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07화
[여긴 미 육군 무기획득기획단입니다.]
최소 일주일쯤은 걸릴 것이라던 험머 사령관의 예상과 달리 연락이 온 것은 고작 사흘 만이었다.
[난 단장을 맡고 있는 마이클 중장입니다. 혹시 미스터진과 통화가 가능할까요?]
의외인 것은 책임자가 직접 전화를 했다는 것.
고작 실무진의 손에서도 처리가 가능한 일들을 직접 챙기고 나서는 것으로 봐선 어지간히도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제가 미스터 진입니다.]
[반갑습니다, 테스트 보고서를 검토해본 결과 몇몇 의문점들이 좀 있는데, 추가 테스트를 요구해도 될까요?]
역시 미군의 무기획득체계는 만만치가 않았다.
아무리 자료가 확실해도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까지는 서두르지 않겠다는.
사실 테스트를 더 진행하는 것이 무슨 문제일까마는 불필요하게 소모될 시간이 아까웠다.
[그것보다는 샘플을 보내드릴 테니 에이브람스를 상대로 직접 테스트를 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솔깃한 제안이었을 거다.
열화우라늄장갑으로 떡칠을 한 에이브람스마저 관통한다면 다른 장갑들을 대상으로 한 테스트는 무의미한 상황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제안은 곧장 수락됐고, 얼마 후엔 잔뜩 애가 닳은 마이클의 전화를 받을 수가 있었다.
[맙소사! 대체 저런 괴물을 어떻게 만들어 낸 겁니까?]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온 모양이죠?]
[지금 육군이 완전히 뒤집어졌을 정도입니다. 덕분에 더 이상의 검증은 필요가 없어졌어요]
[다행이군요. 그럼 운용 적합성 여부는 어떻게 됐죠?]
[당연히 적합으로 판명 났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한해 생산 가능 수량이 얼마나 되죠?]
[대략 10만 발 정도는 공급이 가능합니다.]
[이런, 좀 모자란 수준이군요. 안타깝지만 일단은 그 정도 선에서라도 라인 계약을 먼저 추진하도록 하죠. 주한미군사령부에서 내일이라도 서류를 들고 찾아갈 겁니다.]
라인 계약을 하겠다는 것은 한마디로 침을 발라놓겠다는 의미였다.
중간에 다른 발주처가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앞으로 우리 군을 휘저어 놓기 위해선 반드시 미 육군과의 선계약이 필요했기에 나로서도 더 없이 반가운 소식이었다.
“한해 10만 발이나? 그것도 5년간 공급받겠다고?”
소식을 전해 들은 진 회장은 턱을 떨어트렸다.
10만 발이면 매출 규모만 2천억.
단일품목의 계약으로 5년간에 걸쳐 총 1조 원에 가까운 대규모 자금이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상황이다 보니 흥분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일 거다.
“그래서, 본 계약은 언제 진행 한 다더냐.”
“돌아오는 월요일에 마이클 중장이 직접 방문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라인 계약을 맺었으니 발주서 사인은 그저 형식에 불과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진 회장은 주먹을 콱 움켜쥐며 일어섰다.
체면만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나를 끌어안았을 것처럼.
“쯧.”
그런데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건가, 한순간에 다시 표정이 굳어진 그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왜 그러십니까?”
“합참이 문제구나.”
무슨 의미인지 곧장 이해했다.
미 국방부 소속의 고위 장성이 방한을 하는 상황이면 군이 그걸 모를 리는 없을 테고.
아마 지금쯤이면 그들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눈치는 챘을 거다.
“합참에서 연락이라도 받으신 겁니까?”
“어제 연락이 오기는 했었다.”
“뭐라고 하던가요?”
“우리 군에 납품할 물량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는 식으로 은근히 압박을 하더군. 그들도 미군이 어느 정도의 물량을 발주할 것인지는 대충 감을 잡은 모양이야.”
발 빠른 움직임이었다.
막대한 미군의 물량에 보급 순서가 밀릴 것을 걱정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우린 군은 아직 대통령의 재가도 떨어지지 않은 상태다.
선 계약자인 미군에게 납품 순서가 밀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는 거지.
“그래서 뭐라고 답하셨습니까.”
“일단 얼버무리기는 했다만 기어이 선납을 받을 심산인 모양이야.”
절로 코웃음이 쳐졌다.
제 주머니를 채우기 바빠서 업체의 상황을 내동댕이쳐버린 주제에 물건은 먼저 받아내겠다?
