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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4화 (4/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04화

“차량 준비 됐습니다, 팀장님.”

출근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한 달째였다.

그동안엔 재우탈레스의 내부 분위기를 살피며 직원들과의 팀워크를 다지는 것에 주력했던 상태.

오늘은 그동안 벼르고 별렀던 탈레스 연구소를 방문할 예정이다.

“명승은 교수님과 통화는 됐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리고 부탁하신 자료들은 내려가시는 동안 읽어보실 수 있게 잘 정리해 두었습니다.”

김 비서는 역시 일 처리 하나만큼은 똑 부러지는 스타일이었다.

왜 저런 능력자가 현승이의 곁에 끝까지 남아있었던 것인지 의아할 정도.

한때는 지나치게 밀착한다 싶은 생각에 진현철이 붙여둔 프락치일 가능성도 생각해봤지만, 기억의 고리에서 찾아낸 그녀와 현승이의 인연은 도무지 그런 의심이 파고들 틈이 없었다.

“명 교수님에게 안부는 전해 드리죠.”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통화를 하고 지내니까요. 오빠야 워낙 연구에 몰두하면 주변 일에는 관심이 없는 스타일이라서 주로 제가 하는 편이긴 하지만요.”

“부럽군요. 사촌지간에도 그 정도로 우애가 있다는 것이.”

생긋 웃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도무지 명 교수와 인척 관계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 고지식한 인물과 저런 단아한 얼굴이 어딜 봐서.

미녀와 야수라는 말이 저들 이상으로 어울리는 경우는 없을 거다.

”출발하겠습니다, 팀장님.”

막상 생각해보니 양 비서도 의외의 인물인 건 마찬가지였다.

눈앞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동요하지 않는 우직함과 목에 칼이 들어와도 열릴 것 같지 않은 무거운 입.

아마 현승이가 끌고 오지 않았다면 국가대표 유도선수로 금메달을 따도 몇 번은 땄을 거다.

“후회 되지 않습니까?”

차량이 막 고속도로를 진입했을 무렵 무심하게 말을 던졌다.

성공한 운동선수와 비서.

누가 봐도 격의 차이가 확연하니까.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그럴 리가요. 팀장님이 아니었으면 제 어머님께선 진즉에 돌아가셨을 겁니다.”

몇 년 전인지 모를 과거의 일이었다.

당시 양 비서는 어머니의 병원비가 없어서 병원 복도에서 절망하여 주저앉아 있었고, 무심코 지나치며 그걸 본 현승이가 도움을 준 사건.

하긴, 현승이가 다른 건 몰라도 인정 하나만큼은 유별난 놈이긴 했지.

“그 빚은 그동안 충분히 갚은 것으로 치죠. 원한다면 언제든 그만둬도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힐끗 돌아보는 양 비서의 눈엔 웃음기가 맺혀있었다.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있기라도 한 듯 한참을 우물쭈물하더니 결국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뱉어냈다.

“실은 전에 몇 번이고 그런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아닙니다.”

“왜죠?”

“지금 같은 팀장님이라면 평생을 곁에서 모시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아서요.”

한마디로 사고 안치고 조용히 지내는 내가 편해졌다는 뜻이었다.

뭐 비서로서는 당연히 마음이 편한 것 보다 좋은 근무여건은 없겠지.

그나마 몇 안 되는 믿을 만한 인물을 갑작스레 잃어버리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다.

“아무튼 양 비서도 좀 별난 스타일이군요.”

“에이, 팀장님만큼은 아니죠. 그런데 언제까지 제게 존대를 하실 겁니까? 그냥 하던 대로 하시는 편이 더 편할 것 같은데요.”

“불편해도 참아요. 난 그보다 더 불편한 것들도 견디고 있으니까.”

“…….”

짧은 대화를 끝내고 다시 창밖을 쳐다봤다.

어느덧 꼬리를 물기 시작한 생각은 하필 내 현 상황에 대한 관조였다.

'일단 입성은 했다만…….'

탈레스에 안정적으로 발을 들여놓는 것은 사실상 성공을 한 상태였다.

조만간 신형철갑탄의 성능 개선이 완료되어 양산을 시작하면 진 회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고.

그럼 남은 것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내가 신무기 개발을 주도할 만큼 탈레스 내에서 확고한 위치를 확립하느냐는 건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보다 확실한 한방이 더 필요했다.

예를 들면 스마트 포탄 같은.

'그래, 최소한 그 정도는 되어야 진정 시대를 앞서가는 무기라고 할 수가 있겠지.'

“곧 도착합니다, 팀장님.”

