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9화 (9/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09화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 재우탈레스가 미국을 상대로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무기수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총금액은 1조 4천억에 달하며……. ]

다음 날, 미국과의 무기 수출계약 소식은 모든 뉴스의 1면을 장식했다.

소스를 가장 먼저 전달받은 한지연 기자는 몇 번이고 내게 전화를 걸어 고마움을 표했고, 덕분에 사내에서는 재우그룹 전담기자라는 확실한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는 소식도 알려왔다.

-제가 언제 밥 한번 사겠습니다, 실장님.

“밥이라면 제가 사야죠.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실상 그녀를 내 편으로 만들어 두어서 나쁠 것은 없다.

자고로 기업이란 언론과는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니까.

내게 호의적인 기자를 몇몇만 가까이 두어도 차후 불합리한 기사들로 곤란한 상황을 겪을 일은 그만큼 적어질 거다.

물론, 때로는 돈도 들어가겠지만.

“안녕하십니까, 실장님.”

계약서에 사인을 마친 며칠 후 인사이동이 시행됐다.

무려 1조 4천 억에 달하는 잭팟을 터트린 덕에 내 승진을 반대한 임원은 없었고, 외려 슬슬 줄을 대려는 자들마저 생겨나기 시작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정책실장 자리는 확실히 개발팀장급과는 무게감이 달랐다.

다른 건 다 재껴두고 일단 사무실의 규모부터 두 배 이상의 차이.

하지만 정작 중요한 점은 업무의 영역 자체가 다르다는 건데, 이젠 회사의 주요 정책과 사업 방향을 내 손으로 정할 수 있다.

“각 사업별로 조달본부 담당자들 목록을 전부 올려주세요.”

“네, 그런데 실장님, 전무님께서 방금 메시지를 남기셨습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오늘 본가에서 가족 모임이 있으니 꼭 참석하시랍니다.”

진현철이 송곳이 될 거라는 내 예언은 아직까지 현실화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인지 매번 어찌나 내게 호의적이었던지, 한때는 놈에 대한 현승이의 기억에 오류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것 참…….”

결국 난 놈을 향한 경계수위를 높이기로 결정했다.

단순히 질투와 욕심에 사로잡혀 사리분별 못하는 바보는 아니라는 것이 증명 됐으니까.

설사 그렇다 해도, 이렇듯 내가 회사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지속되면 그 인내심도 곧 바닥을 드러낼 거다.

'아니, 어쩌면 벌써 바닥이 난 상황인지도 모르지. 그나저나 뜬금없는 가족모임은 누구 생각이지?'

아마 성공적인 계약을 축하하자는 의미의 모임일 거다.

스스로에게 불편할 자리를 진현철이 만들었을 리는 만무하고.

어쩌면 내놨던 자식의 개과천선을 맛본 진 회장이 이번엔 가족 간의 화목마저 시도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보니 어마어마하군.'

하필 약속장소가 진 회장의 저택이라는 것은 내 예측을 더더욱 뒷받침해줬다.

나로선 그냥 이대로 지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상황이건만.

앞으로 저 안에서 보내야 할 몇 시간이 벌써부터 부담스럽다.

“이게 얼마만이니 그래.”

가장 처음 나를 맞은 것은 진 회장의 부인인 김혜원 여사였다.

내겐, 아니 현승이에겐 누구보다도 껄끄러운 인물.

그런데 저 미소는 대체 뭐지?

난 분명 독기가 가득한 눈초리가 날아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외려 나를 보는 그녀의 얼굴엔 활짝 꽃이 피어 있었다.

“…….”

“축하해, 이번에 큰일을 해냈다고? 그런데 너, 또 밥을 굶고 다니는 거야?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그녀는 마치 오랜 여행을 마치고 온 친아들을 대하듯했다.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던 순간 갑자기 그녀와 연관된 기억이 풀리며 몇몇 당황스러운 장면들이 뇌리를 스쳐 갔다.

첫 만남 때부터 쭉 현승이에게는 한없이 자상했던 눈앞의 여인.

반대로 늘 현승이를 제 인생의 짐쯤으로 여겼던 친모.

그런 둘 사이에서 항상 내적 갈등을 겪으며 살아온 현승이의 모습들이.

제 집안 사에 대해서는 유독 말을 아꼈던 터라 이런 경우는 미처 예상을 못했었는데.

빌어먹을, 반전도 이런 반전이 또 없다.

“일도 좋지만 건강은 좀 챙겨야지. 안 그래도 아버지에게 말은 전해 들었다. 요즘 너 때문에 살맛 난다고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아무리 봐도 가식은 아니었다.

만약 가식이었다면 현승이 같이 눈치 빠른 놈이 몰랐을 리가 없지.

그럼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 거지?

따지고 보면 이 집안에서 진정한 피해자는 그녀인데.

막말로 남편의 외도를 참아야만 했던 것도 그녀였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자식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그녀였지 않은가.

