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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32화 (32/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2화

“말해보세요.”

“제가 탄도미사일 개발을 시작하면 정부는 러시아로부터 이스칸데르의 기술을 도입할 돈을 아끼게 되는 셈 아닙니까?”

“그렇죠.”

“하면 그 부분을 다른 품목으로 전향하면 어떻겠습니까?”

말이 끝나는 순간 여기저기서 다양한 표정들이 지어졌다.

내 질문의 의도를 의심하는 눈빛부터 시작해서 제법 그럴듯하다는 표정까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방장관의 표정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거다.

“달리 욕심나는 것이라도 있는 겁니까?”

“욕심나는 것이야 많죠. 그래도 하나를 택하라면 카모프사가 만든 KA-50 정도가 적당하겠군요."

KA-50은 러시아가 아파치를 대응하기 위해 만든 대형공격헬기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기동성 면에서만큼은 아파치를 능가한다는 것.

그건 전적으로 엔진의 막대한 힘과 이중반전 로터라는, 독특한 교리 때문인데.

실제 그 이중반전 로터를 채용한 KA-32의 경우는 내가 회귀 전 우리나라도 소방헬기로 개조하여 사용 중이었던 물건이며, 강력한 측풍을 버텨내면서 산불진화에 성공함으로써 관계자들의 찬사를 받은 적도 있었다.

“블랙샤크를?”

“네, 정식 명칭은 체르나야 아쿨라죠.”

물론 블랙샤크가 모든 면에서 뛰어난 것은 아니다.

아니, 외려 지상 작전 능력에 있어서 아파치와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을 정도.

게다가 부품의 내구성 또한 서방세계의 것들과는 차이가 있다.

“이름이야 뭐가 됐건, 우리가 그걸 필요로 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그럼에도 굳이 내가 블랙샤크를 원하는 이유는 역시나 그 기동성 때문이다.

이중반전로터로 인해 테일로터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덕분에 어지간한 악천후에도 요동치지 않고 버텨내는 그 발군의 기동성.

뭐 어차피 아파치의 지상 작전 능력이야 대부분 레이더의 성능과 무장체계에서 나오는 결과인데, 그거야 이미 내가 충분히 실현가능하며 부품의 소재 또한 이미 대처가 가능한 상태.

만약 그 이중반전로터 기술과 강력한 엔진기술만 있다면 최강의 공격헬기를 탄생 시킬 수 있을 거다.

“그야 당연히 북의 육상전력에 대한 효율적인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죠. 솔직히 전차를 전차로만 상대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구시대적인 발상인지는 장관님께서도 충분히 아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실 그 부분은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공군과 해군에 비해 지나치게 육군에만 편향된 전력.

때문에 무려 수천 대에 가까운 전차와 자주포들을 보유한 우리군은 육상전력 면에서는 세계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다.

“흠흠, 그거야 뭐…….”

물론 그게 잘못 됐다는 말은 아니다.

이 시대에 우리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것은 엄연히 북한.

그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구축하다보니 그렇게 되었을 뿐이지.

하지만 그런 지나친 전력의 편중으로 결국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대한 대응이 늦어지게 되었고, 다른 전력들의 상승도 한참이나 뒤처지게 만들었다.

“아무튼, 진현승 전무께서는 그럼 우리 군도 대형 공격헬기를 갖자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공격헬기 수십 대만 떠도 북의 전차들은 밀고 내려올 생각조차도 못할 텐데, 굳이 그걸 전차로 막고자 하는 전략을 구사하다 보니 과도한 예산이 낭비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기회에 그 체질을 좀 바꾸자는 거죠.”

“흠…….”

국방장관은 힐끗 하고 곁에 있던 육군 중장을 쳐다봤다.

나로선 처음 보는 인물.

내 주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 내내 표정을 굳히고 있던 그는 심드렁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결국엔 블랙샤크를 우리 군의 공격헬기로 도입하자는 건데, 당장 우리와는 전투체계도 맞지 않는 물건을 가져다 뭘 어쩌자고요.”

“전투체계가 완전히 호환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뭐 그걸 떠나서 오해가 좀 있으신 모양인데, 전 블랙 샤크를 있는 그대로 도입하자는 것이 아니라 핵심 기술들을 사 와서 자체적인 개발을 하자는 겁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러시아가 수출도 아니고 기술이전을 동의할 성싶습니까?”

“쉽지는 않겠죠. 하지만 반대급부만 확실하면 가능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제시할 반대급부가 뭐가 있다고요.”

연신 이어지는 나와 장성간의 논쟁에 장내가 술렁였다.

지나치게 분위기가 과열 된다 생각한 건지 때마침 국방장관이 나서서 끓어오르는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자자, 흥분들 가라앉히세요. 진현승 전무도 결국엔 다 우리 군의 발전을 위해 한 말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솔직히 나로서는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불곰사업이 아니었으면 어디 이런 논쟁이 가당키나 한 일이었겠습니까?"

