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08화
며칠 후, 예정대로 미 육군소속 마이클 중장이 계약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미군에서도 나름 주요 인물의 방한이었던 탓에 우리 군의 인사들은 물론, 소식을 접한 언론기자들까지 죄다 성남공항으로 몰려든 상태.
미처 이런 분위기를 예상치 못했던 나로선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저 젊은 친구가 재우탈레스의 개발 팀장이라고?”
“맞아, 이번 신형 철갑탄 수출의 일등공신인 진현승.”
“생각보다 멀쩡한데? 예전에 한참 안 좋은 소문을 몰고 다니기에 인식이 별로였거든.”
“나도 처음엔 그랬는데, 지난번에 만나 보니 소문과는 완전히 다르더라고.”
대기 중이던 기자들의 수군거림이 가감 없이 들려왔다.
무심코 시선을 돌리자 몇몇 친분 있는 기자들이 나를 향해 연신 손을 흔들고 있는 중이었다.
“누굴 쳐다보고 있는 거지?”
예의상 건넸던 눈인사에 저들 무리가 호들갑스러워졌다.
마치 내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를 밝혀내기라도 하려는 듯.
조금 후, 머리숱이 유난히 적은 어느 기자 하나가 어깨를 펴며 나를 향해 다시 손을 흔들었고, 그를 향해선 수없이 많은 다른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뭐지? 김 기자 당신 진현승하고 친해?”
“흠흠, 굳이 따지고 보면 친하다고 할 수 있지. 지난번 우리 군의 철갑탄 발주 수량 문제가 터졌을 때 내가 기사를 아주 그럴듯하게 써줬거든.”
“오! 그럼 자네가 넌지시 소스 좀 달라고 졸라봐. 젠장, 진행 과정을 좀 정확히 알아야 기사를 내든지 말든지 하지. 우리도 좀 같이 먹고 살자고.”
피식.
어느새 기자들 사이에선 우열이 나눠진 듯했다.
나와 친분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앞으로도 손을 빌릴 일이 많아질 것을 감안하면 저들과의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오랜만입니다. 한지연 기자님.”
눈에 뜨인 것은 젊은 여기자였다.
기왕이면 때가 덜 묻은 자를 상대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기자들이란 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단지 이 시대엔 그나마 양심적인 기자들이 몇몇이나마 남아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지.
“오오! 한지연! 햇병아리 주제에 언제 재우그룹과 인맥을 쌓아놨어?”
순간, 다른 기자들의 질투 어린 시선이 그녀를 향해 쏟아졌다.
당황했던 듯 그녀가 한껏 붉어진 얼굴로 동료들을 향해 손사래를 치더니 슬그머니 나를 향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진현승 팀장님. 오늘 직접 계약을 진행하시나 보죠?”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군요. 지난번 기사는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풀렸어요.”
“별 말씀을요. 전 그저 기자로서 사실을 알린 것뿐인데요 뭐.”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은 또 없죠. 아무튼 보답 차원에서 이번 계약을 마치는 대로 한 기자님에게 가장 먼저 연락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혹시 전화번호가 바뀐 것은 아니겠죠?”
“저에게 독점 기회를 주시겠다고요?”
한지연은 눈을 반짝이며 주변을 두리번댔다.
누가 보면 내가 데이트 신청이라도 한 줄 알겠네.
웃으며 돌아서려는데, 기자들의 무리가 다시 시끄러워졌다.
“야, 한지연! 진현승이 뭐라고 한 거야?”
“아무 이야기 안 했습니다. 그냥 지난번 기사에 대해 고맙다고…… 어! 도착한 것 같은데요?
그녀의 마지막 말에 기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활주로로 향했다.
마침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착륙하고 있는 거대한 미군 수송기.
드디어 마이클 중장이 한국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어서 오게.]
[환영합니다.]
가장 먼저 그를 맞은 것은 당연히 주한미군사령관 험머 대장이었다.
그 뒤를 이어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인 이동욱 대장을 비롯한 우리군 관계자들이 줄줄이 그를 맞으러 다가갔다.
[오랜만입니다, 선배님. 이런! 이동욱 부사령관께서도 나오셨군요.]
마이클은 자신을 맞이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와중에도 사방을 두리번댔다.
아무래도 나를 찾는 모양새.
당장 다가가고 싶지만 그사이 워낙 많은 사람들이 그를 향해 몰려든 터라 수 미터에 불과한 거리를 전진하는 것도 힘에 부쳤다.
“제 뒤를 따라오시죠, 팀장님.”
이럴 땐 확실히 양 비서 만한 인물이 없다.
그 큰 덩치로 어찌나 사람들을 잘 밀어내는지, 그저 스치기만 해도 사람들이 죄다 두어 걸음쯤은 밀려났다.
[오! 당신이 미스터 진이군요.]
제법 가까워졌다 싶었던 순간 마이클이 나를 발견하곤 반색했다.
