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8화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회장실을 찾았다.
목적은 전날 오중근 합참의장이 언질 주었던 군의 내년 사업시행 정보를 알리기 위해.
아무리 따놓은 사업이나 마찬가지라고는 해도 사업의 시행을 결정하는 것은 회장인 마당에 절차를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저 왔습…… 어? 대표님께서 여긴 어떻게…….”
마침 들어선 회장실에는 탈레스의 윤상민 대표가 선객으로 있던 터였다.
진 회장의 핵심 심복이자 그룹 전체의 브레인 역할을 맡고 있는 존재.
사실 내가 입사한 이후 그를 보는 것은 이번이 고작 두 번째 인데, 그건 급격한 건강악화로 그가 한동안 장기 휴직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오! 이거 얼마만인지 모르겠군. 나 없는 사이 정책실장 자리까지 올랐다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제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그간 윤 대표에 대한 소문들은 나름 듣고 있던 터였다.
누구 하나 적이 된 인물이 없을 정도로 유하면서도 카리스마가 넘치는 존재라고.
하긴, 그랬기에 그 오랜 기간을 휴직하는 와중에도 직책을 유지할 수가 있었던 거겠지.
어쨌건, 나로서는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던 터라 재빨리 현승이의 기억들을 헤집어 봤다.
“아직까지 완치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많이 좋아졌어. 그나저나 대표님이라니. 갑자기 그 딱딱한 말투는 뭐야?”
“그렇다고 회사에서 삼촌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기억에 의하면 현승이는 과거부터 윤상민 대표를 삼촌이라고 불렀었다.
차가운 시선 속에서 유일하게 놈을 선입견 없이 대해준 인물이었기에.
그래서였을까, 매번 놈이 사고를 쳐왔던 와중에도 윤상민 대표만큼은 그를 두둔하곤 했었던 것이.
“그렇다고 단번에 그렇게 호칭에 각을 세우면 서운하지. 뭐 그건 그렇고, 아침부터 본사에는 웬일이야?”
“회장님께 보고드릴 일이 좀 있어서요.”
“그래? 그럼 난 이만 자리를 피해 주지.”
윤상민 대표는 그 말에 즉시 몸을 일으켰다.
난 즉시 손사래를 치며 그를 만류했고, 이후 한동안 두 사람에게 어제 합참의장과 나누었던 대화에 대해 털어놨다.
“HVP?”
“네, 스마트 포탄 같은 초고속 투사체로 근거리에서 날아오는 로켓이나 포탄들을 요격하는 시스템입니다. 일전에 미 해군을 상대로 협상하던 와중 제가 그들에게 제안했던 내용이었는데, 우리 군도 그걸 육군에 구축하고 싶다고 합니다. 내년에 예정 됐던 근거리 대공방어망 구축사업을 대신해서.”
“흠, 스마트 포탄을 그런 식으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건 또 의외로군. 그런데 군이 정말로 내년에 시작할 예정이었던 사업을 포기하면서까지 그걸 원한다고?”
“저도 갑자기 사업의 방향을 튼 다는 것이 좀 의외긴 합니다만, 어차피 수단만 다를 뿐 사업의 목적 자체는 같기에 그런 선택을 내린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최신 휴대폰이 생긴 마당에 벽돌 폰을 쓰고 싶지는 않다는 거겠죠.”
“사람 욕심이란 것이 원래 그런 거야. 그런데 고작 포탄으로 북의 방사포를 요격한다는 것이 정말로 가능하기는 한 거야?”
“요격 체의 속도가 표적의 속도를 압도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물론 목표를 정확하게 추적할 탐지 레이더와 탄체를 목표까지 유도해줄 정밀유도 시스템도 필요하지만.”
이후 또 한 번의 설명을 이었다.
이 시대에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개념이었던 탓인지 진 회장은 물론 윤 대표도 연신 눈을 끔뻑이며 나를 쳐다봤다.
“성공을 자신하는 거냐?”
“그렇습니다.”
“흠…… 그럼 어디한번 도전해봐.”
진 회장은 흔쾌히 동의했다.
여기까진 예상했던 흐름.
이후부터가 사실상 문제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군의 예산이 책정되기까지 기다리다가는 아마 개발 기간이 꽤 길어지게 될 겁니다. 해서 우리 예산으로 미리 집행을 하는 것은 어떨까요?”
“자력 개발을 먼저 시작하자고?”
진 회장은 잠시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리는 아니지.
아직 의회의 재심사와 승인은 거치지도 않은 상태인 마당이라 자칫 사업이 유야무야 되는 날엔 우리만 손해를 보게 되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정말로 일이 틀어진다 해도 손해 볼 것은 없다.