그건 나도 인정한다.

불곰사업이 우리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줬다는 것.

일례로 레이더의 부품 간 전자파 간섭차단 기술의 경우는 그게 기초가 되어 우리가 차후 레이더개발을 하는데 있어서 막대한 영향을 끼쳤을 정도였으니까.

물론 지금이야 나로 인해서 그 부분은 퇴색되겠지만.

그걸 제외하고도 불곰사업은 우리에게 막대한 기술발전 기회를 준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하죠. 일단 그 안건은 대통령님으로부터 탄도미사일 개발사업의 최종승인이 난 이후 다시 논의를 해보는 것으로. 그럼 오늘은 이것으로 끝을 냅시다.”

국방장관은 다시 사태를 수습했다.

하긴, 그런 중차대한 문제를 하루 이틀 사이에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지.

나로서는 저들에게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준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고생하셨습니다.”

저들과 짧은 인사를 나눈 나는 국정원 요원들의 안내에 따라 건물을 벗어났다.

이후 곧장 차에 오르려 했지만 무슨 일인지 다시 요원이 나를 향해 다가와 기다려 줄 것을 요구했고, 조금 후 상기된 표정의 국정원장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진현승 전무님! 식사 아직 안 하셨죠? 여기 구내식당 밥이 꽤 맛있는 편인데, 같이 한술 뜨시겠습니까?”

“…….”

******

“아주머니 솜씨가 제법이시군요.”

국정원 구내식당의 수준이 꽤 높다는 원장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음식의 맛은 간이 좌우한다고 했던가.

나물은 물론 김치와 국. 그리고 각종 반찬들이 어지간히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자들조차도 만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제가 원래 허튼소리는 잘 안 하는 편입니다.”

국정원장은 사람 좋은 미소로 대꾸하곤 수저를 내려놨다.

어느새 비워진 그의 식판.

잠시 물로 입을 헹군 그는 여전히 젓가락을 놀리고 있던 나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아! 미안합니다. 젊은 나이에 꽤 대단한 배포와 능력을 가졌다 싶어서요.”

“…….”

“그나저나 혹시 경호 인력은 비서 한명 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거 곤란하군요. 앞으로 군의 기밀사업을 주관하실 분인데……. 혹시 괜찮으시면 앞으로도 계속 진현승 전무님의 주변에 우리 측 요원들을 상주시켰으면 합니다만, 전무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

“오해는 하지 마세요. 이건 감시가 아니라 보호 차원에서 건의하는 거니까.”

사실 그 점은 나도 진즉부터 생각을 해왔었다.

그 탓에 양 비서를 통해서 경호 인력의 보충을 추진하려 준비 중이기도 했고.

그런데 국정원이 내 경호를 맡는다?

쯧, 누굴 바보로 아나.

비록 아니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감시에 가깝겠지.

뭐 감시가 됐건 경호가 됐건 나로서야 굳이 상관할 문제는 아니다.

“그렇게 하죠.”

“이해해 주셔서 고맙군요. 그럼 허락하는 것으로 알고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참, 그리고 조금 전 진현승 씨가 국방장관님께 제안한 공격헬기 기술 습득문제 말입니다.”

탁!

그 말에 수저를 내려놨다.

실수다 싶었는지 국정원장은 다시 식사를 재촉했지만 지금은 밥이 문제가 아니다.

“그냥 말씀하시죠.”

“사실 방을 나가시고 나서 국방장관님과 전 이미 윗선에 그 부분을 보고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의견을 제시 받았죠.”

“어떤…….”

“이번 2차 불곰사업에 진현승 씨를 일종의 전략고문 형식으로 참여시키라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었습니다.”

“…….”

이건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전개였다.

난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은 사업권을 획득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을 뿐이건만.

갑자기 웬 국가 주도사업의 고문?

아니, 그건 둘째 치고, 내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도무지 상상이 안 간다.

“구체적으로 저보고 뭘 하라는 겁니까?”

“글쎄요, 굳이 예를 들자면 러시아 정부나 군부와의 협상 정도가 되겠죠. 단적으로는 진현승 씨가 주창했던 블랙샤크 기술 도입문제를 2차 불곰사업에 포함한다든가……사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러시아도 전부터 우리에게 블랙샤크를 팔고는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전 분명 완제품을 수입하자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네, 그래서 문제라는 겁니다, 만약 진현승 전무님의 주장을 실행하려면 러시아 정부와 협상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죠.”

허어.

이건 또 뭔 소리야.

나보고 지금 러시아 정부를 직접 상대하라고?

