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41화
끼익!
전화를 받자마자 달려간 곳은 국정원이었다.
전에 원장이 만들어준 방문자용 출입증으로 인해 특별한 검문 없이 정문은 통과했지만 정작 로비에서의 몸 수색은 다시 거쳐야만 했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이게 일인지라…….”
몇 번이나 얼굴을 익혀 친숙했던 요원은 나를 향해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어디 그게 잘못된 일일까.
손사래를 치며 흔쾌히 팔을 벌렸다.
“아니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이해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런데 혹시 원장님 뵈러 오신 거면 그냥 로비에서 기다리시는 편이 좋겠는데요?”
“왜요, 그사이 어디 출타라도 하셨습니까?”
“그게 아니고 곧 내려오신다는 연락을 받았…….”
“진현승 전무. 벌써 도착을 한 겁니까?”
미처 요원의 말이 끝맺어지기도 전에 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엔 3명이나 되는 간부급 인물들을 대동한 채.
어디 급한 용무가 있어서 가기라도 하는 모양인데, 그럴 거면 나는 왜 부른 건지 모르겠다.
“가시죠.”
원장은 대뜸 나를 향해 말하곤 앞서 로비를 빠져나갔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다급히 좇아가 행선지를 묻자 그가 멈칫 돌아서선 말한다.
“오늘 저녁 8시에 부산항으로 러시아에서 보낸 화물들이 도착할 겁니다.”
“화물이라면 어떤…… 설마 방재헬기 말씀입니까?”
“그래요. 하니 제 시간에 인수를 하려면 서둘러야 해요.”
그는 짧은 대꾸를 끝으로 다시 앞서갔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저 편에 있던 내 차량을 향해 돌아서려는 순간, 국정원장이 대뜸 자신의 차량에 동승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지 말고 내 차로 가시죠. 고작해야 300미터 정도만 가면 되니까.”
“…….”
“부산까지 차량으로 이동할 생각은 아니겠죠?”
“아!”
******
“약 30분 후면 도착합니다.”
기장의 안내에 창밖을 내려다봤다.
젠장, 이놈의 헬기는 몇 번을 타도 영 적응을 못 하겠다는 말이지.
소음은 둘째치고 엉덩이에서부터 올라오는 진동에 속이 울렁거린 지가 벌써 한참 전이다.
“안색이 많이 안 좋군요.”
원장은 내내 안절부절하는 내 모습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미 사색에 가까운 얼굴이지만 애써 손사래를 쳐보이자 그가 옅은 미소로 말을 이었다.
“부산항에 도착하면 아마 러시아 해외정보부 책임자가 와 있을 겁니다.”
“정보부 책임자가 왜요?”
“말로는 미하일 장관을 대신해서 오는 거라는데, 그거야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죠.”
“혹시 현무 때문입니까?”
혹시나 싶어 물었다.
딱히 부정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고개가 가로저어지지도 않았다.
“그럴 가능성이 크지 싶습니다.”
순간 몰려오던 멀미가 싹 사라졌다.
예상했던 문제가 왔구나, 싶은 마음에서.
문제는 그동안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던 저들의 태도인데, 나로선 그 점이 더 염려스럽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실 것은 없습니다. 어차피 합의가 끝난 2차 사업을 건드릴 수는 없을 테고. 최악의 경우라고 해봐야 앞으로 계획 중인 3차 사업에 영향을 받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위로랍시고 하는 원장의 말이 더 무서웠다.
아직 빼먹을 것도 많은 마당에 3차가 무너지면 그게 얼마나 손해인데.
뭐 사실 원 역사에서도 3차 사업이 좀 흐지부지된 것은 사실이지만, 난 기왕이면 3차까지 성공시켜 볼 생각이다.
“그건 곤란하죠. 그런데 혹시라도 저들이 현무를 문제 삼는다면 제게 맡겨 주시겠습니까?”
“뭘 어쩌시려고요?”
“그게…….”
그 말에 정리했던 생각들을 풀어놨다.
미처 예상치 못했던 제안이었던가.
한참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국정원장은 대뜸 품에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일, 일단 보고부터 올립시다. 보고부터…….”
******
쿵!
도착한 부산항에선 하역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워낙 덩치가 큰 기종이었던 터라 기존의 컨테이너로는 감당이 안 됐던지 특수 제작한 컨테이너들에 실려 온 상황.
아무리 봐도 그걸 도로로 이송하는 것은 무리였고, 결국 우리는 비상시를 대비하여 마련했던 창고에서 러시아 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아 조립을 끝마치는 것으로 결정지었다.
“그나마 이쪽 부두를 봉쇄해두었기 망정이지…… 이봐, 임 차장! 저쪽 부두도 봉쇄할 수 있으면 하도록 해”
국정원장은 복잡해진 상황을 해결하고자 바삐 지시를 내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벌써 어둠이 짙게 내리깔렸다는 것과 거대한 창고안에서 조립이 이루어 지고 있다는 사실.
