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5화
두 사람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말을 잇기를 재촉하는 눈빛이었지만 난 대답 대신 카페주인을 쳐다봤다.
끄덕.
“그게 무슨 소리지? 미국이 우리에게 GPS를 판다니? 뭣 때문에?”
답답했던 듯 이동욱 대장이 나섰다.
순간, 근처에 있던 대형 TV의 전원이 켜지며 내가 카페주인에게 미리 건네줬던 녹화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쿵! 쿠구궁!
“미안하지만 여기 TV 좀 잠시 꺼주면…….”
짜증스럽다는 듯 카페주인을 향해 소리치던 이동욱 대장의 시선이 TV 화면에 꽂혔다.
당연하겠지.
저건 내 목적에 맞게 고르고 골라내어 녹화를 뜬 영상이니까.
미군이 전 세계를 상대로 ‘정밀유도폭탄’을 처음 선보이는 장면.
고작 천만 원도 안 하는 멍텅구리 폭탄에 유도 킷을 달아 미사일을 대처하는.
“맙소사!”
역시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목표물을 폭격하는 멍텅구리 폭탄의 모습에 넋이 나간 두 사람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채근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TV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방금 뭐였지?”
“선배님도 보셨습니까? 분명 재래식 멍텅구리폭탄 같았는데, 어떻게 저렇게까지 목표물을 정밀하게 폭격하는 거죠?”
반응으로 봐선 그간 저 장면만큼은 주목하지 않았었던 듯싶었다.
뭐 사실 대부분의 뉴스들이 B2 스텔스 폭격기의 어마어마한 가격과 성능에만 초점을 맞추며 호들갑을 떨었으니 당연할 밖에.
그나저나 아무리 생각해도 타이밍 하나는 기가 막혔다.
애초 저 ‘정밀유도폭탄’의 기본적인 개념이 내가 개발 중인 ‘스마트 포탄’과 별반 다를 것이 없기에 이러면 내가 효용성을 주장하기가 편해지거든.
“저건 JDAM이라고 합니다. 일반 범용폭탄에 정밀유도키트를 장착해서 미사일을 대처한 것이죠.”
“폭탄으로 미사일을 대체한다고?”
김태익 중장은 유독 욕심을 드러내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가성비를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
사실 역사적으로도 우리 군은 그 가성비에 반해 결국 F15K를 도입할 무렵쯤엔 대량의 JDAM마저 함께 도입을 했었다.
“이거 원…… 공군이 저걸 보면 아주 침을 흘리겠군.”
“공군뿐이겠습니까? 당장 저부터 욕심이 나는데요.”
두 사람의 입에선 연신 탄성이 흘러나왔다.
지금이 ‘스마트 포탄’의 필요성을 역설할 최고의 기회.
준비해왔던 서류들을 꺼내어 그들에게 슬그머니 건넸다.
“실은 오늘 김태익 중장님께 만나자고 했던 이유가 바로 저것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건 무기사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선포하는 장면입니다. 막말로 천만 원짜리 폭탄이 미사일을 대체하는 상황이면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말이 딱히 어색한 것은 아니죠.”
“그야…….”
“그런데 만약 우리가 저런 무기를 가지게 된다면 어쩔 것 같습니까.”
“…….”
“예를 들면 자주포탄과 함포용 포탄에 저런 정밀유도 기능이 있다면?”
“응?”
“게다가 사거리가 무려 150킬로미터 이상이어서 적당한 후방에서도 북한의 장사정포들을 미사일처럼 격파가 가능한 물건. 아! 기왕이면 활공 기능까지 있어서 산의 배면에 위치한 적까지 섬멸이 가능하다면 더 좋겠죠?”
“…….”
두 사람은 그게 무슨 헛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내가 내민 서류를 쳐다봤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동시에 고개를 든 그들은 아직도 TV 화면을 장식하고 있는 정밀유도폭탄의 투하장면과 내 서류를 번갈아 쳐다보기 시작했다.
“무슨! 이건 투발 수단만 다를 뿐 저 JDAM이라는 물건과 같은 개념이잖아! 자네가 이런 걸 개발 중이라고?”
“그렇습니다. 이미 핵심 소재의 개발까지 성공한 상태라서 몇 개월 후엔 테스트 과정을 구경하실 수가 있을 겁니다.”
“…….”
흔들리는 시선들이 괘나 볼만 했다.
하지만 정작 지금부터 나올 말들이 저들에겐 더 반가운 주제일 거다.
“실은 제가 개발 중인 스마트 포탄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선 반드시 군용 GPS가 장착되어야만 합니다.”
“…….”
