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0화
'쯧, 조금만 더 버텼다면 칭찬을 해줬을 것을…….'
전날은 밤새 잠자리를 뒤척였다.
미처 예상치 못했던 집안 분위기.
그리고 드디어 주머니를 뚫고 나오기 시작한 진현철이라는 송곳.
여타 잡스러운 생각들이 복합적으로 얽혀들며 내내 신경을 자극했다.
'녹슨 송곳이라도 송곳은 송곳이지.'
비록 헛발질을 하는 편이긴 했어도 놈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다른 건 둘째 치고 놈이 가진 탈레스의 지분율이 내 두 배가 넘는 상태니까.
만약 이 상태로 회사를 키우게 된다면 그게 과연 내게 이익인 걸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자칫 남 좋은 일을 시켜주는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내 재우탈레스 지분이 4퍼센트. 그리고 진현철의 지분이 8퍼센트. 그렇다고 진회장이 당장 내게 지분을 더 밀어줄 가능성은 없고……. 결론적으로 나 스스로 지분 확보를 해야 한다는 건가.'
아무래도 그게 우선인 듯싶었다.
최소한 진현철의 지분은 앞서 놔야 회사를 성장시키는 의미가 있을 테고, 또 불시의 상황에 대한 대처가 가능할 테니까.
그럼 남은 것은 수단을 마련하는 건데, 사실 그 부분은 이미 생각해두었던 것이 있는 상태다.
“김 비서, 잠시 좀 들어와요.”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곧장 김 비서를 불러들였다.
평소와 다른 말투 때문이었는지 내내 생긋대며 다른 직원들과 잡담을 하고 있던 그녀는 한순간에 표정을 굳히며 따라 들어왔다.
“혹시 어제 댁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일이 아주 없었다고는 할 수 없죠. 미안하지만 여기 목록에 있는 내 자산들 좀 정리해 줄 수 있겠습니까?”
“갑자기 자산정리는 왜 하시려고요.”
김 비서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어차피 그녀도 이젠 내 사람이라 정의할 수 있는 인물 중 하나.
구체적인 것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내 목표가 뭔지 정도는 미리 언질을 해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다.
“재우탈레스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섭니다. 고작 4퍼센트 밖에는 되지 않는 지분율로는 회사를 장악하기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자산을 정리하신다 해도 당장 원하시는 만큼의 지분확보는 어렵지 않을까요?”
“그걸 죄다 지분에만 투자하면 당연히 그렇죠. 하지만 난 그 돈으로 소재와 부품을 개발할 연구소를 설립할 겁니다. 그리고 개발된 소재들은 탈레스를 통해 생산을 할 거고요.”
“…….”
“이후 그 소재들이 팔려나가는 과정에서 내겐 막대한 기술제공비가 들어올 텐데, 그것으로 꾸준히 탈레스의 지분을 매입할 생각입니다.”
물론 그것만이 연구소 설립목적의 전부는 아니었다.
앞으로 내가 세상에 선보일 소재와 부품들을 무작정 등장시킬 수는 없을 터.
아마 그 연구소가 최소한의 근거가 되어 줄 거다.
“일종의 부품 협력업체를 만들겠다는 말씀이군요.”
“아니, 그것과는 다릅니다. 앞서 말했듯 내 연구소는 생산이 아닌 기술 개발만 담당하게 될 테니까. 쉽게 말하면 일종의 IP(지적재산권)업체라고 해야 하겠네요.”
“단지 기술만 제공해서 수익을 올린다고요?”
그녀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었을 거다.
하지만 미래엔 기술력이 곧 힘이고, 그 힘은 상상치도 못한 권력과 수익을 창출한다.
“특수 소재들은 단지 특허만 보유해도 엄청난 부가가치가 창출됩니다. 더 나아가서 특허 괴물이 되는 순간이면 그 누구도 감히 머리를 들지 못하는 절대 갑이 되죠.”
“…….”
그녀는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듯 눈을 끔뻑여 보였다.
하지만 설명은 여기까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곤 들고 있던 서류를 흔들어 보였다.
“아무튼, 이걸 최대한 빨리 현금화 해주면 좋겠습니다. 대충 현금성 자산만 300억 가까이 되더군요.”
