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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38화 (38/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8화

[재우 탈레스의 차남 진현승, 대주주 지분확대 시사.]

지분확보는 며칠에 걸쳐 이루어졌다.

총 매입량은 5퍼센트.

덕분에 하락을 거듭하던 주가는 다시 상승했지만, 불과 며칠을 넘지 못하고 다시 공매도 세력들에 의해 무너졌다.

“대체 누가 이렇게까지 자금력이 좋은 건지 모르겠군. 이러면 후계자 확정으로 시장에 신호를 준다 해도 효과가 크지는 않을 텐데…….”

“대유증권 측에서도 그 점을 염려하고는 있습니다. 그래도 당장은 그 방법밖엔 없으니 지분이동은 계속 진행한다고 하더라고요. 저 그런데…… 시장의 반응이 왠지 심상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번 타격으로 에어로스페이스가 회복하기 힘들 거라고 판단하고 있는 모양인데, 결국엔 탈레스에까지 그 영향이 계속 미칠 것 같은데요?”

김 비서의 분석도 일리는 있었다.

막말로 비중 있는 계열사가 망하게 생긴 마당에 홀로 승승장구할 수 있는 그룹이 어디 있을까.

특히나 거미줄처럼 연결되어있는 지분구조로 인해서 영향은 예상을 초월할 거다.

즉, 한동안 에어로스페이스로 인한 어둠의 터널이 꽤나 길어질 것이라는 소리지.

“노키드 마틴에선 아직도 일절 대답이 없답니까?”

“네, 진현철 대표님께서 백방으로 뛰어다니시지만 그쪽에선 아예 상대도 안 해주는 모양입니다.”

“그 정도면 더 기대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겠군요.”

아무리 내 소관이 아닌 일이라고는 해도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냥 뒀다가는 계속된 공매도의 압박에 그룹 전체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수도 있으니까.

문제는 살을 내어 준다는 상황에서도 뼈까지 달라는 저들의 태도인데, 그걸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

‘정말로 단순한 길들이기가 아니라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노키드 마틴 하나만이 배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소린데…….’

불현듯 그런 생각이 스쳤다.

내가 만약 미국의 군수 산업체라면 이런 기회를 그냥 흘려보냈을까, 싶은.

한번 시작된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결국 조금 후엔 확신으로 굳어졌다.

‘그럴 수도 있겠군. 우리의 연속된 미국으로의 무기 수출. 그나마 미 방산 업체들을 다독인다는 명분하에 우리가 이런저런 양보를 했지만 정작 당사자들로서는 그게 성에 안 찼을 수도…….’

게다가 앞으로 또 그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미국의 군수 산업체들로서는 불안한 것이 당연했을 테고.

그 와중에 노키드 마틴이 확실한 꼬투리를 잡았으니 다른 업체들도 그 힘에 편승한 것일 수도 있다.

‘결국 합병은 트리거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건가? 그럼 진현철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는 거잖아.’

떠오르는 생각과 동시에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곧 수첩에 적어두었던 번호로 전화를 걸자 조금 후 익숙한 목소리가 응답했다.

[마이클 중장님?]

노키드 마틴과 별다른 연줄이 없는 나로서는 마이클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다행히도 그는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었고, 며칠 후엔 노키드 마틴이 한국에 설치한 연락사무소의 실질적인 책임자와 통화가 가능했다.

여태 우리가 상대했던 자가 아닌, 저들의 뒤에서 모든 일을 조종하는 실질적인 한국 사무소의 우두머리와.

-여보세요?

들려온 말은 한국어였다.

혹여 한국어에 익숙한 미국인인가 싶었지만 그건 또 아닌 느낌.

특유의 목소리 톤으로 봐선 아마도 재미 동포쯤인 것으로 짐작된다.

“안녕하십니까, 재우탈레스의 진현승입니다.”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전화를 받은 사내는 무척이나 당황한 눈치였다.

상관하지 않은 채 용건을 말하려는 순간, 그가 툭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 자식 봐라?”

난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이후 다시는 통화 연결이 되지 않았고, 결국 또 한 번 마이클의 도움을 받고서야 직접적인 만남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재우 탈레스의 진현승입니다.”

“제레미 정입니다.”

예상처럼 그는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뭐 말만 한국계지 정신적인 포지션은 미국인이라고 해야겠지.

어쩌면 더욱 골치가 아픈 상황일 수도 있다.

