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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22화 (22/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22화

끝내 시치미를 떼는 이기호 회장의 얼굴에선 당황스러움이 묻어나왔다.

스스로도 그걸 느낀 걸까, 한참을 비릿하게 웃고 있는 나를 지켜보던 그가 돌연 주변에 있던 사내들을 향해 무언가를 속삭였다.

“네, 그럼…….”

언질을 받은 사내들은 즉시 김치수 대표를 이끌고 경매장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기호 회장은 이번엔 한 회장에게 양해를 구하더니 나를 조용한 곳으로 이끌었다.

“후우…… 당신이 방위산업체 관계자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군요. 대체 내가 불곰사업과 관련되어 있다는 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요.”

“국가의 이익을 위해 나섰다가 낭패를 보신 김치수 씨에게 보상을 해주시려 노력을 하는 인물이라면 당연히 불곰사업과 연관이 있는 분 아니겠습니까?”

“…….”

굳이 김치수의 사건. 즉 순항미사일의 밀수입을 시도한 사건에 대해서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국가 기밀이나 다름없는 사안을 거론해봐야 좋을 일은 없을 테고.

어차피 그걸 말하지 않아도 이 회장은 이미 내가 그 사실을 돌려 말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 같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가 너털웃음을 내뱉었다.

“허허, 이것 참…… 좋습니다, 그럼 2차 불곰사업에 대해선 어디까지 알고 있습니까.”

“글쎄요, 1차에서 수입한 T80U전차에서 꽤 짭짤한 기술습득을 거둔 우리 정부는 2차에서도 다양한 무기들을 받기를 원했다는 정도? 하지만 러시아가 거부했고, 결국 2차에선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과 무레나 공기부양정. 그리고 Ka-32A를 소방용 헬기로 개조하여 들여오기로 예정 되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죠.”

“…….”

“그리고 정부가 굴복한 이유가 결국 김치수 씨의 사건으로 열 받은 러시아 정부를 더 이상은 설득하지 못한 결과라는 것도.”

그는 한참을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대체 내가 그런 자세한 내막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는 질문 따위는 나오지 않았다는 것.

뭐 사실 내가 그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할 거라는 보장도 없는 상황이니 외려 현명한 처사다.

“죄송하지만 이 상황에서 회장님께 그런 능력은 없다는 변명은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혹시나 싶어 쐐기를 박았다.

딱히 그럴 생각은 없었던 듯 이기호 회장의 입에선 헛웃음이 뱉어졌다.

“그런 변명이 통할 상황이었으면 끝까지 부정했겠죠. 한데 무슨 이유로 책임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겁니까?”

“그야 당연히 이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죠. 아니, 정확히는 저와 이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해야겠군요. 당장 자세한 말을 해드릴 수는 없고, 회장님께선 그저 저와 책임자와의 만남을 주선만 해주시면 됩니다.”

이기호 회장은 말없이 나를 쳐다만 봤다.

결심이 선걸까, 이내 손을 내미는 그의 얼굴엔 옅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좋습니다, 이것으로 서로 간에 빚은 없는 셈 친다면. 대신 시간적인 여유는 좀 필요합니다. 하필 지금 그 책임자가 러시아 출장 중이라서 두어 달 후쯤에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거든요.”

“그 정도야 충분히 기다릴 수 있습니다.”

흔쾌히 대답하곤 손을 마주 잡았다.

그사이 궁금함을 못 참은 한 회장이 우릴 향해 다가왔고, 이기호 회장은 즉시 표정을 바꾸며 내게 속삭였다.

“그런데, 미스터 진으로서는 손해 아닙니까? 조건이 겨우 그것뿐이라면.”

겉으로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계획이 성공한다면 족히 수조 원에 달할 이익을 창출 할 수 있을 터.

고작 수십억 쯤 포기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아니, 이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저들을 만나 그 기회를 잡게 된 것이 외려 감사할 따름이지.

“글쎄요, 그게 겨우라는 취급을 받을 일일지 아닐지는 두고 봐야 알겠죠.”

***

[1998 타경 80881의 낙찰자는…….]

낙찰자는 결국 김치수였다.

영문을 모르는 한 회장은 몇 번이고 내게 순순히 양보를 한 이유를 물었지만, 차마 그것만은 밝힐 수가 없었다.