“알겠습니다, 어? 그런데 부동산은 제외하시는 겁니까?”
“시세가 바닥인 상황에서 그것까지 정리하는 건 무리입니다.”
외환위기로 반 토막 난 부동산을 지금 정리하는 건 바보짓이었다.
외려 더 사들여도 부족한 판국에.
그나마도 다행이었던 것은 현승이의 어머니가 남기신 무기명채권이 꽤 많았다는 건데, 그 금액만 거의 200억에 가까웠다.
“무기명채권은 정리가 쉽지만 기명채권들은 좀 까다로울 겁니다. 혹시나 내가 필요한 상황이 오면 언제든 전화하세요.”
“네, 즉시 알아보겠습니다.”
방을 나서는 그녀를 뒤로하고 한동안은 연구소 설립에 필요한 자금 규모를 다시 유추해 봤다.
수십억을 호가하는 연구 장비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총 300억이라는 자금은 확실히 빠듯한 수준이다.
'쯧, 이럴 줄 알았으면 급등하는 주식 종목이나 죄다 외우고 오는 건데.'
하도 답답하다 보니 대뜸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주식도 해본 놈이 하는 거지.
설사 알고 있다고 해도 난 그걸 끝내 수익으로 연결시킬 실력은 없다.
자고로 주식시장이라는 것이 자금의 흐름에 민감한 곳인데. 막상 대규모 자금이 투입 되면 확연하게 달라질 시장상황을 무슨 수로 대응하라고.
'그럼 일부라도 부동산을 정리해야 하나?'
결국 보유 중인 부동산의 규모를 좀 줄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총 다섯 개에 이르는 건물들 중에서 하나쯤 정리한다고 억울할 정도까지는 아니니까.
그런데 막상 그 부동산 목록을 확인하려 서랍을 열자, 그곳에서 잠자고 있던 서류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로열티?”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왜 이걸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앞으로 한 달 안에 내게 560억이나 되는 돈이 생긴다는 사실을.
'다행이네, 정 안 되면 탈레스 연구소의 시설들을 빌릴까 싶은 생각까지 했었는데.'
만약 그렇게 됐다면 일이 괘나 복잡해졌을 거다.
다른 건 둘째 치고 개발된 기술과 소재들에 대해서 내 소유권을 전적으로 주장할 수 없을 지도.
결론적으로 이 로열티가 여러 면에서 나를 살려준 셈이다.
'560억이라……. 그 정도 규모의 액수라면 추가 장비 도입은 물론 한동안의 운영자금도 확보가 된 셈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럼 이제 첫 단추를 무엇으로 끼우느냐는 것이 문제인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당장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이나 5세대 전투기 같은 것들을 시도하는 것은 무리였다.
온갖 첨단 소재와 부품의 집약체인 그것들을 뒤쳐진 소재기술수준으로 구현해 내는 것은 불가능 할 테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무기 개발보다는 그에 필요한 부품과 소재들의 개발을 먼저 완벽하게 해둬야겠지?
뭐 조금은 시간이 지체된다 해도 확실히 그 편이 더 실패가능성이 적을 거다.
'비록 부품과 소재라고는 해도 시장성이 워낙 어마어마해서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은 분명하고. 그건 곧 차후 무기개발에 있어서 엄청난 여유를 가져다주겠지.'
이제야 순서가 정리된 느낌이었다.
소재 개발을 시작으로 해서 무기까지.
해서 소재는 소재대로 이익을 창출하고, 이후 그 이익을 기반으로 다시 무기를 만들어 새로운 이익을 또 창출해내고.
이거야말로 진정한 일거양득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길어야 4년. 그 안에 승부를 본다.”
***
현금성 자산의 정리는 불과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이후 추진해야 할 것은 연구소가 들어설 건물을 확보하는 것.
하지만 늘 입지조건이 발목을 잡았고, 결국 설비 구입을 먼저 시도하려 할 때쯤 김 비서가 꽤 유용한 제안을 하나 해왔다.
