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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35화 (35/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5화

[반갑습니다, 미하일 장관님.]

[오래 기다리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하도 따라붙는 눈들이 많아서 경유지를 많이 거쳤더니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됐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격이 없어 보였다.

이미 몇 번이고 얼굴을 마주한 적이 있다는 증거.

독특한 것은 미하일의 영어 발음이었는데, 그의 영어에서는 러시아 특유의 악센트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거다.

[홀로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뭐 덕분에 꼭 진짜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중국과 일본 정보부 사람들 진짜 지독하더군요. 이란에서 협조를 해줬기에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꼬리를 달고 올 뻔했어요.]

대화를 듣고 있노라니 새삼 현실이 자각됐다.

중국과 일본이 얼마나 우리의 군사기술 발전을 경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역사를 반복하지 않게 위해서라도 오늘의 협상은 꼭 성공시켜야만 할 것 같다.

[그런데 저 젊은 친구는 누굽니까?]

한참 대화를 나누던 미하일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극도로 경계하는 눈빛.

[전 협상단의 대리인인 진현승이라고 합니다.]

즉시 다가가 손을 내밀자, 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 몸 곳곳을 훑는다.

[대리인이라니. 그건 예정에 없던 일이지 않소.]

그건 임효식 차장을 쳐다보며 한 말이었다.

잠시 숨을 고른 임 차장은 애써 웃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일단 앉아서 이야기 하시죠.]

스윽.

미하일은 굳은 얼굴로 착석했다.

이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한 눈빛으로 임 차장을 쳐다보자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정부에서 이번 2차 사업의 협상 목록을 좀 더 확대하자는 안건이 나왔습니다. 해서 그 문제로 여기 계신 진현승 씨가 나서게 된 거죠.]

[그럼 이분이 대한민국 국방부 소속이라는 소립니까?]

[그건 아니고…….]

채 설명을 못하는 임 차장의 태도에 미하일의 눈이 한껏 가늘어졌다.

어차피 그도 언젠가는 알게 될 사실을 숨겨서 뭣할까.

즉시 그를 향해 내 소개를 다시 이었다.

[전 대한민국 군수산업체 중 하나인 재우탈레스에서 전무직을 맡고 있습니다.]

미하일은 눈을 끔뻑였다.

마치 이 협상에 왜 예정에도 없던 민간 군수산업체가 끼어드느냐는 눈빛.

하지만 이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은 그는 돌연 임 차장을 향해 그동안 쌓여 있었던 듯한 불평들을 토했다.

[이제 와서 재협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시다시피 먼저 약속을 깬 것은 그쪽 아닙니까? 우린 분명 언론에 노출되는 것만큼은 피해달라고 했었는데, 그걸 한국 정부가 어겼고, 그 결과로 거래품목을 조정한 것 아닙니까.]

미하일은 이 사업이 축소되었던 근본적인 원인을 지적했다.

당시 러시아는 사업 자체를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주길 원했지만 그새 냄새를 맡은 일부 언론에서 그걸 까발렸고, 결국 열 받은 러시아 정부는 사업 품목을 대폭 축소해 버렸던 사건.

그걸 단지 들어서만 알고 있었던 나로서는 왠지 생경한 기분이었다.

정말로 그게 사실이었구나.

그렇다면 러시아로서도 열 받을 만도 하지.

우리 정부로서도 짜증스러웠을 테고.

[흥분하지 마시고 일단 이야기나 들어보시죠.]

임 차장은 쩔쩔매며 그를 다독였다.

뒤이어 해명을 이으려는 순간, 미하일이 손사래를 치며 서류 하나를 툭 하고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솔직히 이것들만으로도 우린 출혈이 큰 상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얼마나 더 내놓으라는 겁니까?]

불현듯 그가 내민 서류에 눈이 갔다.

2대의 지휘용 T-80UK 전차와 BMP-3 장갑차.

Metis-M 발사기를 비롯한 무레나 공기 부양정과 Ka-32A를 개조한 소방헬기까지.

진행 중인 2차 사업에서 협의된 거래 물품 목록들이 빼곡하게 적혀진 서류였다.

‘쯧, 고작 저걸로 출혈이 크다는 건 엄살이 심하지. 막말로 너희들도 우리에게서 얻어간 것이 얼마인데.’

그나저나 막상 서류들을 보고 있자니 다시 욕심이 샘솟았다.