“미리 말하지만, 솔직히 내가 여기까지 나온 이유는 그쪽이 미국 내의 권력을 동원해서 나를 압박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알려드리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미국의 권력과 가까운 것은 우리 노키드지 재우가 아니라는 소리죠.”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애초부터 순순히 대화할 시간을 줬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겠죠. 대체 왜 대화를 피하는 겁니까?”

“그거야 우리 쪽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미 연장 불가 통보를 한 마당이면 관계는 끝난 상황에서 무슨 대화를 하자는 건지 모르겠군요.”

“…….”

슬슬 열이 뻗쳐왔다.

상황이 이렇다면 나도 더는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겠지.

옥죄고 있던 넥타이를 풀어내곤 한껏 삐딱한 태도로 말했다.

“그럼 계약을 해지하는 선에서 깔끔하게 끝을 맺었어야죠. 그럼 나도 이런 구차한 자리까지 마련하지는 않았잖습니까.”

“무슨 소립니까? 우리가 깔끔하지 못했던 것이 또 뭐가 있다고.”

“그걸 지금 몰라서 되묻는 겁니까?”

“…….”

"그럼 지금 우릴 공격 중인 공매도 세력들. 그중 노키드와 연관이 있는 곳이 없다고 자신 할 수 있습니까?”

순간 사내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럼에도 끝내 시치미를 떼고 싶은 듯 입술을 꾹 다문 그는 슬쩍 시계를 한번 쳐다보곤 다시 입을 열었다.

“나로선 당최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하실 말씀이 그것뿐이라면 난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경고하는데, 지금 엉덩이를 떼면 아마 조금 후엔 미 해군참모총장이 당신에게 전화를 하게 될 겁니다.”

멈칫!

그의 몸이 움찔했다.

괜한 협박은 아니라고 느낀 걸까,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사납다.

“…….”

“그분의 성격을 보면 꽤나 버라이어티 한 욕설이 날아들 것 같은데, 감당 하실 수 있겠습니까?”

스윽.

“무슨 소리죠?”

“만약 당신들이 당장 탈레스를 상대로 한 공매도 작전을 중지하지 않으면 난 미 해군과 계약한 HVP 기술 협력을 파기할 생각이거든요. 그렇게 되면 미 해군참모총장께서 아마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사내는 극도로 흥분했다.

상대가 자빠졌을 때 짓밟는 것이 바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최고의 방법.

즉시 한마디를 더 보탰다.

“내가 못 할 거라는 착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난 설사 그 결과로 우리에게 허용된 무장 통합이 무산될 각오까지 하고 하는 말이니까.”

“…….”

“왜요, 공갈 같습니까?”

“그렇게 되면 재우 탈레스도 타격이 클 텐데요? 특히나 이런 위기상황에선 더더욱.”

“뭐 최악의 경우라고 해봐야 망하기밖에 더하겠습니까? 나야 어차피 재우탈레스가 아니라도 살아날 길이 있으니 상관없다는 건 모르시는군요.”

“…….”

“이건 참고하시라고 하는 말인데. HVP 구축으로 인한 미 해군의 향후 예산 절감 효과는 10년에 걸쳐 총 900억 달러에 달하더군요. 그런데 그게 당신들로 인해서 무산되면 아마 미 해군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을 겁니다.”

“…….”

“이런, 생각해 보니 그렇게 되면 정말로 골치가 아프겠군요. 가뜩이나 자존심 강한 해군은 공군과는 별도로 차기 전투기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을 원하고 있는데, 그 마당에 해군에 밉보이기까지 하면 노키드의 미래야 뻔하죠.”

“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겁니까?”

“무슨 소리는! 내가 재를 뿌려 버릴 거라는 말이지!”

“…….”

“잘 들어, 내가 HVP의 ‘완전한 기술이전’을 조건으로 노키드를 걸고 넘어가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그건 절대 빈말이 아니었다.

물론 좋게 해결하는 게 가장 좋지만, 수틀릴 경우 혼자 죽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만약 저쪽에서 지금과 같은 태도를 계속 유지하겠다면 나 역시 목숨을 걸고서라도 타격을 줄 생각이다.

“그런…….”

사내의 시선이 한동안 크게 흔들렸다.

가능성을 고려해 보는 걸까, 입에선 점점 앓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못 믿겠다면 이 자리에서 당장 제프리 총장님에게 소식을 전달해 드리지. 회사가 망할 것 같아서 협력은 파기될 것 같으니 900억 달러는 노키드에게 청구하라고.”

난 즉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곧 단축키를 누르고 신호가 울리자 사내의 손이 재빨리 그걸 가로막는다.

“잠, 잠시만 시간을 주시죠.”

