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1화
끼익!
목적지인 강남까지는 불과 30분 만에 도착했다.
약속장소인 뱅뱅 사거리에 이르자 익숙한 얼굴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어! 진현승. 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기에 먼저 연락을 다 하는 거야?”
“김희원! 넌 여전하구나.”
반가운 마음에 내민 손을 덥석 붙잡았다.
나와 현승이가 마음을 터놓고 지냈던 또 다른 벗이자 대학 시절 동기.
물론 회귀 전에도 나와는 ADD에서 계속 관계를 유지했던 친구지만, 이렇듯 젊은 시절의 그를 다시 보는 것은 또 감회가 새로웠다.
“뭐냐. 그 지나치게 반가워하는 표정은. 남들이 보면 꼭 십몇 년은 내외가 없던 관계인 줄 알겠네. 얌마! 우리 6개월 전에도 만났던 것 기억 안 나?”
“그랬던가?”
잠시 현승이의 몸이라는 것도 잊은 채 놈과의 재회를 즐겼다.
뭣 때문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놈의 미간이 점점 좁혀들기 시작한다.
“아까부터 왜 그런 눈으로 사람을 쳐다봐?”
“뭔가 좀 희한해서. 너 말투가 꼭 준이놈 같다는 것 못 느껴?”
“내가?”
흠칫 놀란 마음을 다스리고 놈을 쳐다봤다.
마침 내 이름도 거론된 상황.
혹여 소식을 알고 있을까 싶어 물었지만 놈 역시 나와 연락이 두절된 것이 꽤 오래전이었던 모양이다.
“준이 놈이야 지금쯤 미국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
“그래도 지나치게 연락이 안 되는 것 아닌가? 이런 상황이면 슬슬 염려해야 하는 수준이잖아.”
“누가 누굴 걱정 하냐? 우리 중에 준이 놈이 제일 처신 확실하고 똑똑한 놈이라는 거 잊었어?”
“…….”
“그런데 너 설마 그걸 물어보려고 불러낸 거냐?”
“그건 아니고. 너 아직 S&U 연구소에서 근무 중인건가?”
“그럼 내가 어딜 가겠어. 배운 게 도둑질인 마당에.”
“혹시 옮길 생각은 없고?”
“어디, 너희 회사로? 미안하지만 난 명교수님 밑에서 일 못한다. 너도 알잖아. 그 양반이 너하고 준이는 몰라도 나한테는 더럽게 깐깐했던 거.”
“탈레스 말고, 나하고 일하자는 거다.”
“…….”
희원은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침 담배를 꺼내려던 손에 잡힌 것은 연구소의 외관을 찍은 사진.
이 정도 규모면 놈을 설득하기엔 적당한 규모다 싶어 슬며시 내밀었다.
“내가 최근 분당에 연구소 하나를 설립중인데, 내 대신 그곳을 컨트롤할 사람이 필요해.”
“내가 S&U 같이 안정된 곳을 두고 왜 실적도 없는 연구소를 가냐? 아무리 친구라도 그건 안 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굳이 안정된 대기업을 두고 이름도 생소한 중소기업으로 방향 전환을 할 미친놈은 없겠지.
이럴 땐 역시 돈으로 지르는 것이 최고다.
“지금 받는 연봉의 세 배를 보장한다면?”
놈의 입매가 꿈틀댔다.
갈등하는 모양새지만 확실하게 넘어오지는 않았다.
그럼 무엇으로 놈의 코를 꿰어야 할까.
솔직히 공학자로서의 놈의 능력도 그렇지만, 난 예전 놈이 내게 보여줬던 그 신의와 의리가 절실히 필요하다.
“원한다면 내 차고에서 잠자고 있는 차량 들 중 한 대를 선택할 기회도…….”
“언제부터 출근하면 되냐?”
태세 전환이 거의 우디르 급이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 웃음을 뱉어내자 놈이 발끈하며 따지고 든다.
“왜 웃어? 얌마! 자고로 남자의 로망은…….”
“됐고, 한 달 줄 테니 주변정리 끝내고 와.”
“한 달? 그건 좀 빠듯한데…….”
“그럼 없었던 일로 하던지.”
“장난해? 당연히 한 달이면 충분하지. 잠시만 기다려봐. 일단 소장님께 먼저 사실 좀 알리고…….”
놈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통화를 하고 있는 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회귀직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김 소장! 빨리 도망가.
사실 희원은 데이터 칩의 유출을 막아낸 또 하나의 숨은 영웅이었다.
내가 도주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피 칠갑을 하고도 이호중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던 인물이 바로 그였거든.
혹시 그래서 일까.