“그걸 왜 제게 맡기시려는 거죠? 외교부엔 이미 협상 전문가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마당에.”

“그렇게 따진다면 국정원이 불곰사업에 관여하는 것도 어폐가 있지 않을까요? 즉, 이 사업은 워낙 외교적으로 민감한 부분이라서 정식 외교 루트로는 접근하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그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외교부가 직접 움직이면 그건 공식적인 사안이 되는 상황.

더군다나 미국이 주시하고 있는 마당에 한때 그들과는 적국이나 다름없던 곳과 우리가 대놓고 군사적 교류를 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 거다.

그럼 결국 뭐야.

나보고 지금 밀사 역할을 하라는 건가.

“저를 믿으십니까?”

“능력에 대한 신뢰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렇습니다.”

그는 주저함 없이 대답했다.

내 과거. 아니 현승이의 과거를 모를 리는 없을 테고.

그럼에도 저런 태도라는 것은 확실히 보통의 인물은 아님을 의미했다.

“그래서 제가 얻는 것은 뭐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막말로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한 이치지.

한데 예상했던 말이었던 듯 그의 얼굴에 갑자기 미소가 지어졌다.

“만약 협상에 성공하신다면 차후 우리나라의 공격헬기 사업권은 재우탈레스와 ADD가 공동으로 가져가게 될 겁니다.”

솔깃한 제안이긴 했으나 함정이 숨어 있었다.

단독이 아닌 공동개발.

상황이 이러면 단순히 보안이 문제인 건 아닌 느낌인데, 이젠 대충 저들의 의도를 알 것 같다.

ADD의 유지.

정확히는, 그들의 기술수준을 향상시키는 것과 더불어 존재이유를 지속시켜 주기 위함이겠지.

“단독개발이 아니면 거부하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걸 들어줄 이유는 없다.

그 사업 하나를 민간에 넘긴다고 해서 ADD의 존재이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뿐더러 ADD는 차후에도 꽤 할 일이 많기에 존재이유에 대한 시비에 휘말릴 이유가 없거든.

“흠…….”

국정원장이 미처 거절을 예상치 못했는지 난처한 빛을 내비쳤다.

뭐 말 안 해도 심정은 이해해.

탄도미사일 개발권을 독식한 마당에 헬기사업까지 가져가겠다는 건 욕심이 지나치다고 할 수도 있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른 건 둘째 치고 개발업체가 이원화되면 그만큼 결과물의 탄생이 늦어지게 될 상황인데.

“잠시 만요.”

국정원장은 양해를 구하곤 자리를 떴다.

곧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시도한 그는 연신 내 쪽을 힐끗 거렸다.

“네, 일단은 공격헬기 개발사업 역시 단독개발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태도가 무척이나 공손했다.

순간,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국정원장쯤 되는 자가 저렇듯 공손한 태도를 보일 만한 인물이 누가 있을까 싶은 것.

“설마…….”

퍼뜩 떠오르는 인물에 놀라 눈이 커다랗게 떠질 때쯤, 갑자기 국정원장의 입에서 내 예상을 확신하게 만드는 말이 뱉어졌다.

“네, 대통령님께서 그렇게 결정하신다면 국방부장관도 따르겠죠. 아니, 다른 업체들의 반발은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이번 사업들은 대외적으로 드러낼 수 없는 부분들이라서 그들이 상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네, 그럼 승인 하시는 것으로 알고 진행하겠습니다.”

“…….”

짧은 통화를 마친 국정원장은 즉시 나를 쳐다봤다.

곧이어 제 양복 안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낸 그는 뒷면에 무언가를 빼곡하게 적어나갔다.

“일주일 후, 시리아를 순방 중인 러시아 국방장관 미하일 예고체프가 김포공항에 도착할 겁니다. 그때 2차 불곰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사안들을 확정하기로 했으니 진현승 전무께서도 참석을 하시죠.”

“그 말인 즉, 제 요구조건을 들어주시겠다는 겁니까?”

“제가 통화하는 걸 들으셨지 않습니까. 이미 윗선에선 결정을 하셨으니 그 점은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여기가 국정원만 아니었다면 환호성이라도 내질렀을 거다.

탄도미사일 개발권에 이어 공격헬기 사업권까지.

이건 잘만하면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도 있을 상황이니까.

“그렇다면야 당연히 저도 국정원의 제안을 받아들여야죠.”

물론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을 거다.

우선 협상을 성공리에 끝마쳐야 정말로 토끼를 손에 넣었다고 할 수 있는 거겠지.

하지만 난 협상 실패를 애초 염두에도 두지 않고 있었다.

자고로 거래란 쌍방이 만족할 만한 선에 이르면 쉽게 이루어지는 법이고, 난 상대가 확실히 만족할 만한 것을 쥐고 있거든.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네, 실망시켜 드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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