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9화
“826편으로 도착한 관을 운구하러 왔습니다.”
관을 인수하는 과정은 꽤 복잡했다.
가장 골치가 아팠던 점은 애초 내가 김준과는 가족관계가 아니라는 것.
덕분에 들어가야 할 서류만 해도 수십 종은 넘었고, 그럼에도 한계에 부딪친 부분들은 사실상 권력의 힘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제2 화물창에 가시면 담당자가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꼬박 3시간이 지나서 인수한 관의 상태는 예상과 달리 깔끔했다.
현지 장례업체를 동원하여 사체를 다시 새 관에 이관했는데, 우리와는 문화가 달라서인지 관의 크기와 무게가 실로 어마어마했다.
[미스터 진?]
인계서류에 사인을 마친 순간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아니겠지 싶은 마음이 든 것도 잠시.
몸을 돌림과 동시에 마치 벼락이 꽂힌 듯한 충격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갔다.
[전 준의 친구 라이언이라고 합니다. 혹시 그쪽이 미스터 진 맞습니까? ]
움찔!
분명 라이언이 틀림없었다.
내가 MIT에서 유학할 당시 둘도 없이 친하게 지냈던 친구.
젠장, 그런데 어떻게 저 친구가 버젓이 살아 있는 거지?
분명 1997년도에 학교 앞에서 일어난 대형 교통사고로 사망을 했었던 인물이.
당시 그의 무덤에 흙을 뿌려줬던 기억이 아직도 이렇게 생생하건만…….
[맞습니다, 제가 진현승입니다.]
[드디어 미스터 진을 보게 되는 군요. 반갑습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것은 그가 코앞까지 다가온 후였다.
아무리 봐도 내 친구 라이언이 분명한 상황.
조금만 더 이성을 잃었더라면 덥석 얼굴을 만져 확인을 할 뻔했다.
[아 네…… 그런데 여긴 대체…….]
[준의 묘를 이장한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내내 촉각을 세우고 있다가 마침 디데이라는 소식을 듣고 함께 날아왔습니다.]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안 가는 거고.
자칫했으면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고작 몇 년을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묘를 이장한다고 해서 머나먼 타국까지 날아올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될까 싶은 마음에서.
하긴, 당시에도 의리 하나만큼은 최고였던 놈이었으니 영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대체 네가 왜 살아 있는 거냐고.
[이거 뭐라 감사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감사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저죠.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가며 친구를 고향으로 데리고 온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아실지 모르겠지만 준이가 유학 시절 내내 그쪽 이야기를 꽤 많이 했습니다.]
라이언은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로 손을 내밀었다.
얼마 만에 마주 잡아보는 손인가.
여전히 크고 투박한 놈의 손에서는 따듯한 온기가 전해져왔다.
정말로 살아있는 거구나.
[그나저나 화장을 한다고요?]
[네, 성남에 있는 납골당에 안치할 생각입니다.]
[그렇군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동행해도 되겠습니까?]
[그야 물론이죠.]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라이언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곧 어딘가로 전화를 건 그는 한참을 통화를 하는가 싶더니 저편에 서 있던 누군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누가 함께 오신 겁니까?]
의아한 마음에 물었다.
그와 동시에 다가온 사람은 웬 금발의 여인.
순간 전에 의뢰했던 정보거래처의 소장이 했던 말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쳐 갔다.
설마…… 나, 아니 이 시대의 김준과 미국에서 동거를 했었다는 그 여인?
[이쪽은 준이의 동거인이었던 케이트라고 합니다.]
다시 나를 향해 돌아선 라이언은 내 짐작을 확신시켜줬다.
이런 상황은 미처 예상도 못했었는데.
당황스러운 마음에 멍하니 쳐다보자 여인이 느닷없이 나를 꼭 끌어안는다.
[고맙습니다, 준이가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셔서…….]
[아, 네…….]
어정쩡한 태도로 응수했다.
이후 떨어진 그녀를 가만히 쳐다봤지만 도무지 내가 빠져들 만한 구석은 찾아내지 못했다.
주근깨 가득한 피부.
평범한 외모와 거친 손.
[일단 차에 타시죠.]
다가온 차량의 문을 열며 그녀를 향해 손짓했다.
옅은 미소로 응수하며 그녀가 차에 오르던 순간.
문득 그녀가 비틀대며 나를 붙잡았다.
‘뭐지?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건가?’
******
화장터로 향하는 길.
나와 한 차량에 탄 라이언과 케이트는 내내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곧 한 줌의 재가 될 친우와 연인의 운명에 마음이 쓰린 거겠지.
“준아…….”
그건 희원이 놈도 마찬가지였는데, 놈은 가는 내내 오열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준이와는 어떻게 만나게 된 겁니까?]
