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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23화 (23/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3화

“어서 와, 밥은 먹었니?”

김혜원 여사의 첫인사는 오늘도 ‘밥’이었다.

특이한 것은 그 단순한 인사치레가 그녀의 입에서 나오면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진다는 것.

확실히 그녀는 말에 진정성을 담는 능력이 탁월했다.

“어머님은 식사 하셨습니까?”

무심코 뱉어낸 말에 김 여사의 몸이 움찔했다.

고개를 갸웃한 순간, 그녀가 떨리는 눈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처음이네.”

“뭐가요?”

“현승이 네가 나를 엄마라고 불러준 것이.”

“…….”

“내 정신 좀 봐. 손부터 씻어야지?”

그녀는 괜한 말을 했다는 듯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착각이었을까, 돌아서는 그녀의 얼굴에서 얼핏 행복에 겨운 미소를 엿본 기분이었다.

“상황은 좀 어때?”

거실에 들어서자 진 회장이 대뜸 스마트 포탄의 개발 진척 상황을 물어왔다.

부품 공급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못 들었을 리는 없고, 왠지 본론에 앞서 꺼내는 형식적인 질문인 느낌이다.

“곧 군 관계들을 상대로 시제품 테스트를 진행 할 수 있을 겁니다. 설마 그걸 물어보시려고 부르신 겁니까?”

“그건 아니고…….”

진 회장은 말을 머뭇거렸다.

대체 무슨 할 말이 있기에 저토록 뜸을 들이는 거지?

말없이 빤히 쳐다보자 그가 헛기침을 뱉어내며 서랍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 들었다.

“확인 해봐.”

“이게 뭡니까?”

“증여신고서다. 내가 가진 탈레스 지분 중 4퍼센트를 네게 증여했다는 증서지. 내일쯤 증권거래소에 공시가 뜰 텐데, 그 전에 미리 알려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부른 게야.”

“…….”

이건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머릿속이 멍해지며 생각의 끈이 툭 풀리는 느낌.

기뻐해야만 할 일임은 분명한데, 왠지 마음속 한구석에서 허탈함이 몰려드는 상태가 한동안 지속됐다.

“표정이 왜 그래?”

“아…… 좀 당황스러워서요. 그런데 왜 이런 결정을 내리신 겁니까?”

나로선 이해가 안 가는 것이 당연했다.

처지가 처지였던 터라 이미 주어진 것 외엔 오로지 나 스스로가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피붙이는 결국 피붙이라는 건가.

아무래도 내가 그 중요한 사실을 잠시 간과했었던 것 같다.

“당황스러울 것이 뭐가 있어. 전에 말했잖아, 난 아직 탈레스의 주인을 정해놓은 적이 없다고. 그 마당에 출발 선상이 달라서야 되겠어?”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공평한 경쟁을 해야 한다면 당연히 가진 지분율도 동일해야겠지.

하지만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 버리면 그가 바라는 공평함은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되는 거다.

“옳은 말씀이긴 합니다만, 이 경우 앞으로는 형님이 불리해진다는 건 아셔야 할 겁니다.”

“무슨 소리야?”

“실은, 제가 지분을 매입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중이거든요. 그럼 당연히 출발 선상이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지분을 매입하다니. 매번 밑 빠진 독처럼 연구소에 투자하던 네가 그럴만한 여유자금이 어디에 있다고?”

진 회장은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불여일견이라고 했던가.

마침 증권사에 예치해둔 주식매입자금 통장을 펼쳐 보이자 그가 동그란 눈으로 쳐다봤다.

“1000억?”

“네,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하여 주가가 상승한다 해도 대략 2프로 가까이는 획득할 수 있는 금액이죠. 뭐 당장 매입을 시도한다면야 그보다 많은 수량을 확보할 수도 있겠지만 그거야 어쩔 수 없죠. 주요 이벤트를 앞두고 있는 회사 대주주의 지분증가는 분명 문제의 소지가 있으니까요.”

“…….”

그는 한참을 침묵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의아한 마음이 드는 순간, 난데없이 그의 입에서 한 회장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최근 한명호 회장이 네 후견인이 됐다는 소문이 파다하더니, 그새 돈 불리는 법을 배우기라도 한 모양이군.”

굳이 탓할 생각은 없다는 말투였다.

아니, 외려 옅은 미소가 지어지기까지.

혹시나 싶은 마음에 넌지시 운을 때봤다.

“만류하실 생각은 없으신 겁니까?”

“한 회장님 같은 양반과 교류하는 걸 만류할 이유가 뭐가 있어. 남들은 그 양반하고 연을 맺으려 안달이 난 판국에.”

“아니요, 제가 추가로 탈레스의 지분을 확보하는 것 말입니다.”

“…….”