서양인답지 않은 작은 덩치와 두꺼운 안경.
그의 첫인상은 군인 보다는 관료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의외로 한눈에 저를 알아보시는 군요, 반갑습니다. 재우그룹 개발팀장 진현승입니다.]
[어찌나 사진과 똑같은 얼굴인지 못 알아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그나저나 여긴 지나치게 복잡하군요.]
웃는 얼굴로 내 손을 붙잡은 마이클은 갑자기 곁에 있던 연합사 부사령관 이동욱 대장을 향해 뭔가 속삭였다.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보인 이동욱 대장은 즉시 근처에 있던 헌병들을 향해 손짓했고, 조금 후 저편에서 번호판에 4개나 되는 별을 달고 있는 차량 한 대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흠, 우린 오늘 처음 얼굴을 보는 것 같군. 반갑네, 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이동욱일세.”
곁에서 함께 차량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던 이동욱 대장은 돌연 커다란 손을 내밀며 자신을 소개했다.
솔직히 그에 대해선 아는 정보가 그리 많지 않았던 상태.
애초 연합사 부사령관이라는 직책이 방산 업체와는 연이 없는 위치라는 것 때문인데, 그렇다고 절대로 소홀히 대할 인물은 아니다.
“이제야 인사를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무슨 그런 말을. 우리 사이에 연이 깊다면 그게 더 의심받을 일이지.”
말에 뼈가 있었다.
마치 자신은 비리로 얼룩진 다른 장성들과는 다르다는 의미 같다고 할까.
그러고 보니 확실히 그에게서 느껴지는 포스는 여타 다른 장성들, 특히나 한동훈 합참의장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아 보였다.
“그나저나 마이클 중장이 용산기지에서 계약을 진행하고 싶다는군. 아무래도 기자들의 등쌀에 여길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을 테니 기지까지는 내 차를 이용하는 것이 좋을 듯하네.”
왜 갑자기 별판을 단 차가 다가오나 했더니 그게 이유였던 듯싶었다.
나로선 거부할 이유가 없는 호의였기에 짧은 묵례를 하고 차에 오르려는데, 그가 내 어깨에 턱 하고 다시 손을 얹었다.
“미안하지만 조만간 시간을 좀 내주겠나?”
“…….”
“실은 김태익 7기동군단장에게 자네에 관한 이야기는 전해 들었네만, 따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으면 싶군. 보아하니 당장이야 자네가 바빠서 힘들 것 같고, 시간 날 때 잊지 말고 연락 좀 주게.”
아마 불순한 의도로 만나자는 것은 아닐 거다.
하필 김태익 중장 같이 군의 진정한 발전을 추구하는 노선에 서 있는 인물을 거론하는 것을 보면.
왠지 호기심이 동하는 인물이었던 터라 나로서도 거부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였다.
“조만간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고맙군.”
이동욱 대장은 환한 미소와 함께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와 동시에 다시 차에 오르려는 찰나, 그가 의미심장한 말을 뱉어냈다.
“자네가 김태익 중장에게 그랬다지? 우리 군도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라고. 그 말엔 나도 동의하는 편일세.”
“…….”
***
[발주량을 70만 발로 늘리고 싶군요.]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마이클은 대뜸 증산을 요구했다.
그것도 기존보다 무려 20만 발이나 더.
가능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갑자기 왜 요구 수량이 올라간 겁니까?]
[실은 미 육군이 한해 훈련으로 소모되는 철갑탄의 수량이 만만치 않습니다. 게다가 정책상 보유해야 하는 비축 탄의 수량도 50만 발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국방부의 생각이고요. 물론 또 다른 이유가 있기는 한지만, 그건 내부기밀이라서 이 자리에서 밝히기는 좀 그렇군요.]
밝힐 수 없는 이유를 굳이 물을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대충 나머지 이유는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세계 곳곳에 지상군을 파병하고 있는 미 육군으로선 확실히 50만 발만으로 기존에 비축된 우라늄 탄을 모두 대체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다만 염려스러운 것은 우리의 생산능력인데, 이렇듯 갑작스럽게 증산을 요구하면 방법이 없다.
“가만…….”
아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 건가?
우리 군에 적용한 것처럼 멍텅구리 탄의 라인을 전용하면 되잖아.
어차피 멍텅구리 탄이야 더 이상은 대규모 생산계획이 없는 상황이니 굳이 유지할 필요가 없으니까.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오오!]
마이클은 마치 십년감수 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이걸 어쩌지?
받아들이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 조건이 붙는 상황인데.
[다만 미군에서도 출혈을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서 이게 영……. ]
[뭔지 말을 해 보시죠. 수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최대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우리 육군이 물량을 확보한 것처럼 고폭탄 생산시설을 전용하는 겁니다. 대신 그 경우, 라인 전용비용을 미군에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예상대로 그는 갈등의 빛을 내비쳤다.
물량을 확보할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에 오는 안도감.
