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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5화 (5/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05화

“회장님께서 별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도착한 곳은 호텔 내에 있는 한정식 집이었다.

역시나 단순한 점심식사 자리는 아니었던 모양이지.

회사 간부들이 삼삼오오 모여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서 와라.”

진 회장이 자리하고 있던 테이블엔 이미 한 상 가득 음식들이 올라와 있던 상태였다.

기다렸다는 듯 내 등장과 동시에 수저를 든 그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은 채 죽을 떠먹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일은 무슨, 점심이나 한 끼 같이하자는 거지.”

무심한 말투와는 달리 눈이 웃고 있었다.

꽤나 만족스러워 하는 표정.

뭐 이유야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고, 이럴 땐 먼저 목적을 꺼내기를 기다리는 것이 상책일 거다.

“보고서는 검토가 끝났다. 솔직히 기대 이상이더구나.”

본론이 나온 것은 식사가 다 끝날 때쯤이었다.

내색하지 않은 채 물을 들이켜자 이번엔 갑자기 농담조의 말이 날아든다.

“영상을 보고 있자니 문득 네 머리를 병으로 내리쳤다는 놈들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

“무슨 뜬금없는 말씀이십니까?”

“상황이 이러면 그놈들에게 상이라도 줘야 할 것 아니야. 네가 갑자기 개과천선을 한 것이 어찌 보면 그 놈들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

“상은 이미 김 비서가 줬으니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당시 놈들에게 건네준 봉투가 꽤 두둑해 보였거든요.”

분위기를 맞추려 받아친 말에 진 회장이 웃어 보였다.

스스로도 낯설었던 걸까.

짐짓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바꾼다.

“흠흠, 아무튼 연구소엔 섭섭지 않을 선에서 상여금을 지급했다. 그들도 고생은 했으니 보상은 받아야지.”

“다행이군요. 그럼 혹시 저를 부르신 이유도 포상금 때문입니까?”

순간 진 회장이 황당하다는 투로 쳐다봤다.

하지만 여전히 웃음기가 맺힌 눈매.

그 순간 왠지 좀 더 진도를 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아버지께선 제게 상여금이 아니라 기술제공 비용을 지불하셔야 할 상황인 건 아시죠?”

“뭔 비용?”

“로열티 말입니다. 탈레스가 개발한 기술이 아닌 만큼 당연히 제게 로열티를 지불하셔야죠.”

“진심이냐?”

따지는 것 같아도 표정만은 온화했다.

어쩌면 최초였을 나와. 아니 현승이와 나누는 이런 사심 없는 대화를 즐기기라도 하듯.

우스운 것은 비단 그만이 아니라 나 역시도 소원해진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는 거다.

“당연히 진심입니다. 실은 제가 요즘 현금이 말라가고 있어서요.”

기가 찬다는 표정이 가시질 않았다.

지나치게 앞서갔나 싶은 생각이 들 무렵, 외려 그가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어색함의 끈을 잘라내 버렸다.

“쯧, 이거 새로 산 요트는 타보지도 못하고 팔게 생겼군. 피는 못 속인 다더니. 어째서 그런 건 나를 쏙 빼닮았는지 원.”

“요즘 같은 때에 요트 따위나 타고 다니시다간 욕먹기 십상입니다.”

“그게 네놈 입장에서 할 말이냐”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충고죠.”

연이은 농담에 진 회장이 호탕한 웃음을 내뱉었다.

놀랐던 걸까, 저편에서 내내 힐끗거리며 우리를 보고 있던 김 비서의 얼굴에 경악스러운 표정이 지어졌다.

“아무튼, 로열티 문제는 일단 고려는 해보마. 그리고 실은 이것 때문에 보자고 한 거다.”

돌연 표정을 바꾼 진 회장이 나를 향해 종이뭉치를 건넸다.

양산 확정 요구서.

그게 첫 머리글이었다.