그 부분에서 진 회장이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곧 입꼬리가 올라가는가 싶더니 들고 있던 내 통장을 슬그머니 건넸다.

“내 역할은 공평한 판을 깔아준 것으로 끝난 거야. 이후의 일이야 각자가 알아서 하면 되는 거고.”

그는 무심하게 말하곤 소파에서 일어섰다.

어느새 주방에선 김 여사가 식사준비를 마치고 손을 흔들고 있던 상태.

어차피 지분확보를 용인 받은 만큼 더 이상 그에게 할 말은 없었다.

아니, 아직 궁금한 것이 한 가지 남아 있기는 하구나.

“형님이 에어로스페이스로 이동한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앞서가던 진 회장이 그 말에 다시 돌아섰다.

마치 그걸 어떻게 알고 있었느냐는 듯한 표정.

이내 뭔가가 떠오른 듯 그의 눈매가 잔뜩 좁혀졌다.

“쯧, 비서실 입단속을 해야겠군.”

“그들을 다그쳐봐야 소용없습니다. 어차피 인사이동에 관한 정보는 그룹 내 모든 인물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문제라서 아무리 막아도 발 없는 말이 생겨나기 마련이니까요.”

“…….”

“그런데 왜죠? 소문에 의하면 형님이 직접 지원했다고 하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겁니까?”

“글쎄, 말로는 자체 전투기엔진 개발을 시도해보고 싶다고 하더군.”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의아한 점은 진 회장 같이 재우의 기술 수준을 죄다 파악하고 있는 인물이 왜 그걸 허락했느냐는 것.

표정을 눈치챈 듯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나도 알고 있다. 그래, 우리 주제에 자체엔진 개발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지.”

“그런데 왜…….”

“모터시치를 인수하겠다고 하더군. 그래서 기술 흡수를 시도할 생각인 모양이다.”

모터시치는 우크라이나의 항공기 제작사였다.

소비에트연방 시절엔 그래도 군의 수요로 근근이 버텨왔던 곳이었지만, 연방의 해체 이후 급격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곳.

최근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적자 폭이 워낙 커서 불과 수천억이면 인수가 가능한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는 하던데.

진현철이 하필 그곳을 욕심 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네 생각은 어때? 가능성이 좀 있을 것 같아?”

문제는 그게 쉽지만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막말로 나라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모터시치만 잡는다면 전투기 엔진 시장뿐만 아니라 대형 항공기 시장에 뛰어드는 것도 가능한 마당에.

그럼에도 단호히 미련을 접고 차후 자체 개발을 마음먹은 것은 오로지 미국 때문.

항공기 시장만큼은 눈에 불을 켜고 지키고 나서는 그들이 그걸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아니, 미국은 둘째 치고 러시아도 가만히 있지 않겠지.

“성공하길 바라야죠.”

그건 솔직한 심정이었다.

만약 내 예상이 틀렸고 그게 가능하기만 하다면 우린 단숨에 대형 민항기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 가능하니까.

아니, 단지 민항기뿐만 아니라 모터시치가 가진 전투기 엔진기술까지도 얻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인 셈이지.

하지만 그게 정말로 가능할까.

미국의 욕심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도무지 희망을 가지기가 힘들다.

***

[장내에 계신 귀빈 여러분들께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오후 2시부터 스마트 자주포탄 GX-1과 5인치 함포용 SX-1의 성능 테스트가 진행될 예정이오니 내빈들께서는 속히 제2 전술 훈련장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열흘 후, 드디어 인천에 소재한 해병대 전술 훈련장에서 스마트 포탄의 성능 시험이 개최됐다.

테스트를 위한 투발 수단으로는 최근 삼정 테크윈이 개발 중에 있던 K-9 자주포의 시제 차량이 동원 되었고, 덕분에 이용문 회장 역시 참관인으로 초대를 받았다.

“저 스크린은 뭐지?”

바쁜 와중에도 참석한 이용문 회장은 훈련장 한편에 마련된 거대한 스크린에 관심을 보였다.

“오오!”

비단 그만이 아닌 장내에 몰려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뜬금없이 등장한 거대한 스크린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상태.

의문을 해소해 주려는 듯 곧 스크린에선 영상이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거대한 스크린에 비춰진 탁 트인 바다의 모습에 일제히 탄성을 내질렀다.

“저기가 어디지?”

“진해 앞바다입니다. 현재 그곳에 있는 해군기지와 강화에 소재한 무인도를 동시에 생중계 중이죠.”

“강화도야 자주포탄의 탄착점이니 그렇다 쳐도, 진해는 뭣 때문에?”

“스마트 자주포탄의 성능 테스트가 있은 후 곧바로 127미리 함포용 스마트 포탄도 성능 시험을 할 예정이거든요.”

“테스트를 한 번에 진행한다고?”

이용문 회장은 놀랍다는 듯 되물었다.

