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3화
“좋은 아침입니다.”
출근길 발걸음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가벼웠다.
눈치 빠른 김 비서는 재빨리 방을 따라 들어왔고, 한껏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내 입을 주시했다.
“가셨던 일은 잘 해결 되신 겁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당장 그녀에게 구체적인 사안을 말할 수는 없었다.
일단 탄도미사일 개발 사업 자체가 기밀 사항에 해당되기도 하거니와 국방부와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요청도 있으니까.
일단은 재우가 개발자로 확실히 선정이 되기 전까지는. 그래서 그녀가 기밀 준수서약서에 사인을 마치기 전까지는 안타깝지만 함구해야만 한다.
“오전에 회장님께 들릴 테니 차량 좀 준비해 주세요.”
물론 진 회장의 경우는 예외다.
정부로서도 사업을 담당할지 모를 업체의 최고 책임자의 눈까지 가릴 수는 없으니 그건 당연하다.
“네, 알겠습니다.”
김 비서는 다른 질문 따위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국정원이 연관되었다면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오고 갔음은 그녀도 인지하고 있을 마당이니 지켜야 할 건 지키겠다는 거겠지.
역시 베테랑 비서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회장님?”
난 당장 본사로 가기에 앞서 한 명호 회장과 통화를 시도했다.
한동안 바쁘다는 것을 핑계로 연락을 하지 않은 내가 서운했던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의 말투가 꽤나 사무적이다.
-자네가 웬일인가. 먼저 전화를 다 하고. 기껏 물건 잡아 놨더니 시간이 없다고 미루면 어쩌라는 거야.
“죄송합니다. 요즘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라서.”
-내가 그걸 모를까, 그나저나 언제부터 다시 진행 할 거야. 요즘 부동산시장이 슬슬 들썩거리고 있어서 자칫하면 좋은 물건 다 놓치는 수가 있어.
“죄송하지만 경매 진행은 좀 미뤄둬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조만간 출장을 갈 수도 있거든요. 대신 다녀오는 대로 물 좋은 낚시터로 모시겠습니다.”
-낚시터?
한 회장은 그 말에 대번 태도를 바꿨다.
그의 유일한 취미가 낚시다 보니 혹한 거지.
결국 정확한 날짜와 시간 약속을 잡고서야 겨우 본론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혹여 제가 회장님께 돈을 빌린 적이 있느냐고 제 아버지께서 물으시면 그렇다고 대답 좀 해 주십시오.”
-빌린 적이 있는 건 사실이지 않은가.
“물론 그렇죠. 단지 그 사용처에 대해선 함구해 달라는 겁니다.”
-…….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혹여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예상처럼 그의 말투가 조금은 익살스러워져 있었다.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는 몰라도 일단은 그렇게 해주지. 단 조건이 있어.
“무슨…….”
-기왕 낚시를 갈 요량이면 바다로 가세. 실은 자네와 바다를 보면서 상의할 것이 좀 있거든.
“그렇게 하죠.”
뭔가 또 일을 벌인 느낌이었다.
뭐 그거야 차후 와서 보면 알게 될 일이고, 당장은 그의 협조를 얻어낸 것만도 천만다행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와서 뵙죠.”
*****
끼익!
늦은 오후, 회의를 끝내고 서둘러 그룹 본사로 향했다.
지금은 한창 각 기업들의 본사가 강남으로 이전 러시를 하던 때라 그 여유롭던 강남대로에서도 이제 교통체증이 심각해졌다.
“회장님 계시죠?”
“네, 전무님. 안 그래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회장 비서진들의 태도는 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지나치다 마주친 중역들도 마찬가지.
전엔 그렇게도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더니, 이젠 어떻게든 한마디라도 더 말을 건네지 못해서 안달인 느낌이다.
“저 왔습니…….”
짧은 노크를 한 후 들어선 회장실에는 선객이 있었다.
대략 50대 후반쯤?
특이한 것은 내 등장에 유난히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는 건데, 뭔가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오고 갔던 모양이다.
“아드님 오셨군요. 그럼 전 이만.”
“아니, 말씀들마저 나누시죠. 제가 잠시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상관없으니 들어와.”
진 회장은 돌아서는 나를 만류했다.
이후, 중년인은 곧장 나를 지나쳐 방을 빠져나갔고, 한참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나를 향해 진 회장이 다시 목청을 높였다.
“뭐해? 왔으면 앉지 않고.”
“저분은 누구십니까?”
슬쩍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며 물었다.
