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40화
다사다난했던 1998년은 어느덧 과거의 유산이 되었다.
그사이 뜯어낸 달력은 4장.
벌써 1999년 4월 중순에 접어든 세상은 서서히 동장군을 밀어내고 있었고, 거리엔 개나리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었다.
[오늘 아침,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탄핵이 부결됐습니다.]
미국의 정가는 대통령의 탄핵문제로 시끌시끌했다.
시작은 성 추문에서부터.
하지만 결국 상원의 부결로 탄핵은 무효화 되었고, 그는 역사대로 대통령의 직위를 이어갔다.
‘그런데 탄핵 부결이 좀 늦은 것 같은데?’
역사대로라면 탄핵 부결은 2월에 이루어졌어야 했다.
그걸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하필 내가 막 한국 땅에 다시 발을 들여놨을 때가 그때쯤이었거든.
당시 공항에 설치되어있던 TV가 죄다 그 뉴스만을 방영했던 터라 확실히 기억한다.
“내빈들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생각이 깊어지던 순간 김 비서가 VIP들의 도착 사실을 알려왔다.
지금 난 남해에 있는 한 섬에서 벌써 며칠째 짱박혀 있던 상태.
오늘은 그토록 고대하던 현무가 최초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다.
“내빈 여러분들께서는 저를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내빈들이 우르르 움직였다.
막상 저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그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주변국들에게 최대한 개발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추진체의 실험을 터널에서 강행했던 것.
그리고 최종 조립과정에서 벌어졌던 사고로 인해서 자칫 연구원 중 하나가 한쪽 다리를 잃어버릴 뻔했던 사건까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예상과 달리 이렇다 할 주변국들의 견제가 없었다는 점인데, 그건 아마도 개발 기간을 워낙 단축해 놔서일 거다.
막말로 수년은 걸릴 탄도미사일 개발을 단 몇 개월 만에 끝마쳤다고는 상상도 못 했던 거지.
[곧 카운트다운이 있을 예정이오니 내빈 여러분께서는 자리에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워낙 비밀스러운 테스트였던 터라 참가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국방장관을 비롯하여 국정원장과 일부 주무부처의 몇몇 인물들뿐.
하지만 그 몇몇이 함께 움직이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웠는지 일부 인원은 전날부터 미리 도착을 해 있던 상태였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오늘 발사예정인 현무의 실제 사거리는 800킬로미터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탄두 중량은 2톤이죠. 하지만 미국과의 미사일 지침이 있으니 공식적으로는 탄두 중량이 500킬로그램에 사거리는 300킬로미터가 될 겁니다.”
원래의 계획과는 달리 정부는 탄두 중량과 사거리를 대폭 증가시켜주기를 요구했었다.
어차피 미사일 지침을 어기는 것은 마찬가지인 상황이니 차후 미국과의 마찰은 불 보듯 뻔한 상황.
그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실질적인 억지력이나 제대로 확보하자는 심산이었을 거다.
“발사 각도는 최대한 고각으로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고각을 고집한 이유는 자칫 우리 수역을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테스트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원하는 사거리를 충족하는지를 확인하는 것.
하지만 자칫 각도를 낮춘 상태로 800킬로미터를 날아가는지를 확인하려면 공해상에 떨어트려야 하는데, 그랬다간 주변국들에서 난리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대기권 재돌입 기술의 성공 여부도 확인이 가능하겠군요.”
국방장관은 고각 테스트의 핵심 이유 중 하나를 정확히 짚었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쏘아 올리는 사거리 800킬로미터 급의 미사일은 외기권까지 다다르는 것이 가능한 물건.
그게 성공리에 다시 목표에 떨어진다면 재돌입 기술확보에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그렇습니다. 때문에 탄두부의 소재는 저희가 개발한 내열 소재가 적용되었죠.”
“고생 많았습니다.”
국방장관은 감회가 새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곧 저편에 서 있는 두 대의 이동식 발사차량으로 다시 시선을 준 그는 다시 내 팔을 잡아끌었다.
“이동식 발사대와 차량도 벌써 개발이 끝난 겁니까?”
“네, 덕분에 현우 로템이 꽤 고생을 했습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골머리가 아프다,
애초 탄도미사일 개발 사실을 모르고 있던 현우 로템은 차량 개발 요청에 난색을 표했었고, 결국 끈질긴 설득 끝에 우선은 상용 차량을 개조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고작 몇 개월 만에 저걸 만들어 냈다는 겁니까?”
하지만 기껏 상용 차량이 요구성능을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던 상태.
결국 발사 플렛폼의 개발주체는 다시 내가 되었고, 그나마 시간을 두고 개선을 한다는 조건으로 차량은 끝끝내 현우가 담당하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차량은 향후 현우 로템에서 군의 요구성능에 맞게 다시 개발을 진행할 예정이니 너무 걱정하실 것은 없습니다.”