“그 때문에 저는 이걸 미군에 판매하는 조건으로 그들의 군용 GPS를 요구할 생각입니다. 그럼 굳이 철갑탄 제조기술을 미국에 팔아야 할 이유가 없겠죠?”
“오오!”
이동욱 대장은 탄성을 뱉어냈다.
뭣 때문일까, 처음엔 함께 놀라움을 표하던 김태익 중장이 문득 TV 화면을 손가락질하며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하지만 저것과 이 스마트 포탄이 같은 개념에서 시작됐다면, 결국엔 미군도 이걸 개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잖아. 그때는 딜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역시 김태익 중장은 핵심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개념이 같다고 해서 정말로 두 물건을 같은 선상에 올려놓는 것은 람보르기니와 마티즈를 똑같이 취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니요, 개발하지 못합니다. 기본적인 개념은 비슷하지만 디테일이 전혀 다르거든요. 단적인 예로 그들에겐 작은 포탄에 정밀 기기들을 욱여넣을 능력도 없고, 또 포구압력에서 기기들을 보호할 핵심소재기술도 없습니다.”
두 사람은 그 말에 한참을 더 서류만 쳐다봤다.
이미 핵심 소재의 개발이 완료 되었음을 나타내는 대목에서 그들의 손이 동시에 콱 쥐어졌다.
“이게 가능하다면 군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확보를 할 걸세.”
이로써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아마 이제부터는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저들이 내 나팔수가 되어 주겠지.
족히 수조 원에 달하는 사업이 드디어 깃발을 올리는 순간이다.
***
얼마 후, 김태익 중장을 중심으로 스마트 자주포탄의 소요제기가 시작됐다.
내 예상대로 코소보 사태에서 미군이 보여준 정밀유도폭탄의 가성비에 놀란 군 수뇌부들은 즉시 위원회를 개설됐고, 새로 합참의장 자리에 오른 오중근 대장은 단 2개월 만에 소요를 확정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고작 몇 푼 안 되는 북의 장사정포를 파괴하려고 비싼 미사일을 쏴대는 것은 수지 타산이 맞지 않음을 수뇌부들도 인식하고 있는 거지. 게다가 합참의장께서 육군 출신이라서 정밀유도포탄에 대한 중요성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고. 아마 그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을 거야.
김태익 중장은 모든 공을 새로 선출된 합참의장에게 돌렸다.
그렇다고 내가 그의 노력을 모를까.
식사라도 대접을 하고 싶은 마음에 몇 번이고 만남을 요구했지만, 그는 얼마 전에 비리로 날아 가버린 한동훈 합참의장을 예시로 들며 끝내 내 제안을 거절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진현승님 실장님? 삼정의 이진수 팀장입니다.”
어느덧 삼정에서도 낭보가 날아들었다.
센서의 개발은 거의 마무리 단계.
그렇다 해도 그걸 모듈화 하는 작업은 서너 달쯤 후에야 진행 될 테니 당분간 연구소의 일에 매진할 시간쯤은 벌게 된 상태였다.
“어서 와.”
오랜만에 마주한 희원의 얼굴은 거의 산송장이 되어 있었다.
그사이 개발이 완료된 과제만도 스무 개 분야에 걸쳐 총 서른 두 개.
솔직히 온전한 모습이라면 그게 더 이상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걸 어쩌지?
난 지금 단순히 위로 차원에서가 아니라 또 하나의 과제를 던져주러 온 건데.
“이런 미친! 너 지금 우리 꼴 안 보이냐?”
“알아, 하지만 딱 2년 만 눈감고 참아. 그럼 후한 대가가 주어질 테니까.”
“2년은커녕 2개월도 더 못 버티겠다. 얌마! 우리 지금 여름휴가도 못 가고 있다고.”
스윽.
불평하는 그를 향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가늘어진 눈으로 그걸 살펴보던 희원은 어느 순간 눈을 부릅떴다.
“스톡옵션?”
“그래, 연구원들 전부에게 지분 일부를 할당해줄 생각이다. 아마 3, 4년 후면 지금보다 최소 백 배 이상은 뛰어 있을 거야.”
“오! 시발.”
죽어가던 화초가 단숨에 되살아났다.
역시 돈이야말로 사람을 움직이는 최고의 수단이지.
웃으며 놈의 어깨를 두드리자 그가 획 하고 나를 쳐다본다.
“그래서, 이번엔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걸 개발하겠다는 거야?”
“탄소섬유. 그것도 T1500급.”