자고로 HVP를 활용한 근거리 방어시스템의 핵심 중 하나는 AESA 레이더(능동형 전자주사식 위상배열 레이더)인데, 그건 개발만 되면 그 활용처가 무궁무진 하거든.
더군다나 내가 개발하려는 것은 질화갈륨 기반 반도체 소자를 이용한 듀얼밴드 AESA.
고출력에 의한 탐지거리 향상은 물론 정밀추적 능력에 있어서도 지금 시대의 것들과는 비교불가 한 물건이기에 욕심을 낼 곳은 많다.
“제 생각엔 현승이의 생각도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회장님. 군의 예산이 확보되기까지 기다렸다간 자칫 개발 기간만 길어지게 될 테고, 그럼 사업 자체가 장기프로젝트로 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리고 설사 사업이 망가진다 해도 우린 ‘위상배열 레이더’ 개발에 성공하는 몇 안 되는 업체가 되는 것이니 손해 볼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내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윤 대표가 대뜸 내 편을 들고 나섰다.
그것도 내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는 주장을 내세우면서.
그가 보통의 인물이 아님을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그럼 그렇게 해. 어차피 탈레스의 R&D 비용도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상승한상태니 무리는 없겠지.”
결국 진 회장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총 사업비가 족히 2조에 이르는 또 하나의 대형사업의 막이 올라가는 순간.
비록 그게 1년 후에나 시행될 사업이라고는 해도 흥분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나저나 자네 지나치게 변한 거 아니야?”
“네?”
한참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던 차에 윤 대표의 말이 들려왔다.
전과는 다른 내 모습이 낯설었던 듯 그는 연신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간 병원에서 소식을 듣고는 있었지만 이건 소문 이상이잖아.”
“언제까지고 집안의 가시 같은 존재로 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허허, 말투까지도 전하고는 완전히 딴판일세. 뭐 아무튼 보기는 좋군. 그나저나 내일 그룹 전체의 주요 간부 회의가 있는 것은 알고 있지?”
“그야 물론이죠.”
“자네가 워낙 바빠서 혹시 참석하지 못할까 봐 미리 하는 말인데, 내일만큼은 꼭 참석을 해주게나. 되도록 좋은 옷으로 골라서 입고.”
왠지 의미심장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 그려졌다.
갑작스러운 퇴원.
그리고 진 회장과의 면담.
얼핏 그룹 회의 자리에서 복귀를 선포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 난 미리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복귀를 축하드립니다.”
“고맙군. 그런데 축하를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자네 같은데? 그럼 난 이만 다른 약속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겠네.”
“…….”
윤 대표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곧 진 회장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인 그는 다시 나를 향해 싱긋 미소를 내비치곤 방을 나섰다.
뭐지?
내가 축하를 받아야 한다니.
******
수요일.
매주 한 번씩 시행되는 그룹 전체 간부 회의를 위해 본사를 찾았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각 계열사에서 온 사장단과 간부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던 상태였고, 덕분에 나를 향해선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집중됐다.
“왔군.”
유독 나를 반갑게 맞아준 것은 역시나 윤상민 대표였다.
왠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 터라 힐끗 그를 쳐다봤지만 그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미소만 내비치고 있을 뿐이었다.
“자, 회장님 오시기 전에 얼른 들어갑시다.”
그의 한마디에 임원들은 우르르 회의실로 향했다.
오늘따라 내게 배정된 자리는 하필 윤상민 대표의 바로 옆.
혹시나 싶어 찾아본 진현철은 웬일인지 모습을 볼 수 없던 상태였다.
“형님은 오늘 참석 안 하시는 겁니까?”
“진현철 전무는 에어로스페이스의 대표로 보직을 이동했네.”
“벌써요?”
“벌써는 무슨. 내려간 것은 벌써 일주일 전이고, 아마 오늘쯤이면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있을 걸세.”
“우크라이나라면, 모터시치 인수건 말씀이십니까?”
“맞아, 마침 그쪽 대표가 러시아와의 협상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득달같이 날아가더군.”
그가 일을 벌써 그렇게까지 진행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하긴, 아무리 재벌가 2세라고는 해도 전무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지.
나름대로 일에 대한 추진력을 갖추고는 있다는 건데, 문제는 그의 시도가 과연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거다.
“흠…….”
애초 모터시치 같은 핵심기술을 보유한 업체의 인수는 까다로운 편이다.
다른 건 둘째 치고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이 그냥 두고 볼 리가 없다는 점에서.