특히나 저 카모프사의 역작 중 하나인 KA-32A가 가진 이중반전 로터기술과 강력한 엔진 기술과 소프트웨어.

우리나라가 2024년까지도 채 습득을 하지 못했던.

그래서 데이터 칩에는 없는 그 기술들이.

‘그래, 바로 여기서부터 칩의 한계가 드러나는 거지. 비록 첨단 기술들을 많이 담고 있다고는 해도 그게 세상의 모든 기술을 담고 있지는 않다는 것.’

그렇다 해도 실망할 일은 아니었다.

현실이 그렇다면 앞으로 그 한계는 나 스스로 극복하면 되니까.

사실 이런 자리를 마련한 이유도 애초 그 점 때문이지 않던가.

[아무튼, 난 이미 확정된 사안에 사인을 하러 온 것이지 재협상을 하러 온 것이 아니요.]

[그러지 마시고…….]

계속해서 쏟아지는 미하일의 불평에 임 차장이 채 대꾸를 못했다.

이쯤에선 내가 나서야 할 상황.

슬그머니 임 차장을 향해 눈 신호를 주자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재협상의 결과가 러시아에게도 이익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봐 주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러시아의 이익? 이 협상에서 러시아에게 이익이 될 것이 뭐가 있다는 거요. 단지 빚을 조금 더 까는 것 외에.]

그는 팩트를 강조하며 반박했다.

뭐 사실 틀린 말은 아니지.

아무리 협상이 잘 되었다고 해도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생기는 것이 하나도 없는 입장.

즉, 그저 더 뺏기느냐 덜 뺏기느냐의 상황에 불과한데, 그걸 이익이라는 단어와 연결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합리한 문제일 거다.

[옳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단지 빚의 규모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면 어쩌시겠습니까. 즉, 러시아도 이 기회에 확실하게 얻을 것이 있다면.]

때문에 지금은 저들이 확실하게 손에 쥘 수 있는 것을 제시해야만 한다.

역시나 마음이 동한 걸까, 내내 굳어 있던 미하일의 표정이 그 말에 조금은 누그러졌다.

[또 다른 반대급부가 있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좋소. 어디 한번 들어나 봅시다.]

그 말에 잠시 숨을 골랐다.

어디에서부터 먼저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국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던졌다.

[아파치에 필적하는 탐지레이더 기술을 드리죠. 대신 KA-50. 즉 블랙샤크의 엔진과 이중반전 로터. 그리고 소프트웨어 소스코드들을 넘겨주십시오.]

[…….]

미하일은 눈을 끔뻑였다.

얼핏 표정을 보니 마치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얼굴이다.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대한민국이 롱보우 수준의 밀리미터파 레이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롱보우 레이더는 아파치가 장착한 화력통제 레이더를 뜻한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초코파이라고도 불리는.

아파치 후기 형의 로터 위에 붙어 있는 둥글납작한 물건.

탐지거리가 약 8km 수준에 인근 1,000여 개의 물체 중 자체적인 판단으로 위험요소가 강하다고 인식한 128개의 물체를 식별하며, 그중 16개를 동시에 공격이 가능하도록 유도하는 레이더 시스템.

우리가 그걸 개발한 것은 AESA레이더의 개발에 성공하기 불과 3년 전쯤이었는데, 하드웨어적인 성능 만으로만 보면 롱보우에 필적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우리 러시아도 아직 개발을 못해서 프랑스로부터 수입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걸 알고는 있는 거요?]

[물론 알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성능이 미국의 것에는 미치지 못해서 고심 중이라는 것도. 하지만 우리가 개발한 것은 다릅니다.]

[…….]

미하일의 얼굴은 한동안 의심으로 가득했다.

아무튼 꼭 보여줘야 믿는다니까.

난 즉시 몸을 일으켜 근처에 있던 TV로 향했고, 이후 준비해 온 자료 영상을 틀어 보였다.

[…….]

영상을 장식한 것은 연구소에서 제작 중인 테스트용 시제품이었다.

비록 형태를 다 갖추지는 않았지만, 내부구조를 비롯한 여타 전파 테스트 장면만 봐도 충분히 그것이 밀리파 레이더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장면.

이제껏 고집스럽게 다물어져 있던 미하일의 입술이 슬슬 벌어지기 시작했다.

[당신들이 저걸 어떻게…….]

[글쎄요, 노력의 산물이라고 밖엔 할 말이 없군요.]