미안하지만 난 그 뜻을 따라줄 생각도 없고, 설사 납품을 한다 해도 고작 연7천발로 만족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미리 말씀 드렸듯 제가 직접 상대하겠습니다.”
“어쩌려고? 그렇다고 미군과의 계약을 어길 수는 없잖아. 차라리 합참에 솔직하게 말하고 포기시켜야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 지금 외려 군의 발주물량을 원상 복구하게 만들 생각인데요? 그 점은 전에 약속을 드렸지 않습니까.”
“이 상황에서 물량을 오히려 더 받아내겠다고? 지금도 생산 라인이 버틸까 말까 한 상황에서 그걸 어떻게 감당하려는 건데?”
“기존 범용 포탄라인을 전용하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저 돈이 좀 들어가서 그렇지. 하지만 그 비용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
진 회장은 이해를 못한 표정이었다.
설명을 잇자 그의 눈이 점점 커다랗게 떠졌다.
“너 대체…….”
***
이후,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다.
-김 기자님? 전 재우탈레스의 개발팀장 진현승이라고 합니다.
가장 처음 시작한 일은 언론에 수출 사실을 흘리는 것.
예상처럼 소식을 들은 언론들은 앞다투어 기사를 쏟아냈다.
[재우탈레스가 개발한 신형 철갑탄이 미 육군에게 수출된다고 합니다. 단일 무기수출로는 최대 규모이며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사의 첫 논조는 당연히 재우탈레스를 칭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 이면이 노출 되는 것.
은밀히 흘렸던, 현 상황에 대한 문제점들이 후속으로 터져 나오며 점점 합참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소식통에 의하면 이번에 우리 육군이 발주한 철갑탄이 연7천 발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애초 10만 발에 가까웠던 발주물량이 그렇듯 줄어든 이유에 대해서 합참은 함구하고 있는 상황이며…….]
내 예상처럼 언론은 이제 부실해진 군의 발주물량에 집중됐다.
드디어 물어뜯기가 시작된 거지.
가뜩이나 논쟁을 좋아하는 언론들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휘저어 놓기 시작했다.
[미 육군의 발주물량이 한해 십 만 발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는 재우탈레스가 생산 가능한 수량을 초과하는 수준이며, 선 계약 선 납품 조건에 따라 향후 우리 군은 그나마 줄어버린 물량조차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최근 재우탈레스가 이번에 개발한 철갑탄이 현존하는 모든 전차들을 무력화 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 군 관계자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이걸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 자칫 우리 군은 20년 이상의 기갑전력상승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번 사태는 전적으로 합참의 안일한 대처가 문제라는 지적이 일각에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은 이번 일이 내부비리에 의한 것이 아닌지를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태는 점점 내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젠 단순한 납품 수량 부족 문제가 아니라 합참의 비리로 초점이 맞춰진 상태.
이쯤이면 그들도 더는 버티지 못할 거다.
반응은 곧바로 왔다.
후속 기사가 터지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지났을까.
그룹 본사에 느닷없이 합참과 육군의 수뇌부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서 와라.”
호출을 받고 찾아간 회장실에는 무려 네 명이나 되는 고위급 장성들이 점거 중이었다.
하나 같이 무거운 표정들.
어디선가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온 듯한 분위기다.
“안녕하십니까, 재우탈레스 개발팀장 진현승입니다.”
“알고 있네. 자네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건가.”
다짜고짜 반말지거리를 해오는 이가 바로 합참의장 한동훈이었다.
장관 자리를 제외하면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인물.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이걸 어쩌지?
당신은 절대 장관이 되지 못하는 것이 역사적인 사실인데.
뒤늦게 떠오른 사실인데, 이 나라 역사상 최초로 비리에 연루되어 경질된 합참의장이 바로 한동훈이었다.
“못 알아들은 척하자는 건가? 느닷없는 미국 수출 문제로 지금 군이 발칵 뒤집어졌다는 것 몰라?”
“그게 이렇게까지 비난 받을 일입니까? 이 어려운 시기에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였다면 칭찬을 하셔도 모자란 상황인 것 같은데요.”
“그, 그거야…….”
“어차피 방산 업체도 이익집단입니다. 그럼 우리가 개발비도 안 나오는 수준에서 만족할 거라고 보신 겁니까?”
“누가 손해를 보라고 했나? 왜 하필이면 이 시기에 수출을…… 하아, 됐고. 발주 수량을 당장 원상 복구하라는 대통령님의 특별 명령이 떨어졌네. 그럼 더 이상의 문제는 없는 거지?”