뭐 최악의 경우 반입정보가 유출 된다 해도 외형 자체가 소방용 헬기이다 보니 의심을 살 일은 없을 거다.
“크기가 어마어마하군요.”
반입된 3대의 헬기 중 1대는 내가 요구했던 개조품이었다.
미션컴퓨터와 소프트웨어가 장착된, 말만 소방헬기일 뿐인 물건.
조만간 저 기체를 통한 테스트가 성공만 하면 곧 내 꿈은 이루어진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한창 조립 중이던 기체들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던 순간 뒤에서 강한 러시아 악센트가 섞인 영어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대략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러시아인 하나가 우릴 향해 곧장 다가오고 있었다.
[난 러시아 해외정보국(SVR)을 책임지고 있는 알렉세이입니다.]
[반갑습니다, 대한민국 국정원장 안시현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이번 불곰사업의 대외담당 고문직을 맡고 있는 진현승 씨입니다.]
사내. 아니 알렉세이의 눈은 즉시 내게로 향했다.
눈빛만 보면 마치 나에 대한 정보를 죄다 알고 온 느낌.
아니나 다를까, 반짝 눈을 빛낸 그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미하일 장관께 이야기는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계속 이야기를 할 생각입니까?]
[그럴 리가요. 일단 자리를 옮기시죠.]
왠지 까칠한 그의 말투에 국정원장이 나섰다.
곧 저편을 향해 원장이 손을 흔들자 대기 중이던 세단 한 대가 다가왔고, 우린 곧바로 국정원에서 준비한 안가로 이동했다.
[꽤 한적한 곳이군요.]
[아무래도 보안을 위해선 한적한 곳이 낫죠.]
도착한 안가의 위치는 부산항에서도 꽤 떨어진 곳이었다.
최근 개발이 시작된 것처럼 보이는 고급 주택단지 같은데, 부산의 지리를 모르는 나로서는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조차도 안 된다.
[미 정보부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우리가 사전에 밑밥을 좀 제대로 뿌리고 와서.]
차에서 내린 알렉세이는 대뜸 뜬금없는 말을 던졌다.
이해를 못한 것은 마찬가지인 듯 원장이 고개를 갸웃해 보이자 그가 피식 하고 웃어 보인다.
[러시아 항구를 속속들이 지켜보고 있는 미국이 규격 외의 컨테이너들이 실리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겠습니까?]
[…….]
[해서 시리아로 향하는 배편에 헬기를 실어온 것과 같은 규격의 특수컨테이너를 잔뜩 실어 보낸 참입니다. 미국은 분명 그걸 미사일이라고 오해할 것이니 열심히 추적 중이겠죠.]
[양동작전을 폈다는 말입니까?]
[그렇소. 그사이 우린 적재물이 보이지 않는 특수 화물선을 이용해서 밤에 빠져나왔고요.]
듣고 보니 무척이나 용의주도했다.
애써 신경을 쓴 기색도 역력하고.
하긴, 미국을 상대로 수십 년을 정보싸움을 하던 국가인데 어련할까.
새삼 저들의 보이지 않는 힘이 실감 난다.
[그나저나 국방장관 대신 내가 온 이유는 궁금하지 않은 겁니까?]
소파에 엉덩이를 붙인 알렉세이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그게 궁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힐끗 국정원장을 쳐다봤지만 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응수했다.
[해외정보국이 나선 것을 보면 일반적인 일 때문은 아니겠죠.]
[쯧, 끝까지 모른 척하려는 모양이군. 좋습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얼마 전 남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의 기동 방식이 우리가 개발한 이스칸데르와 비슷하다는 결론을 얻었는데, 어디 한번 설명을 해 보시죠.]
그 대목에서 국정원장은 힐끗 나를 쳐다봤다.
눈치가 빤한 건지 알렉세이의 고개 또한 나를 향해 돌아왔고.
어차피 각오는 하고 있었던 상황인 터라 긴장감 따위는 없었다.
[맞습니다, 그건 분명 이스칸데르의 기동 방식이죠.]
[…….]
알렉세이는 대번에 수긍하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할 말은 많은데 무엇부터 꺼내야 할지가 정리가 안 된 표정.
내 예상이 맞는다면 조금 후엔 기술의 출처가 어디인지에 대한 질문이 날아올 거다.
피식.
한데 그가 헛웃음을 뱉어 보였다.
곧 소파 등받이에 팔을 걸친 그는 손가락 하나를 펼쳐 들곤 허공에 포물선 하나를 그려 보였다.
[이렇게 날아서 이렇게 떨어지더군요.]
[…….]
[즉, 이스칸데르의 기동 방식임은 틀림없다는 건데, 우리 측 정보에 의하면 이스칸데르와 외형이 전혀 다르더군요.]
[…….]
