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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27화 (27/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7화

[장내에 계신 여러분. 앞으로 20분 후, 행사가 시작되겠습니다.]

한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있을 무렵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툭 내 어깨를 다시 건드린 합참의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내비치며 돌아섰고, 난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합참의장과 나눈 대화들을 다시 정리해 봤다.

‘AESA레이더의 개발을 이런 식으로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내가 생각했던 AESA의 적절한 개발 시기는 사실 지금이 아니었다.

물론 북의 미사일들에 대한 위기감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당장 그걸 요격할 수단이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탐지수단만 갖춘다고 해결 되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HVP시스템 구축으로 상황은 급변했고, 잘만 하면 앞으로 더 많은 분야에서 이익을 창출할 기회가 생겼다.

이지스함의 레이더는 물론 전투기와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까지.

물론 용도에 따라 그 개발 방향이 조금씩 달라지기야 하겠지만. 어쨌건 그 쓰임새만큼은 어마어마한 것이 바로 AESA. 즉 능동전자주사배열 레이더거든.

‘재심의를 통과해서 실제로 사업이 시행된다 해도 최소 1년. 하지만 개발기간을 단축하려면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해 둬야…….뭐지?’

한참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던 차, 저편에서 웬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사내 하나가 나를 보며 웃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혹여 현승이와 아는 사이였던가 싶어 어색한 미소로 응수하자 사내가 대뜸 나를 향해 똑바로 걸어왔다.

“진현승 팀장님? 축하합니다.”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얼굴이었다.

멍한 내 반응이 당황스러웠던지 사내의 얼굴에도 어색함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몇 년 전 리츠 호텔에서 열렸던 연말 파티에서 인사를 나눴었는데 기억을 못하시나 보군요. 전 S&U의 문지훈 상무입니다.”

한마디로 별 인연은 아니었다는 뜻이었다.

고작 스쳐 지나간 인연이면 기억의 조각에 남아 있을 리가 없었겠지.

당황스러운 것은 사내의 정체가 하필 S&U의 간부라는 점인데, 경쟁사인 것을 떠나서 난 S&U라면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대한민국의 차기 전차인 K2.

그 파워팩의 미션 개발에 도전을 했다가 내리 실패하여 막대한 국력을 낭비한 곳이 바로 그곳이니까.

“아…….”

물론 무기개발을 하다 보면 능력의 한계로 실패도 할 수 있다.

더군다나 K2파워팩 미션의 경우엔 방사청의 요구 성능이 너무 까다로웠다는 말도 있었고.

하지만 전차의 순간적인 기동능력은 생존과 직결되어있는 상황.

희생을 막기 위해선 요구 성능이 까다로운 것은 당연한 거고, 애초 독일의 뛰어난 파워팩 미션성능에 길들여진 군으로서는 그에 못 미치는 제품이 고와 보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S&U를 곱게 보지 않았던 것은 그들의 태도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능력부족은 인정하지 않은 채 언론 플레이를 통해 군의 오락가락하는 기준만을 탓했던 저들.

사실 정부가 기준을 낮춘 이유는 수출을 할 경우 반드시 파워팩의 국산화가 필요했기에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건만. 저들은 그걸 군의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몰아 면피를 시도했다.

“즐거운 파티가 되길 바랍니다.”

짧은 인사를 끝으로 돌아서려 했다.

무시를 당했다고 느낀 건가, 순간 사내가 도발적인 말을 뱉어냈다.

“혹시 그거 아십니까? 덕분에 우리 S&U의 손해가 막심해졌다는 것.”

“……무슨 말이죠?”

다시 돌아서선 사내를 똑바로 쳐다봤다.

처음과는 확연히 달라진 표정.

필시 저게 그의 본 모습일 거다.

“미국이 오로지 재우에게만 F-16 시리즈의 무장통합을 허용해버리는 바람에 우리가 개발 중인 지능형 합동직격탄의 개발이 무의미해졌다는 걸 알려 드리는 거죠.”

놈의 말은 정확히 나를 씹어대던 뉴스 기사들과 일치했다.

다시 말해서 놈이 그 뒷공작의 원흉이었다는 소리.

S&U가 뒷배일 것이라던 막연한 내 추측은 이로써 사실로 판명 났다.

