마 그게 이유였던 듯싶었다.

저들이 그 중요한 소프트웨어까지 내어놓을 생각을 하며 기술 교환에 적극적이었던 이유.

아마 경제 위기를 무기 수출로 버텨나가자는 심산인 모양인데, 그러기 위해선 팔릴 만한 것을 만들어내어야만 할 터.

결국,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우리에게서 채워나가겠다는 의지인 거다.

[참, 이건 미리 말해줘야 할 것 같군요. 만약 테스트가 성공적으로 끝나서 정말로 KA-50의 기술이전이 실행되면 그건 아마도 다운그레이드가 아닌 오리지널이 넘어가게 될 겁니다.]

[…….]

예상 밖의 말에 깜짝 놀랐다.

매번 무기 수출에 있어서 다운그레이드를 남발하던 러시아가 왜?

설마 지금 우리에게도 다운그레이드가 아닌 오리지널을 요구하려는 건가?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한국도 같은 태도를 보이라는 것은 아니니까.]

다행히도 알렉세이는 곧바로 내 불안감을 불식시켰다.

말투로 봐선 이미 우리가 다운그레이드를 보낼 것을 짐작하고 있는 느낌.

문제는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저런 태도라는 것이 왠지 수상쩍다는 거다.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겁니까?]

[글쎄요, 그거야 윗선의 생각이니 나야 모르죠. 뭐 어쩌면 당신이 우리에게 대공미사일의 공동개발을 제안했던 이유와 같지 않을까 싶소만.]

그 말이 사실상 힌트가 됐다.

동시에 뇌리를 스친 것은 사람의 생각은 다 똑같다는 것.

즉, 살을 주고 뼈를 취하겠다는 생각을 나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하긴, 지금 대한민국의 군수 분야 발전 속도는 재우로 인해서 가히 역사 이후 최고조에 달하는 상태인데, 저들로서도 내게 빼먹을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안 한다면 그게 외려 더 이상하겠지.’

그럼 결국, 저 호의는 미끼라는 건데, 나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는 미끼인 셈이다.

[자, 그럼 내가 해야 할 일은 끝났으니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소.]

한창 대화를 이어가던 알렉세이가 불현듯 시계를 쳐다봤다.

그건 국정원장도 마찬가지.

무슨 급한 일이 있나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 그가 벌떡 일어서며 손을 내밀었다.

[벌써 가시는 겁니까?]

[오래 남아 있어 봤자 미국 애들의 정보망에 걸려들기밖에 더하겠습니까. 안타깝지만 오늘 만남은 이쯤에서 끝을 내야 할 것 같군요.]

그는 아쉬움의 표정을 드러내며 손을 맞잡았다.

이내 돌아서는 순간, 또 무슨 할 말이 남았는지 입술이 달싹거린다.

[생각해 보니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닌 것 같군요.]

[뭐가 말입니까?]

[원자 스핀 자이로와 우리의 전투기 기술을 맞바꾸는 것 말입니다.]

[…….]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건 미처 예상치 못했던 전개였으니까.

하도 심장이 두근거려서 차마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실은 우리가 개발 중인 전략무기에 원자 스핀 자이로가 꼭 필요합니다. 때문에 내 윗선에서 조만간 그 문제를 두고 다시 대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순간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확실치는 않지만, 러시아가 그걸 기획한 것이 대략 이쯤이었지.

그게 아니면, 혹시 소형전술 핵미사일의 정밀도를 높이려는 생각인가?

[그럼 조만간 다시 연락을 드리겠소. 아! 그리고 차후 연락을 취할 때는 인편으로 하겠습니다. 알다시피 미국의 감청 수준이 보통이 아니라서.]

알렉세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기고 돌아섰다.

그가 탄 차량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던 국정원장과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로를 쳐다봤다.

“이거 아무래도 그냥 흘려들을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일단 서울로 올라가서 다시 이야기합시다.”

******

“회의실에 아무도 들여보내지 마.”

다시 국정원에 도착한 원장과 나는 즉시 감청을 방지하기 위한 시설들이 마련된 방을 찾았다.

혹여 듣는 귀가 있을까 싶어 오는 내내 단 한마디의 대화도 하지 않았던 상태.

이제야 안심이 된 듯 국정원장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서둘러 입을 열었다.

“진 전무는 러시아가 정말로 원자 스핀 자이로와 수호이 전투기의 기술을 교환하자고 하면 어쩔 생각입니까.”

