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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6화 (6/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06화

며칠 후, 진 회장과 나는 주한미군 기지를 향해 함께 이동했다.

마침 주한미군사령관인 험머 대장은 진 회장과 친분이 있던 인물이었던 터라 면담 약속은 쉽게 성사됐다.

“원 세상에…… 대체 이게 무슨…….”

진 회장은 아직도 확신이 들지 않는 듯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평생을 군과 부딪쳐온 인물 같지 않은 태도랄까.

그에겐 첫 시도였던 만큼 저 정도의 긴장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불안하신 겁니까?”

“그럼 넌 정말로 미 육군으로의 수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거냐?”

“불가능할 이유가 없죠. 미국엔 분명 동맹국들의 무기를 구매하기 위한 획득 프로그램. 즉 FCT가 존재하니까요. 게다가 지금 미국은 우리가 개발한 철갑탄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게 왜 미군에게 필요하다는 거지?”

“그건 두고 보시면 압니다.”

“하지만 이제껏 미 국방부가 대한민국의 무기를 구매해간 역사가 없다는 건 너도 잘 알고 있겠지?”

“그거야 여태껏 그들의 기준을 충족시킬 물건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 개발된 철갑탄은 다릅니다.”

진 회장은 끝내 확신을 하지 못한 채 입술만 씹어댔다.

경험의 차이란 바로 이런 것에서 나오는 거겠지.

이미 숱하게 미국으로의 무기수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그가 저렇듯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왠지 우스웠다.

“하아…….”

연이은 한숨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여전히 긴장을 버리지 못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무렵, 난데없이 그가 우리육군의 전력증강이 미뤄지는 상황을 염려하는 말을 뱉어냈다.

“나도 떳떳하게만 사업을 해 온 것은 아니지만 합참도 어지간하군. 양산만 되면 단숨에 기갑 전력을 20년은 끌어 올릴 수 있을 물건을 두고…….”

“이제 보니 아버지께선 애국자셨군요.”

“무슨 뜻이야?”

“당장 회사가 기사회생하게 될 상황을 기뻐하시기보다는, 우리 군이 철갑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것을 더 안타까워하시는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진 회장은 한층 더 어두워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부정할 생각은 없었던 듯 턱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애국자라서가 아니라 이 땅에 태어난 자의 숙명 같은 거겠지. 넌 아직 이해 못하겠지만, 내 나이가 되면 가끔은 그런 비이성적인 관념들이 생각에 끼어들 때가 있어.”

이해를 못하기는커녕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따지고 보면 나도 그 비이성적 관념의 피해자니까.

애국심에 대해선 생각조차도 해 본 적 없던 내가 기껏 데이터 칩 하나 지키자고 목숨을 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는데, 그렇게까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수출이 성공하면 육군은 곧 발주물량을 원상 복구할 테니까요.”

“육군이 뭣 때문에?”

“그것 역시 때가 되면 자연히 아시게 될 겁니다. 다만 그걸 가능하게 하려면 이번 일에 대한 전권을 제게 주셔야만 하는데, 그러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눈빛이 한순간 흔들렸다.

부정적인 의미라기보다는 내가 뭘 어찌 할 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눈치랄까.

곧 뱉어진 그의 대답은 역시나 긍정적이었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것도 네 생각이었으니 알아서 해. 그런데 한 가지만 묻자.”

“…….”

“넌 대체 언제부터 FCT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게냐.”

내내 그게 의아했던 모양이었다.

하긴, 철없던 아들이 이런 상황까지 만들어냈다는 것이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겠지.

하지만 이건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

지금 난 단지 치맛자락만 살짝 내비치고 있는 상태거든.

“당연히 처음부터였습니다. 우리가 만든 물건을 우리만 쓰겠다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할 때가 왔으니까요. 방산 업체도 엄연히 이익을 추구하는 사업임은 아버지께서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

***

[오랜만입니다, 진 회장님.]

[그렇게나 말입니다. 지난번 창군 행사 때 만난 이후론 처음이군요.]

험머 대장의 첫인상은 조금 독특했다.

터럭 하나 없는 머리와 부리부리한 눈.

얼핏 보면 군인이라기보다는 영화배우가 더 잘 어울린다 싶은 느낌이다.

