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2화
“뭔 소리야? 기껏 개발해놓고 그걸 왜 안 팔아?”
희원은 황당하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적어도 우리 주변국들에게는 안 팔아. 그들이 탄탈륨 미세코팅 기술을 원한다는 건 자주포의 연사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포신 개량을 시도하고 있다는 거니까. 언제 적으로 변할지 모를 곳들에게 그런 중요한 기술을 줄 수는 없잖아.”
“얌마! 제시한 금액이 얼마인 줄은 알아? 무려 100억이야 100억.”
“그들 아니라도 그 정도 돈 줄 곳은 많아. 젠장, 그런데 이거 아슬아슬했네.”
“뭐가?”
“중국이나 일본이 벌써 그 기술에 관심을 가질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었거든.”
애초 그들이 자체적인 자주포 포신의 코팅기술 개발을 시도하는 것은 2000년대 초반이었다.
뭐 시도라고 해봐야 중국의 경우는 이후 개발에 성공한 독일의 기술을 훔치려는 것에 주력했고, 그나마 일본은 접근 방향은 근접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역시나 실패.
한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이 1998년이라는 사실이다.
즉, 역사보다 3년이나 앞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지.
혹여 내 회귀로 인해 나비효과 같은 것이 생긴 걸까.
만약 그렇다면 앞으로 또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기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무래도 소재 개발을 좀 더 서두르는 편이 좋겠다. 연구원들 채찍질 좀 해서 지금 진행 중인 과제들 속도 좀 올려봐.”
희원은 그 말에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보나마나 또 신세 한탄이 나올 차례.
불쑥 통장 하나를 내밀어 놈의 입을 틀어막았다.
“예정된 날짜보다 연구 결과를 단 하루라도 앞당기는 팀에게는 무조건 1억씩 상여금이 지급 될 거다. 네 말대로 어차피 핵심 소스는 내가 제공했으니 어려울 건 없잖아.”
“오 시발!”
희원은 언제 그랬냐는 듯 덥석 통장을 받아들었다.
웃으며 돌아서려는 차, 그가 문득 명교수를 거론했다.
“그런데 명교수님은 정말 우리연구소로 초빙 안 할 거냐?”
“그분은 탈레스에 남아계셔야지.”
“아니 왜? 그분이 있으면 개발속도가 장난 아니게 붙을 텐데. 솔직히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도 명교수님이 그렇게까지 싫은 건 아니야.”
“너 때문이 아니라 그분이 거기 계셔야 내가 탈레스를 컨트롤 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야. 아무튼 난 간다.”
“어딜 가는데?”
“결실을 맺었으니 슬슬 생산준비를 해야 할 것 아니야.”
“이걸 탈레스를 통해서 생산하려고?”
그야 당연했다.
애초 소재 개발은 내 연구소가.
그리고 생산은 탈레스가 한다는 것이 내 원칙이었으니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번 일로 인해서 연구소의 존재가 드러날 것이라는 사실인데.
어차피 기술에 대한 핑계도 연구소설립의 목적 중 하나였으니 그 점은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야, 그냥 우리가 생산 업체를 따로 알아보는 편이 더 낫지 않겠냐? 탈레스에 맡겨봐야 이윤만 줄어들 것 같은데?”
“아니, 내 입맛대로 움직이기에는 탈레스가 최고야.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탈레스만큼 완벽한 생산시설을 갖춘 곳도 없고.”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던 희원을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
막상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작 진 회장을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골치가 아파온다.
연구소의 존재를 알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이익 분배비율을 협상하는 것까지.
'그건 둘째 치고, 삼정전자와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문제네.'
따지고 보면 그게 진 회장을 찾아가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어차피 개발한 소재를 생산하는 문제야 탈레스와의 협력이 어그러진다 해도 다른 업체를 선택하면 그뿐.
하지만 이 시대에 MEMS 기반 센서 모듈을 그 작은 포탄에 들어갈 정도로 소형화하면서도 안정적으로 공급할 만한 곳은 삼정전자가 유일하다.
젠장, 문제는 하필 삼정그룹 산하 방산 업체인 ‘테크윈’과 우리 ‘재우디펜스’가 신형 자주포 개발 사업 유치과정에서 앙숙이 되어 버렸다는 거지.
결론적으로 어떻게든 그 지랄 맞은 관계를 풀어내지 않는다면 스마트 포탄의 개발은 물 건너간다는 소리다.
'아니, 비단 포탄만이 문제가 아니라 향후 내 계획 전체가 날아가 버릴 지도…….'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가 삼정그룹과 껄끄러울 것이 뭐가 있다고.”
“…….”