연구소를 책임질 인물로 유독 그가 가장 먼저 떠올랐던 이유가.
막상 놈의 신의와 의리를 핑계 삼기는 했지만, 실상은 이렇게라도 보상을 해주고 싶은 심리도 있었던 것 같다.
“그놈의 꼰대 참 냉정하네. 아니 부하직원이 갑자기 일을 그만둔다는데 말릴 생각도 안 하는 건 뭔 경우야?”
그사이 통화를 마친 희원은 툴툴대며 전화기를 내려놨다.
이로써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
스스로도 그걸 느낀 건지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무척이나 사근사근해졌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고용주님.”
피식.
“야, 웃을 일이 아니야. 내 입장에선 진짜 인생을 걸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알아, 그러니 괜한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 내 뒤나 잘 받쳐주면 돼. 후회는커녕 세상이 바뀌는 걸 보게 해줄 테니.”
“워! 대단한 자신감인데? 하긴, 너나 준이 놈이나 마음만 먹으면 못 할 일이 없었던 놈들이기는 했지. 특히나 준이 놈은 저게 과연 사람일까 싶었을 정도로. 너 혹시 그거 기억 나냐? 전에 준이 놈이…….”
왠지 생소한 기분이었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 누군가 내 칭찬을 하는 것을 들을 기회가 흔하지는 않으니까.
그나마 험담이 아닌 칭찬이 주를 이루는 것을 보면 인생을 헛산 것은 아닌 모양이다.
“저…… 그런데 말이야”
내내 나와의 애피소드를 주절거리던 희원은 갑자기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고개를 갸웃한 순간, 놈이 어울리지 않게 몸을 배배 꼬기 시작한다.
“정말로 아무 차량이나 선택하면 되는 거냐?”
“그야 물론.”
“오케이! 그럼 당연히 그 빨간색 포르쉐지. 너 나중에 말 바꾸기 없다?”
“내가?”
짧은 대꾸였지만 그것으로도 확신을 주기엔 충분했을 거다.
다른 놈도 아니고, 진현승의 약속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마음이 급했던 듯 희원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일을 서둘렀다.
“당장 네 집으로 가자.”
“앉아 있어. 내일 오전에 양 비서 시켜서 네 집으로 가져다 놓을 테니까. 그런데 너, 연구 분야가 뭔지는 안 물어보는 거냐?”
희원은 그제야 아,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나마 미안한 마음은 들었던 듯 차 이야기는 쏙 들어가고 슬그머니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흠흠, 주 연구 분야가 뭔데?”
“무기 개발에 필요한 소재와 부품들이 주요 개발과제가 될 거야. 물론 너는 전문분야인 특수금속에 계속해서 매진하면 되고. 참고할 것은 연구소 내에 아직 인력 확충이 끝나지 않았다는 건데, 그런 의미에서 네 도움이 더 필요해.”
“연구원들 끌어오라고?”
“그래, 섬유와 화학 분야를 비롯하여 반도체 설계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까지. 각계의 인재들을 최대한 모아줘. 가능하면 KAIST 출신 선후배들이면 더 좋고.”
“몇이나?”
“최소 80명. 경우에 따라선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고.”
“허어, 그렇게나 많은 연구원들이 대체 왜 필요한데?”
“왜인지는 차차 알게 될 거고, 지금 말해줄 수 있는 건 내 연구소는 앞으로 많은 기업들을 목 졸린 가마우지로 만들 거라는 사실이야.”
“…….”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눈빛이었다.
왜 하필 우리가 상대할 기업들을 가마우지로 표현한 건지.
하지만 그 이상 적당한 표현은 또 없다.
내게서 부품과 소재기술을 사가는 기업들은 수익 중 많은 부분을 내게 토해내야 하니까.
그게 삼켰던 먹이를 어부 앞에서 토해내야 하는 목 졸린 가마우지와 다를 것이 뭐란 말인가.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
“이 자식…… 이제 보니 말투만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도 꼭 김준 같네. 와! 시발 놀래라. 나 지금 준이 놈이랑 대화하는 기분이었어.”
“…….”
***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고작 30대 초반인 내가 마치 50대처럼 시간의 흐름이 빠르다고 느끼는 이유는 뭘까.
어느새 연구소가 완전히 제 모습을 갖춘 지가 벌써 3개월이나 지났고, 계절도 이미 찌는 여름이 되어 있었다.
“철갑탄 선적은 어떻게 됐습니까?”
“미 국방부에서 보낸 특수화물선이 도착하는 대로 바로 시작할 겁니다.”
탈레스는 아침부터 전쟁 통이었다.