사내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는 자신의 선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여긴 건가.

곧 자리를 피해 어딘가로 통화를 시도한 그는 한참 후가 되어서야 다시 돌아왔다.

“좋습니다. 보름만 시간을 주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건 아마도 이미 공매도한 주식을 되살 시간을 벌려는 의도일 거다.

갑자기 포지션을 바꾸면 주가가 단숨에 뛰어오를 테니 최대한 바닥에서 긁어모으겠다는 거지.

하지만 내가 그걸 들어줄 이유는 없다.

아니, 남을 죽일 작정으로 달려들었으면 너희도 피는 봐야지.

“그건 곤란합니다. 사흘 줄 테니 그 안에 정리를 하던 뭘 하던 알아서 하세요.”

흥분을 가라앉힌 채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내 도도한 표정이었던 사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내 소매 깃을 붙잡으며 매달렸다.

“부탁입니다. 만약 이대로 되돌아가시면 저는 끝입니다. 애초 공매도를 통한 압박은 우리 한국 사무소에서 먼저 본사 측에 제안했던 문제라서…….”

“…….”

아마 다급한 마음에 한 말이었을 거다.

그래도 저렇게까지 생각이 없을까.

이건 칼을 맞은 사람 앞에서 자신이 범인임을 밝힌 건데, 그걸 듣고도 내게서 긍정적인 대답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면 아이큐를 의심해 봐야 한다.

“그거야 내가 알 바가 아니죠.”

붙잡힌 소매를 털어내곤 최후통첩을 날렸다.

문을 나서는 사이 얼핏 쳐다본 사내는 마치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상태였다.

“쯧…… 전혀 동정심이 가지 않는군.”

******

며칠 후, 주식시장에서 재우 탈레스의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됐다.

공매도 세력들의 쇼트커버링에 의한 현상.

협박이 먹혀들어 갔다는 증거다.

‘그나저나 에어로스페이스를 회복할 방법이 문제네.’

사실상 그게 문제였다.

무작정 모터시치를 다시 인수하면 이번엔 노키드 뿐만 아니라 전 미국의 항공 관련 군수 산업체들이 달려들 것이니 그건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잔뜩 얼굴을 붉힌 사이인 노키드가 다시 부품 계약을 하자고 손을 내밀 일은 더더욱 없고.

‘쯧, 답답한 친구들이네. 솔직히 재우 만큼 만족할 만한 수준의 부품 공급 업체도 많지는 않을 텐데,’

사실 내심으론 노키드가 다시 재계약을 권유하길 바랐었다.

자고로 사업이란 냉철해야 하는 법이고, 미국 업체들만큼 그걸 잘 알고 있는 곳은 없으니까.

하지만 끝내 연락이 오지 않는 것을 보면 그럴 의지는 없다는 의미 일 거다.

결국 내가 기대할 수 있는 에어로스페이스의 회생 방법은 당분간은 하나뿐이라는 소리지.

‘공격헬기 개발 사업.’

그게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단숨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그건 부품 공급 사업과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는 규모니까.

“참 대단한 사람들이네요.”

그간의 문제가 노키드 마틴 때문이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김 비서는 분을 토했다.

이제야 슬슬 시작되는 재우에 대한 외부의 견제가 현실로 체감되는 거지.

실은 나도 이 기회를 통해서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게 깨달았다.

만약 이번에 내가 저들을 옥죄일 만한 수단이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그게 권력이던, 기술이던.

‘문제는 내게 권력은 없으니 결국 보험이 될 만한 기술들을 더 확보해둬야 한다는 건데…… 뭐가 있을까.’

대충 그에 걸맞은 기술들이 머릿속에서 몇 가지 그려지기는 했다.

손에 쥐고만 있다면 당장 이번처럼 미 군부를 움직일 수 있는 기술들.

“흠…….”

단지 그것들이 현실화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데, 그사이 또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결국 그에 대한 대처만큼은 세워둬야 한다.

‘젠장, 기술이고 뭐고 사실 인맥만 있다면 골치 아플 것도 없는 문제건만. 어디 내 주변에 미국 정가에 영향을 끼칠 만한 사람이 있어야지.’

“참, 전무님. 오전에 대한항공에서 전화가 왔는데요. 전에 이장을 추진했던 친구분의 관이 도착했답니다.”

한참 생각이 깊어질 무렵 김 비서의 말이 날아들었다.

워낙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던 터라 이제야 도착을 한 김준, 아니 내 사체.

막상 소식을 듣자 반갑다는 느낌보다는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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