국방장관은 한시름 놨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내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주려는 순간, 드디어 발사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발사!”
쿠구궁!
불을 뿜은 미사일이 하늘로 치솟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긴 연기 꼬리를 남기고 사라진 것이 다시 해상에 설치된 목표물로 떨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몇 분.
“오오!”
놀라운 것은 가로세로가 불과 10미터도 채 되지 않는 고무 튜브의 중앙을 거의 정확히 뚫고 들어갔다는 건데, 그건 굉장히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 장면이었다.
“탄도미사일의 공산오차가 저 정도면 거의 순항미사일 수준 아닙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어떻게 저게 가능하죠?”
“그야 당연히 INS. 즉 항법시스템 덕분이죠. 어차피 개발이 완료되었기에 공개하는 거지만 이번에 개발된 현무의 자이로는 일반적인 광학식이 아니라 원자 스핀 방식입니다.”
원자 스핀 자이로는 우리가 대략 2020년쯤에 완성한 물건이었다.
일반적으로 유도무기에 사용되는 광학식 자이로와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이 적은 오차범위를 가지고 있는 물건.
중요한 것은 그게 원자의 스핀 운동을 이용한다는 것인데, 덕분에 우린 자기장 간섭이 적은 특수히터를 개발해야 했고, 무려 4겹에 달하는 차폐 통까지도 현실화 해내야만 했다.
“미국의 ICBM이 사용하는 기계식에 비하면 어느 정도 수준인 겁니까?”
“그것에 비해서도 한참 성능이 앞선다고 봐야죠. 게다가 그 정도 수준의 정밀성을 보이는 기계식은 생산수율이 극에 가까워서 사실상 우리가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고요.”
“하긴, 미국도 그것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는 말이 있었죠. 막상 고장이 나도 수리를 할 부품의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서.”
“맞습니다. 그래서 아마 미국도 조만간에는 원자 스핀 자이로 방식으로 가게 될 겁니다.”
국방장관은 그 말에 또 한 번 뿌듯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나저나 저 정도 정밀도면 대함 탄도탄으로까지 활용이 가능할 것 같은데, 그건 생각을 해봤습니까?”
“죄송하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왜죠?”
“현무의 최종 낙하속도는 마하 10이 넘습니다. 그런 엄청난 속도로 낙하하는 물체가 목표의 이동 방향을 미리 계산해서 급기동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요. 그게 가능하려면 내장 컴퓨터의 연산속도가 슈퍼컴퓨터급에 이르러야 한다는 건데, 미사일에 슈퍼컴퓨터를 탑재한다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막상 말을 뱉어내고 보니 예전 중국이 세계를 상대로 떨었던 허풍이 생각났다.
자신들이 만든 탄도미사일로 미국의 항모를 일격에 격침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었던.
핵을 탑재하지 않는 한에는, 아니면 극초음속 활공 탄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단순히 탄도미사일로 움직이는 물체를 맞춘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이었군요.”
그럼에도 한때 미국은 중국의 대함 탄도미사일을 경계하여 작전 범위를 뒤로 물렸었다.
그렇다고 미국 같은 나라가 그런 황당한 주장을 믿어서는 아니었고, 혹여 재수가 없어서 그게 정말로 항모에 떨어질 경우를 염려했기 때문.
그에 더해, 하필이면 중국이 핵보유국이라는 점 때문인데, 아마 중국도 후자의 경우를 염두에 둔 전략이었을 거다.
“2차 테스트를 곧바로 시행하겠습니다.”
테스트는 총 2차례에 걸쳐서 진행됐다.
사실 마음 같아선 최대한 많은 수량을 테스트하는 것이 좋겠지만, 한 발에 무려 오십억이 넘는 탄도미사일을 그렇듯 쏴재꼈다간 예산이 남아나지 않을 터.
결국 최종적으로 합의된 수량이 바로 2발이었다.
촤악!
이번에도 여지없이 튜브를 뚫고 물속으로 골인하는 탄체의 모습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역시 공산오차는 불과 수 미터.
역사대로라면 우리가 개발했던 현무 시리즈의 최종형. 즉, 현무4에나 탑재해야 할 최신 기술들과 원자 스핀 자이로까지 장착을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거다.
짝짝짝!
성공적인 테스트를 지켜보던 VIP들은 연신 박수를 치며 그동안 고생한 개발진들을 치하했다.
난생 처음으로 쏟아지는 칭찬세례가 어색했던 걸까, 희원은 연신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앞으로가 걱정이군.”
지켜보던 국방장관은 불현듯 넋두리를 뱉어냈다.
내가 왜 그 심정을 모를까.
막상 개발에는 성공했으나 돌아올 미국의 압력이 걱정이었겠지.
특히나 오키나와 해역에 주둔 중인 미국의 이지스 함에선 이미 우리의 미사일 궤적을 추적했을 텐데, 아마 몇 시간 후면 한미연합사를 통해서 엄청난 추궁이 날아들 지도 모른다.
