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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31화 (31/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1화

“장관님께서 여긴 어쩐 일로…….”

막상 아는 체는 했어도 그가 나를 기억할 지는 의문이었다.

그와의 인연이라곤 얼마 전 계룡대에서 있었던 파티에서 인사를 나눈 것이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그는 나를 보자마자 표정을 밝히더니 곧장 손을 맞잡았다.

“나도 이런 자리에서 진현승 실장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참, 이젠 실장이 아니라 전무님이라고 불러야겠군요.”

“그 소식이 벌써 장관님께도 들어갔는지는 몰랐습니다.”

“국정원장께서 그렇더군요. 자자, 서서 이러지들 말고 일단 자리에 앉아서 대화들 하시죠.”

국방장관은 이후 한동안 대화를 주도했다.

나로선 익히 알고 있던 국제정세에서부터 시작해서 휴전선 이북의 동향까지.

대체 불곰사업의 진정한 책임자는 누구지? 싶은 생각이 들었을 무렵 갑자기 국방장관이 나를 향해 넌지시 말을 건넸다.

“재우탈레스에서 이스칸데르 미사일의 핵심 기술을 입수했다고요?”

“그렇습니다. 비단 입수만 한 것이 아니라 보다 개선된 버전을 연구 중인 상태죠.”

그 말에 장내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다양해졌다.

이걸 믿어야 할지.

또는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먼저 나서기가 어려웠던 듯 한참을 침묵이 이어지던 가운데 드디어 국정원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임효식 차장의 전언에 의하면 당장이라도 개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던데, 우리가 믿을만한 증거가 있습니까?”

스윽.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품에서 자료가 담긴 필름들을 꺼내 보였다.

이후 양해를 구하곤 그걸 프로젝터를 통해 방 한편에 투사했다.

“이걸 보신다고 해서 기술이 유출 될 우려는 없지만 그래도 노파심에서 한마디 하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보신 모든 것들은 자리를 뜨신 이후로는 기억에서 지워주셔야 한다는 것.”

“그야 물론입니다.”

꿀꺽!

국정원장의 대답과 동시에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꽤나 나이 지긋해 보이는 인물.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인물이다 싶은 생각이 든 것도 잠시.

곧 그의 정체가 확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현 ADD의 소장 곽지용.

내가 처음 ADD에 들어섰을 당시에도 소장 직을 맡고 있었으며 나에게는 명승은 교수에 이어 멘토가 되어줬었던 존재.

“보시는 바와 같이…….”

반가움을 뒤로하고 설명을 이었다.

탄도미사일의 핵심인 추진체의 구체적인 설계안에서부터 시작해서 탄두부의 내부설계안과 정밀부품들의 구성도까지.

설명이 이어질수록 곽지용 소장의 얼굴은 흥분으로 물들어 갔고, 내내 그의 표정만을 살피던 다른 이들은 덩달아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형상이 이스칸데르와는 조금 다르군요.”

설명을 듣는 와중 곽지용 소장이 질문을 뱉어냈다.

순간 장내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향하는 것을 본 그는 곧바로 대중들을 향해 제 질문의 의도를 피력했다.

“다중 궤적을 구사하는 기술이나 여타 면에서 보면 분명 이스칸데르의 기술이 맞기는 한 것 같은데, 형상이 다르기에 하는 말입니다. 사실 미사일은 자칫 조금만 형상의 변화가 와도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거든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자체적인 개량이 없었을 때의 이야기고, 우리는 과거, 아니 미래에 보다 진보된 기술을 바탕으로 이스칸데르를 재설계하여 현무4라는 불세출의 물건을 만들어 냈다.

즉, 난 지금 현무2A가 아닌 현무 4의 외형을 제시하고 있는 중이라는 소리지.

“이건 이스칸데르를 기초로 재우가 재설계를 시도한 것입니다. 하니 형상의 변화가 오는 것은 당연하죠.”

“왜죠? 굳이 그걸 재설계할 이유가 있었던 겁니까?”

“일단 사거리의 추가 확보를 위해서입니다. 군이 현재 원하는 수준은 500킬로미터 급이지만 차후 사거리의 증가가 필요함은 다들 인정하시겠죠?”

그 말에 국방장관이 넌지시 고개를 끄덕였다.