마치 선심을 쓰는 듯한 태도였다.
입매를 뒤틀어 보이자 합참의장이 눈살을 찌푸린다.
“왜, 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죄송하지만 미 육군과 선 계약을 맺은 상황임을 아실 텐데요?”
“아직 계약서에 사인을 한 건 아니지 않은가. 우리가 설마 그것도 안 알아보고 왔을까?”
“물론 그렇습니다만 이미 라인 계약은 끝난 상태입니다. 법적으로 라인 계약 자체가 선 계약과 동일한 효력이 있음을 모르십니까?”
“아니 그럼 대체 뭘 어쩌자는…….”
목청을 높이려던 합참의장은 슬며시 말을 먹어버렸다.
이제야 갑의 위치가 뒤바뀐 상황임을 파악한 것이겠지.
특이한 것은 그 곁에 있던 육군 중장이었는데, 웬일인지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다른 이들과는 달랐다.
뭐랄까, 꼭 흥미롭다는 눈빛?
아니, 정확히는 통쾌하다는 표정에 가깝다고 할까.
“이보게 진현승 팀장. 우리 쪽 사정도 좀 봐줘야 할 것 아닌가. 지금 언론 때문에 대통령께서도 나서신 마당에 그걸 거절하면 어떻게 하라는 건가.”
합참의장의 태도는 한순간에 달라졌다.
무시하고 싶지만 대통령까지 나선 상황이면 이쯤에서 한 발 물러서야 한다.
“곤란한 상황이군요.”
“그러지 말고 부탁 좀 함세. 이러다가 멀쩡한 장성들 몇몇이 줄줄이 목이 날아가게 생겼어. 뭔가 방법이 없는 건가?”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걸 군이 수용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군요.”
“뭔데 그런가.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선 최대한 지원하겠네.”
“아시겠지만 문제는 생산 라인의 부족입니다. 그렇다고 공장 여건상 당장 증설을 한다는 것도 불가능하고, 결국 남은 방법은 고폭탄의 생산 라인을 전용하는 것뿐이죠.”
“그럼 하면 되지 않은가. 어차피 멍텅구리 탄이야 군의 보유 수량이 수백만 발이 넘는 마당이니 한 두 해 공급이 끊긴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어.”
“라인 전용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문제죠. 결국 그걸 보존하려면 매해 일정 수량 이상을 추가로 찍어내야 하는데, 그 물량이 한해 최소 2만 발에 가깝습니다.”
“…….”
합참의장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애초 군이 발주를 예정하고 있는 물량이 10만 발.
그에 더해 매해 2만 발씩을 더 받으라면 부담이 적지는 않을 거다.
“그걸 얼마 동안이나 더 받으라는 건가.”
“최소 3년이죠. 그래야 손해 비용보존이 가능합니다.”
“…….”
꼴을 보아하니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모양새다.
애초 예정되어 있던 물량에서 무려 60퍼센트나 늘어난 셈인데 왜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그게 인지상정이다.
남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제 주머니를 채우려 했으니 토해낼 건 토해내야지.
아마 그걸 맞추려면 내년에 예정 되어 있다는 대규모 전력증강사업에서 예산을 빼 와야 할 텐데, 결국 그건 저 늙은이에게 돌아갈 리베이트 금액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거다.
“빌어먹을…….”
수긍의 표시였다.
뭐 이 상황에선 달리 방법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자리를 털고 일어선 합참의장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좋아, 그렇게 하지. 언론에는 우리가 업체와 원만한 합의를 봤다고 발표를 할 테니 나중에 딴소리 하면 곤란해.”
“물론이죠.”
눈을 흘기고 돌아서는 합참의장의 표정은 안쓰러울 정도였다.
우르르 그를 뒤따라 나가는 장성들도 마찬가지.
그런데 불현듯 그들 중 하나가 다시 뒤돌아서선 나를 향해 똑바로 걸어왔다.
“제7기동군단장 김태익일세.”
누군가 했더니 아까부터 나를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7기동군단장이면 진 회장과 연이 있다는 그 사람?
어쩐지 아까부터 진 회장과 계속 눈을 맞춘다 싶더니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나도 자네 이야기는 꽤 전해들은 편이지. 뭐 이제 보니 대부분 헛소문에 불과한 것 같지만.”
“…….”