이미 나올 질문이었음을 예상한 듯 진 회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한다.
“재우종합병원장 김태수 박사다.”
“병원장님이 여긴 갑자기 왜요. 혹시 어디 편찮으십니까?”
“아파서가 아니라 얼마 전 받았던 건강검진 결과를 알려주기 위해서 온 게야.”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이후 결과에 대해 별다른 말이 없는 것으로 봐선 딱히 이렇다 할 이상은 없는 모양인데, 얼핏 안색은 그다지 좋아보이지가 않는다.
“어제 유선 상으로 보고 드렸다시피 국방장관과 국정원장을 만났습니다.”
잠시 들었던 의문을 접고 보고서를 내밀었다.
그도 긴장을 한 건가.
서류를 검토하는 손이 유난히도 떨고 있었다.
“…….”
“그래, 어제 네 전화를 받고 나서 나도 국방장관과 통화는 했다. 이거 참…… 나도 모르는 사실들이 어찌나 많이 튀어 나오는지 민망할 정도더군. 대체 탄도미사일 이야기는 뭐야?”
“그 점은 죄송하게 됐습니다. 일 자체가 워낙 갑작스럽게 진행이 된 터라서 미리 언질을 드릴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습니다. 저 그런데…… 정말로 괜찮으신 것 맞습니까?”
그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떨고 있는 진 회장의 손을 두고 한 말이었다.
단순히 수전증이라기엔 정도가 과했으니까.
하지만 막상 진 회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태도였다.
“아, 이 손? 요즘 좀 피로가 쌓인 느낌이기는 했는데, 그것 때문이지 싶다. 실은 예정에 없던 건강검진을 받은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어.”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은 확실하고요?”
진 회장은 거듭 질문을 하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곧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이는 폼이 아마도 내가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는 것이 낯설었던 모양이다.
“김태수 박사가 방금 아무 이상 없다는 결과를 통지하고 갔으니 걱정할 것 없다.”
걱정이라는 단어가 유난히도 귀에 박혔다.
그러고 보니 내가 왜 이렇게까지 그를 걱정하는 거지?
이건 단순히 친구 놈의 부모라는 느낌을 떠나서 가끔은 나도 모르게 내가 정말로 현승이가 되기라도 한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걱정 안 합니다. 아버지께선 90살까지도 여전히 주변을 호령하면서 사실 테니까요.”
괜한 말이 아니라 사실이 그랬다.
내가 막 ADD의 소장 직위를 달았을 무렵쯤 그의 부고 소식을 듣고 달려갔던 기억이 있거든.
사실 그의 죽음은 호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망 전날까지 생생하던 양반이 다음 날 자는 듯 눈을 감았다고 했었다.
“네가 무슨 무당이야?”
“무당은 아니지만 신기는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쉰 소리는.”
영 듣기 싫은 말은 아니었던 듯 그가 헛웃음을 뱉어냈다.
그나저나 정상적인 건강상태에서 손이 저 저렇게까지 떨릴 수 있는 건가.
왠지 그 점은 좀 의심스럽다.
“아무튼, 국방장관의 말에 의하면 네가 탄도미사일 기술을 러시아 군부로부터 몰래 사들였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야?”
“그렇습니다.”
“네게 그럴 만한 돈이 어디 있어서.”
진 회장은 의심 서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미리 대처를 하지 않았다면 당황스러웠을 순간.
하지만 이미 한명호 회장과는 말을 맞춰둔 상태니 꺼릴 것은 없다.
“한명호 회장님께 빌렸습니다.”
“누구?”
진 회장은 황당하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나로서도 당장은 그를 핑계 댈 수밖에 없다.
막말로 기술구매 비용이 한두 푼도 아니고.
이미 내가 보유 중인 자산규모를 빤히 꿰뚫고 있는 진 회장을 속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아무리 그래도 하필 사채를 빌렸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 듯 진 회장은 눈매를 잔뜩 좁혔다.
“쯧쯧, 아무리 가까워 졌다곤 해도 하필이면 왜 한 회장님의 돈을…… 담보는 뭐로 잡힌 거냐.”
“담보 따위는 없습니다.”
“무슨 소리야? 한 회장 같은 양반이 담보도 없이 돈을 빌려줬다고?”
그는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하긴, 숫자에 확실한 사채업자가 담보도 없이 돈을 빌려줬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실은 최근 그분이 제게 빚을 좀 진 것이 있어서요. 자세한 것은 당장 말씀드리기 곤란하고, 그렇게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대체 그 양반이 네게 뭔 빚을 졌기에……. 그나저나 얼마나 빌린 건데?”
