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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37화 (37/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7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노키드 마틴에서 부품공급 재계약을 거부했다니요.”

본사에 들어와서 들은 첫 말은 에어로스페이스에서 발생한 변고에 관한 것이었다.

보다 정확히는 노키드 마틴이 더 이상은 에어로스페이스를 부품 공급 업체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소식.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었던 터라 도무지 사태의 전말이 머리에서 그려지지 않는다.

“그제 현철이가 우크라이나에서 돌아온 것은 알고 있지?”

“네, 마침 소식은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왜요?”

“그럼 합병에 합의한 것도 알고 있고?”

“…….”

그건 모르고 있던 문제였다.

막말로 진현철이 그런 사실을 내게 먼저 알려올 인물도 아니고.

당장 내가 바쁜 마당에 에어로스페이스까지 신경을 쓸 여력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계약에 성공을 한 것과 이번 노키드 마틴의 사건이 무슨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

“잘된 일이군요. 그런데 그 문제가 왜…….”

말을 뱉어내다 문득 생각이 스쳐 갔다.

우리가 모터시치를 인수하게 되면 가장 신경을 곤두세울 곳이 바로 미국의 항공업체들이라는 사실.

어쩌면 내 예상대로 압박이 시작 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이.

“설마 그 합병 건 때문인 겁니까?”

“지금으로서는 그것 외엔 설명할 방법이 없어. 그동안 별문제도 없었고, 또 재계약이 불과 6개월 앞이었던 상황에서 갑자기 연장 불가 통보를 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내가 생각해도 갑작스러운 연장 불가 통보는 그것 외에는 답이 없다.

하긴, 이건 막말로 삼정이 미국의 밥줄인 CPU 설계 분야를 건드린 것과도 마찬가지인 상황인데 그걸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지.

“그렇다고 합병발표도 안 한 와중에 저렇게까지…… 그런데 형님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현철이는 노키드 마틴과 협상을 시도 중이야. 문제는 저쪽에서 일체 대화를 안 하려고 한다는 거지.”

아무래도 단단히 심사가 뒤틀린 모양이었다.

그간 별문제 없이 거래를 해오던 업체를 상대로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대화도 거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거든.

이 상황에서 그들과의 대화를 시도하려면 결국 그들이 거부할 수 없는 대상을 앞세우는 방법밖에는 없다.

“잠시만요.”

잠시 양해를 구하곤 시계를 쳐다봤다.

다행히 워싱턴도 지금쯤은 깨어 있을 시간.

즉시 마이클과의 통화를 시도하려다간 아차 싶은 마음에 다시 진 회장을 쳐다봤다.

“그나저나 몸은 이제 괜찮으신 겁니까?”

“많이 좋아졌으니 신경 쓸 것 없어.”

그러고 보니 전보다는 안색이 훨씬 편안해 보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이 찜찜함은 뭐지?

특히나 의자에 앉아서 일체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것이 왠지 수상하다.

“난 신경쓰지 말고. 하려던 일이나 해.”

“아! 그럼 잠시만요.”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곤 마이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기를 몇 차례.

곧 수화기 저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살다보니 미스터 진이 먼저 전화를 줄 때가 다 있군요.]

[갑자기 연락을 해서 미안하게 됐습니다만 부탁을 드릴 것이 좀 있습니다.]

[미스터 진이 내게 부탁할 것이 있다니 이거 긴장되는군요. 말 해보세요, 내 선에서 가능하다면 얼마든지 들어드리죠.]

마이클과의 통화는 한참 동안 이어졌다.

우스운 것은 처음과 달리 그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빠지고 있다는 것.

특히나 모터시치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엔 마치 올 것이 왔다는 듯한 투로 한숨을 뱉어냈다.

[쯧쯧, 일이 결국 그렇게 됐군요. 실은 나도 재우 에어로스페이스가 모터시치의 흡수를 시도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무척이나 고민했습니다. 이걸 만류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말이죠.]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지는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내 선에서는 아마 힘들 겁니다. 미스터 진도 알다시피 미국의 군수업체들의 힘이 만만치 않으니까요. 오죽했으면 내가 지난번 철갑탄을 수입할 때도 그런 부탁을 했겠습니까.]

[하면, 우리가 합병을 포기하는 것은 어떨까요?]

[사실 내 입으로 꺼내기가 뭣해서 주저했었는데, 아마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고의 방법일 겁니다.]

미 군수산업계의 움직임을 꿰뚫고 있는 마이클이 저 정도로 확고하게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답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시라도 빨리 진 회장에게 대처방안을 알리려 전화를 끊으려는데,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노키드가 한국의 기술력을 우려하고 있다는 말은 전부터 들려오고 있었던 차였습니다.]