“뭐 기회는 많으니까요. 그나저나 이기호 회장님께선 제 생각보다 정부와 꽤 밀접하신 것 같군요.”

“쯧, 내가 늘 그 친구를 타박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 돈 만지는 놈이 정권하고 가까워서 좋을 것이 뭐가 있겠어.”

한 회장은 자신의 철학을 강조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기호 회장의 경우는 그 기준을 가져다 붙이기에는 뭔가 좀 애매한 느낌이다.

“아무튼, 이거 상황이 좀 복잡해졌는데, 어쩌면 좋겠나.”

불현듯 치고 들어오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쳐다봤다.

순간 그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뱉어냈다.

“나 때문에 결국 경매를 포기했잖아. 결과적으로 보면 난 첫 약속부터 지키지 못한 셈인데, 뭐로 그 보상을 해줬으면 좋겠냐는 거야.”

사실 보상은 이미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애초 한 회장의 면을 살려주자는 의지에서 포기를 한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그가 굳이 자신의 탓으로 생각한다는데, 굳이 만류할 이유가 없겠지.

잠시 그를 통해 얻어낼 것이 뭐가 있을까를 생각해 봤다.

“흠…….”

한참을 고민하던 와중 불현듯 생각이 하나 스쳤다.

어차피 이 시기에는 웬만한 경매 물건들은 사두기만 하면 오르는 것이 진리.

그럼 여유자금만 더 있다면 이익 창출을 더 극대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정 그게 마음에 걸리시거든 무이자로 돈 좀 빌려주십시오.”

“돈을 빌려달라니. 갑자기 왜?”

“막상 생각해 보니 회장님께서 제시하신 열 번의 기회를 꼭 순서대로 소모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요. 지원만 해주신다면 동시 경매를 진행해볼 생각입니다.”

“…….”

한 회장은 그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내 말이 딱히 틀린 것도 없지.

그는 분명 열 번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고만 했지, 그 기회를 꼭 순서대로만 제공하겠다는 말은 없었다.

“한 번에 여러 채의 건물을 잡아두겠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자네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경매라는 것이 낙찰만 받는다고 죄다 이익을 발생 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물건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물건 분석에 대한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사실 제가 회장님을 필요로 했던 것은 분석이 아니라 회장님의 힘입니다. 누구도 감히 내가 점찍은 것에 수저를 올리려는 시도조차도 하지 못하게 하는 그 힘 말입니다.”

“…….”

그의 미간이 순간 씰룩댔다.

하지만 사실이 그런 것을 어쩌겠어.

혹여 기분이 상한 건가 싶었지만 팔자 주름이 미동조차 없는 것으로 봐선 그건 아닌 모양이다.

“물건 분석에 자신이 있다?”

“물론입니다.”

“이것 참…… 좋아, 어차피 약속을 못 지킨 것은 나니까 특별히 석 달 정도는 무이자로 빌려주지. 얼마면 되겠어?”

석 달이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어차피 지금도 슬슬 부동산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기 위해 꿈틀 대기 시작하는 시점이니까.

특히나 움직임이 더 심한 강남을 위주로만 공략한다면 실패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왜 대답이 없어? 얼마면 되겠…….”

“천억 정도면 되겠군요. 그 정도면 제가 보유한 여유자금과 합해서 어지간한 대형 빌딩 두세 개쯤은 동시낙찰이 가능할 테니까요.”

“천, 천억?”

***

“실장님! 첫눈이에요”

11월의 어느 날, 김 비서가 호들갑을 떨며 집무실로 들어섰다.

무심코 쳐다본 창문 밖 하늘에선 정말로 눈송이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세상은 그새 하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스윽.

1998년도의 달력도 이젠 단 두 장만 남아 있었다.

내가 이 세계로 회귀를 한 것도 오늘로서 꼬박 10개월째.

워낙 다양한 일들을 많이 겪어서인지 희한하게도 내겐 그 10개월이 마치 열흘 같게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한 회장님과의 첫 만남도 벌써 석 달 전이군.’

정확하게 따진다면 석 달이 조금 못 미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석 달 동안 그의 도움을 통해 이루어진 경매로 내 현금성 자산은 총 1000억까지 불어난 상태.

이건 차후 지분매입을 위한 종자돈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뭐, 회사의 실적증가로 인한 상승분을 감안해야 하지만 그거야 어쩔 수 없지.”