[하지만 저건 실험실 수준의 테스트잖소. 저걸 가지고 당신이 만든 물건이 미국의 롱보우에 필적할 성능이라는 것이 증명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미하일은 핵심을 꼬집었다.

그리고 사실상 나에겐 당장 그걸 증명할 방법이 없다.

유일한 수단은 저 물건을 직접 공격헬기에 장착하여 테스트를 진행하는 것뿐인데, 우리에겐 그럴만한 인프라가 없거든.

결국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그가 한참을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흠…… 검증이 안 된다면 협상 자체가 의미가 없지 않소.]

[그럼 그 검증을 위해서 협조를 좀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협조?]

[KA-50. 즉 블랙샤크 한 대를 완제품으로 넘겨주십시오. 그럼 우리가 기존에 있는 하드웨어를 떼어내고, 그 자리에 우리가 개발한 레이더를 장착하여 테스트를 진행해 드리죠.]

[그랬다가 미국이 T80U 전차의 경우처럼 같이 뜯어보겠다고 달려들면, 그걸 막을 수나 있습니까?]

딱히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막말로 미국은 지금 러시아가 개발한 공격헬기의 성능을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상태.

그게 한국 땅에 들어오는 순간, 미국이 달려들어 부품 단위로 해체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거다.

[흠…… 그럼 이건 어떻겠습니까.]

미하일의 눈은 다시 내 입을 주시했다.

어디 그 하나뿐일까, 내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임 차장은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싶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번에 우리가 방재용 헬기로 수입하기로 한 KA-32A. 즉, 방재용 헬기 중에서 한 대를 비밀리에 개조해 주십시오. 다른 건 필요 없고, 미션 컴퓨터장착과 소프트웨어 소스코드만 주시면 우리가 거기에 하드웨어를 달아 테스트를 진행해보겠습니다.]

순간 미하일의 눈이 동그래졌다.

꽤나 그럴 듯한 임기응변임과 동시에 미국의 눈을 피할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으니까.

[그런 방법이…….]

하지만 그건 임기응변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 대처다.

회귀 전, 정확히는 우리나라가 자체개발한 전투기용 AESA레이더를 테스트할 당시.

미국은 자기네들이 팔아먹은 전투기는 손도 못 대게 했고, 결국 테스트를 진행할 인프라가 없던 우리는 오랜 수소문 끝에 테스트용 기체와 소프트웨어를 보유 중인 이스라엘에 의뢰하여 성능을 검증받아야만 했는데, 난 지금 그걸 적용중인 거다.

젠장, 막상 그 생각을 하니 당시 개고생을 했던 기억이 또 떠오르네.

[그런데 굳이 KA-32A를 개조할 필요가 있겠소? 그럴 바엔 차라리 우리가 미션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만 임시 제공을 하고, 한국군이 보유한 헬기에 장착을 해서 테스트를 진행해도 되지 않소.]

[우리가 보유한 헬기들은 죄다 미국에서 공급받은 것입니다.]

[아…….]

뒤늦게 상황을 이해 한 미하일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수지타산을 따져보는 걸까, 한참을 고민스러워하던 그는 곧 어딘가로 통화를 시도한 끝에 긍정적인 말을 뱉어냈다.

[그 정도 조건이면 우리도 모험을 한번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데, 정말로 미국에게 들키지 않을 자신은 있는 겁니까?]

[그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듣고 있던 임 차장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하지만 미하일은 그럼에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고, 결국 임 차장의 다짐이 몇 번이고 더 있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내년 4월에 들여올 1차분 방재 헬기 중 한 대에 미션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장착해서 보내겠소. 단, 테스트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게 되면 우리의 핵심 소프트웨어 소스만 유출하는 결과가 발생하는 건데, 그땐 대가가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는 진득한 경고와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마지막 말에 겁을 집어먹은 걸까, 돌아서 문을 나서는 그의 뒤를 멍하니 지켜보던 임 차장이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이거 내가 괜한 다짐을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 그런데 진현승 전무께서는 정말로 자신할 수 있는 겁니까? 만약 결과가 신통치 않으면 이젠 나도 같이 망하는 겁니다.”

그의 입장에선 당연히 가질 수 있는 불안감이었을 거다.

어떻게든 일을 성사시키겠다는 생각에 나서긴 했지만 그도 테스트의 성공 여부를 자신 할 수는 없으니까.

사실 그가 나선 것은 나로서도 의외였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설사 망한다 해도 제가 차장님 정도는 책임져 드리죠.”

“오! 신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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