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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2화 (2/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02화

당황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돌려봤다.

여전히 시야의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의문의 문구들.

그건 곧 홀로그램처럼 어딘가에서 투사되는 형태가 아니라 동공 자체에서 발생한 현상임을 의미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건데…….'

놀란 것은 잠시뿐이었다.

어차피 회귀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을 겪고 있는 마당에 더 놀랄 일이 뭐가 있을까.

그런데 저 극악의 촌스러움을 가진 창의 모습.

어딘가 무척이나 낯이 익다.

'아무리 봐도 이호중이 만든 양자암호 로그인 창인데,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냐.'

정체를 깨달은 것까지는 좋았으나 다음이 문제였다.

암호를 입력하려면 수단이 필요한데,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저 새까만 창 하나 뿐.

하지만 마치 내 말을 듣기라도 한 듯, 갑자기 창 아래로 반투명 형태의 키보드가 스륵 생성됐다.

“제대로 미쳐 돌아가는군.”

말과는 달리 은근한 기대감이 앞섰다.

양자암호가 입력된 이후 나타날 것들의 정체쯤은 이미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기에.

역시나 기억하고 있던 16자리의 암호를 입력하자 수 없이 많은 폴더들이 눈을 어지럽히며 허공을 수놓는다.

전략 탄도미사일.

극초음속 순항미사일과 AESA레이더.

하다못해 당시 한창 진행 중이던 5세대 전투기 개발과 연관된 자료들까지.

'나만 회귀를 한 줄 알았더니…… 로또가 붙어온 건가?'

이 시대에는 꿈도 못 꿀 첨단 무기들의 제조기술이라면 사실상 로또와는 비교조차도 되지 않을 거다.

하지만 나를 더 흥분시키는 것은 바로 소재기술이 함께 넘어왔다는 것.

무기라는 것이 애초 첨단소재와 부품의 집합체인데, 난 지금 그것들의 제조법은 물론 설계기술마저도 손에 넣고 있는 상황이지 않은가.

'일본이 폭망하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려오는군.'

과거, 그러니까 내 전생에서 소재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갑질은 말로 다 못할 정도였다.

어찌나 거미줄처럼 특허를 걸어뒀는지 경쟁국들이 차마 개발을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그로인해 대부분의 기초소재들은 결국 개발을 포기하게 되었고, 그건 곧 국가 경쟁력의 하락을 가져왔었다.

'하지만 이게 있는 상황에선 이야기가 달라지지.'

물론 이 데이터 칩이 세상의 모든 소재기술들의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래 산업을 주도할 몇몇 핵심소재들에 관해선 원천기술마저도 담고 있는 상태.

단지 그것만으로도 일본을 중심으로 돌아갔던 소재 시장의 질서를 재편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거다.

'너희들이 그랬듯, 나 역시 온갖 소재들의 특허를 지뢰처럼 깔아주마.'

앞으로 달라질 역사를 상상하니 저절로 입매가 뒤틀렸다.

그간 놈들이 행태가 얼마나 꼴 보기 싫었던지.

미안하지만 이젠 내가 그걸 되돌려줄 차례다.

'첨단소재와 무기기술, 그리고 방산재벌의 아들인 현승이의 몸이라…… 누가 봐도 이건 전생에 못다 이룬 꿈을 꿔보라는 거나 마찬가지지.'

사실 이보다 더 확실한 근거들은 없을 거다.

마치 짜 맞춘 듯 마련된 안배들과 조건들.

문제는 지금 현승이가 처한 상황에 대한 정보를 끌어모으기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는 건데,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안 온다.

“윽!”

그때, 또다시 머리가 터질 듯 아파 오며 갑자기 현승이의 지난 기억들이 뇌를 채워갔다.

워낙 앞뒤 없이 떠오르는 것들이라 순서를 맞추는 것 자체가 고문인 수준.

그나마 일부라도 조각을 잇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무렵엔 벌써 어슴푸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빌어먹을…….”