“말에 어폐가 있군요. 난 분명 정당한 협상을 통해서 그걸 따낸 겁니다. 그리고 정말 필요하다면 S&U도 미국을 상대로 협상을 해서 인가를 받던지. 이런, 그건 힘이 들려나? 하긴, 매번 만들어내는 것마다 클레임이 걸리는 수준이면 뭐…….”

으득!

놈은 이가 부서지도록 턱을 앙다물었다.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워낙 조용조용히 나눴던 대화였던 터라 주변인들은 우리의 분위기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입매를 뒤틀고 다시 돌아서려는데, 이번엔 또 익숙한 얼굴 하나가 내 앞으로 가로막았다.

“오랜만이네, 현승 씨.”

“…….”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하필 이곳에서 현승이의 옛 연인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거든.

학창시절 숫기가 없던 현승이 놈은 그녀와의 만남에 매번 나를 끌고 가고는 했는데, 덕분에 그녀는 나에게도 익숙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표정이 왜 그래? 나 안 반가워?”

잠시 들었던 당황스러움은 곧장 가라앉았다.

막상 생각해 보니 난 현승이가 아닌 김준이라는 사실이 떠올랐기에.

다행히 표정을 눈치채지 못한 그녀는 여전히 화사한 미소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현지, 네가 여긴 웬일이야?”

“웬일은, 당연히 초대를 받았으니 온 거지. 우리 아빠가 군인이라는 것 잊었어?”

생각해 보니 전에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녀와 현승이. 그리고 내가 자주 가던 라면집에서.

당시 그녀의 아버지가 중부전선 어딘가의 부사단장으로 근무하는 덕분에 그녀는 혼자 자취를 한다고 했었지 아마.

당시 준장 계급이었으니 수완만 좋았다면 지금쯤 중장으로까지는 진급을 했을 거다.

“참, 두 사람 초면은 아니지? 4년 전 연말파티에서 내가 소개시켜줬잖아.”

말을 잇던 오현지의 손이 조금 전 나와 대화를 나누던 사내. 즉 문지훈 상무의 팔을 은근히 휘감았다.

순간 내내 나를 노려보고 있던 놈의 표정이 순식간에 돌변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제 알겠군.”

과거 현승이가 그녀를 포기했던 이유를.

당시 놈은 오현지의 복잡한 남자관계를 내게 토로하고는 했었고, 결국 어느 날엔가 그녀와의 이별 사실을 알려왔었는데, 이제 보니 그녀의 어장 속의 남자 중 하나가 바로 저 문지훈이었던 모양이다.

“기억 안 나?”

“글쎄, 워낙 오래 된 일이라서. 그럼 난 바빠서 이만.”

“어? 갑자기 어딜 가려고.”

오현지는 다급히 돌아서는 나를 향해 황당하다는 투로 소리쳤다.

무시한 채 걸음을 재촉했지만 끝내 따라붙은 그녀는 대뜸 내 소매 깃을 붙잡았다.

“뭐하자는 거지?”

멈칫!

그녀는 날 선 내 눈초리에 움찔했다.

그럼에도 끝내 손은 놓지 않은 채였고.

결국 휙 하고 소매를 털어내는 순간, 그녀의 입에서 뜬금없는 말이 뱉어졌다.

“희한하네.”

“뭐가?”

“방금 그 표정하고 말투가 왠지 꼭 예전 김준이랑 빼다 박은 느낌이었거든. 참, 그러고 보니 김준은 요즘 뭐해? 당시 하도 성격이 까칠해서 그랬다간 사회생활 제대로 못한다고 내가 충고를 해줬던 기억이 나는데. 설마 요즘도 그런 건 아니겠지?”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할 말 있으면 빨리해. 조금 있으면 행사 시작하니까.”

“무슨 말을 그렇게 서운하게 해. 난 단지 아빠가 현승 씨하고 이야기 좀 할 수 없겠느냐고 해서 부탁 좀 하러 온 건데.”

순간 그녀의 접근 의도가 뭔지 알 것 같았다.

얼마 안 있으면 군의 인사이동이 시작 되는 시즌.

하지만 4성 장군이 되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울까.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그녀의 아버지로서는 뒷일이 걱정이었을 거다.

“그런 건 네 애인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애인이라니, 누가? 설마 문지훈 씨를 말하는 거야? 뭔가 오해한 모양인데, 지훈 씨랑 난 그냥 친한 친구 사이야.”