어느새 창밖으로 연구소의 거대한 건물이 위용을 뽐내는 것이 보였다.

무려 20년이나 앞선 기술이 실현 되는 곳.

아마 저 신형철갑탄의 등장으로 역사는 새로운 페이지를 쓰게 될 거다.

***

“오랜만입니다, 교수님.”

“어서 오게.”

명 교수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고작 쉰다섯의 나이에도 머리 전체가 백발인 것은 물론 평생을 고집했던 뿔테안경까지.

10년 후, 그가 간 경화로 죽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마냥 반가운 티를 내지는 못하겠다.

“말술 드시는 습관은 여전하신 겁니까?”

“그 버릇이 어디 가겠어?”

“끊으실 생각은 없고요? 그러다간 언제 병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까짓 인생 뭐 있어? 이렇게 살다가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거지.”

툭 던져진 그의 말투에선 미묘한 감정들이 느껴졌다.

뭐랄까, 왠지 토라진 듯한 느낌?

이유가 뭔지는 대충 알 것도 같았다.

“이젠 저와 자주 술잔을 기울이지 못하는 것이 섭섭하신 모양이군요.”

“자네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마당에 섭섭할 게 뭐가 있겠나. 단지 삶이 조금 무료해진 것이 안타까운 것뿐이지. 그나저나 우리 지아는 잘 있지?”

“김 비서야 늘 저 때문에 고생이 많죠.”

“고생은 무슨. 말 들어 보니 요즘은 아주 편해서 죽겠다고 하더구먼.”

명 교수는 진 회장과 달리 끝내 기술의 출처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기술 실증을 위해 통화를 했을 때는 물론, 막상 얼굴을 마주한 지금도.

왜지?

그만큼 현승이를 믿어서?

아니면, 뭔가 미심쩍지만 굳이 자신이 상관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이유가 뭐건 나로선 귀찮은 일을 덜은 셈이니 굳이 그 부분을 먼저 건드릴 이유는 없다.

“표정이 밝으신 것을 보니 어제 있었던 합금과정이 꽤 순조로웠던 모양이죠?”

“필요한 설비가 죄다 갖춰져 있던 상태잖아. 아마 전 세계 어디에도 재우탈레스만큼 소재 가공 설비를 다양하게 보유한 곳은 없을 거야.”

“실은 바로 그 점이 제가 재우탈레스를 욕심내는 이유죠. 그럼 다음 달쯤이면 시험 생산도 가능하겠군요.”

“남은 문제 하나만 해결하면 그럴 것도 같은데, 이게 영 풀리지가 않네.”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죠?”

“무게변화는 거의 제로에 가까운데 간이 테스트과정에서 매번 포구압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어.”

순간 헛웃음이 지어졌다.

나 역시 전생에서 꼬박 보름간을 같은 문제로 고생했었던 적이 있었거든.

“그건 탄자의 형상 변화에 따른 포구내 순간 기압의 변화가 원인일 겁니다.”

“……! 이런 젠장, 그 생각을 왜 못했지?”

명 교수는 한동안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물론 당황스러웠겠지.

이 분야에선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라고 평가 받던 그조차도 헤매던 것을 내가 단숨에 풀어냈으니까.

하지만 그건 명 교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단지 지금의 내가 그보다는 경험치가 많기 때문이지.

그를 기어이 내 그늘에 두려는 이유도 실은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그의 능력을 높이 사기 때문이다.

“허허, 이것 참…….”

명 교수의 입에선 왠지 허탈하다 싶은 탄식이 뱉어졌다.

곧 뭐라 한참을 중얼 대는가 싶더니 이번엔 갑자기 생뚱맞은 말을 툭 던졌다.

“거봐. 내가 말했었지? 아무리 봐도 자네는 사업가가 아니라 연구원이 더 잘 어울린다고.”

“제게 그런 말씀을 하셨던 가요?”

“어라? 자네가 아니라 준이 놈에게 했던 말이었던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참, 그러고 보니 대체 준이 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통 알 수가 없어. 혹시 자네는 무슨 소식 못 들었어?”

난데없이 튀어나온 내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그런데 말투로 봐선 그 역시 내 소식에 대해선 영 모르고 있는 느낌.

오는 동안 가졌던 혹시나 싶은 생각은 이로써 별 의미가 없어졌다.

“마침 저도 준이 놈 소식이 궁금해서 찾는 중입니다만, 아직까지는 들은 소식이 없습니다.”

“뭐 어딘가에서 잘살고 있겠지. 그건 그렇고, 정말로 연구원으로 남는 건 어때?”