잠시 후 찾아간 진 회장은 내 진지했던 고민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뭐 이런 허무한 경우가 다 있지?
당황스러운 마음에 그에겐 자칫 가시가 될 수도 있을 말마저 꺼내 들었다.
“그럼 아버님은 K9 개발 사업권이 삼정에게 넘어간 상황에서도 여태 이용문 회장님과 교류를 하고 계시다는 말입니까?”
“원래 사업이란 것이 다 그런 거야. 네 눈엔 고작 사탕 하나 가지고 싸웠다가 금세 다시 친해지는 애들이 어리석게 보일지 몰라도, 실은 그게 사업가로서는 가장 배워야 할 점이라는 걸 명심해.”
누가 그걸 모르겠는가.
단지 K9 개발 사업권이 고작 사탕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문제지.
돈 앞에선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더니.
아무래도 그 말이 만고의 진리였나 보다.
“그럼 언제쯤 만남을 주선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조만간 식사를 같이 하기로 약속은 되어 있던 상태야. 참, 그러고 보니 그 약속을 잡은 날이 전에 한동훈 합참의장과 네가 언쟁을 벌였던 날이었던 것 같은데?”
“그럼 그때 아버님과 통화했던 분이 삼정그룹의 이용문 회장이었습니까?”
“맞아, 그런데 대체 삼정의 힘을 빌려야만 하는 이유가 뭐야?”
“아, 그건…….”
퍼뜩 정신을 차리곤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스마트 포탄’에 대한 설명을 이었다.
유효사거리가 무려 150킬로미터 이상이나 되는 자주포탄.
GPS는 물론 관성항법장치와 지형추적 센서까지 탑재하여 정밀유도가 가능한 괴물에 대해서.
황당했던 걸까, 내내 듣고 있던 진 회장은 결국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게 미사일이지 포탄이야?”
“바로 그 점이 메리트인 겁니다. 한발에 최소 10억씩이나 하는 단거리 미사일을 고작 포탄이 대처하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납품단가를 얼마로 예상하는데?”
“발당 최고 4500만 원선입니다.”
“포탄 한 발이 4500만 원이나 한다고?”
“그 안에 들어가는 정밀부품의 단가를 생각하셔야죠.”
“그거야…… 하지만 그렇게 비싼 포탄을 육군이 필요로 할 이유가 있을까?”
“북의 해안포를 대응하기 위한 수단이죠. 그리고 전방지역 동굴에 무수히 짱 박혀 있는 장사정포들도 그렇고. 이게 개발되면 그것들은 밖으로 기어 나오지도 못할 겁니다.”
“흠, 하지만 정밀도가 높다는 것이 외려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어. 그만큼 소비되는 탄의 수량도 줄어들기에 군이 대량 발주를 안 할 수도 있다는 소리지. 그렇게 되면 우린 개발비도 못 건지는 상황이 생긴다는 건 알고 있겠지?”
“육군만 사용한다면 그렇겠죠. 허나 이건 127미리 함포 탄으로도 개량이 가능하기에 해군의 단거리 함대지 및 함대함미사일도 대처할 수 있습니다.”
“해군까지?”
“그렇습니다. 더 희망적인 소식은 이게 개발되면 미 해군에서도 대 환영을 할 상황이라는 겁니다.”
실제 미 해군은 앞으로 127미리 ‘정밀유도 함포탄’의 개발을 위해 무려 2조나 되는 돈을 쏟아 붙게 된다.
그럼에도 결국엔 실패를 하게 될 거고.
원인은 바로 2만 G에 달하는 포구압력에 의해 매번 포탄내의 정밀 기기들이 죄다 먹통이 되어 버렸기 때문인데.
난 이미 그 해답이 될 ‘나노와이어 충격흡수체’를 개발한 상태다.
아니, 어디 그것뿐일까.
음속의 세배에 이르는 포구속도구현이 가능한 신형 장약과 기존보다 몇 배에 달하는 폭발력을 가진 화약까지.
다시 말해, 이 시대의 미 해군이 눈을 까뒤집고 덤벼들 조건들은 죄다 갖추고 있다는 거다.
“미군이 관심을 가진다면야 수지타산에 대한 걱정은 굳이 할 필요가 없겠지. 그런데 우리가 그런 대단한 물건을 개발할 능력은 있는 거야?”
“실은, 이미 절반은 완성이 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핵심소재들의 개발이 이미 끝났으니까요. 남은 과제는 정밀전자부품들의 설계와 제작뿐인데, 그래서 삼정이 필요한 겁니다.”
순간 진 회장의 턱이 툭 떨어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한참 의미심장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그는 돌연 뜬금없는 말을 던졌다.