“미친! 일본 도레이사도 기껏 1000급을 못 넘어가고 있는 마당에?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장비는 어쩔 건데? 탄소섬유 제작에 필요한 장비가 얼마나 비싼지 알고는 있는 거냐?”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염려하지 말고, 넌 관련 LAB에 미리 언질이나 해둬.”
“젠장, 안 그래도 죽겠다고 난리인 사람들인데…… 도망이나 안 가면 다행이다.”
불평은 했어도 표정만은 밝아 보였다.
역시나 돈의 힘이란.
왜 재벌들이 그렇게 모든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 했던 건지 조금은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그나저나 또 핵심 소스는 현승이 네가 제공하는 거냐?”
“그야 물론.”
“돌겠네. 너 혹시 악마에게 영혼을 판게아니라 너 자신이 악마였던 거 아니야?”
“의심스러우면 네 영혼을 걸고 한번 시도해보던지. 말하고 보니 그거 괜찮네. 어디 한번 제시해봐. 얼마에 사줄까?”
“이런 미친…… 백억!”
“오케이. 계약은 성립 됐어. 참고로 그 백억은 4년 후에 받을 수 있을 거다. 그 스톡옵션을 행사할 때쯤.”
“……진심이냐?”
“어느 부분이?”
“됐다, 앓느니 죽지. 그나저나 정말로 T1500급이 개발 되면 일본 애들 얼굴 볼만하겠네.”
볼만한 정도가 아니라 아마 썩어 문드러질 거다.
전투기의 일체형 날개 제작에 필요한 탄소섬유 기술은 오로지 일본만이 보유중이었던 상태.
그 마당에 무려 1.5배나 더 강도가 높은 것을 우리가 개발했다고 하면 아마 입에 거품을 물고 사실 확인을 위해 달려들 거다.
“그나저나 연구소 보안은 철저히 하고 있는 거지?”
“당연하지. 매일 당직 보안요원들의 수만도 30명이 넘는 것은 물론, 건물 자체가 아주 요새다 요새.”
“자료 보관실은?”
“서버들도 죄다 이중 삼중으로 잠겨있는 상태야. 하다못해 핵심 자료들이 담긴 방은 죄다 네가 은행 금고 못지않은 규모로 강철을 처발라 놨잖아.”
“그럼 내부 단속은?”
“그것도 마찬가지야. 워낙 철저하게 분업화를 해놔서 팀 전체를 죄다 포섭하지 않으면 기술유출은 불가능해.”
그럼에도 조심 또 조심해야만 한다.
회귀 전 내가 죽은 원인이 바로 내부배신에 의한 결과였으니까.
같은 경험을 또 하는 것은 사양하고 싶다.
“그래, 수고 많았다.”
“뭐야, 벌써 가려고? 밥이나 사주고 가.”
“미안하지만 선약이 있어서.”
“누구랑? 너 설마 나는 여기다 처박아두고 연애질이나 하고 다니는 건 아니겠지?”
“연애는 무슨. 얼마 전 준이 놈 소식 좀 알아보려고 업체를 섭외했었는데, 아침에 그곳에서 전화가 왔어.”
“오! 그럼 소식 듣는 대로 나한테도 전화 좀 줘.”
희원도 김준. 아니 나에 관한 소식이 궁금하긴 했었나 보다.
하긴, 이렇게까지 소식이 없는 것이 분명 정상은 아니니까.
실은 나도 그 일말의 불안감 때문에 이렇듯 사람을 사서 알아보는 지경까지 이른 거다.
“여긴가?”
이후 내가 향한 곳은 신사동에 소재한 4층짜리 건물이었다.
겉으로만 보면 그저 평범한 여느 건물들과 다를 바 없는 곳.
하지만 그곳은 전직 안기부 출신 요원들이 주축이 되어 사람을 찾아주거나 정보를 사고파는, 일종의 종합정보거래처였다.
“진현승 씨?”
내가 이곳을 알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이용문 회장 덕분이었다.
미국 곳곳에 뻗어있는 삼정그룹의 미국지사들을 통해서 김준의 소재를 파악을 부탁한 것이 몇 차례.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매번 ‘소재파악 불가’였고, 보다 못한 이회장이 소개를 해준 것이 바로 이 정보그룹이었다.
“유선 상으로 알려드리기가 껄끄러운 부분이 있어서 직접 뵙자고 했습니다.”
정보그룹의 책임자인 듯 보이는 사내는 연신 뜸을 들였다.
뭔가 안 좋은 소식이라도 있는 걸까?
가뜩이나 에어컨마저 방방하게 틀어 놓은 터라 괜한 한기가 파고든다.
“실은, 말씀하신 김준 씨는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공립 공동묘지에 묻혀 계시는 걸로 밝혀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