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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34화 (34/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4화

다음 날, 국정원장으로부터 정식으로 재우탈레스가 탄도미사일 개발업체로 낙점되었음을 통보받았다.

대통령의 재가는 단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국방장관의 말은 이로써 현실이 된 셈.

의외였던 것은 국정원의 후속 조치였는데, 통보를 받은 지 불과 두 시간 만에 내 연구소로 국정원 직원들이 들이닥쳤다는 거다.

-현승아! 이게 대체 다 무슨 일이냐? 지금 국정원 직원들이 연구소 입구에 뭘 막 설치하고 난리도 아니야.

그 말에 즉시 국정원장과의 통화를 시도했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던 듯 수화기 건너편에선 웃음기가 맺힌 말이 들려왔다.

-국가의 비닉사업을 다루는 곳이다 보니 보안을 강화해야만 합니다. 앞으로 탄도미사일 개발이 완료되는 날까지 경비업체로 위장한 우리 직원들이 연구소는 물론 탈레스의 관련 부서에도 파견이 될 겁니다.

나로서야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외려 환영해야 할 일이지.

안 그래도 정보의 유출이 걱정되는 와중에 국정원 직원들이 그 부분을 맡아준다면 한숨 더는 셈이니까.

사실 아무리 내가 보안을 철저하게 한다 해도 어디 그게 국정원의 수준에 비할까.

항문에 숨긴 물건들조차도 엑스레이를 통해 찾아내는 그들이라면 더는 보안에 대한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거다.

끼익!

결국 흔쾌히 응하곤 연구소로 향했다.

막상 도착한 연구소는 입구부터 철저한 검문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정말로 모든 출입구에 관세청에서나 쓰일법한 검색용 엑스레이가 설치되고 있었다.

“몸 수색도 한다고요?”

연구원들은 갑작스럽게 강화된 보안 조치에 당황했다.

하지만 정작 대표인 나조차도 철저히 검색에 응하자 누구 하나 불평을 내뱉지 못한다.

“정말로 정부에서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겠다고 했단 말이야?”

조금 후 사무실에서 만난 희원은 소식을 전해 듣자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미리 말해주지 않은 것은 사실 그 역시 보안서약을 아직 거치지 않았었기 때문.

하지만 방금 전 국정원 직원이 서류에 사인을 받아갔으니 이젠 사실을 털어놔도 무방하다.

“물론. 그것도 이스칸데르 급으로.”

“이스칸데르 급이면 사거리가 500킬로미터가 넘잖아. 180킬로미터로 묶여 있는 한미 미사일 지침은 어쩌려고?”

놈의 말처럼 이 시대의 대한민국은 미국과의 지침에 의해 미사일 사거리가 180킬로미터로 묶여 있었다.

우스운 것은 그게 우리 스스로 족쇄를 걸었던 결과라는 사실.

당시로서는 미국과의 관계지속과 국내 여건이 문제였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지침을 깨기 위해 우린 수십 년 간을 부단히도 노력해야만 했고, 2020년이 되어서야 사거리 800킬로미터 급의 탄도미사일을 보유할 수 있었다.

“그래서 대외적으로는 사거리 300킬로미터 급이라고 알려지게 될 거야. 물론 그것도 태클이 들어오는 상황에서겠지만.”

“하지만 그 정도 사거리도 지침에 위배 되는 건 마찬가지잖아.”

“지금이야 그렇지. 하지만 조만간 대통령이 미국과 협상을 하게 될 날이 올 텐데, 그때를 대비해서 미리 만들어 두려는 거야.”

역사적인 사실로는 그랬다.

1999년. 클린턴과의 회담을 통해 대통령은 우리가 사거리 500킬로미터 급 미사일을 보유할 수 있도록 요구했고, 결국 진통 끝에 300킬로미터로 다시 지침이 변경 됐다.

“아무튼, 우리 연구소가 해야 할 일은 추진체를 구성하는 연료통과 격벽의 소재를 개발하는 거야. 더불어서 유도계통의 설계와 자이로까지.”

“물론 이번에도 핵심 소스는 보유 중인 것이고?”

희원은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듯 되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이젠 별스럽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디 가려고?”

“어딜 가긴, 네가 또 숙제를 던져줬으니 팀 구성을 해야 할 것 아니야.”

“HVP 시스템의 레이더소자 개발 부서는 구성이 끝났고?”

“이제 막 끝낸 참이다. 젠장, 그래서 이제 겨우 한숨 돌리고 있는 와중에 네놈이 또 일거리를 만들어 온 거잖아.”

“말했잖아. 앞으로 몇 년간은 잠잘 시간도 없을 거라고. 그나저나 서버관리는 확실하게 하고 있는 거지?”

“걱정하지 말라니까. 그리고 저렇게 철저하게 검문검색을 하는 마당에 어느 간 큰 놈이 정보를 빼낼 시도를 하겠냐.”