“미국도 미국이지만 러시아가 이 사실을 알면 반응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듣고 있던 국정원장은 걱정을 덧붙였다.
비록 탄체의 모양은 달라도 궤적을 바꾸는 기동 방식은 이스칸데르와 거의 같았던 상태.
당장은 아니라도 궤적 분석이 끝난 이후엔 그들도 항의를 해올 가능성이 크다.
대체 어떻게 자신들이 팔지도 않은 기술이 너희들의 손에 있는 거냐고.
“미국은 몰라도 러시아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
지나가듯 뱉어낸 말에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그럼 내가 설마 그걸 염두에 두지 않고 현무의 개발을 주장했을까.
슬쩍 그들을 쳐다보곤 한마디를 뱉어냈다.
“우는 아이는 사탕으로 다독여야죠.”
*******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어요.
며칠 후, 국방장관은 예상처럼 미 국방부에서 한미연합사를 통해 정식적인 정보공개요청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물론 우리야 최대사거리를 298킬로미터쯤이라고 주장했지만 그걸 믿을 미국이 아니지.
특히나 이지스 함정에 설치되어 있는 탐색 레이더로 내내 궤적을 살폈을 그들에게 그 변명은 콧방귀 거리도 아니었을 거다.
“그래도 제 예상보다는 덜한 편인데요? 전 당장이라도 미 대사가 청와대로 뛰어들어 갈 줄 알았거든요.
-그건 대통령께서 막으셨습니다.
“어떻게요?”
-7월에 예정된 클린턴 대통령과 각하의 회담에서 그걸 주요 의제로 삼자는 것으로 합의를 하고 문제를 임시 봉합한 모양이에요.
역시나 내 예상대로였다.
사실 역사적으로도 현무가 처음 테스트를 한 것은 이 시기쯤.
물론 개발 주체가 나로 바뀌기는 했지만.
그리고 성능과 사거리 면에서 전보다 비약적인 발전을 했지만 어쨌건 사건 자체는 역사의 흐름 대로다.
해서 내가 믿고 있었던 것 역시 역사적인 사실들.
즉, 우리 대통령과 클린턴과의 회담에서 사거리 문제가 봉합되는 그 사건이었는데, 다행히 그건 바뀌지 않을 모양이다.
“문제가 더 커지지는 않겠죠?”
김 비서는 마치 자신이 정부 담당자라도 된 듯 우려를 달고 살았다.
저런 태도가 기밀유지 서약서에 사인을 하고 난 다음부터였지 아마?
늘 평범한 일상을 살던 그녀로서는 난생처음 써보는 그 서약서로 인해 마치 자신이 중요한 인물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은 모양이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 우린 500킬로미터로 사거리 증가를 요구할 거고, 미국은 300킬로를 고집하겠죠. 문제는 우리가 그 고집을 꺾을 힘이 없다는 건데, 해서 결과적으로 미국의 뜻대로 합의가 될 겁니다.”
“하지만 실 사거리는 훨씬 길잖아요. 그걸 문제 삼으면 어쩌나 싶은 거죠.”
“그거야 우기면 그만입니다. 어차피 실물이 미국의 손에 들어갈 것도 아닌 마당에 걱정할 일이 뭐가 있습니까.”
“그러다 실물제공을 요구하면 어쩌려고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미국의 그늘 아래 있지만, 엄연히 독립국인데 한 나라의 전략무기를 자신들 마음대로 가져와라 마라는 할 수 없거든요. 군이 대놓고 사고를 친 이유도 실은 그런 구석을 믿고 있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공공연한 비밀로 만들겠다는 거죠.”
“하지만 협정 위반 아닌가요?”
“미사일 사거리 제한은 지침이지 협정이 아닙니다. 즉, 여차하면 얼마든지 깨버릴 수 있는 거죠. 물론 그 경우 돌아올 후폭풍이 어마어마하겠지만.”
김 비서는 그 말에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안도하는 것 같으면서도 일견 또 걱정스러워하는 것도 같은.
왠지 그 모습이 우스워 한마디를 더 보탰다.
“우리 그 문제로 더는 노심초사하지 맙시다. 정작 걱정해야 할 일은 따로 있으니까.”
“또 뭐가요?”
“아마 미국은 이 기회에 우리를 MTCR(미사일기술통제체제)에 가입하게 만들 겁니다. 뭐 어차피 현무는 수출 가능성을 두고 개발한 것이 아니니 상관은 없겠지만 그게 또 하나의 족쇄가 될까 걱정스러운 거죠. 그나저나 혹시 국정원에서 연락 온 것 없습니까. 지금쯤이면 러시아에서 뭔가 움직임이 있어야 정상인데 영 조용하기만 한 것이 의문이네요.”
“네, 아직은......”
따르릉!
그녀의 고개가 가로저어지는 것과 동시에 내 휴대폰이 울렸다.
“그럼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