“이걸 벌써 합참회의에 제출하신 겁니까?”

“육군에서 전부터 좀 들들 볶아 댔어야지. 어차피 최종 테스트까지 끝난 마당이니 나도 일을 좀 서둘렀는데, 아니나 다를까 서류가 접수된 하루 만인 오늘 곧바로 회의가 열린다더군.”

진 회장은 꽤나 진귀한 경험을 했다는 표정이었다.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

원래 양산 요구 이후 회의가 소집되기까지는 최소 1개월 이상이 소요 되는데, 그게 고작 하루 사이로 앞당겨졌다는 건 상식을 벗어난 경우다.

“회의가 끝나는 대로 양산 수량이 어느 정도로 결정되었는지 알 수 있을 거다.”

“어떻게요? 대통령에게 보고를 올리기 전까지는 결과를 외부에 공개 안 하는 것이 원칙 아닙니까?”

“원칙은 무슨. 어디 군의 일이 원칙대로만 굴러가더냐?”

“…….”

“친분이 있는 육군 7기동군단장이 미리 결과를 알려주기로 했으니 그리 알아.”

그 말에 퍼뜩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나는 지금 권력이 법을 넘어서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

사실 지금의 사회 분위기라면 그 정도 편법은 권력자들에겐 별스럽지도 않은 일일 거다.

“7기동군단이면 우리가 개발한 철갑탄의 최대 수혜자이기는 하죠. 그런데 아버지께선 어느 정도 수량이 발주 될 것이라 예상하십니까?”

“나야 당연히 전시대비 비축 탄약까지 결정되길 바라고 있지. 그럼 최소 10만 발 정도?”

“못해도 2000억 정도의 매출이 발생하는 상황이군요.”

“매출보다는 영업이익을 따져야지. 대략 450억 정도의 여유자금은 확보할 거라고 본다.”

“아니죠, 특수 탄의 경우는 영업이익률을 30퍼센트로 잡고 있으니 600억에 가깝다고 보시면 됩니다.”

“설마 그 정도까지?”

“소재 부분에서 부가가치를 끌어 올렸으니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무튼, 600억을 기존에 보유 중인 유보금과 합치면 향후 자력으로도 무기 개발이 가능하겠군요.”

마지막 말은 내심 그를 떠보려는 의도에서 한 것이었다.

반응을 봐야 향후 내 계획의 시도여부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만약 저 말에 발끈하면 새로운 무기 개발은 당분간은 물 건너갈 것이고, 호의적이면 연이어 세상을 뒤집을 무기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거다.

“그 정도 규모면 당연히 자력 개발이 가능하지. 왜, 혹여 계획해둔 것이라도 있는 거냐?”

다행히도 진 회장은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아니, 오히려 내 의중을 묻기까지.

이쯤이면 전에 비해 장족의 발전을 이룬 셈이다.

“일단은 정밀유도…….”

부르르!

말을 내뱉으려는 순간 근처에 있던 그룹 중역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진 회장의 시선이 단숨에 돌아가는 것으로 보아 양산회의 결과를 알려오는 전화인 모양이다.

“김태익 중장입니다, 회장님.”

“회의가 끝난 모양이군. 안 받고 뭐해?”

다그치는 말에 중역이 재빨리 통화버튼을 눌렀다.

일순 그를 향해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던 듯 진 회장도 연신 물로 목을 축이고 있었다.

“네?”

통화 중이던 중역의 얼굴에서 당혹스러운 표정이 스쳐 갔다.

불길한 예감을 받은 듯, 진 회장의 눈이 한껏 가늘어졌다.

“무슨 일인데 그래?”

“양, 양산물량이…… 대폭 삭감 됐다고…….”

겁을 집어먹은 중역은 대답을 머뭇거렸다.

답답함에 나조차도 숨이 넘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순간, 갑자기 진 회장이 어딘가로 통화를 시도했다.

“안녕하십니까, 합참의장님.”