동의하긴 하지만 그래도 일말의 불안감이 남는다.

이호중은 그런 철저한 감시와 보안을 죄다 뚫고 데이터 칩을 빼내 갔던 인물이지 않던가.

물론 나로 인해서 실패는 했지만, 사실 놈이 어떤 방식으로 그 삼엄한 경비를 뚫고 칩을 훔칠 수 있었는지 만큼은 밝혀내지 못했다.

-시발, 어디에다가 숨긴 거야! 당신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문득 죽어가던 나를 향해 놈이 했던 악다구니가 떠올랐다.

왜 기어이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그걸 지키려는 거냐고.

그때 내가 뭐라고 했더라.

가물가물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뭐라고 한마디 정도는 했었던 것 같은데.

-조까!

피식!

“맞아 그런 말을 했었지.”

******

“흠…….”

늦은 밤, 유난히도 잠이 오지 않았다.

막상 당시의 상황을 되새겨 보니 이호중이 누구의 사주를 받고 그런 일을 벌였던 것인지가 갑자기 궁금해 져 버렸거든.

당시 서른 후반이었던 놈은 죽어가던 나를 향해 분명 돈이 목적이었다는 말을 하기는 했었는데, 정작 그 배후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었다.

‘이호중의 나이가 그때 서른 후반이었으니 지금은 불과 열 몇 살에 불과 한 건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어린 나이의 그를 찾아 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놈의 배후가 어디였는지는 당장은 밝힐 수 없게 된 상태.

허탈한 마음에 다시 눈을 감으려는데, 불현듯 손목에 있던 데이터 칩이 눈에 띄었다.

“…….”

어차피 잠도 오지 않는 차에 데이터 칩의 내용을 전반적으로 정리나 하자는 심정으로 창을 띄웠다.

어림잡아 천여 개에 달하는 폴더들.

정리가 끝난 부분들을 한곳으로 모아두고 이후 미분류되었던 부분들을 헤집고 있던 순간 돌연 글자 하나가 확 눈에 들어왔다.

‘양자 암호 생성기?’

말을 뱉어냄과 동시에 온몸에서 전율이 느껴졌다.

왜 이걸 생각 못했을까.

양자 암호 역시 우리 ADD가 개발했던 핵심 기술 중 하나였었음을.

“……이것 봐라?”

양자 암호 기술은 사실 ADD의 최대 쾌거 중 하나였다.

단지 개발자인 이호중의 변절로 인해서 그 공로가 퇴색 되었을 뿐.

어쨌건 우리가 개발했다면 당연히 데이터 칩에 그 기술 역시 존재하고 있음을 생각했어야 했는데, 난 이제껏 그 사실들을 단 한 번도 고려해 본 적이 없었다.

‘쯧, 일종의 트라우마였던 건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를 죽게 만든 존재에 대해서 떠올리는 것은 지독한 고통.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양자 암호에 관해서도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서 밀어냈던 거지.

슥.

생각을 접고 즉시 폴더를 활성화했다.

고작 새끼손톱 크기의 장치 안에 들어있는 난수 생성기.

거기서 만들어진 양자난수는 패턴이 없고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해킹이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다시 말해서 이것만 있으면 해킹위험에 대한 대응책은 충분하다는 소리지.

‘이걸 당장 구현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

문제는 바로 그 점이었다.

진정한 난수는 자연에서 만들어지는 법.

때문에 이호중은 그걸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초소형 난수발생기를 제작하는 것으로 해결했는데, 아무리 소스가 있다곤 해도 그걸 현실 구현하는 것엔 시간이 필요하다.

‘뭐지?’

그때, 이호중이 만든 또 다른 폴더 하나가 눈에 보였다.

즉시 클릭하고 살펴보자 그건 알고리즘 형식으로 된 또 하나의 양자암호 난수 생성기였다.

‘호오!’

사실 알고리즘방식으로 생성된 난수들은 진정한 난수라고 할 수 없다.

어마어마한 연산능력을 가진 양자컴퓨터라면 아무리 단위가 큰 수의 소인수분해도 순식간에 해결을 해버리니까.

하지만 고작 이시대의 컴퓨터 연산능력으로 그게 가능할까.

결국 알고리즘방식조차도 지금은 절대적인 보안수단이 될 수 있다는 소리다.

“이것 참…….”

절로 웃음이 나왔다.

분명 반가워해야만 하는 사실임에도 왠지 모르게 허탈한 마음이 앞선다.

‘내 목숨을 앗아간 놈의 도움을 받게 될 줄은 미처 몰랐군.’

******

“시발! 이건 또 뭐야?”

이른 아침부터 연구소로 찾아와 서류를 들이밀자 희원의 얼굴이 헬쑥해졌다.

평소 내가 내미는 것이 그에게는 죄다 숙제였으니 당연한 반응.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커다래진 눈으로 나를 휙 쳐다봤다.