그리고 추가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에 오는 갈등, 뭐 그런 거.
하지만 단언하건대 곧 안도감이 갈등을 밟아 버릴 거다.
아무리 짱구를 굴려도 결국 이 상황에서 방법은 오직 그것뿐이거든.
[그렇게 하죠.]
결국 내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그럼 대체 얼마나 더 수출금액이 증가하는 거지?
20만 발이 추가되는 상황이면 못해도 족히 4천억이나 더 매출이 증가하는 건데.
결과적으로 총금액이 무려 1조 4천억에 달하는 계약이 되는 거다.
영업이익을 30퍼센트까지 책정하는 것이 가능한 특수 탄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린 셈이지.
[계약과 동시에 최대한 빨리 라인 변경을 시작하겠습니다.]
이후, 우리 사이에선 보다 디테일한 계약사항들이 오고 갔다.
정확한 납품 수량과 기일을 결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물품 대금의 납부 방식과 납기일을 확정하는 것까지.
실은 이제부터가 진짜 중요한 순간이기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만 한다.
[납품기일을 어길 시 5퍼센트의 위약금이 부과됩니다. 동의하십니까?]
[동의합니다. 그런데 생산 라인 자체를 계약하면 물품 대금은 모두 선납을 해주셔야만 한다는 걸 알고 계시겠죠?]
애초 라인 계약을 진행하면 그 라인은 전적으로 계약자의 물건만을 생산해야만 한다.
설사 계약자가 대금 지급을 미루게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 라인을 우리 마음대로 다시 전용하지 못한다는 의미.
그 탓에 보통은 대금을 선지급 받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인데, 사실 내가 선지급을 주장하는 이유는 정작 다른 것에 있었다.
2150원까지 치솟았던 환율이 지금은 급격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상황.
그 와중에 납품 후 대금 지불 방식을 따랐다간 엄청난 환차손이 발생할 수도 있거든.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국방부도 의회에 긴급요청을 한 상황이니 계약만 이루어지면 최소 한 달 안에는 입금이 될 듯싶군요.]
천만다행이었다.
마땅한 환 헤지(hedge) 수단이 없는 지금으로서는 거절당하면 그냥 접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렇다고 내년에나 생겨날 선물환거래 시장을 기다렸다가 계약을 하자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왜지?
아무리 상황이 다급하다고는 해도 무려 1조 4천억이나 되는 돈을 죄다 선납하는 것을 선뜻 동의하겠다는 건 좀 의외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그럼 그렇지.
[뭐죠?]
[5년 후, 추가 발주 분부터는 미국 내에서 라이선스생산이 가능하게 해 주십시오. 즉, 그때부터는 재우탈레스는 부품만 수출하고, 조립은 미국 방산 업체가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겁니다.]
[이유가 뭐죠?]
[당장 들끓고 있는 업체들의 반발을 누르기 위해서죠.]
무슨 말인지는 단숨에 이해했다.
수출이 성사되면 이제껏 독식하던 시장을 빼앗긴 미국 내 방위산업체들이 곤란해질 것은 당연한 순서.
그렇다고 업체가 파산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으니 시설을 유지시켜 줄 목적으로 차후 조립이라도 맡길 심산인가보다.
[좋습니다.]
나로선 하등 손해 볼 것이 없었다.
비록 조립비용이 떨어져 나감으로 인해서 전체적인 파이가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어차피 부품은 수출 가능한 상황이니까.
더군다나 그때쯤이면 생산물량의 급격한 하락으로 인한 비용 상승이 발생할 시기인데, 그걸 감수하면서까지 라인을 유지하느니 차라리 부품형태로 수출하는 편이 더 낫다.
그나저나 1조 4천억의 매출이면 대체 내게 주어지는 로열티가 얼마인 걸까?
1조 4천억의 4퍼센트가 로열티니까…….
560억?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핵심 내용들의 조정을 모두 끝내고 사인을 마친 마이클이 내게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그저 몇 장의 종이에 불과하건만, 그게 무려 1조 4천억의 값어치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좋은 거래였습니다.]
[그건 내가 할 말입니다. 미스터 진으로 인해서 우린 숙원사업을 해결한 것이니까요. 혹시나 싶어서 하는 말인데, 이참에 아예 기술을 팔 생각은 없습니까? 가능하다면 최고 수준의 대가를 지불하죠.]
[그건 곤란합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굳이 가를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마이클은 아쉬움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넌지시 웃으며 계약서를 받아들려는데, 그가 문득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왠지 미스터 진과의 교류가 이게 끝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드는 군요.]
피식.
아마 곧 그렇게 될 거다.
난 아직 당신들에게 팔아먹을 것이 꽤 많거든.
내가 기어이 주한미군사령관을 찾아간 이유도.
그래서 미 국방부의 무기구매 최고 책임자와 직접 관계를 맺으려 노력한 것도 실은 그걸 염두엔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부디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