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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30화 (30/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30화

“편하게 앉으세요.”

국정원 차장과 다시 자리를 마주한 곳은 강남에 있는 한 와인 바였다.

특이한 것은 우리를 제외하면 손님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

사실 저렇듯 건장한 사내들이 문을 막아서고 있는 마당에야 이곳에서 술 한잔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는 않을 거다.

“자, 여기 와인 나왔습니다. 차장님께서 워낙 슈베르트만 고집하시는 터라 가져온 건데,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군요.”

서빙을 하는 사내 역시 정체가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이곳은 정황상 국정원의 활동 근거지 중 하나.

일반적인 사무실로 위장한 활동 처들은 많이 봐왔어도 이런 와인 바는 처음인데, 이거 대체 누구의 취향인지가 자못 의심스럽다.

“일단 확실히 해 둘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잔을 받아들곤 하는 말에 임효식 차장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여전히 웃음기가 맺힌 얼굴.

좀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타입이다.

“말씀하시죠.”

“제가 여기서 못 나가면 제 비서가 문을 부술지도 모릅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그럴만한 힘은 충분히 있는 친구거든요.”

“……네?”

그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잔뜩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 한 말임을 모를 리는 없을 테고.

의도가 먹혔는지 잔뜩 경직되어 있던 주변 요원들의 얼굴에 황당함이 섞인 웃음이 번졌다.

“그럴 일은 없으니 안심하시고 말씀하시죠.”

“뭐 그렇다면야 저도 편하게 말하죠. 실은 제가 불곰사업의 책임자를 만나고 싶어 한 것은 아주 중차대한 문제를 두고 협의 할 것이 있어서였습니다.”

“협의? 진현승 씨가 우리와 그 문제를 협의할 것이 뭐가 있죠?”

그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우뚱 했다.

그럼에도 눈빛만큼은 빛을 발하는 것을 보면 내용이 궁금하긴 한 모양이다.

“저로 인해서 불필요한 작전을 막을 수 있다면 충분히 협의할 만한 사항 아닙니까?”

“불필요한 작전?”

“국정원이 조만간 러시아의 ICBM을 고철의 형태로 밀수입하려는 작전 말입니다.”

어쩌면 이미 벌어진 사건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끝내 질러 본 이유는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

즉, 역사의 뒤틀림이 이 사건에도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 때문이었다.

‘당장 1999년이 되어서야 국정원이라는 이름으로 바뀌는 것이 원래의 역사인데, 벌써 스스로를 국정원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쪽도 역사가 뒤틀렸다고 볼 수도 있지. 단지 그 작전은 역사를 앞선 것이 아니라 뒤로 밀려났기를 바라야 하는 상황이지만.’

꿈틀!

임 차장의 표정은 단숨에 굳어졌다.

그건 곧 사건자체가 허구는 아니었다는 증거.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작전이 이미 시행이 됐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그 작전은 아직 원장님의 재가도 나지 않은 상황인데. 아니 대체 어디에서 자꾸 정보가 유출 되는 거야?”

마지막 말은 주변에 있던 요원들을 향해 뱉어낸 불평이었다.

그 탓에 찔끔한 요원들의 목은 거의 자라처럼 기어들어 갔지만 임 차장은 여전히 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젠장, 내가 앓느니 죽지."

그나저나 재가가 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작전이 시행되기 전이라는 의미다.

천만 다행인 상황.

그렇다면 시도를 해볼 가치는 있다.

“죄송합니다만 정보의 출처는 공개할 수 없습니다. 설사 저를 어쩌신다 해도.”

그 말에 임 차장의 눈이 한껏 가늘어졌다.

행여 대답을 재촉하면 어쩌나 싶었건만 다행이 그는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지는 않았다.

“좋습니다. 그건 차차 따지기로 하고, 우리가 그 작전을 중지해야 하는 이유가 뭔지나 말씀해보시죠.”

“국정원이 ICBM을 밀수입하려는 의도는 탄도미사일 기술과 대기권 재돌입 기술의 확보를 위해서 일 겁니다.”

“…….”

“하지만 리버스 엔지니어링. 즉, 역설계 정도로는 결국 한계가 있으니 불필요한 작전을 시도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흠…….”

임효식 차장의 입에선 장탄식이 뱉어졌다.

다른 이도 아니고 방산 업체의 개발 팀장이 하는 말이니 영 근거가 없다고 느낀 것은 아닌 모양새.

그럼에도 끝내 고개를 가로젓는 이유는 필시 ADD의 주장 때문일 거다.