그런데 저렇듯 굴러온 돌을 제 자식처럼 맞을 수가 있다는 건 내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죄송하지만 먼저 손 좀 닦고 오겠습니다.”

“그래, 어서 다녀 와. 내가 오늘은 특별히 너 좋아하는 도미찜 했으니까.”

그녀는 또다시 화사한 미소를 보여주곤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막상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도 머리가 복잡해서 손이 아니라 뇌를 끄집어내서 씻고 싶은 심정이다.

“늦었구나.”

도착한 주방에선 이미 진 회장과 진현철이 식사를 시작한 상태였다.

물론 도미찜은 손도 대지 않고 있었고.

애써 나를 배려하려는 의도 같은데, 미안하지만 난 도미찜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입맛이 없니? 오늘따라 영 먹는 게 그러네. 이것도 좀 먹어보고 그래.”

김혜원 여사는 내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은 채 이것저것을 챙기고 있었다.

누가 보면 마치 제 배가 아파서 낳은 자식이라도 되는 양.

오죽했으면 지켜보던 진 회장도 한마디를 던졌다.

“당신도 좀 적당히 하지 그래. 현승이가 애도 아니고.”

“이럴 때가 아니면 또 언제 기회가 있겠어요. 챙겨 먹일 수 있을 때 잔뜩 챙겨 먹여야죠.”

진 회장을 나무라는 김혜원 여사의 얼굴에선 진심이 묻어나왔다.

젠장, 이거 영 적응을 못하겠네.

잔뜩 목이 막혀 물 컵을 집어 들려는 순간, 하필 진현철과 딱 눈이 마주쳤다.

“흠흠, 수고 많았다.”

놈은 기회다 싶었던 듯 말을 꺼냈다.

어색한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불현듯 놈의 말이 다시 날아왔다.

“참, 오전에 합참의장이 내게 전화를 했더구나.”

“…….”

순간, 어색한 기운이 주방을 휘감았다.

이 자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대화 주제였던 거지.

아니나 다를까 진 회장의 표정은 이미 잔뜩 굳어져 있었고, 김혜원 여사의 얼굴에도 한껏 그늘이 져 있었다.

“뭐라던가요?”

“이런저런 말을 하긴 했는데, 결국엔 서운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 주목적이었겠지. 혹시나 싶어서 알아보니 지금 합참의장 쪽 세력들에게서 말이 나오고 있는 상태더군. 아무래도, 이번 일은 네가 실수를 한 듯싶다.”

놈이 영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방산 기업이 군부 실세 중 하나와 척을 졌다는 건 우습게 생각할 문제는 확실히 아니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합참의장이 끝까지 군부의 실세로 남아 있을 경우의 문제고, 이미 그의 미래를 알고 있는 나로선 하등 꿀릴 것이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무작정 손해를 볼 수는 없죠.”

“네가 잘 모르나 본데, 그게 사업인 거야.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에게는 손해도 좀 봐주고 하는 것이…….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 오늘 같이 좋은 자리에서 굳이 그 이야기를 해야겠어?”

놈의 혀가 길어지려던 순간 진 회장이 수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 놀란 진현철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끝내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하지만 제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버지. 한동훈은 차기 국방장관이 될 가장 강력한 후보…….”

“그만하라고 했잖아!”

진 회장은 자신의 경고를 무시하는 현철을 향해 노성을 내뱉었다.

워낙 단호한 표정 때문이었을까, 놈이 찔끔 하더니 나를 쳐다봤다.

“형님은 아직 상황파악을 못하고 계시는군요. 한동훈 합참의장은 절대 국방장관 자리에 오르지 못합니다.”

눈이 마주친 김에 툭하고 말을 던졌다.

꽤나 충격적인 말이었던 모양이지?

놈이 부릅떠진 눈으로 진 회장을 향해 따지고 들었다.

“아버진 지금 저 말을 믿으십니까?”

“믿고 안 믿고는 중요하지 않아. 한동훈이가 장관에 오르지 못하는 건 이미 기정사실이니까.”

순간 진현철이 얼어붙었다.

사실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

나야 어차피 역사를 알기에 자신했던 거지만, 그는 대체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왜죠?”

당황한 진현철이 해명을 요구했다.

기어이 이어지는 논쟁에 입맛을 잃은 듯 진 회장은 식기들을 저만치 밀어내곤 담배에 불을 붙였다.

“지나친 욕심이 화를 부른 거지.”

“…….”

“실은 며칠 전, 육군 수뇌부들이 청와대에 투서를 했어. 다른 루트도 아니고 하필 육군의 실세들이 올린 투서다 보니 청와대가 발칵 뒤집힌 것은 당연하고. 결국 대통령께선 한동훈이가 이미 육군 내부에서 신임을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판단하고 있다. 육군의 신임을 잃어버린 자가 국방장관이 된다는 건 어불성설이지.”

진현철이 눈을 끔뻑이며 나를 쳐다봤다.

마치 넌 그걸 어떻게 알고 있었느냐는 듯한 눈빛.