그건 케이트를 향해 한 질문이었다.
어차피 라이언과의 첫 만남이야 내가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이고, 그녀에 관해선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니까.
그녀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듯 잠시 머뭇거렸지만 곧 표정을 밝히며 입을 열었다.
[준이 자주 가던 식당에서 근무했어요. 그땐 준이나 저나 외로웠던 시기였기에…….]
이후론 굳이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좀 의외인 것은 내가 고작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여자를 만났다는 사실.
그 부분만큼은 왠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군요. 참, 그렇고 보니 라이언에 대해서는 이제 기억이 나네요. 준이 그 친구가 전에 미국에서 사귄 몇 안 되는 친구 중 한명이 큰 사고를 당했다고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있거든요.]
이후 라이언을 향해 시선을 돌리곤 넌지시 사고에 대해 언급해 봤다.
막 창밖을 향해 시선을 주던 그는 그게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사고요?]
[…….]
이로써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해 진 건가.
무슨 이유에선지 역사가 바뀌었다는 것.
라이언의 입장에선 다행인 일이지만, 그리고 나 또한 친우의 죽음을 겪지 않아서 좋긴 하지만. 왠지 뒤끝이 찜찜하다.
[네, 라이언입니다.]
한참 생각에 빠져 있을 무렵, 라이언이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표정을 굳혔다.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걸까 싶어 쳐다보자 그가 잔뜩 흥분한 채 말을 이었다.
[아 그 문제는 제가 아니라 메건 상원의원에게 직접 말씀을 하셔야죠. 아니요, 그 건은 아무리 돈을 많이 쓴다 해도 쉽게 해결 될 일이 아닙니다.]
라이언은 짧은 통화를 끝내곤 다시 창밖을 쳐다봤다.
상원의원. 그리고 돈.
왜 저 친구의 입에서 그런 단어들이 나오는 걸까.
의아한 마음에 난 다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준과 MIT 동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통화 내용은 공대 출신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군요. 아! 불쾌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불쾌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실은 난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분야로 빠졌습니다. 능력에 한계도 절감했고, 마침 아버님께서 집안의 가업을 이으라는 성화도 있고 해서요. 원래 저희 집안이 대대로 로비스트로 명성이 자자하거든요.]
그 말을 듣고 보니 기억이 떠올랐다.
함께 펍을 드나들며 미국의 정치를 욕하던 시절.
라이언은 그런 미국의 더러운 정치 풍토에 자신의 아버지가 일조를 했다는 말로 나를 놀라게 했었던 사건이.
맞아, 그때 분명 놈의 아버지가 미 정가에서 유명한 로비스트라고 했었지.
[그럼 라이언도 지금 로비스트로 활동 중인 겁니까?]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영향력이 워낙 커서 성공률도 꽤 높은 편이죠.]
그게 스스로를 자랑하고 싶어서 하는 소리는 아닐 거다.
애초 놈이 그런 식으로 자신의 힘을 드러내는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단지 자신의 상황을 명확하게 알리기 위한 표현 정도?
그나저나 나로서는 반갑기가 그지없는 일이었다.
미국 정가에 입김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존재.
지금의 나에겐 그게 절실히 필요했으니까.
[일정이 급하지 않다면 며칠 있다가 가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준의 친구를 이렇게 만나게 된 마당에 그냥 돌려보내는 것은 왠지 마음에 걸리는군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실은 저도 준의 고향이 어떤 곳인지 무척이나 궁금했거든요.]
그 말에 내심 안도감이 들었다.
곧 뒤편에서 따라오는 리무진에 실려 있던 나를 향해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고맙다, 또 다른 김준. 그리고…… 미안하다.’
********
[하하! 준에게 그런 면이 있었는지는 미처 몰랐군.]
라이언이 한국에 있던 며칠 사이, 우리 관계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애초 그의 습관을 비롯해서 성격과 관심 분야. 하다못해 놈의 잠버릇까지도 알고 있던 나로서는 당연한 결과.
덕분에 꽤 많은 대화를 나눈 우린 이번 재우와 노키드 사이에 벌어졌던 일에 대한 진지한 대화마저도 가능했다.
[꽤 고생했겠군. 하긴, 노키드 정도면 확실히 그럴 만도 하지. 아! 혹시 그거 아나? 전에 프랑스의 팔레모 사도 그들의 표적이 되어 결국 무너진 사건.]
[팔레모라면, 재우 에어로스페이스처럼 노키드의 부품 공급 업체 중 하나였잖아.]
[맞아, 그것도 꽤 비중 있던 회사였지. 문제는 그들이 갑자기 유럽의 독자적인 전투기 개발 사업에 참여를 해버렸다는 거지. 그때 노키드와 보잉. 그리고 여타 그들의 연합이 그 회사 하나를 무너트리기 위해서 쓴 돈이 무려 100억 달러에 달했어.]