[뭣 때문에요?]

[지금 노키드와 KAI가 공동개발 중인 초음속 고등훈련기 말이에요. 그동안은 마냥 우습게만 생각했던 KAI가 벌써 동체제작에 성공을 한 것을 보고 경계심이 들기 시작한 거죠. 그 와중에 재우까지 모터시치를 인수한다고 나서니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아무튼, 나로서는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미안할 따름입니다.]

마이클은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가 저렇게까지 말을 하는 상황이면 상황이 내 생각보다는 더 심각하다는 증거.

일단 문제의 싹을 자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즉시 진 회장에게 말했다.

“일단은 합병을 포기하죠. 우리가 그들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면 모를까, 지금은 그게 유일한 방법입니다.”

“합병을 포기겠다는 의사는 진즉에 전달한 상태야. 혹시나 진정성을 의심할까 싶어 모터시치에도 오늘 아침에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통보해둔 상태고.”

“그런데도 꿈쩍을 안 한다는 말입니까?”

“그러니까 문제가 심각하다는 거지. 젠장, 이건 뭐 괘씸죄를 적용하겠다는 건지 뭔지.”

상황이 그렇다면 단순히 겁을 주려는 의도만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럼 계약연장 불가만으로 사태가 끝나지는 않을 거라는 의미.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쯧, 결국 내 불찰인 게지. 이렇듯 기침 한 번에 흔들리는 주제에 미국 군수업체의 심기를 거슬렀으니…….”

진 회장은 미처 이런 상황을 예견하지 못한 스스로를 탓했다.

아니, 혹시나 싶었지만 그게 이렇게까지 확실하게, 그리고 단기간에 압력이 들어올 줄은 몰랐던 거겠지.

실은 나로서도 지나치게 빠른 저들의 움직임이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회장님!”

그때, 비서실 직원 중 하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문을 두드렸다.

곧이어 들어선 여비서는 곧장 사무실 한 편에 있던 TV를 켰고, 마침 방영 중이던 뉴스에서는 노키드 마틴과 에어로스페이스 간의 부품공급계약 해지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황당한 마음에 진 회장을 쳐다봤다.

짚이는 것이 있었던 듯, 그는 일체의 표정 변화도 없이 말했다.

“노키드의 소행이겠지. 쯧, 기어이 끝을 보겠다는 건가. 이거 앞으로가 걱정이군.”

“…….”

******

다음 날, 진 회장의 우려는 주식시장에서부터 드러났다.

에어로스페이스의 주가가 순식간에 바닥을 치기 시작하는 것으로.

그 영향은 당연히 지주사인 탈레스에게까지 미치기 시작했고, 결국 그간의 호재로 버텨가던 탈레스의 주가는 급전직하했다.

“공매도 세력들까지 붙어서 하락 폭이 지나치게 가파릅니다.”

아마도 그 공매도 세력들 중 태반은 미국계일 거다.

다시 말해서 노키드 마틴과 연관된 세력들의 작품이라는 소리지.

아무래도 저들은 장래에 경쟁 상대가 될지도 모를 우리를 아예 밟아 놓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이러다 자칫 핫머니들이 공매도에 편승하기라도 하는 날엔…….”

다급히 열린 임원 회의에서는 온통 주가의 하락이 화두였다.

그 탓에 진현철의 입지는 말이 아닌 상태.

그걸 의식한 탓인지 그는 결국 주요 간부 회의조차도 불참한 채 오로지 노키드 마틴을 설득하는 것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일단은 일부 수량이라도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시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재무 당당 이사의 전언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불과 얼마 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처지에 저들도 자괴감을 느낀 듯.

그런데 그때, 내내 듣고 있던 탈레스의 윤 대표가 불쑥 손을 흔들더니 그 의견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자사주 매입과 소각은 일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할 겁니다. 당장 저 정도로 압박이 심한 것을 보면 들러붙은 공매도 세력이 어중간한 자본력을 가진 곳은 아니라는 소린데, 그게 과연 며칠이나 효과가 있겠습니까.”

“그럼 윤 대표께서는 다른 대책이라도 있습니까?”

재무담당 이사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윤 대표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순간 윤 대표가 진 회장을 쳐다봤고, 곧이어 진 회장의 고개가 슬며시 끄덕여졌다.

“일단 이번 사태는 에어로스페이스 최고 경영자의 책임이 큽니다. 뭐 따지고 보면 그게 꼭 진현철 대표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그런 셈이 됐죠. 하니, 대외적인 불만을 바로잡으려면 우리도 시장을 안심시킬 만한 제스처를 취해야죠.”

