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9화
“축하합니다, 전무님!”
어느새 소식을 전해 들은 회사 직원들이 입구에서부터 환영 인사를 전했다.
윤상민 대표와 진 회장을 제외하면 탈레스에서는 더 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는 위치.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은 사이에 만들어낸 결과 치고는 확실히 빠른 적응이었다.
“퇴근 후에 뭐 하세요?”
넌지시 묻는 김 비서의 표정은 기대감으로 잔뜩 물들어있었다.
보나 마나 기념 회식을 주장하고 싶은 거겠지.
어차피 중요한 일 처리는 대부분 끝난 상황이기에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
“승진을 축하합니다, 전무님!”
결국 시작된 회식은 어느새 2차까지 진행됐다.
여기저기서 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머릿속이 복잡했던 난 차마 그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했다.
“흠…….”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윤상민 대표가 했던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결국엔 내가 전무 자리에 오르는 것을 반대할 수가 없었다는.
뭔가 여운이 남는 말이기는 한데, 그게 뭔지 당최 감이 안 온다.
“잠시 화장실 좀.”
결국 생각을 좀 더 정리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 벌써 몇 잔째인지 모를 맥주 세례에 방광이 꽉 차기도 했고.
그런데 나만 급한 것은 아니었던 듯, 굳이 따라와서 참석한 연구소의 희원이 놈이 재빨리 뒤를 따라붙었다.
“화장실 가냐? 같이 가자.”
“괜찮냐?”
“아니, 하도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 그런가, 꽤 취하네.”
“내일을 위해서라도 적당히 마셔. 그나저나 넌 왜 끝까지 오겠다고 고집을 피운 거야? 어차피 연구소 회식도 아닌 마당에.”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냐?”
“……뭔 소리야?”
의아한 마음에 되물었다.
놈은 애꿎게도 대답 대신 한참 자세를 가다듬고 있던 내 하체를 힐끗 쳐다보며 괴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역시 세상은 공평하군.”
“…….”
“너무 자책하지는 마라. 그거야 네가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까.”
“갑자기 뭔 헛소리야?”
희원은 별다른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서둘러 바지춤을 추슬렀다.
툭!
이내 내 어깨를 한번 두드리더니 한껏 승리에 도취된 표정으로 손을 씻는다.
저 새끼…… 아! 이거 갑자기 짜증이 확 올라오네.
“참, 내일부터 신규 개발 팀 하나 따로 구성해야 한다.”
툭!
그 말에 놈이 들고 있던 비누를 떨궜다.
이내 번개 같이 내 쪽으로 몸을 돌린 그는 덥석 내 옷깃을 붙잡는다.
“또 왜? 너 설마 그거 좀 놀렸다고 복수하는 거냐? 내가 말했잖아. 타고난 것은 어쩔 수 없는…….”
“헛소리 그만하고. 실은 곧 군에서 신사업 소요 재기가 있을 예정이야. 사업 자체는 1년 후쯤에나 시작될 것 같지만 미리 준비를 해둬야 시간을 아끼지.”
“시발…….”
놈의 미간이 잔뜩 일그러졌다.
이제야 10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가네.
그러게 새끼야, 고용주는 함부로 놀리는 것이 아니야.
게다가 하필이면 왜 그런 민감한 부분을…….
“넌 그런 중대한 사실을 왜 이제야…… 됐고, 자세히 말 좀 해봐.”
우린 인적 없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이어갔다.
놈이 대단하다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점들.
바로 조금 전까지 취기가 맺혀 있던 희원의 눈빛은 언제 그랬냐는 듯 초롱초롱해져 있었다.
“군이 내년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야.”
상황이 상황인 터라 핵심적인 사항들만을 우선 전달했다.
중요한 점은 이번엔 희원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크다는 사실.
놈도 그 사실을 아는지 듣는 태도가 무척이나 진지했다.
“핵심은 레이더와 통제 시스템인데, 실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탄두의 형상 변화야. 하니 네가 꽤 고생을 할 거다.”
“언제는 고생 안 했냐? 뭐 대충 무슨 이야기인 줄 알겠네. 언제부터 시작하면 되는 건데?”
“일단은 합금 과정만 신경 써. 자세한 것은 내일 내가 연구소로 갈 테니 그때 가서 다시 이야기해 보자고.”
“알았다. 그나저나 뭐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냐?”
흔쾌히 대답한 희원은 대뜸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오랜 경험상 놈이 저런 눈빛을 할 때면 늘 시답지 않은 질문이 날아들고는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놈의 입에선 허탈하다 싶은 질문이 뱉어졌다.
“너 김 비서 어떻게 생각하냐?”
“뜬금없이 그건 무슨 헛소리야? 당연히 능력 있는 비서로 생각하지.”
“진짜지? 그것 외엔 정말로 아무 감정도 없는 것 맞지?”
“하아…….”
대답 대신 한숨을 뱉어 보였다.
순간 놈의 눈빛이 반짝 빛을 발하더니 툭 하고 내 어깨를 건드린다.
“오케이, 그걸로 대답은 됐어.”
“…….”