가만, 그렇고 보니 저 얼굴.

분명 닮은 사람이 있었는데.

누구였더라?

제이슨 스타뎀?

브루스 웰리스?

[저 친구가 회장님의 둘째 아들입니까?]

눈이 마주친 험머가 나를 향해 턱짓을 해왔다.

호의적이지만은 않는 눈빛.

행여 있을지 모를 쓸데없는 청탁을 경계하는 느낌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재우탈레스의 개발팀장 진현승입니다.]

[반갑군. 그런데 내게 부탁할 일이란 것이 뭐지?]

분위기가 싸늘했다.

얼핏 진 회장의 표정도 그리 밝지만은 않은 것을 보니 억지스레 만들어낸 기회인 듯싶다.

[부탁이 아니라 제안입니다. 보다 확실하게 말한다면 기회를 드리는 거죠.]

[…….]

험머의 눈매가 일순 일그러졌다.

그럼에도 끝내 감정의 동요는 보이지 않고.

거슬리긴 했어도 목적이 궁금하다는 증거다.

[기회라…… 어디 한번 들어보지.]

[일단은 이걸 한번 검토해 보시죠. 제 나름대로는 미 국방부에서 반드시 관심을 가질 만한 거라고 확신합니다.]

서류를 건네받은 험머는 무심하게 살폈다.

두어 장쯤 넘어갔을까.

비스듬히 기대고 있던 허리를 꼿꼿이 새운 그가 나를 휙 쳐다봤다.

[FCT? 미 국방부의 무기획득 프로그램을 신청하겠다고?]

[그렇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개발한 APFSDS(날개안정식 분리철갑탄)가 꽤나 쓸 만한 수준이거든요.]

[이봐. 자넨 우리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갑탄을 보유 중임을 모르는 건가?]

이해 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값싸고 성능 좋은 열화우라늄탄을 쓰고 있는 미군에게 난데없이 비싼 중합금철갑탄을 사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니까.

뭐 말로 해봐야 입만 아플 테고 차라리 눈으로 직접 보여주는 편이 백번은 효과적일 거다.

[이 영상을 한번 보시죠.]

준비했던 5분짜리 영상엔 그동안의 테스트과정이 모두 담겨있었다.

서서히 커져 가는 눈.

마지막 테스트를 지켜보는 과정에선 결국 그도 헛! 하고 외마디 비명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저게 텅스텐 탄자가 맞기는 한 건가?]

[물론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미 육군이 현재 사용 중인 열화우라늄탄자에 비해 관통력이 약 20퍼센트 정도 증가한 상태입니다.]

[열화우라늄탄의 관통력을 20퍼센트나 뛰어넘는다면 현존하는 모든 장갑들은 다 무용지물이라는 뜻인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저건 고작 텅스텐 탄자잖아.]

[그걸 말해 달라는 것은 기술의 원천을 알려달라는 것과 같죠.]

험머는 그 말에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전히 믿기 힘들었던 듯 이후 그는 몇 번이고 화면을 되돌려보고 난 후에야 다시 내게 시선을 주었다.

[그런데 왜 저걸 미 육군에 납품할 생각을 한 거지?]

[그야 저 물건을 가장 필요로 할 곳이 바로 미국이니까요.]

순간 차가운 시선이 날아들었다.

대체 뭘 알고 있기에 이런 수작을 벌이느냐는 듯 추궁하는 눈빛.

시금털털했던 커피향이 갑자기 유난히도 달게 느껴진다.

[미국은 지금 열화우라늄탄의 방사능 유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죠.]

[…….]

[그런 마당에 우라늄탄보다 성능이 뛰어나면서도 보관과 사용이 간편한 텅스텐탄이 개발 되었다면 당연히 관심을 가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

[그리고 최근에는 그걸 대체할 철갑탄의 개발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니었습니까?]

험머는 마지막 말에 특별히 더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행동을 반복하던 그는 조금 후 허탈한 미소를 내비쳤다.

[이거 당황스러워서 뭐라 할 말이 없군. 대체 자네는 미 육군이 신형철갑탄을 개발 중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 정도 정보수집 능력이야 방위산업체로서는 당연한 겁니다.]