“때문에 추가 장착해야 하는 추진제의 공간 확보는 물론 증가하는 탄두의 무게변화에 적응할 형상의 재설계는 필수였습니다.”

“…….”

“이유는 또 있습니다. 만약 형상이 이스칸데르와 똑같다면 러시아 정부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아시겠지만 저희는 이 기술을 정식적인 외교루트를 이용해서 습득한 것이 아닙니다. 그 마당에 동일한 외형을 가진 것이 세상에 나오면 당연히 러시아정부의 항의가 이어지겠죠.”

“그도 그렇군요.”

곽지용 소장은 뒤늦게 내 주장을 수긍했다.

그리고 조금 후 화면에 등장한 추진체의 설계도면을 한참이나 쳐다보던 그는 뒤늦게 뭔가를 깨달은 듯 아!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중간에 궤적의 변화가 가능한 이유가 바로 저거였군요.”

“그렇습니다. 고체연료가 담겨있는 격벽 구조를 다중으로 설계하여 순차적으로 추진력을 얻는 기술이죠.”

“하아…… 이제야 알겠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ICBM의 실물을 들여와도 탄도미사일의 개발이 쉽지는 않을 거라는 진현승 씨의 주장 말입니다. 추진체의 설계는 둘째 치고, 고체연료를 보관하는 구조가 저런 격벽구조식이라면 소재기술 없이는 확실히 개발이 불가능 하죠.”

“단지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대기권 재돌입 시 열에 견디는 복합소재와 고도의 정밀성을 요구하는 자이로 역시도 단지 뜯어보는 것만으로는 개발이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크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로써 증명은 끝난 상황.

다시 자료들을 회수하고 자리에 앉자 국방장관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허면 재우에서는 그 소재기술도 가지고 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단호한 대답에 국방장관의 눈썹이 잠시 꿈틀했다.

어디 그뿐일까, 국정원장은 물론 ADD의 곽지용 소장까지.

잠시간의 침묵을 깬 것은 역시나 국방장관이었다.

“하면 개발 기간은 어느 정도나 걸릴 것 같습니까.”

“대체로 탄도미사일 개발 기간은 최하 10년 정도가 보통입니다. 하지만 기술이전이 있다면 2년 안에도 실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죠.”

“2년?”

“놀라실 것 없습니다. 그 2년도 실은 기술이전 이후 실체화단계에 돌입했을 때를 이야기 하는 것이고, 이미 개량까지 진행 중인 재우에서는 500킬로미터 급 정도는 6개월 안에도 실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니까요.”

“그럼 800킬로미터 급은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그 질문이 왜 안 나오나 했다.

애초 군이 욕심을 내는 것은 단지 북한만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도 충분히 위협이 될 사거리를 지닌 물건.

비록 사거리 제한 지침에 묶여 당장은 세상에 드러낼 수는 없지만, 유사시를 대비한 억지력 정도는 확보하고 싶었을 거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당장이라도 개발이 가능합니다.”

“정말입니까?”

“네, 하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몇몇 있습니다. 우선은 GPS를 예시로 들 수 있죠.”

“GPS는 이미 미국에서 판매를 허가하지 않았습니까. 미국의 군용수신기를 장착하면…….”

“미군의 GPS칩. 즉M칩을 장착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선택입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미국은 그걸 핑계로 미사일의 정보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거든요. 그렇게 되면 정작 전략미사일이라는 가치는 사라지게 되는 거죠. 더군다나 급박한 상황에서 미국이 신호를 막아버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흠…….”

국방장관은 뒤늦게 한숨을 내쉬었다.

막말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사실 가까운 일본이 자체 GPS위성을 확보하는 이유도 바로 그 점 때문인데, 우리라고 그걸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당장 수십 개에 달하는 위성을 띄울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소.”

말을 뱉어내던 국방장관은 넌지시 나를 쳐다봤다.

혹여 너는 무슨 방법이 있는 거냐는 듯한 눈빛.

물론 나야 방법이 있다.

“굳이 대안을 제시하자면 러시아의 GPS를 장착하는 방법도 있기는 합니다. 그들에게는 정보제공의 의무는 없으니까요.”

“글로나스GLONASS를?”