“러시아가 자랑하는 비행제어 시스템을 포함한 전반적인 기술이라면 생각을 해봐야죠.  문제는 미국인데, 러시아가 자이로를 원하는 것은 소형전술 핵미사일의 정밀성을 높이기 위함일 텐데, 미국이 그걸 알고도 가만히 있겠습니까?”

원장은 그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지려던 찰나, 웬일인지 그가 갑자기 품에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

“담배도 피우십니까?”

“끊은 지 두 달은 넘은 것 같은데, 오늘만큼은 피워야겠습니다. 진 전무도 한 대 드릴까요?”

“여기 금연구역 아닙니까?”

“지금 금연구역이 문제겠습니까. 당장 이거라도 안 피우면 마음이 안정이 안 되는 판국인데.”

그는 기어이 담배에 불을 붙이곤 연기를 빨아들였다.

큰소리쳤던 것과는 달리 눈치는 보였는지 내내 천정에 있던 연기감지기를 주시하던 그는 결국 짜증스러운 태도로 담배를 꺼 버렸다.

“젠장, 더러워서 안 핀다.”

피식.

그의 행동에선 조바심이 느껴졌다.

그만큼 이번 문제는 쉽게 생각할 수 없다는 증거.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한참을 더 눈알을 굴리던 그는 휙 하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일단 각하께 보고는 합시다. 그리고 가능하면 교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죠.”

“…….”

“솔직히 진 전무가 미국을 걱정하는 것은 나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당장 후폭풍이 일어날 일은 없을 테니 그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무슨 근거로 그런…….”

“솔직히 러시아가 원자 스핀 자이로를 어디에 써먹겠습니까. 당장 생각나는 것은 진 전무의 말처럼 소형전술 핵미사일의 개발인데, 어차피 지금 러시아는 그걸 개발할 경제적 여유가 없지 않소. 하니 당장은 그 문제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 것 아닙니까.”

일리는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왜 난 자꾸 그게 이유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저들이 원자스핀 자이로가 필요한 진정한 이유는 소형전술 핵탄두 때문이 아니라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개발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

하긴, 그렇다 해도 상관은 없겠지.

어차피 러시아가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을 세상에 내어놓는 것도 앞으로 한참의 시간이 더 흘러야 할 테니까.

“그럼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난 생각의 끝에 입을 열었다.

잠시 목을 축이던 국정원장의 시선이 즉시 내게로 꽂힌다.

“다짐을 받아두는 겁니다. 설사 우리가 제공한 자이로 기술로 신형전술 핵미사일을 개발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기 전까지는 직접적인 테스트는 하지 않는 것으로.”

“흠…….그게 과연 먹힐까요?”

“안 먹혀도 상관없습니다, 그건 어차피 저들이 그 조건을 들어주길 바라서가 아니라 미리 약을 쳐두자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니까요?”

“약을 쳐둔다고요?”

“일종의 발뺌을 위한 포석이죠. 우린 분명 경고했으니 만약 약속을 어기면 우리도 기술의 출처에 대해서 모른 척을 하겠다. 심한 경우 당신들이 우리 기술을 훔쳐갔다고 대외에 주장할 수도 있다……라고. 하니 그걸 염두에 두고 처신해라, 이겁니다.”

“호오…… 그거 괜찮은 생각이네요. 그런데 그 말은, 진 전무도 교환에 동의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됩니까?”

사실상 그편이 나을 수도 있다.

어차피 내가 아니라도 차후 러시아가 원자 스핀 자이로를 개발하게 되는 것은 역사적 사실.

몸값을 최대한 올려 받을 수 있을 때 받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지 않을까.

밀리파 레이더의 경우처럼.

“네, 동의합니다. 하지만 한동안은 그걸 써먹긴 힘들 거라는 건 잘 알고 계시겠죠?”

“그야 물론이죠. 지금 KAI가 노키드 마틴과 초음속 훈련기 개발을 진행하는 마당에 또 다른 자체 전투기 개발은 어불성설이니까요. 그래도 일단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어딥니까.”

국정원장은 내가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자 표정을 밝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곧 눈을 굴리던 그가 넌지시 나를 쳐다봤다.

“그럼 난 일단 각하께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을 보고 하도록 하죠. 아! 참고로 이 사실은 우리만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각하와 나, 그리고 진 전무만이.”

그는 마치 전쟁터로 향하는 장수와도 같은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완고한 의지가 나에게까지 전해지던 찰나. 갑자기 벽에 걸려있던 인터폰이 요란한 벨소리를 뱉어냈다.

“시발 깜짝이야!”

“…….”

갑작스러운 욕설에 놀라 멍하니 쳐다봤다.

곧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며 통화를 잇던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전화를 끊는다.

“각하께서 나를 찾는 다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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