“감사한 충고긴 하지만 전 이대로가 좋습니다.”

“아니 왜? 집안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미칠 지경이라면서.”

“지금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젠 그런 정글 같은 분위기가 재미있어 졌거든요.”

“…….”

***

“좋은 아침입니다, 팀장님.”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출근과 동시에 이어진 팀별 업무보고도 그렇고.

밤새 올라온 실험 결과를 검토하는 작업도 그렇고.

“커피 한잔 가져다드릴까요?”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오늘따라 유난히 김 비서의 표정이 밝다는 건데, 왠지 어버이날 선물을 허리춤에 숨긴 채 부모를 쳐다보는 어린아이 같았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최근에 내가 연봉을 인상해준 기억은 없는데요?”

“아무튼 눈치가 백단이시네요. 연봉은 지금으로도 충분하고요. 실은 오빠. 아니 명승은 소장님께서 화력 테스트 영상 보고서를 보내셨습니다. 참고로 회장님께는 어제 이미 보고가 올라간 상태라고 합니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CD를 곧장 책상에 내려놨다.

어느덧 또 한 달의 시간이 지난 건가.

워낙 정신없이 살다 보니 날짜관념이 사라진 지도 오래다.

“이번이 몇 번째 보고서죠?”

“20번째입니다.”

“그럼 최종 테스트 영상이겠군요. 어디 한번 틀어보세요.”

개발이 완료됐다는 소식이었음에도 별다른 감흥은 오지 않았다.

전생에선 이미 실전에서 쓰이는 것을 구경까지 했던 마당에 감흥은 무슨.

쾅!

하지만 다짐과는 달리, 전 세계에서도 최고 수준의 장갑을 가졌다는 K1 전차의 전면이 마치 두부처럼 뚫리는 장면을 봤을 땐 나도 몰래 주먹이 움켜쥐어졌다.

“사신.”

“네?”

“사람들은 곧 저걸 그렇게 부르게 될 겁니다.”

“…….”

전생에선 사람들이 실제로 저 철갑탄을 그렇게 불렀었다.

발사와 동시에 목표가 반드시 끝장난다는 것에서 붙인 별명.

그게 이 시대라고 다를까.

내 예언은 머지않아 실현 될 거다.

“죄송하지만 전 봐도 잘 모르겠는데요?”

그녀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을 문제긴 했다.

뭐라고 해야 확실하게 설명이 됐다고 할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딱 적당하다 싶은 말이 떠올랐다.

“에이브람스의 사상을 이어받은 K1 전차의 전면을 관통했다는 건 현존하는 모든 전차들이 고철덩어리로 전락했다는 뜻입니다. 그로 인해서 앞으로 북한과 중국. 그리고 일본에선 게거품을 물게 되겠죠.”

“…….”

마치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내 태도에 김 비서가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피식.

하지만 어쩌지.

난 이미 일어났던 사건을 말하고 있는 중인데.

어디 그뿐일까, 뒤이어 준비 중인‘스마트 포탄’이 현실화되면 향후 적성국들의 대응전술이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구경하게 될 거다.

“그나저나, 회장님께는 어제 보고가 되었다고요?”

“네, 명승은 소장님의 전언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그럼 조만간 군에 양산 결정을 요구하시겠군요. 혹시 모르니 보완자료들 좀 미리 정리해 주세요.”

김 비서는 서둘러 방을 나섰다.

10분쯤 지났을까, 호들갑을 떠는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팀장님! 회장님께서 호출 하셨습니다.”

“벌써요?”

예상이 들어맞은 모양이었다.

하긴, 저런 엄청난 장면을 보고도 좀이 쑤시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그렇다곤 해도 고작 하루 만에 양산회의를 대비하겠다는 건 왠지 지나치게 서두르는 느낌이다.

“성격이 급해도 너무 급하시군. 알겠으니 서류 좀 최대한 빨리 정리해 주세요. 군에 올라갈 문건이니 형식에 맞추는 것 잊지 말고요. 아! 기왕이면…… 뭐 합니까, 준비 안 하고?”

말을 뱉어내는 와중 그녀가 나를 빤히 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내내 입가에 웃음기를 머금고 있던 그녀는 뜬금없이 벽에 걸려있던 내 수트를 집어 들었다.

“회사가 아니라 강남에 있는 리츠칼튼 호텔로 오시라는데요?”

“호텔?”

“네, 함께 점심을 하실 생각이니 시간 맞춰 오시랍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혹여 문제가 생겼나, 싶어 머리를 굴려봤지만 딱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다는 것이 더 문제다.

“무슨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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