피식.

대놓고 뱉어낸 비웃음에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르던 시절이었다곤 하나 현승이 놈이 고작 저 정도 인물에게 마음을 끓였었다니.

하긴, 그땐 나로서도 사람 보는 눈이 없었음은 마찬가지였으니 마냥 놈을 탓할 수만도 없다.

“방금 내가 준이 놈을 닮았다고 했었나?”

“……그게 왜?”

“생각해 보니 정말로 그런 것 같아서. 단지 말투와 표정만이 아니라 그 지랄 같은 성격까지도.”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내 입에서 험한 말 나오기 전에 당장 꺼지라는 소리야.”

“…….”

순간 그녀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차마 입을 떼지도 못하는 것으로 봐선 어지간히도 충격을 먹은 듯.

그런데 그때, 마침 저편에 있던 김 비서가 우릴 발견하곤 득달같이 달려왔다.

“여기서 뭐 해요, 현승 씨?”

“…….”

당황한 오현지는 동그란 눈으로 김 비서를 쳐다봤다.

한껏 도도한 표정을 지어 보인 김 비서는 슥 하고 오현지를 한번 훑어본다.

“아버님께서 곧 도착하신대요. 어서 가봐야죠.”

오현지의 눈은 그 말에 더 커다래졌다.

이러다간 자칫 눈이 튀어나오기라도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힐끗 그녀를 향해 다시 고개를 돌린 김 비서가 쐐기를 박았다.

“그런데 이분은 누구?”

나이스 김비서!

*******

“죄송합니다, 실장님. 아까는 분위기가 왠지 이상해서…….”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던 와중 김 비서가 나지막이 말했다.

내내 침묵하고 있던 내가 신경 쓰였던 건가.

미안하지만 난 지금 그 상황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아니요, 더 없이 강력한 방패였습니다.”

“그런데 왜 아무 말씀도…….”

“좀 생각할 문제들이 있어서요. 가는 동안 내내 고민 좀 해야 하는 것이니 말이 없어도 이해하세요.”

그 말에 김 비서는 안도의 한숨을 뱉어냈다.

혹여 또 내 상념을 깰까 싶어 조심하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니 괜한 웃음이 나왔다.

-그거 아십니까? 재우 탈레스 덕분에 우린…….

문지훈이 했던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놈이 나를 씹어대던 기사의 뒷배경이라는 사실도 마찬가지.

사실 이미 군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정립한 내 입장에서 S&U 같은 업체를 신경 쓸 이유가 뭐가 있을까.

문제는 놈이 적의를 드러낸 이상 한동안은 악연이 이어질 것 같다는 점이다.

‘쯧, 엔진 미션 하나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주제에…….대체 왜 군은 현우 로템에게 단독 개발권을 주지 않은 건지 모르겠네.’

그 점은 사실 좀 의외였다.

어차피 능력이 충분한 현우 로템을 K2 개발 사업주체로 선정한 마당에 왜 굳이 파워팩을 분리하여 발주했을까.

뭐 말로는 미션 기술력의 한계 때문이었다지만, 결과적으로 S&U역시 엄청난 삽질을 한 덕분에 예산은 몇 배가 더 소모가 되었지 않은가.

‘다행인 것은 지금은 개발업체를 선정하기 전이라는 것이지.’

역사적으로 K2전차의 본격적인 개발은 2003년에나 시작 된다.

물론 기초연구야 1995년도부터 시작 됐지만,1차 불곰사업으로 들여온 러시아의 T80U의 엄청난 성능에 충격을 받고 개발 방향을 돌렸던 결과.

그렇다는 것은 S&U가 파워팩 개발업체가 되는 것을 막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는 건데, 왠지 자꾸만 갈등이 생긴다.

역사대로 흘러가게 둬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먹어 버려?

사업 규모가 그 정도면 사실상 욕심을 낼 만은 하잖아.

“아무튼 능력도 안 되는 인간이 욕심은 많아서…… 그렇게 덜컥 아무거나 주워 먹으니 탈이 나는 거지.”

쿨럭!

순간 곁에 있던 김 비서가 사레가 들리기라도 한 것처럼 마른기침을 뱉어냈다.

의아한 마음에 쳐다보니 그녀는 어디서 가져온 건지 모를 조각 케이크를 입에 욱여넣고 있던 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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