돌아서는 놈을 보고 있노라니 괜한 웃음이 뱉어졌다.
그래서였었나.
기어이 관련도 없는 남의 회식에 참여를 고집했었던 이유가.
가만, 그런데 저놈이 김 비서와 엮이면 곤란한데.
“야!”
당황스러운 마음에 달려가는 놈을 다시 불렀다.
우연이었을까, 마침 회식장을 빠져나온 김 비서를 마주친 놈은 내가 부르는 소리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그녀와 대화를 이어갔다.
“아니 왜 나와 계십니까?”
분위기가 왠지 장난 같지는 않아 보였다.
평소 여자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던 놈이 저 정도까지 적극적인 것을 보면.
“좆됐네…….”
그나저나 상황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 버리면 미래에 놈의 와이프가 될 미주 씨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 미주 씨는 둘째 치고. 그 토끼 같았던 조카 놈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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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얼밴드 AESA 레이더?”
다음 날, 다시 연구소에서 만난 희원에게 능동전자주사식 위상배열레이더(AESA)의 개발계획을 알렸다.
“그래, 너에게도 몇 번을 강조했지만 HVP를 이용한 방어시스템의 핵심은 고도의 정확성을 가진 탐지 레이더야. 그런데 우리군의 기존 대포병 레이더로 HVP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해서 난 듀얼 밴드 AESA 레이더로 그것들을 죄다 대체할 예정이야.”
“성능차이가 어느 정도나 나기에?”
“글쎄…… 비교자체가 의미가 있을까 모르겠네.”
“그 정도야? 그나저나 정말로 S밴드와 X밴드를 동시에 활용하는 레이더를 개발하는 것이 가능은 한 거냐?”
“물론. 그런데 너 그건 알고 있냐? 우리가 개발할 질화갈륨 기반 TR모듈 하나가 거의 중고차 한 대 가격이라는 것.”
“헐……. 그럼 그 비싼 모듈을 수천 개씩 때려 박은 대포병 레이더는 가격이 대체 얼마라는 소리야?”
“최소 천억.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상 갈수도 있고.”
“어마어마하네. 그런데 그 정도 고출력이면 이지스 함정에도 적용이 가능한 것 아닌가?”
“그야 당연하지. 사실 지금 이지스 함정들이 사용하는 것은 대부분 PESA방식인데, 이런저런 면에서 AESA와는 성능차이가 확연하니 개발만 되면 아마 여기저기서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거다.”
“그럼 보안에 더 신경을 서야 하는 것 아니야?”
“맞아, 그래서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에 보안시스템을 전면개편할거야. 혹시 모르니 군의 지원이 가능한지도 알아볼 생각이고.”
“…….”
희원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긴장감이 든 탓이겠지.
툭 놈의 어깨를 건드리며 몸을 일으키려는 차에 문득 책상 위에 있던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올해도 이제 다 갔구나.”
“그걸 이제 알았냐? 벌써 12월 달이다 인마. 그런 마당에 난 네놈이 또 던져준 숙제나 해야 하는 상황이고.”
“그건 급할 것 없으니 연말 분위기는 즐겨도 돼.”
“언제까지를 목표로 잡았는데?”
“소자 자체는 내년 7월쯤? 집적회로와 TR모듈 개발은 11월까지 끝내면 군의 사업시행발표와 대충 날짜를 맞출 수는 있을 거다.”
“쯧, 그럼 뭐해. 아직 개발 중인 다른 숙제들이 산적해 있는 마당에. 아무튼,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서 이틀 정도는 나도 쉴 테니 그리 알아.”
희원은 선포하듯 말하곤 서류를 탁 덮었다.
왠지 미심쩍은 마음에 가늘어진 눈으로 쳐다보자 놈이 슬슬 내 눈을 피한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건데?”
“너 정말 김 비서에게 마음이 있는 거냐?”
“당연히 마음이야 있지. 문제는 그녀가 워낙 철벽이라는 건데, 그래도 일단 시도는 해볼 생각이다.”
“네가 김 비서랑 마주친 건 고작 두어 번 뿐이잖아.”
“사람이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것에 이유가 어디 있냐. 그리고 넌 첫눈에 뻑 간다는 말도 몰라?”
저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면 단순한 호기심에서만은 아닌 듯했다.
그렇다고 ‘네 운명의 반려자는 김 비서가 아니다.’라고 말을 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현승아. 네가 잘 모르나 본데, 어차피 만나게 될 운명이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만나게 되어 있는 거야. 난 김 비서를 본 순간 그걸 딱 느꼈다니까.”
듣고 있자니 가관이었다.
그런데 운명이라면 언젠가는 만나게 되어 있다는 놈의 말.
왠지 그게 불안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혀 준다.
그래, 놈의 운명이 끝내 미주 씨와 연결되는 것이라면 지금 아무리 김 비서에게 꽂혔다 해도 결국엔 다시 운명대로 가겠지.
“난 모르겠다.”
“그래, 넌 그냥 모른 척해. 그런데 너 오늘 한가하냐? 평소 같았으면 용건만 툭 던지고 가던 놈이 웬일로 시간을 죽이고 있는 거야?”