“다름이 아니고, 뭐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
“말씀 하시죠.”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왜 이렇게까지 해서 우리 군이 끝내 철갑탄 보유 수량을 확대 하게끔 만드는 것이냐는 말일세. 어차피 미군으로 수출이 성사된 상황이면 재우 탈레스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잖아.”
“그렇다곤 해도, 기왕이면 더 많은 물건을 판매하고 싶은 것이 사람 욕심 아니겠습니까?”
“단지 그것뿐인가?”
“글쎄요, 굳이 이유를 더하자면 남 좋은 일만 시켜 줄 수는 없었다는 것도 한몫했겠죠. 솔직히 장군께서 무슨 대답을 원하시는 지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장사꾼임을 간과하시면 곤란합니다.”
김태익 중장은 말없이 나를 쳐다만 봤다.
왠지 저런 눈빛을 가진 자라면 말이 통하지 않을까 싶은 기분에 예정에 없던 한마디를 더 보탰다.
“이제 어설픈 애국심만으로는 절대 나라를 지킬 수 없습니다. 즉, 의지에 합당한 무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인데, 그러기 위해선 군도 변해야죠.”
“……당돌한 친구로군.”
그는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주제넘음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던 듯 그가 다시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언제 시간 되면 내가 식사나 한번 사지. 자네 덕분에 십 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갔거든.”
“…….”
그는 대답을 듣지 않은 채 돌아섰다.
힐끗 쳐다본 진 회장은 입가에 미소를 잔뜩 매달고 있었다.
“내일이라도 당장 라인 조정을 해야겠군요. 결재 올릴 테니 지급으로 처리 좀 해 주십시오.”
진 회장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나 역시 일을 서두르려는 찰나,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던졌다.
“군과 틀어지는 것이 걱정 되지 않는 거냐?”
“군이 아니라 합참의장과 틀어졌을 뿐이죠.”
“…….”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합참의장이 군을 대표하긴 해도 군 자체는 아닙니다. 게다가 그는 얼마 안 있으면 민간인 신분이 될 인물인데, 그런 존재를 굳이 걱정 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가 민간인이 될지 장관이 될지 네가 어떻게 알아. 그리고 군에는 세력이라는 것이 있어. 앞으로 그 세력이 우릴 견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한 거냐.”
“글쎄요, 불명예스럽게 퇴임할 인물에게 붙어있을 세력이 있을지 의문이군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불명예라니?”
진 회장은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아무튼 그의 세력은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기왕 세력이 필요하다면 방금 전 김태익 중장 같은 인물들이 속한 세력을 가까이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보아하니 아버지께서도 그쪽에 베팅을 하신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허허, 이것 참…….”
왠지 부정하는 의미의 웃음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런데 나를 다시 돌려세운 목적이 단지 그걸 따지기 위함은 아니었던 걸까.
한차례 손사래를 쳐 보인 그가 무심하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전에 네가 원했던 기술제공에 따른 로열티 약정서다. 사인만 하면 철갑탄에서 발생하는 매출의 4퍼센트가 너에게 지불 될 거다.”
매출의 4퍼센트면 엄청난 비율이었다.
방산 업체의 영업이익이 최고 17퍼센트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럼에도 그렇듯 높은 비율을 책정해 준 것은 필시 철갑탄이 특수 탄임을 감안한 것일 터.
하긴, 30퍼센트나 되는 영업이익에서 4퍼센트쯤 떼어줬다 해서 손해날 것은 없을 거다.
“그리고 내일 열리는 그룹 중역 회의에서 너를 탈레스의 정책실장으로 추대할 테니 그리 알아.”
좋은 소식을 알리는 사람치곤 표정관리가 무척이나 서툴렀다.
혹여 나와 눈이 마주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그렇고.
쑥스러워하는 것은 알겠는데, 왠지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태도다.
“후회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야지. 복귀한지 고작 몇 개월 만에 승진시키는 부담감을 감수하고 내린 결정이니까. 참, 계약서에는 네가 직접 서명하는 것으로 해. 위임장을 내줄 테니까.”
그는 끝내 무심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막상 방을 나설 때쯤,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그의 목소리는 더 없이 고조되어있었다.
“이 회장님? 하하, 소식이 벌써 거기까지 간 겁니까? 안 그래도 조만간 식사나 한번 같이 할까 싶었습니다. 둘째 놈이요? 당연히 같이 가야죠.”
누구지?
진 회장이 저렇듯 쩔쩔 맬 만한 존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