어떤 무기든 실물만 입수한다면 역설계를 통해서 충분히 개발이 가능하다는, 그들의 교만에 찬 주장.

젠장, 나 역시 한때는 그런 자만심에 빠져 있었던 때가 있었지.

“ADD의 주장과는 좀 다르군요. 황 박사님을 비롯한 ADD 연구원들 대부분은 실물입수만 가능하면 얼마든지 개발을 할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역시나 그는 ADD를 거론하며 내 말의 신빙성을 의심했다.

그렇다고 ‘내가 한때 그 ADD의 수장이었던 사람이니 내 말을 들어라.’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카운터에 있던 종이와 펜을 가져와선 여러 기호를 그려가며 설명을 다시 이었다.

“대기권 재돌입 기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고열을 버텨줄 소재기술입니다.”

“그 점은 나도 알고 있습니다.”

“그에 더해서 고체연료를 기반으로 한 추진체의 기술과 고도로 정밀한 자이로 또한 필요한데, 이것들은 단순히 역설계만으로는 개발에 한계가 있기에 국정원이 아무리 ICBM을 들여와도 얻을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는 설명을 듣는 내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한참을 홀로 중얼대던 그의 입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뱉어졌다.

“흠…… 그 말씀대로라면 결국 완전한 탄도미사일 기술을 얻기 위해서는 차라리 원천기술을 사 오는 수밖에 없다는 거군요.”

역사적으로는 그렇게 일이 진행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유사 이래 최대의 작전을 펼쳐가며 러시아의 ICBM을 고철의 형태로 밀수입했던 국정원.

하지만 ADD에선 끝내 기술력의 한계만큼은 극복하지 못했고, 결국 우리군은 단거리 미사일 개발부터 다시 시도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결정된 것이 바로 러시아로부터 이스칸데르의 기술을 사들여 그걸 우리 나름대로의 플렛폼으로 구축하는 것.

그게 바로 현무2A 탄도미사일의 개발사다.

“빌어먹을…… 어쩐지 그 로스케 장성 놈들이 순순히 ICBM을 내주겠다고 하더라니. 일단은 알겠습니다. 진현승 씨 말을 토대로 다시 ADD의 관계자들과 의논을 해보도록 하죠. 이대로 작전을 진행 할지, 아니면 러시아 군부를 통해 이스칸데르의 기술을 사 올지.”

“아니요, 그걸 굳이 러시아에서 사 올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임효식 차장은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이스칸데르 수준의 탄도미사일은 우리 재우에서도 충분히 만들어 드릴 수 있거든요. 실은 차장님을 만나고자 했던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그거였습니다.”

“그건 또 무슨!”

아마 쉽게 믿을 수 없는 말이었을 거다.

탄도미사일에 관해선 기술 불모지나 다름없는 이 나라에서 이스칸데르 급의 선진미사일 기술을 가지고 있는 업체가 존재한다는 건.

하지만 어디 이스칸데르 급 하나 만일까.

이후 그걸 기초로 연구를 거듭한 우리는 중거리 미사일 기술은 물론 고체연료를 활용한 우주로켓 기술까지 보유 중이다.

실상 자금 여력만 된다면 ICBM 까지 개발이 가능하다는 소리지.

“정말로 재우가 탄도미사일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어떻게요?”

그 부분에 대해선 잠시 침묵했다.

답답했던 듯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던 임효식 차장은 잠시 후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소리쳤다.

“설마 러시아 군부로부터 미사일기술을 사들이기라도 한 겁니까?”

그로선 충분히 상상 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을 거다.

작금의 어지러운 러시아의 정세를 보면 딱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고, 실제 국정원도 그런 식으로 순항미사일을 들여왔었으니까.

나 역시 애초 그걸 핑계로 삼으려 했었기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허허, 이것 참…… 민간 군수업체가 그런 일을 해내다니 놀랍기 그지없군요. 그런데, 대체 어떻게 들키지 않은 겁니까?”

“그거야 뭐…….”

“그거 압니까? 우리 국정원은 순항미사일 하나 들여오면서도 러시아 정부로부터 갖은 핍박을 받았다는 것. 참, 그 점은 이미 알고 계시겠죠? 이기호 회장님의 전언에 의하면 진현승 씨가 그 점을 거론하면서 나와의 만남을 주선하도록 압박했다고 하던데.”