“한가하기는.”
마침 쳐다본 시계는 어느덧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후 남은 스케줄은 본격적으로 생산을 시작한 스마트 포탄제작 공장의 현장 점검을 가는 것.
짧은 인사를 끝으로 연구소를 빠져나오자 마침 문 앞에서 대기 중이던 양 비서가 재빨리 차문을 열었다.
“아, 잠시 담배 한 대만 피우고 갑시다.”
“네, 그럼 전 여기서 대기하겠습니다.”
다시 문을 닫는 양 비서를 뒤로 하고 한적한 곳을 찾았다.
연구소 단지 전체가 금연구역이었던 터라 아예 밖을 나서야 하는 상황.
겨우 찾아낸 곳은 연구소에서 흡연자들을 위해 만들어 둔 외부의 한적한 흡연 장이었다.
“후웁…….”
깊게 연기를 빨아들이던 순간 문득 불 켜진 연구소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규모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이 나라의 미래기술들의 탄생지라기엔 뭔가 좀 모자란 느낌.
특히나 향후 더 늘어날 연구과제들을 생각하면 조만간 규모의 확장은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스마트 포탄에서 생기는 수익을 우선적으로 연구소에 투입해야 할 분위기네. 그나저나 얼마나 되려나…….'
우리 군의 수효는 아직 확정이 되지 않았으니 그건 일단 계산에 넣을 수가 없다.
그럼 이미 확정된 수출금액에서 내 몫을 계산하는 것이 빠른 상황인데, 총수출 규모가 15억 불이니 대충 2억불 정도가 연구소의 몫으로 떨어질 것 같다.
‘뭐 그 정도라면 연구소 확장엔 충분한 금액이지…… 그런데 이기호 회장은 불곰사업 책임자를 소개시켜 달라고 한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거야?’
불현듯 생각이 거기에까지 이르렀다.
철갑탄에 이어 스마트 포탄의 개발은 성공리에 끝났고.
앞으로 진행 될 HVP를 이용한 방어시스템의 구축도 이로써 준비단계는 끝마친 상태.
문제는 AESA가 개발 되어야 HVP의 구축도 가능하고, 여타 우리 군의 전력증강 사업들의 제안이 가능한데, 정작 개발이 완료 되는 시점은 1년 후라는 것이다.
즉, 자칫 난 그 1년을 허송세월로 보낼 수가 있다는 거지.
‘젠장, 이럴 때 불곰사업에 끼어들 수만 있으면……. 이거 내가 다시 연락을 해봐?’
굳이 불곰사업에 집착을 하는 이유는 이중투자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가 현무 탄도미사일의 개발을 위해 러시아에서 기술을 사 오는 시점이 정확히 불곰사업이 진행되던 시기.
하지만 이미 내게 있는 기술을 굳이 러시아에서 사 올 필요는 없지 않은가.
"흠……."
어쩌면 이미 사왔을 수도 있다.
러시아가 최초로 이스칸데르의 성능 테스트를 한 시기가 대략 1996년 쯤.
그리고 그 기술을 이은 현무가 비공식 테스트를 한 시기가 1999년 중반 쯤이니 벌써 모종의 거래가 오고 갔을 수도 있지.
하지만 나로 인해 역사가 뒤틀린 점을 간과해선 곤란하다.
즉, 시도해서 나쁠 것은 없다는 거지.
“만약 아직 기술구매 전이라면 차라리 그 돈으로…….”
“진현승 전무님?”
한참 생각을 정리 중일 무렵,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심코 돌아본 순간, 대략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사내 하나가 웃으며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누구시죠?”
불안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봤다.
일행인 걸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몇몇 정장 차림의 사내들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스윽.
슬며시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폰을 찾았다.
곧 손가락의 감각만을 이용하여 양 비서의 단축번호를 누르려는 차. 마침 저편에서 대기 중이던 양 비서가 다급히 달려왔다.
"전무님!"
양비서는 재빨리 내 앞을 가로막으며 저편에 있던 사내들을 경계했다.
그러자 예의 그 50대 사내가 마치 오해가 있었다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품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보였다.
"이런,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전 국정원 1차장 임효식이라고 합니다.”
“…….”
처음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이후 혹시나 싶은 생각과 함께 떠오른 것은 내가 방금 전까지 연락이 없음을 성토했던 이기호 회장에게 했었던 부탁.
즉, 2차 불곰사업의 최종 결정권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했던 사실이었다.
“국정원에서 저를 왜 찾아오신 거죠?”
“이기호 회장님께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하시지 않았던가요?”
예상은 정확했다.
맙소사!
그런데 왜 그 부탁에 국정원 차장이 나타난 거지?
설마 그가 불곰사업의 최종 결정권자라고?
“이기호 회장님께서 신신당부를 하시더군요. 대체 이 회장님 같은 분을 그렇듯 절절매게 만든 사람이 누군가 싶었는데, 그게 하필 진현승 씨라는 말을 듣고 좀 놀랐습니다. 혹시 시간이 된다면 하고 싶다는 말이 뭔지 들어보고 싶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