슬쩍 입매를 뒤틀자 그가 미간을 와락 일그러트리며 다시 진 회장을 향해 말을 쏟아냈다.

“그래서 아버님도 현승이가 합참의장을 팽 시키는 것을 그냥 두고만 보셨던 겁니까?”

“어차피 현승이가 아니었어도 내가 그랬을 테니까.”

진현철은 그 말에 주먹을 움켜쥐었다.

맹세하는데, 난 인간이 저렇듯 다양한 표정을 한 번에 지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현승이 넌 대체 그걸 어떻게 알고 있었던…….”

“이제 와서 그게 뭐가 중요해!”

놈의 말은 다시 진 회장에 의해 잘려나갔다.

이번엔 놈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 입을 삐쭉였지만, 진 회장이 다시 쐐기를 박아 버렸다.

“쯧쯧, 명색이 전략실까지 운영하고 있는 놈이 여태 그런 사실도 모르고 있는 게 뭐가 자랑이라고. 현승이 보기 부끄럽지도 않아?”

놈은 충격을 받은 듯 내내 침묵만 지켰다.

어느덧 식사가 모두 끝나고 커피잔이 식탁에 오를 때까지.

그러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던 지 슬그머니 눈치를 살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하지만 전 이만 올라가 보겠습니다.”

진 회장은 굳이 만류하지 않은 채 차만 홀짝였다.

놈은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떴고, 조금 후엔 진 회장도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도 바람 좀 쐬어야겠군.”

“하아…….”

빈자리들을 지켜보던 김혜원 여사의 입에서 안타까움의 한숨이 뱉어졌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차분할 수가 있는 걸까.

막말로 그녀의 입장에선 지금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걷어차 버리는 것을 눈으로 지켜본 상황인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 여인은…… 내가 예상했던 그런 부류가 아니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분위기가 또 엉망이 됐군요.”

“그게 왜 네 탓이겠니. 다들 고집들이 세서 그런 거지.”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죠? 제가 밉지도 않으십니까.”

지나가듯 뱉어낸 말에 그녀의 몸이 움찔했다.

왜일까.

처연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그녀가 슬며시 손을 뻗어온다.

“난 너를 미워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그건 현철이도 마찬가지고.”

“…….”

왠지 묘한 뉘앙스를 풍겨오는 말이었다.

나도. 그리고 진현철도 미워해 본적이 없다는 말.

조금 앞서 생각한다면 그건 마치  둘 모두 자신에게는 가시 같은 존재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말인데, 나는 그렇다 쳐도 진현철이 그녀에게 가시일 이유는 뭐라는 말인가.

“형님을 미워하실 일이 뭐가 있다고요.”

피식.

넌지시 떠봤지만 어색한 미소만 날아왔다.

“아!”

곧 쫓기듯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다급히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와 내 손에 쥐여줬다.

“밑반찬 좀 챙겼으니 끼니 거르지 말고. 언제 시간 되면 같이 백화점 좀 갈래? 마침 네가 좋아할 만한 수트들이 많아서 눈에 밟히더라.”

아마 과거에도 이런 식이었을 거다.

그랬기에 현승이가 그녀와 친모 사이에서 지옥과도 같은 갈등을 했던 거겠지.

난 비로소 현승이가 힘들었던 진정한 이유가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하죠. 시간 되시면 언제든 연락 주셔도 됩니다.”

“정말?”

그녀는 마치 소녀처럼 웃어 보였다.

문득 괜한 짓을 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을 무렵, 마침 다시 주방으로 들어서던 진 회장과 눈이 마주쳤다.

“흠흠, 가는 거냐?”

“네, 저도 할 일이 쌓여 있어서요.”

“그래, 먼 길은 아니다만 조심히 가고.”

진 회장과 나 사이엔 잠시 어색한 미소가 교차했다.

모녀와는 다른.

부자 관계에서만 존재하는 현실의 벽.

사실 그건 아무리 관계가 풀렸어도 쉽게 해소할 수 없는 명제다.

“당신도 방금 현승이가 한 말 들었어요?”

돌아선 뒤편에서 호들갑스러운 김혜원 여사의 말이 들려왔다.

역시나 괜한 짓이었던 거지.

괜한 동정심에 휘둘려 선뜻 그녀의 청에 수긍해 버린 스스로를 원망하며 집을 나서려는데, 이번엔 또 한껏 톤이 올라간 진 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었어. 그나마 당신 소원만큼은 풀었으니 오늘 저녁 자리가 아주 헛짓은 아니었군.”

듣고 있자니 왠지 진 회장의 의도에 장단을 맞춰준 기분이 들었다.

뭐 그렇다고 내가 손해 볼 것은 없겠지.

나야 어차피 김혜원 여사와 가까워진다고 해서 현승이처럼 갈등을 느껴야 할 입장은 아니니까.

그나저나 이거 영 찜찜하네.

진현철을 미워해 본적이 없다는 그녀의 말.

대체 의미가 뭐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