“압박이라기보다는 가진 정보를 활용한 것이죠. 그리고 죄송하게도 러시아 정부의 눈을 피할 수 있었던 방법은 말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나름대로 희생이 꽤 컸던 수단이었던 터라.”

“그랬겠죠. 우리도 막상 그 작전을 진행하게 되면 치러야할 희생이 만만치 않을 거라 예상하고 있던 상태니까. 그런데 기술을 사들였다고 그게 현실화 된다는 보장은 없지 않습니까? 재우가 ADD도 아니고.”

“재우의 기술력을 의심하시는 모양인데, 우린 ADD가 감히 생각도 못 해본 스마트 포탄을 개발한 업체임을 잊으시면 곤란합니다.”

“…….”

“다시 말해서 ADD가 비록 이 나라 군사기술을 대표하는 곳이긴 하나, 절대적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소리죠. 함구하신다는 조건하에 한 가지 알려드리자면, 사실 우리는 이미 이론적으로는 사거리 800킬로미터에 탄두 중량 2톤까지 개발 가능성을 점치고 있는 중입니다.”

그건 현무4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단거리 미사일로서는 지상 최강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물건.

무려 2톤의 탄두를 가진.

그리고 중력가속도를 이용하여 마하 10의 속도로 충돌하는 괴물.

“탄두 중량이 2톤이라고요? 아, 아니. 사거리가 800킬로라면…….”

임효식 차장은 순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거리는 둘째 치고, 탄두중량이 2톤이라면 전략적 가치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거니까.

우리가 그걸 보유했을 경우를 상상했는지 그의 눈동자가 쉼 없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야 가능성의 이야기고, 당장은 주변국들의 반발이 없을 수준에서의 물건을 만들어내야겠죠.”

설사 그렇다 해도 주변국들의 반발은 일어날 거다.

막말로 탄도미사일 이라는 것이 처음 만들어 내는 것이 어렵지 이미 현실화된 물건을 개량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거든.

회귀 전, 정부가 한때 사거리 500킬로미터 급 미사일을 개발하고도 그 사실을 오랫동안 함구한 것도 실은 그런 이유 때문인데, 작금의 국제정세를 감안하면 옳은 판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무력을 갖추기도 전에 발톱을 먼저 드러내는 것은 바보나 할 짓이거든.

“흠…….”

임 차장은 안도와 함께 한동안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단숨에 와인을 들이켠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무래도 이건 내 선에서 해결 될 문제가 아닌 것 같군요.”

어라?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이제 와서 제 손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니.

당신이 책임자라며.

“죄송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그럼 조만간에 국정원에서 모시러 갈 겁니다.”

“…….”

“아! 그리고, 당분간 주변에서 저 친구들이 보여도 신경 쓰지 마세요. 그건 감시가 아니라 혹시 모를 상황에서 진현승 전무님을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니까.”

“……네?”

******

“전무님…….”

며칠 후, 임 차장은 약속대로 몇몇 국정원 직원들을 사무실로 보내왔다.

눈치 빠른 김 비서는 잔뜩 주눅이 든 얼굴로 사실을 알려왔고, 난 점심식사를 핑계로 그들을 따라나섰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내곡동입니다.”

내곡동이라면 국정원 본부가 위치한 곳이었다.

누가 정보부처 아니랄까 봐 내 몸은 철저한 검색을 거쳐야 했고, 브리핑을 위해 가져온 자료가방조차도 꽤 오랜 시간에 걸쳐 검수를 거쳐야만했다.

“설마 국정원장님을 뵙는 겁니까?”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국정원장실 앞이었다.

결국 그가 불곰사업의 진정한 최고 결정권자였다는 의미.

예상처럼 문을 열고 들어간 방 안에선 국정원장을 포함한 몇몇 중년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서 와요.”

가장 처음 내게 손을 내민 것은 역시나 국정원장이었다.

얼핏 본 책상 위에 있던 명패에 적혀진 이름은 안시현.

외모 상으로 보면 군 출신은 아닌 것 같고, 다분히 정보계통에서만 잔뼈가 굵은 인물인 듯 보였다.

“재우탈레스 진현승입니다.”

“반가워요. 국정원장 안시현입니다.”

그의 말투는 꽤나 사근사근했다.

한나라의 국가정보책임자라는 위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뭐 그거야 외적인 면이 그럴 뿐, 저 속에 뭐가 들어있을지는 아직까지 알 수가 없다.

“다들 모였습니까?”

악수를 나누고 막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다시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벌떡!

순간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들.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인물이 떡 하고 버티고 서 있었다.

“국방장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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