“최근 탈레스에서 특수소재를 개발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고…… 혹시 그것도 네 연구소의 작품이냐?”
“…….”
잠시 귀를 의심했다.
내가 정확히 들은 것이 맞는 건가?
‘네 작품이냐.’가 아니라, ‘네 연구소의 작품이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연구소의 존재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는 상황에서 왜 갑자기 저런 말이 튀어나온 건지 의문이다.
“제가 연구소를 설립한 걸 알고 계셨습니까?”
“그야 당연하지.”
진 회장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뒷조사라도 하신 겁니까?”
“뒷조사는 무슨. 내가 과거에 네 친모에게 준 채권들이 죄다 현금화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궁금해서 좀 조사를 해 본거지. 솔직히 너한테 그런 큰돈이 필요할 이유가 없잖아.”
사실 채권을 정리하게 되면 진 회장의 귀에 소식이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은 했었다.
단지 이렇게 빨리 알아내리라곤 생각을 못했을 뿐.
의아한 것은 왜 진즉에 소식을 듣고도 여태 말 한마디가 없었느냐는 거다.
“그런데 왜 모른 척하셨던 겁니까?”
“글쎄, 네가 그 연구소를 통해서 뭘 하려는 건지 궁금했다고 할까? 그런데 지금 보니 대충 답은 나온 것 같군.”
“…….”
“지금처럼 네 연구소에서 개발한 것들을 탈레스에 제공하고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의도 아니었어?”
그는 꽤 많은 부분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더군다나 내 의도를 간파하기까지.
그런데 상황이 이러면 나로선 수고를 덜은 것 아닌가?
이미 연구소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 굳이 내가 설명할 필요도 없고.
말투로 봐선 내연구소와 탈레스가 협력 관계를 이루는 것에 대해서도 그다지 부정적인 것 같지는 않거든.
“왜지?”
그때, 진 회장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질문을 뱉어냈다.
고개를 갸웃해 보이자 그가 한껏 표정을 굳힌 채 다시 질문을 거듭했다.
“그렇게까지 해서 돈을 벌려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거다.”
표정으로 봐선 이미 답을 알고 하는 질문 같았다.
어설픈 변명은 외려 독이 되겠지.
마치 잡아먹을 듯 눈을 빛내며 대답을 기다리는 그에게 선포하듯 말했다.
“제가 가진 탈레스의 지분율을 끌어 올릴 생각입니다.”
“…….”
순간 그가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인 채 침묵했다.
아무래도 속을 내비치지 않겠다는 의도 같은데, 그렇다고 부정적인 의미 같지는 않았다.
내 계획이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침묵이 아니라 분노를 표출했을 테니까.
“이용문 회장과의 만남은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주선을 하마.”
진 회장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을 돌렸다.
이내 곧장 방으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불현듯 다시 돌아서선 나를 빤히 쳐다봤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생각해보니 아직 네 연구소와 탈레스 간에 이익분배비율을 정하지 않은 것 같아서. 설마 애비를 상대로 밑천까지 뜯어먹으려는 것은 아니겠지?”
“영업이익의 30퍼센트를 받을 생각입니다.”
“30퍼센트나 가져가겠다고? 고작 기술만 제공하는 주제에?”
진 회장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혹여 더 부정적인 말이 튀어 나올까 싶어 선수를 쳤다.
“대신 무기와 관련된 소재들의 생산에선 독점권을 드리죠.”
“…….”
아마 그쯤이면 충분히 만족할 수준의 보상일 거다.
독점권을 가진다면 입맛대로 가격책정이 가능하다는 의미.
더불어서 차후 생산된 소재를 납품받을 타 기업들과의 협상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무기를 챙긴 셈이기에 30퍼센트쯤 떼어주는 것이 그리 큰 타격은 아닐 거다.
“영악한 놈 같으니.”
그 말로 대답은 들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딱히 불만스럽지는 않았던 걸까, 돌아서는 진 회장의 얼굴에 얼핏 미소가 엿보였다.
“다음 주부터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그룹임원회의에 참석하도록 해. 탈레스를 대표해서.”
“제가요?”
그룹 중역 회의에 참석을 하라는 건 나를 중역 대우로 인정하겠다는 뜻이었다.
물론 정책실장 자리가 애초 중역 급이긴 했어도 그룹 내에서 확실히 중역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었던 상태.
하지만 이젠 그걸 확실히 하겠다는 의미만 같았다.
“알겠습니다.”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기에 즉시 수긍했다.
챙겨왔던 서류들을 들고 일어서려는 찰나, 여전히 나를 쳐다보고 있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뭐가 됐건 열심히 해봐. 난 아직 탈레스의 주인을 정해놓은 기억은 없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