생산이 완료된 수출용 철갑탄의 수량은 어느덧 4만 발.
성질 급한 미국의 요청에 따라 예정에 없던 조기선적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바쁜 직원들을 방해하지 않으려 최대한 조용히 사무실로 향했다.
워낙 낮은 목소리였던 탓에 대부분은 내 출근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김 비서만은 재빨리 나를 발견하곤 뒤따라 들어왔다.
“왜요, 무슨 보고할 사항이라도 있습니까?”
“출근하시기 직전에 분당 연구소의 김희원 박사님께서 연락을 주셨습니다. 오늘 시간이 되시면 꼭 연구소로 방문해 주시길 바란다고 하시더군요.”
내 방문을 원한다는 건 진행 중인 연구과제에 성과가 있었음을 뜻했다.
정확히는 ‘스마트 포탄’의 핵심 소재로 쓰일 ‘나노와이어 충격흡수체’ 의 개발이 완료되었다는 의미.
마침 오늘은 탈레스 내에서 내가 해야 할 일도 딱히 없었던 터라 즉시 분당으로 이동했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네, 수고들 많습니다.”
연구소까지는 고작 1시간이면 충분했다.
어느새 100여 명에 달하는 연구원들이 근무할 정도로 몸집을 불린 상태.
이대로라면 조만간 옆 건물을 매입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울 정도로 인원의 확충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어떻게 됐어?”
“왔냐?”
나를 보며 반색하던 희원은 갑자기 내 손에 무언가를 쥐여줬다.
얼핏 보면 꼭 스펀지라고 생각될 정도로 가볍고 유연하지만 질감만큼은 금속의 그것과 동일한 물체.
이게 바로 스마트 포탄에 들어갈 정밀 기기들을, 무려 2만 G에 달하는 포구압력에서 보호해줄 티타늄 기반 ‘나노와이어 충격흡수체.’다.
“어때?”
전생에서 이미 풍신그룹이 개발한 것을 수없이 테스트해 본 나로선 단지 빛깔만 봐도 개발에 성공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테스트 결과를 보지 않을 수는 없을 터.
천만 다행히도 테스트과정에서 산출된 수치들은 회귀 전 보았던 것과 거의 일치했다.
“고생했다.”
“고생은 무슨, 어차피 소스는 네가 다 제공한 마당에.”
두루뭉술 말을 끝낸 희원은 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보나 마나 또 기술의 출처를 묻고 싶은 것이겠지.
그럼에도 끝내 입을 삐죽거리고 있는 이유는 어차피 내 입에서 답을 듣지 못할 걸 알기 때문일 거다.
“현승아.”
“왜?”
“내가 사실 그냥 넘어가려고 했었는데, 이것 하나만큼은 대답해주라.”
“뭐를?”
“너 혹시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았냐?”
“갑자기 그건 무슨 헛소리야?”
“생각을 좀 해 봐라. 고작 3개월 만에 우리 연구소에서 개발한 첨단 소재들과 핵심기술들의 수가 10개가 넘어.”
“…….”
“특히나 UASST 기술을 이용한 90나노 반도체공정의 개발 사실이 알려지면 모든 반도체 회사에서 돈다발을 들고 날아올 정도로 엄청난 기술이라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소스들을 죄다 네가 제공했다는 건데, 그게 정상은 아니잖아.”
“질문의 의도는 알겠는데, 악마에게 영혼을 팔 요량이면 이런 고달픈 짓을 할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주체 못할 만큼의 돈을 달래서 편하게 살고말지.”
“…….”
희원은 그 말에 눈을 끔뻑였다.
뭣 때문일까, 한참을 더 나를 쳐다보던 놈이 갑자기 머리를 긁적이며 툭 말을 뱉어냈다.
“시발, 졸라 설득력 있네.”
“아무튼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특허 출원은 내일 곧바로 진행 해.”
“젠장, 안 그래도 국내 특허와 동시에 국제 특허도 진행 할 생각이다. 참, 그나저나 어제 일본 미쓰비시와 중국 텐징 공업에서 너를 찾는 전화가 왔었다.”
“왜?”
“얼마 전 개발된 탄탈륨 미세코팅 기술 때문이지 뭐. 로열티를 내고서라도 기술제공을 받고 싶다고 하더라.”
내 예언은 슬슬 현실화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덧 실체화 되기 시작한 소재들과 특수가공기술의 종류가 무려 열 개.
이 시대에는 개념구상 단계에 불과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발표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기술제공요구가 폭주한 거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데이터 칩에 담긴 모든 기술들이 현실화 되는 순간, 앞으로 기술 대국이라는 명예는 우리가 차지해 버릴 거다.
“거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