“팀장님께서 보유 중이신 분당의 건물을 활용하는 것이 어떨까요? 외곽지역이라서 위치도 적당하고, 마침 경제위기로 세입자들도 많이 빠져나간 상태입니다.”
그게 가능하면 많은 돈을 아낄 수가 있었다.
그럼 당연히 매입할 수 있는 연구 기자재의 수도 늘어날 거고.
남은 문제라면 아직 남아 있는 임차인들이 순순히 퇴거를 해주느냐는 건데, 예상과 달리 그들은 적절한 보상을 제시하자 흔쾌히 합의에 응했다.
빌어먹을 경제위기.
아무튼 세상 보는 눈 없는 것들 때문에 서민들만 죄다 죽어 나간다니까.
“어제부로 임차인들의 퇴거가 모두 끝났습니다. 내부공사는 최대 보름이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장비들의 반입은 언제부터 시작할까요?”
텅 빈 건물을 둘러보며 김 비서가 물었다.
가히 일당백에 가까운 존재.
역시 그녀를 행동대장으로 임명한 건 신의 한 수였다.
“공사가 끝나는 대로 바로 시작하세요. 독일에서 들어올 장비들을 제외하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설치가 마무리되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대꾸하는 김 비서의 얼굴에선 귀찮아하는 기색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아니, 귀찮기는커녕 외려 잔뜩 기대하는 표정.
휴일까지 반납하며 일을 하는 입장에서 뭐가 저리 좋은 건지 이해가 안 간다.
“나는 만날 사람이 있어서 강남으로 움직일 겁니다. 김 비서도 오늘은 이만 퇴근하세요.”
“누굴 또 만나시기에…… 오늘 저녁에 회장님과 약속이 있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그건 저녁 약속이고, 지금은 연구소를 도와줄 친구를 영입하러 갑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여기서 곧바로 퇴근하겠습니다.”
“참! 잠시만요.”
돌아서는 그녀를 향해 봉투 하나를 건넸다.
이 정도까지 고생을 시켰으면 당연히 대가를 지불해야지.
그런데 정작 기쁘게 받아야 할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며 눈치만 살폈다.
“죄송하지만 전 회사에서 지급되는 월급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이 일은 회사에서 시킨 일이 아니라 내가 개인적으로 의뢰한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받아야죠. 나를 공과 사도 구분 못하는 놈으로 만들 셈입니까?”
“…….”
워낙 단호했던 탓에 그녀도 더 이상은 거부하지 못했다.
슬쩍 받아든 봉투가 향한 곳은 무척이나 낡아 보이는 가방.
그러고 보니 그녀가 신고 있는 구두 역시 지나치게 오래된 느낌이었다.
“쯧, 아무리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지만…….”
“네?”
사실 그동안엔 저 미모에 가려져서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알고 난 이상 그냥 넘어갈 수야 없겠지.
그동안엔 딱히 쓸 곳이 없었던 카드가 이번에 꽤 유용하게 쓰일 모양이다.
“가방하고 신발이 그게 뭡니까. 난 내 비서가 구질구질한 꼴은 못 보겠으니 당장 이 카드 들고 백화점으로 달려가세요. 한도는 충분하니까 명품을 산다 해도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
“물론 거절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그건 수고의 대가가 아니라 내 호의니까. 하지만 난 김 비서가 상대의 순수한 호의를 거절할 만큼 무례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당황한 김 비서가 눈을 끔뻑였다.
봉투에 이어 카드까지.
그녀로선 솔직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을 거다.
“미안하지만 봉투는 나중에 열어보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걸 따라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팀장님!”
아니나 다를까, 뒤편에서 곧바로 침음성과 함께 다다다 하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말 참 안 듣네.”
“하지만, 이건…….”
“아니, 김 비서는 그 돈을 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정 뭣하면 앞으로 김 비서가 해야 할 수고에 대한 대가를 미리 받았다고 생각하세요.”
“5천만 원을요?”
물론 5천만 원이 큰돈이긴 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향후 그녀가 해줘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절대로 그게 무리한 금액은 아니지.
지금 당장은 0의 개수에 놀라고 있지만, 차후 시간이 지나면 그녀 스스로도 저 돈의 가치가 그리 큰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될 거다.
“내일 회사에서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