“네?”

“아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신세 한탄 좀 한 거니까. 그나저나 눈이 이렇게 많이 와서야 어디 움직이기도 힘들겠는데요?”

얼핏 본 창밖의 거리엔 차량들이 뒤엉켜 있던 상태였다.

상황이 이렇다면 외부활동을 하는 것은 무리.

아무래도 오늘은 유선 상으로만 업무 진행을 해야 할 분위기다.

“혹시 창원공장에서 별다른 소식은 없었습니까?”

“네,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습니다. 예정대로 센서들의 모듈 생산이 본격화 돼서 입고 중인 상태고요.”

삼정에게 의뢰했던 센서 모듈 개발은 성공적으로 끝난 상태였다.

부품 입고가 시작됐다면 곧 시제품이 제작된다는 의미.

그럼 대략 열흘 후쯤이면 관계자들의 참관하에 성능 테스트를 진행하는 것이 가능할 거다.

“곧 있을 성능 테스트 준비에 실수가 있어선 안 됩니다. 그 점 명심하시고 공장에도 최선을 다해 준비해달라고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서둘러 방을 나서는 김 비서를 뒤로하고 무심코 책상을 쳐다봤다.

“흠…….”

언제 가져다 놓은 걸까, 책상에는 연구소의 중간 결산보고서가 올라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부터가 각 기업들이 결산을 준비하는 시기인가?'

막상 결산을 위한 보고서들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내 자산의 총 규모를 체크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회귀 이후 내가 대체 얼마만큼의 자산을 증식할 수 있었는지.

생각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고, 마침 자산 목록들을 정리해 두었던 수첩이 눈에 뜨인 터라 곧바로 확인에 나섰다.

‘현재 보유 중인 탈레스 지분이 총 4퍼센트. 이걸 현금으로 환산하면 대략 1200억 정도. 그리고 당장 가진 현금이 1000억에다가 지금까지 연구소에 투자한 돈이 대략 600억 정도니까…….’

기존에 보유 중이던 부동산들을 제외한 내 자산의 규모는 대략 2800억 정도에 이른 상태였다.

하지만 그거야 숫자상의 재산일 뿐, 차후 지분매입을 위해 소모될 금액을 생각하면 사실상 여유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지분 확보만 아니었으면…… 뭐 그래도 실망할 일은 아닌가? 이젠 연구소에서도 수익이 발생하고 있으니까.’

위안이 되는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돈 잡아먹는 귀신이던 연구소가 이젠 본격적인 수익 발생 시점에 접어들었다는 것.

특히나 연구소의 성장은 놀라울 정도였는데, 수익의 증가율이 매달 100퍼센트씩 상승 중인 것은 꽤 고무적인 변화였다.

‘고작 일곱 개 품목만이 상용화 된 시점에서 월 50억의 순이익이라…… 이런 성장세라면 개발품목 중 3분의 1이 상용화되는 내년 말이면 순이익을 최소 2000억까지도 노려볼 수도 있겠네.’

그 정도면 이 시대에서는 여느 대기업 못지않을 수준일 거다.

아니, 올 한해 재우에어로스페이스가 올린 순이익이 1500억 정도였으니 내년쯤이면 내 연구소가 최소 에어로스페이스만큼은 넘어설 수 있다는 의미.

이대로만 계속 고속성장을 지속한다면 차후 본격적인 탈레스의 지분 확보에도 막대한 도움이 될 거다.

'쯧, 연구소를 당장 상장할 수만 있다면 한 방에 해결이 되기는 하는데…….'

그게 가능했다면 최소 조 단위에 이르는 여유자금을 발생시킬 수 있었을 거다.

보유 중인 기술들이 워낙 파급력이 큰 데다 가진 특허의 수도 만만치 않거든.

하지만 지금은 상장요건도 충족하지 못할뿐더러 시기적으로도 적절치 않았다.

'결론적으로 탈레스의 2대 주주를 노리는 것은 연구소가 수익을 극대화하는 내년 말쯤에나…….'

그때, 뜬금없이 휴대폰이 울리더니 진 회장의 이름이 액정에 떴다.

왜일까, 잠시 스친 의아함을 뒤로하고 전화를 받자 그가 착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급히 할 말이 좀 있으니 시간 되면 퇴근 후에 집으로 좀 오너라.

"무슨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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