[쉽게 말해서 그건 완전히 우리의 기술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거죠.]
무슨 의도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고해성사를 압박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우리보고 죄가 없다는 선언을 하는 이유가 뭔지.
당황한 건 마찬가지인 듯 국정원장이 슬쩍 내 다리를 건드리며 속삭인다.
“왜 저러는 겁니까?”
“글쎄요.”
대답과 동시에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떠올려봤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원하시는 것이 뭡니까.]
지금 저 사내는 아쉬운 소리를 하려는 중이라는 것.
즉, 거래를 시도 중이라는 사실.
어쩐지, 진즉에 들어왔어야 할 항의가 이제야 오더라니.
씨익.
예상처럼 알렉세이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곧 몇 번이고 호쾌한 웃음을 뱉어낸 그는 대번에 표정을 바꾸며 입을 열었다.
[사실 우리 러시아 정부는 이번 테스트 결과에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분명 우리 기술임은 분명하건만 정작 이스칸데르에 비해 정밀도가 어마어마했으니까요.]
[…….]
[해서 오랜 논쟁 끝에 우린 한 가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국에서 원자 스핀 자이로를 개발했다는 것.]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짐짓 그의 말을 부정했다.
하지만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는 그의 눈빛을 본 순간, 그게 단지 짐작만으로 하는 말은 아님을 깨달았다.
[우린 러시아요. 수십 년을 미국과 정보전쟁을 펼친 우리가 그 정도도 모를 것 같습니까?]
그는 말을 뱉어냄과 동시에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였다.
얼핏 봐도 위성 사진이라 짐작되는.
비록 해상도가 조금 떨어지기는 했지만 분명 거기엔 착탄 지점의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한 가운데가 뻥 뚫린 채 부유중인 대형 튜브의 모습이.
[광학식 자이로로 이정도 정확도를 보였다고 우기고 싶은 것은 아니겠죠?]
“쯧, 이러면 미국도 알고 있다는 건데…….”
무심코 뱉어낸 넋두리에 곁에서 듣고 있던 국정원장이 표정을 굳혔다.
툭 하고 내 다리를 다시 건드린 그는 낙담하듯 속삭였다.
“그럼에도 미국이 문제를 정상회담까지 임시 봉합하는 것에 동의했다는 건 결국 그들도 자이로를 노리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겁니까?”
“네,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크죠.”
“젠장, 그럼 앞으로 미국과의 협상이 꽤 골치 아파지겠군요.”
“글쎄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가능성도 있죠.”
그 말에 국정원장이 다시 나를 쳐다봤다.
애써 무시한 채 다시 알렉세이를 향해 말했다.
[그래서, 우리보고 지금 원자 스핀 자이로의 제작기술을 내놓으라는 겁니까?]
[그 정도면 우리가 이스칸데르 기술 유출을 눈감아 주기엔 충분하지 않을까요? 뭐 일종의 등가교환을 하자는 거죠.]
[아니요,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등가교환은 고작 이스칸데르가 아니라 러시아의 전투기 제작기술을 통째로 넘겨주는 것뿐입니다.]
알렉세이는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하긴, 전투기 개발은 무려 수십 년의 노하우가 필요한 사안.
러시아 역시 지금까지 그걸 개발하느라 들어간 돈만 해도 수백억 달러에 달할 텐데, 그걸 내어놓으라는 건 심장을 달라는 것과도 같은 말이었을 거다.
[뭘 달라고요?]
뭐 사실 나도 그걸 정말로 교환하자는 의도에서 꺼낸 말은 아니었다.
단지 그가 확실하게 포기할 만한 것을 찾다 보니 튀어나온 말이었을 뿐이지.
[말이 좀 통한다 싶더니 그런 것도 아니군.]
역시나 알렉세이는 황당하다는 투였다.
그럼에도 뒷말을 아끼는 이유는 자신 역시도 자이로를 이스칸데르와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무리한 요구였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일 거다.
[흠흠, 그럼 당신들이 개발한 스마트 포탄은 어떻소.]
아니나 다를까, 그는 한 발 물러선 제안을 다시 걸어온다.
아마 그게 진짜 목적이었겠지.
피식.
하지만 그것 역시 들어주기엔 불가능한 조건임은 마찬가지다.
[미국이 가만히 있을 것 같습니까?]
[그럼 대체 뭘 어쩌자는 거요. 아무리 숨을 참고 있다고 해도 우린 러시아요. 눈뜨고 코가 베인 마당에 우리보고 닥치고 있기만 하라는 겁니까?]
이쯤이면 사실 사탕이 필요하다.
저들의 자존감을 세워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훗날을 위해서.
역사적으로는 2차 사업 이후 별 소득이 없었던 이 불곰사업을 앞으로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지속시키기 위해서.
[그건 우리로서도 예의가 아니죠. 해서 말인데, 러시아와 우리가 진정한 협력을 한번 해보면 어떻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