“어떤…….”

“일단 진현철 대표를 에어로스페이스에서 해임하는 결정을 내려야 할 겁니다. 더불어서 회장님께서도 잠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시고 시장을 안정시킬 만한 확실한 얼굴을 내세워야죠.”

“…….”

순간, 장내에 있던 모든 이들의 약속이나 한 듯 나를 쳐다봤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진 회장을 향해 시선을 돌렸지만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만 있었다.

“그럼 진현승 전무를 회사의 얼굴로 내세우자는 겁니까?”

이사 중 하나가 따지고 들었다.

“그렇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그동안 진현승 전무가 탈레스에 끼친 영향은 막대합니다. 시장도 그걸 알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하니 이 기회에 진현승 전무를 탈레스의 확실한 후계자로 대외에 인식시켜 준다면 분위기 반전으로는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회장님까지 물러나시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 말에 이사들 중 다수가 반발했다.

그러자 윤 대표는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오해하신 모양인데, 그렇다고 회장님께 완전히 손을 떼시라는 말이 아닙니다.”

“회장님께서 물러나시지 않으면 그게 어떻게 경영혁신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자칫 눈 가리고 아웅 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어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그룹의 수장이 바뀐다면 그게 외려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해서 저는 진현승 전무의 지분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서 시장에 신호를 주는 방식이 어떨까 합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최소한 후계구도만큼은 확정이 됐다는 믿음을 주자는 거죠.”

“그건 회장님의 지분을 진현승 전무에게 또 양도하자는 건데, 대체 얼마나요?”

“최소 10퍼센트. 그 정도면 3대주주와는 큰 차이가 벌어지는 상황이니 후계자로 인식시키기는 충분하죠.”

윤 대표는 즉시 진 회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설마 약속된 사안이었던 건가.

내내 눈을 감고 있던 진 회장이 그 순간 윤 대표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

사람들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의 빛이 스쳐 갔다.

하지만 진 회장은 저들을 상관하지 않은 채 다시 윤 대표를 향해 물었다.

“그럼 현승이의 지분이 총 몇 퍼센트가 되는 거지?”

“현재 진현승 전무의 탈레스 지분율은 총 12퍼센트입니다. 회장님께서 10퍼센트를 양도하신다면 22퍼센트까지 확보가 되는 셈이죠.”

그렇게만 된다면 시장에 확실한 신호는 주게 될 거다.

믿을 만한 존재가 후계자로 확정되는 것만큼 호재는 또 없으니까.

그게 발표되면 우호적인 세력들이 반격을 시작할 핑계가 될 수도 있다.

“전 찬성입니다.”

그때, 이사들 중 누군가가 윤 대표의 주장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긍정의 눈빛들이 오고 가더니 어느새 분위기는 윤 대표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저도 윤 대표님의 주장에 반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당장 거세져만 가는 주가의 하락을 잡으려면 일단 자사주 매입으로 분위기 반전을 먼저 시도해야 합니다.”

재무이사는 끝끝내 자사주 매입을 주장했다.

하긴, 사실상 그편이 단기적으로 주가를 부양하기엔 확실하지.

고개를 끄덕여 보이려는 찰나, 윤 대표가 다시 나섰다.

“무슨 말씀인지는 나도 압니다. 그런데 매입한 주식을 죄다 소각을 하는 마당이면 돈을 허공에 날리는 것과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에게 그럴 만한 자금 여력이 있기는 한 겁니까.”

그 부분에서 재무이사의 말문이 막혔다.

왠지 숙연해진 분위기.

기회다 싶은 마음에 마이크를 끌어당겼다.

“자사주 매입은 아니지만 대주주 매입은 가능하죠.”

“......”

“기왕 제가 얼굴마담이 되는 상황이라면 좀 더 지분율을 늘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 이사님들이 허락하신다면 제 자비를 동원해서 일부라도 매입을 해보겠습니다. 그럼 자사주 매입의 효과는 보지 않을까요?”

사실 이런 상황을 이용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하늘이 내려준 기회를 그냥 넘긴다면 그것도 바보나 다름없다.

“그거 괜찮군요. 대주주 매입도 사실상 호재나 마찬가지니까요. 이 경우엔 법적으로 걸릴 것도 없습니다.”

재무이사는 화색을 띄며 말했다.

얼핏 쳐다본 진 회장의 표정도 그리 어둡지만은 않은 상황.

이윽고 그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매입할 자금은 있고?”

“그거야 회장님께서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흠, 뭐 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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