“양자 암호?”

“그래, 소프트웨어 개발부에 전해서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그 알고리즘을 모든 서버에 적용해.”

“…….”

희원은 눈을 끔뻑이며 쳐다봤다.

하긴, 지금은 양자 암호라는 건 생소하다 못해 개념조차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회귀를 하던 시절엔 주요 군사시설 및 국가시설들은 죄다 사용을 하던 것이었고, 열화판이긴 해도 일부 기술은 휴대폰 통신에도 사용이 되었다.

“구체적인 설명은 나도 힘들고, 일종의 난수 생성기라고 보면 돼.”

“보안프로그램이라는 말이야?”

“맞아, 기존의 보안프로그램으로는 사실 실력 있는 해커들을 감당하기는 벅차잖아. 하지만 양자난수 생성기는 패턴 자체가 예측 불가능한 난수를 생성하기에 외부로부터의 접근 자체가 불가능해.”

“호오!”

희원은 마치 신기한 물건을 보듯 서류들을 살폈다.

하지만 본다고 그게 이해가 될까, 결국 눈살을 찌푸리곤 다시 나를 쳐다봤다.

“너 그런데 오늘따라 왜 그렇게 쫙 빼입고 왔냐? 어디 좋은 곳에 가기라도 하는 거야?”

“일이 있어서 누구 좀 만나러 가야 할 것 같다.”

“출장? 그럼 혹시 김 비서도 같이 가는 거냐?”

“그럼 전무가 가는데 수행비서가 안 따라갈까?”

그 말에 희원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상관하지 않은 채 돌아서자 놈이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을 뱉어낸다.

“나, 김 비서한테 대차게 차였다.”

“……뭔 소리야?”

“말 그대로야. 전에 분위기 잡고 푸시했는데, 단번에 거절하더라.”

“뭐라고 했는데.”

“자기는 애초부터 남자에게 관심이 없다네. 젠장, 나한테 관심이 없다는 말보다 더 가슴 아프더라.”

“그럼 포기해. 네 말대로 운명이면 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지.”

“젠장 누가 그걸 몰라? 아무리 생각을 해도 김 비서가 내 운명 같으니까 하는 말이지.”

“운명 같은 소리하고 있네. 네 진짜 운명을 내가 말해줄까?”

“……”

“잘 들어. 넌 다가오는 밀레니엄에 꿈에 그리던 여자를 만날 거야. 그래서 그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될 거고, 토끼 같은 자식을 둘이나 낳을 거야.”

희원은 그 말에 눈을 끔뻑이며 나를 쳐다봤다.

피식 헛웃음을 뱉어내자 그걸 장난으로 생각한 듯 와락 인상을 구겼다.

“……뭔 개소리야. 네가 무당이냐?”

“무당은 무슨, 악마라면 또 모를까.”

“……”

******

“여깁니다!”

약속 장소인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국정원의 임효식 차장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곧 주변에 있던 여러 인물들과 함께 다가온 그는 게이트가 아닌 공항 한편에 마련된 VIP 접객실로 나를 안내했다.

“여기서 협상을 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밖에선 보는 눈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요. 소식에 의하면 이미 미국 정보부 요원들이 밖에서 대기 중인 상태라고 합니다.”

그건 좀 의외의 소식이었다.

중국이나 일본이라면 몰라도 미국이 왜 이렇듯 적극적으로?

이미 미국은 불곰사업의 내용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는 상태고, 우리가 T80U를 구매했을 때도 적극 지지하던 세력이었지 않던가.

“흠…….”

막상 그 생각을 떠올리고 보니 유명했던 일화가 하나 생각났다.

미국이 T80U의 수입을 허용했던 이유는 그걸 통해서 러시아의 기술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서였었는데, 정작 뜯어보고 나선 꽤나 놀랐다는 후문.

특히나 NBC 방호나 완전 자동화된 장전장치의 경우는 당시 미국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상태였기에 미국의 경계심은 그때 이후로 더 심해졌었다는.

“2차는 1차보다 규모가 크지 않습니까. 미국은 행여 거기에 주변국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무언가가 끼어들어 올까를 걱정하는 거죠. 더불어 자신들의 텃밭인 이 나라의 무기시장이 흔들릴 것도 걱정할 것이고.”

임 차장은 탄식어린 넋두리를 뱉어냈다.

쓴 웃음으로 대꾸하려는 차, 그가 갑자기 문을 가리키며 벌떡 일어섰다.

“저기 오는 군요.”

그의 손이 가리킨 곳엔 웬 늙수그레한 러시아인 한 명이 서있었다.

그냥 지나쳐갔다면 몰랐을 정도로 존재감이 제로에 가까운 인물.

당황스러운 마음에 다시 쳐다봤지만 아무리 봐도 한 나라의 국방장관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로로 남루한 행색이다.

‘위장술 한번 끝내주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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