[하지만 무슨 수로? 혹시나 싶어서 개발 업체가 소재들의 수입도 조심했던 상황이었어.]

[그래 봐야 소용없습니다. 국제시장에서 무기 외에는 사용처가 없는 특수금속 소재들의 이동은 절대로 숨길 수가 없으니까요.]

[허어…….]

기가 찬다는 표정이 지어졌다.

하지만 대답이 부족하다고 느끼지는 않은 듯 태도가 다시 온화해졌다.

[인정하지, 자네 말대로 우린 새로운 철갑탄의 개발을 시도했어. 하지만 결국 단가를 맞출 수가 없어서 포기한 상태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미국에게는 기회라는 소리기도 하고요. 저희는 우라늄탄과 동일한 가격대로 납품이 가능하거든요.]

[그게 무슨! 텅스텐 탄의 가격을 열화우라늄탄 수준으로 낮췄다고? 대체 어떻게?]

[미국과 달리 우린 비싼 텅스텐의 비율을 최소화하고 다른 중합금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만드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덕분에 단가가 확 낮아졌죠.]

험머는 턱을 떨어트린 채 나를 쳐다봤다.

그 모습을 함께 지켜보던 진 회장은 슬그머니 제 머리를 매만지더니 통쾌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서, 나를 찾아온 목적이 뭐지? 솔직히 이런 상황이면 FCT를 통과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텐데?]

[서류가 제대로 접수된다면 그렇겠죠. 하지만 전 미 국방부 무기획득 기획처 실무진들을 믿지 않습니다.]

[미 방산 업체의 로비를 염려하는 거군.]

[그렇습니다. 로비자금을 받아먹은 자들에 의해 서류가 누락 될 가능성이 크죠.]

그건 추측이 아니라 내 오랜 경험에서 나온 말이었다.

말뜻을 이해한 건지 이내 험머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니까 결국엔 내 추천서가 필요하다는 뜻이군. 육군의 결정권자에게 직접 서류가 도달하도록.]

[정확합니다.]

[이해하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히 해 둬야 할 것이 있네.]

[그게 뭐죠?]

[혹시 저게 정부에서 투자한 사업은 아니겠지?]

정부 투자 여부를 묻는다는 건 수출승인을 걱정한다는 뜻이었다.

그건 곧 마음을 정했음을 의미하는 것.

혹시나 싶었던 일말의 불안감이 스르륵 날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어차피 전략물자로 분류된 것도 아니기에 수출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더군다나 미국이 수입하겠다면 절차가 꽤나 간편해 지기도 할 테고.]

벌떡!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험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상황인가 싶어 눈을 끔뻑일 무렵, 갑자기 책상으로 향한 그가 자신의 직인이 찍힌 서류 한 장을 꺼내왔다.

[아무래도 내가 사과해야겠군. 우리에게 기회를 준다는 자네 말은 틀리지 않았어.]

[…….]

[그런 의미에서 이걸 줄 테니 서류의 가장 앞부분에 첨부하게. 그럼 로비가 횡행하는 실무진들의 서랍에서 서류가 잠들 일은 없을 게야. 못해도 일주일쯤 후엔 육군에서 답신이 올 거라고 생각하게나.]

괜한 자신감은 아닐 터였다.

미군 10대 실세 중 하나가 바로 주한미군 사령관이니까.

아마도 그의 의견이 첨부된 FCT 신청서라면 곧장 최고 결정권자에게 도달할 거다.

[고맙소, 험머 사령관. 내 조만간 식사 자리를 한번 마련하겠소.]

진 회장은 뒤늦게 자리를 박차며 일어섰다.

이미 수출은 기정사실화 되기라도 한 듯 한껏 고무된 표정.

옅은 미소와 함께 그 손을 맞잡은 험머는 불현듯 나를 턱짓하며 말했다.

[식사는 됐으니 언제 아드님이나 한 번 더 보내주시죠.]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단지 식견이 하도 대단한 것 같아서 담소나 좀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서죠. 그나저나, 대체 저런 친구를 왜 그토록 걱정하셨던 건지 이해가 안 가는 군요.]

[아, 그 그게…….]

진 회장은 은근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입매를 뒤틀어 보이자 이번엔 괜히 허공을 쳐다본다.

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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