그럼에도 끝내 시도를 하는 이유는 그도 뭔가 가진 패가 하나쯤은 있다는 건데, 그게 뭔지 자못 궁금하다.
“잘됐으면 좋겠군요.”
그건 사심을 내려 두고 한 말이었다.
이유야 뭐건 진현철도 결국에는 회사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데, 그걸 실패하라고 빌 수는 없지 않을까.
더군다나 정말로 인수가 가능하다면 우린 단숨에 항공기 엔진 기술을 확보하는 상황. 차후 내 계획을 앞당기기 위해선 차라리 그의 도전이 성공하는 것이 내게도 이익이다.
“그러기를 바라야지.”
윤상민 대표는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로 동조했다.
어색한 미소로 응수하곤 다시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불현듯 머리가 아파오며 예전 진현철과 현승이 사이에서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집에 연락 할 생각을 한 용기가 대단하네.
대략 현승이가 대학을 졸업할 때쯤의 일인 듯 보였다.
술집에서 일어난 우발적인 시비로 인해 현승이가 경찰서에 구금이 되었던 사건.
당시 진 회장을 대신하여 경찰서를 찾아 왔던 진현철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그런 말을 했었다.
-그래, 차라리 계속 지금처럼 살아.
현승이는 그 말에 꽤나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그때부터 퍼뜩 정신을 차리고 온갖 노력을 다 했었던 것을 보면.
하지만 희한할 정도로 주변 여건이 따라주지 않았는데, 차후 알게 된 사실은 그 지랄 맞았던 주변 여건들이 죄다 진현철의 작품이었다는 거다.
“흠…….”
“회장님 오십니다.”
어느새 회의실로 들어선 비서의 말에 상념이 깨졌다.
퍼뜩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일어서자 자리에 착석한 진 회장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 안건을 다루기에 앞서 윤상민 대표의 복귀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바입니다.”
간부들이 그 말에 약속이나 한 듯 손뼉을 마주쳤다.
익히 예상했던 일이었던 터라 나 역시 눈인사로 축하의 인사를 건네려던 순간, 진 회장이 다시 마이크를 붙잡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진현철 전무의 보직 이동으로 공석이 된 탈레스의 전무 자리에 대해서 좀 논의해야겠는데, 의견들 있으면 말 들 해보세요.”
“…….”
누구도 먼저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나야 어차피 끼어들 입장이 아닌 상황이기에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당연했고.
그런데 그때, 힐끗 나를 쳐다본 윤상민 대표가 슬그머니 마이크를 당겼다.
“탈레스의 전무 자리는 지금 진행 중인 사업들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도가 없는 사람은 불가능합니다. 더군다나 군과 주무부처와의 관계도 중요하죠. 지금 상황에서 그에 합당한 인물은 한사람뿐일 것 같은데요?”
윤 대표의 마지막 말은 나를 보며 이어졌다.
약속이나 한 듯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향했고, 곁에 있던 윤 대표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감돌았다.
힐끗.
굳은 표정으로 윤 대표를 쳐다봤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의 입김이 작용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으니까.
예상이 틀리지 않은 듯 눈이 마주친 그가 나를 향해 속삭였다.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축하받아야 할 사람은 자네라고.”
“자칫하면 많은 사람들을 적으로 두실 텐데요?”
나로선 의아한 것이 당연했다.
아무리 현승이의 후견인이나 다름없었던 존재였다곤 해도 왜 이렇게까지 무리를 하는 걸까.
더군다나 평생 적을 만들지 않겠다는 그의 철칙까지 깨면서.
당황스러움을 넘어서 뭔가 내가 모르는 모종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맞아, 자네 덕분에 이번에 제법 많은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기는 했지. 하지만 어쩌겠나, 회장님께서 그걸 원하시는 마당에.”
그 말에 힐끗 진 회장을 쳐다봤다.
여전히 표정의 변화가 없는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상태였다.
“그렇다 해도 대표님께서 끝까지 반대하셨다면 결국 아버님도 포기하셨을 텐데요?”
“물론 그렇기야 하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어.”
“그럴 수가 없었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뭐 그거야 자네도 차차 알게 될 일이고. 그나저나 회장님께서 자네의 전무승진과 동시에 추가로 지분 일부를 증여하시겠다고 하더군. 들은 바로는 그게 대략 4퍼센트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럼 자네 지분이 총 12퍼센트가 되는 건가?”
“그렇습니다.”
“하면 이로써 자네 형을 앞서게 되는 상황이군.”
“......”
“그런 표정 지을 것 없네. 난 혹시나 자네가 그 의미를 모르고 있을까봐 해주는 말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