“대략 천억쯤 됩니다.”
굳이 천억이라는 액수를 핑계 댄 것은 예전 실제로 그만큼의 돈을 한 회장에게 빌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뭐 비록 그 돈이야 사실 경매에 투자를 했던 상황이지만, 진 회장은 그런 세세한 것까지는 모르고 있으니까.
더군다나 이럴 때를 대비해서 한 회장과는 미리 입을 맞춰둔 상태니 그가 확인 전화를 한다 해도 상관은 없다.
“천억이나?”
“한 회장님께서도 처음 액수를 들으시고 놀라시긴 하더군요.”
“그야 당연하지. 천억이면 어지간한 대기업들이 빌려갈 수준인 걸 알기는 하는 거야?”
“물론입니다.”
“허허, 대체 배포가 좋은 건지 숫자관념이 부족한 건지 원. 그나저나 러시아 정부가 고작 천억에 탄도미사일 기술을 팔았을 리가 없을 텐데?”
“정부가 아니라 군부에게 들어간 돈이라서 적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
“아시겠지만 실직을 앞두고 있는 러시아의 장성들에게 천억은 꽤 큰돈입니다.”
“하긴, 군부라면 이야기가 또 다르지. 고작 수백만 달러에 휴대용 대전차미사일 기술도 팔겠다는 놈들인 마당에. 그런데 만약 러시아 정부가 사실을 알면 어쩌려고? 차후에 실물이 등장하면 자신들의 기술인지 빤히 알게 될 텐데.”
“그건 나름대로 대처방안이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진 회장은 지나치게 자신하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내 비서가 가져다준 물을 한 모금 들이켠 그는 몇 번의 잔기침을 내뱉곤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언제까지 갚기로 했어?”
“그건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한 회장님과는 따로 조건을 붙여둔 거래였던 터라서…….”
“그래도 갚을 건 빨리 갚아야지.”
“…….”
왠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설마 그 많은 돈을 내어줄 생각이기라도 한 건가.
“왜요, 아버지께서 대신 갚아주시려고요?”
“개인적인 목적으로 빌린 것도 아니고 회사 일에 썼다면 당연히 줘야지. 문제는 기술 매입 방식이 공식적으로는 밝힐 수 없는 거라서 회사도 당장은 정식적인 루트로 지불이 불가능 하다는 건데…… 일단은 내 비자금과 사비를 내줄 테니 갚도록 해.”
”…….”
막상 돈을 준다는 말을 듣고 보니 왠지 양심이 찔린다.
그렇다고 안 받았다간 다시 기술구매 비용에 대해서 의심을 살 것이 분명하고.
일단 찔리는 양심은 잠시 접어두는 것이 옳은 선택일 듯하다.
그나저나 현금을 천억이나 보유하고 있다는 건 좀 의외인데.
회계가 정확한 방산 업체들에서 그 많은 돈을 만들었을 리는 없을 테고, 필시 건설 부문에서 조달한 돈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죽자 사자 건설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거로군.
쿨럭!
그때 진 회장이 또다시 마른기침을 뱉어냈다.
휴지를 찾는 손도 오늘따라 유난히 앙상해 보이는 느낌.
불과 며칠 전과는 확연히 달라 보이는 그의 모습에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그러지 마시고 정밀 검사를 한번 받아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신경 쓸 것 없다니까. 젊었을 적 폐병을 앓았던 전력이 있는데, 나이가 드니 슬슬 그 영향이 드러나는 거야.”
그는 끝내 손사래를 치곤 내게 커다란 서류봉투 하나를 건넸다.
애초부터 돈을 내어줄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봉투엔 십억 단위의 무기명 채권들이 수두룩하게 담겨 있던 상태였다.
“한명호 회장님의 돈은 한시라도 빨리 갚는 것이 좋아.”
“그리 가까운 사이임에도 그분의 돈이 무서우신 겁니까?”
“무서워서가 아니라 신뢰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야. 그래야 정말로 위급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
그 말은 회귀 전 내가 부하직원들에게 자주 하던 것이었다.
신뢰를 잃어버리지 마라.
그럼 당장은 몰라도 차후 그것이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가 점점 남 같지 않은 느낌이 드는 원인이 궁금했는데, 어쩌면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지 싶다.
비록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마치 또 다른 나를 보는 느낌.
"쿨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