국방장관의 눈이 순간 커다랗게 떠졌다.

그렇다고 그게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었고, 아마도 실현 가능성을 유추하는 의미일 거다.

“네, 아마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겁니다.”

당연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이미 역사적으로도 현무 시리즈는 그런 식으로 GPS문제를  해결  함으로써 미국의 영향력을 벗어났었으니까.

“러시아의 GPS를 부착한다…….”

한동안 중얼거리던 국방장관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잠시 우리끼리 협의를 할 시간을 좀 주겠소?”

곧 내게 자리를 비켜 줄 것을 요구한 그들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나를 방으로 불러들였다.

“조금 후 난 대통령님께 오늘 회의과정의 전반을 보고드릴 겁니다.”

“…….”

“아마 대통령님께서 이 사실을 들으시면 자체개발 쪽으로 가닥을 잡으실 것 같은데, 혹시 그렇게 되면 ADD와 공동 개발을 할 의향은 없습니까?”

나를 내보냈던 이유가 뒤늦게 이해됐다.

하긴, 여기서 내가 개발권을 가져가 버리면 ADD로서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되는 거니까.

하지만 그건 허락할 수 없다.

말이 공동 개발이지, 기술의 대부분을 내가 제공하게 되는 마당이면 그건 숟가락 얹기 밖에 더 되겠는가.

“불가능합니다. 그건 저희가 어렵게 재설계한 기술들을 외부에 노출하라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게다가 ADD는 이미 순항미사일을 개발 중인 상황 아닙니까? 그것만으로도 당분간은 정신이 없을 텐데요?”

국방장관은 뜨끔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워낙 단호한 내 표정 탓이었을까, 한참 후 결국 그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것 참……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일단 보고를 올리고 대통령님의 재가가 떨어지면 재우에서 그 사업을 맡는 것으로 합시다.”

“장관님. 하지만 그 큰 사업을 이렇듯 쉽게…….”

곁에서 듣고 있던 국방부의 군무원 중 하나가 즉시 그 말에 반박했다.

그러자 장관의 고개가 휙 하고 그를 향해 돌아가더니 대뜸 질책의 소리를 뱉어냈다.

“그럼 이런 극비사업을 공개입찰이라도 하자는 건가?”

“아니, 제가 걱정하는 것은 수의계약에 대한 잡음이 아니라 보안 문제를 말하는 겁니다. 우리가ADD를 통해서 사업을 진행하려 했던 근본적인 이유가 그것 때문 아닙니까?”

“그 부분은 염려 마십시오. 개발 과정 전체를 직접 감시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난 즉시 저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어차피 주요 부품과 기술의 개발은 탈레스가 아니라 제 연구소에서 진행이 될 겁니다. 하니 제 연구소에 대한 보안만 군이 철저하게 관리 한다면 문제될 것은 없지 않습니까?”

“…….”

“결정적으로 우릴 감시하는 주변국들의 시선은 외려 ADD에 쏠리기 쉽습니다. 누가 뭐래도 이 나라의 군사 기술의 메카는 ADD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제 연구소가 오히려 시선을 피하기엔 더 적합 할 텐데요?”

“흠…….”

이제껏 반대의견을 주창하던 국방부 직원의 눈이 그 말에 반짝 빛을 발했다.

조금 후, 한동안 장관과 눈빛을 주고받던 그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곧 장관의 입에선 내가 고대하던 말이 튀어나왔다.

“보안성 측면에서는 확실히 그 말도 일리는 있군요. 좋습니다, 일단 그렇게 보고를 하도록 하죠.”

절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줄 사업권을 손에 쥔 마당에 흥분이 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개발비만 최소 1조 원.

양산이 시작되면 최소 1000기 이상을 보유할 테니 그에 따른 수익 역시 대략 1조원정도.

쉽게 말해서 저 한마디에 우리 재우는 족히 2조 원 이상의 수익을 확보한 거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장관님을 비롯한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더 제안드릴 것이 있습니다만.”

하지만 난 그것에만 만족할 수 없었다.

불곰사업은 러시아의 군사기술을 흡수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

특히나 데이터 칩에는 없는, 그래서 내가 보유하지 못한 몇몇 분야들의 기술을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데, 그걸 그냥 놓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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