“어차피 개발이 동시에 끝난 상황이라서 굳이 두 차례에 걸쳐 진행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 가뜩이나 바쁜 사람들을 여러 번 부르는 것도 사실 실례긴 하지. 그런데 저 구축함은 처음 보는 함정 같은데?”

“DDH-972 을지문덕 함입니다. 약 두 달 전쯤 취역한 구축함이라서 아직은 해상적응 훈련을 진행 중이죠.”

“이제 막 취역한 구축함을 시연에 동원했다고?”

“그게 실은, 지금 해군은 해상 훈련이 한창입니다. 그 탓에 5인치 함포를 장착한 구축함을 찾기 힘들었던 와중에 다행히 여기 계신 이동욱 연합사 부사령관께서 섭외를 해주셨습니다.”

곁에서 대회를 듣고 있던 이동욱 대장은 미동조차도 없었다.

마치 자신의 공을 내세우고 싶지 않다는 듯.

의외였던 걸까, 그를 쳐다보는 이용문 회장의 눈빛이 반짝 빛을 발했다.

[오랜만이군요, 미스터 진]

오늘 성능 테스트엔 미 국방부의 마이클 중장도 초대된 상태였다.

애초 스마트 포탄의 개발 목적이 우리 군보다는 미국으로의 수출을 염두에 둔 것이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

의외인 것은 그의 반응이었는데, 행사를 알린 지 불과 사흘 만에 한국으로 날아온 그는 꼬박 사흘을 더 주한미군 캠프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이었다.

쉽게 말해서, 미 국방부 내에서 우리 재우탈레스의 위상이 그만큼 향상된 상태라는 거지.

[마이클 중장께서 이렇게 단숨에 참관을 결정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무슨 그런 말을…… 미스터 진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무기라면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죠.]

마이클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미리 보내주었던 카탈로그를 통해 포탄의 제원과 성능은 그도 이미 파악을 하고 있을 터.

그럼에도 저런 눈빛을 보인다는 건 달리 기대하는 뭔가가 있다는 증거다.

[한 가지 주지하셔야 할 점은 오늘 성능 시험에 동원된 포탄에는 상업용 GPS가 장착 되었다는 점입니다. 즉, 공산오차가 군용 GPS와는 차이가 크다는 거죠.]

[그건 참고할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마이클은 변명처럼 뱉어낸 내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사이 시연에 동원된 자주포가 연병장을 향해 들어서고, 곧 포신이 들리며 서쪽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탄착지점이 어디라고요?]

[여기서 대략 100킬로미터쯤 떨어진 서해상의 무인도입니다. 사실 최대사거리는 80킬로미터지만 극한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테스트 거리를 연장한 상태죠.]

[그러다 실패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우린 고사하고 대한민국 국방부에 좋지 않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만큼 자신이 있기에 시도하는 겁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크린에 섬 하나가 비쳤다.

긴 백사장이 유독 눈에 띄는 곳.

조금 후 확대된 화면에선 백사장 한가운데에 서 있는 소형 승용차 가 등장했다.

[저 차량이 타겟이라고요?]

마이클은 당황한 눈치였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그가 눈을 끔뻑이며 나를 쳐다봤다.

[상업용 GPS라면서요. 고작 그걸로 저런 작은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럼 대체 군용 GPS를 장착하면 오차범위가 얼마라는…….]

[현재 공산오차는 6미터 내외입니다. 하니 군용을 장착했을 경우엔 그 절반이하라고 봐야겠죠.]

[……상업용을 장착하고도 6미터라고요?]

턱을 떨어트린 것으로 봐선 꽤나 놀란 모양이었다.

하지만 벌써 그런 반응이면 곤란하지.

난 마침 대기 중이던 직원을 향해 수신호를 했고, 조금 후 백사장에 서 있던 군용 트럭 한 대가 승용차에 긴 체인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뭘 하려는 겁니까?]

놀란 마이클이 즉시 나를 쳐다봤다.

이게 바로 내가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것.

다시 대기 중이던 직원을 향해 한차례 수신호를 더 보낸 후 그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야 타겟을 이동시켜야 하니까요.]

[타겟을 이동시키다니. 왜요?]

[그야 당연히 테스트를 위해서죠. 실은 오늘 있을 성능 테스트는 고정된 표적이 아니라 이동 표적을 타격하는 겁니다.]

[무슨! 고작 155미리 포탄으로 이동 표적을 타격한다고요? 그럼 단순히 사거리 연장과 정밀 타격만을 목표로 개발된 제품이 아니라는 겁니까?]

그야 물론이다.

겨우 고정 타겟을 파괴하는 것만을 목표로 했다면 애초 그 지랄 맞은 개발과정을 거치지 않았겠지.

아마 조금 후면 그도 진정한 가성비가 뭔지 깨닫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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