[100억 달러?]
[그게 다가 아니야. 자금력도 자금력이지만 저들의 수법이 얼마나 집요했던지. 무려 수년에 걸쳐 피를 말리더군.]
[그래서?]
[그 상황에서 자국 내의 경쟁업체들까지 잡아먹자고 달려드니 버텨낼 재간이 있겠나? 결국, 국가 기술의 유출을 우려한 프랑스 정부가 타국으로 팔려나가는 것만큼은 막았지만, 주인이 바뀌는 것은 막지 못했어.]
[흠…….]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보면 재우는 그나마 잘 빠져나갔다는 소리야.]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어색한 웃음으로 대꾸했다.
곧 술잔을 마주치려는 순간, 그가 갑자기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쳐다봤다.
[그나저나 난 왠지 노키드가 이번만큼은 실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
[생각 해보니 만약 재우가 손을 떼버리면 제일 좋아할 곳은 중국이잖아. 가뜩이나 항공 분야의 기술력을 끌어올리지 못해서 안달이 난 상황이니까. 그렇게 되면 우리 미국 정부로서도 골치가 아플 텐데, 과연 노키드를 곱게 보려나 모르겠네.]
[맞아, 실은 그게 내가 바라던 바지.]
[……무슨 소리야?]
그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들고 있던 술을 한 모금 들이켜곤 가만히 그를 쳐다봤다.
[자네 말대로 곧 중국이 달려들 거야. 하면 미국 정부가 취할 다음 행동이 뭘까?]
[그야 서방에서 인수할 업체들을 찾아 찔러 보겠지. 아니면 미 항공 관련 업체들을 압박해서 인수를 유도하던지. 그편이 중국이 먹게 두는 것보다야 낫잖아.]
[하지만 서방 업체들에게 모터시치는 계륵이라는 것이 문제지. 인수금액이 적은 것도 아니고, 또 자신들보다 기술력도 떨어지는 기업이니까. 더군다나 서방이 나서면 이번엔 러시아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그럼 과연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있을까?]
[…….]
[자네 생각은 어때? 그렇게 되면 미국 정부가 내릴 선택은 뭐일 것 같냐는 거지.]
[그거야…… 자네 그럼 설마…….]
[사실 노키드와 관계를 청산한 마당이면 우리가 다시 인수를 못 할 이유는 없어. 하지만 대책도 없이 다시 나섰다간 이번엔 노키드가 아니라 전 미국의 항공 관련 군수 산업체들의 표적이 되겠지.]
[그야 그렇지.]
[하지만 중국이 개입하는 상황이 되고, 그걸 경계하는 미국 정부가 직접 나서서 우리에게 인수를 권유하게 된다면?]
[…….]
[물론 아직까지 우린 재인수를 확정한 것이 아니야. 하니 그 문제는 닥쳐봐야 알겠지. 뭐 그건 그렇고. 앞으로 내가 미국을 상대로 사업을 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로비스트인데, 혹시 자네가 그부분을 좀 도와주겠나?]
[…… 그야 물론.]
라이언은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취기가 오른 걸까, 한껏 호탕한 웃음을 내뱉던 그는 불현듯 옆방을 쳐다보곤 다시 침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나저나 참 불쌍한 여자야.]
[누구? 케이트?]
[어. 내가 아는 바로는 준과 동거를 시작한 지 딱 6개월 만에 사고가 났거든. 이후 충격이 너무 커서 일도 제대로 못 하고 있더라고.]
[그럼 생활은 어떻게 했는데?]
[그동안엔 내가 도움을 줬지. 물론 처음엔 거부했었는데, 얼마 전부터 다시 도움을 청하더군. 자신의 몸에 감당하지 못할 병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야.]
[무슨 병을 앓고 있기에?]
[췌장암.]
[…….]
순간 차에 오르다 비틀대던 그녀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문제는 그런 몸을 하고도 굳이 여기까지 발걸음을 옮겼다는 것.
왠지 가슴 한구석이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도와줄 방법이 있을까?]
[경제적인 부분이야 도울 수는 있겠지. 하지만 의료적으로는 방법이 없어. 기껏해야 6개월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의사의 말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난, 혹시나 그녀가 준의 곁에 묻히고 싶어서 한국에 오고 싶어 한 건 아닌가 싶었는데. 막상 그녀도 죽음만큼은 어머니의 품에서 맞이하고 싶다고 하더군. 저…….그런데 말이야. 혹시 나중에라도 그녀가 준의 곁에 묻힐 수 있도록 자네가 좀 도와줄 수 있을까?]
[그야 물론.]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잔을 들어 올렸다.
이 비싼 술이 오늘따라 왠지 사약 같게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