통화는 한동안 이어졌다.

내내 다양한 표정 변화를 보이던 진 회장의 얼굴은 끝에 가선 거의 검은 빛을 띠고 있었다.

“빌어먹을!”

“안 좋은 소식입니까?”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이건…….”

“어느 정도기에 그럽니까?”

“기대했던 전시대비 비축 탄약의 발주는 물 건너갔고, 5년 동안 한해 7000발 수준만 납품받겠다고 하더군.”

한해 7000발이면 그야말로 형식적인 수준에서의 물량이다.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우린 개발비도 못 건지는 상황.

그렇게 재촉을 했다더니 갑자기 돌변한 이유가 궁금하다.

“뭣 때문입니까?”

“말로는 최악의 경제위기로 인해 예산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데, 그걸 믿을 바보는 없지.”

“다른 이유라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전부터 암암리에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었어. 어쩌면 육군이 내년에 예정된 대형전력증강사업 예산을 지키기 위해서 올해 예산을 해군에게 양보할 지도 모른다고. 설마 했는데, 그 불똥이 우리에게 튈 줄이야.”

“내년에 예정된 육군의 사업 규모가 얼마나 되기에 그러는 거죠?”

“2조 원. 흔하지는 않은 규모지.”

돌연 이번 사태의 전말이 머리에서 그려졌다.

2000억짜리 사업과 2조 원짜리 사업.

그럼 대체 리베이트 금액의 차이가 얼마나 될까.

결국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했다는 말은 개소리에 불과 하고, 합참의 늙은이들은 결국 자신들의 주머니를 조금이라도 더 채워줄 사업을 지켜낸 거다.

“우린 얼마나 주기로 예정 되어 있었습니까?”

“뭐?”

다짜고짜 뱉어낸 질문에 진 회장이 흠칫 했다.

뭣 때문인지 한참을 쳐다보던 그는 이내 허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법이구나. 그 짧은 사이 문제의 핵심이 뭔지를 파악할 줄도 알고.”

“이 나라의 군 장성들을 지나치게 잘 알고 있으니까요. 아무튼, 얼마나 주기로 하셨던 겁니까?”

“약속한 적 없다. 어차피 순수하게 우리 자본으로만 시작했던 사업인 마당에 리베이트는 무슨.”

사실이라면 그게 원인이지 싶었다.

저들의 입장에선 생기는 것 하나 없는 사업을 굳이 지킬 필요는 없었겠지.

그럼 이제 어쩐다?

정말로 군의 발전을 위한 선택이었다면 모를까.

고작 뒷방 늙은이들의 주머니 사정을 이유로 역사를 거스르면서까지 만들어낸 것을 포기하게 둘 수는 없다.

“그런 표정 지을 것 없다. 넌 최선을 다했으니까.”

“…….”

“실망스럽기야 하겠지만 털어버릴 건 빨리 털어버리는 것이 네 정신 건강에 좋을 거란 말이다. 이 사업을 오래 지속하고 싶다면.”

도리어 나를 위로하는 진 회장의 태도에 잠시 당황스러웠다.

이런 비보를 듣고도 저렇듯 침착할 수 있는 배포도 놀랍긴 마찬가지고.

하지만 난 지금 실망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발생한 변수를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었던 것뿐.

아니, 사실 방법은 처음부터 존재했지만 그걸 실행에 옮길 첫 단추를 찾고 있었을 뿐이다.

“실망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손해 볼 일은 없으니까요.”

“손해 볼 일이 없다니, 당장 발주물량이 10분의 1 토막 난 상황인 걸 모르는 거야?”

“모를 리가요. 하지만 육군보다 더 많은 수량을 구매해줄 곳이 있다면 어쩌시겠습니까?”

“…….”

진 회장은 눈을 부릅떴다.

이후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이 날아왔지만 여기서 대답하기엔 보는 눈이 너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께서 해주실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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