놈의 과거는 지독한 잿빛이었다.

혼외자라는 이유로 주변에서 쏟아지던 차가운 시선들.

매번 장면이 바뀔 때마다 당시 현승이가 느꼈던 감정들까지 고스란히 전해진 터라 한동안은 그걸 추스르는 것에만 몰두해야 했다.

'이해는 한다만, 그래도 스스로를 너무 망가트렸잖아.'

현실을 파악하게 된 것은 좋았으나 미래가 더 막막해졌다.

꿈을 가지고 입성했던 탈레스에서는 진즉에 쫓겨난 상태.

이후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온 결과 고작 CCTV 따위나 만드는 계열사로 좌천 됐고, 그나마도 적응을 하지 못해 지금은 업무에서조차도 완전 배제된 상태였다.

'하긴, 방산 부문이 주력인 그룹에서 고작 CCTV 따위나 생산하는 계열사를 맡고 있는 입장이 됐다면 허무할 만 하지. 젠장, 이러면 결국 내가 직접 기회를 만드는 것밖에는 수가 없는 건가?'

차라리 날이 새버린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태로 밤을 보내기엔 조급함이 너무도 컸으니까.

하루가 아니라 한시라도 빨리 진 회장의 신뢰를 회복할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이른 새벽부터 미안합니다, 김 비서.”

그녀 외엔 마땅히 도움을 줄 손길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고작 몇 시간 만에 다시 자기를 찾는 것에 놀란 듯, 수화기 너머에서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상무님! 혹시 어디 아프십니까?”

“아니요, 몸은 괜찮습니다. 혹시 지금 회장님 비서진들과 연락이 가능할까 싶어서 전화 했습니다.”

-가능은 합니다만 왜 그러시죠?”

“그럼 회장님 스케줄 좀 알아봐 주세요. 괜찮으시면 오전 중으로 찾아뵀으면 해서. 아! 그리고 뒷조사를 좀 할 사람이 있는데 그런 일도 할 줄 압니까?”

조사대상은 바로 나였다.

정확히는 이 시기의 김준.

내가 현승이의 몸으로 회귀를 한 입장이면 이 시기의 나는 대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가 도무지 상상이 안 갔다.

-가능한 선에선 알아봐 드릴 수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실은 미국 MIT에서 유학 중인 내 친구인데, 아마 지금은 미국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을 시기여서 찾아내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참, 가족은 없으니 참고하세요.”

수화기 저편에선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받아 적기라도 하는 모양새.

최선을 다하겠다는 대답과 함께 전화는 곧 끊어졌고, 내 생각은 다시 뿌리를 뻗어갔다.

“네, 김 비서.”

다시 걸려온 김 비서의 전화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대체 얼마나 넋을 놓고 있었던 거지?

아주 잠깐 고민을 했었던 것 같은데, 벌써 20분이나 시간이 흐른 후였다.

-방금 비서실 직원과 통화했습니다만, 회장님께선 오전에 주요 간부들과의 회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럼 오후 시간은요?”

-오후엔 골프회동이 있다고 하시는데요?

왠지 피하는 느낌이 들었다.

사고 친 자식 놈의 얼굴을 고작 반나절 만에 다시 보기는 싫다는 거겠지.

하지만 나도 순순히 물러설 생각이 없다.

이렇듯 대단한 패가 쥐어진 마당에 밑천이 없어서 판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거든.

“수고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하죠.”

***

“상, 상무님!”

꼭두새벽부터 들이닥친 터라 회장 비서실이 발칵 뒤집혔다.

당연히 진 회장은 아직 출근 전.

쩔쩔매는 비서진들의 태도가 마치 사신이라도 나타난 것 같은 분위기였다.

“죄송하지만 회장님께선 아직 댁에서 출발 안 하신 상태입니다.”

“들었습니다. 저는 상관 마시고 그냥 일들 보세요.”

당황하던 여비서들은 그 한마디에 조용히 물러섰다.

어떻게든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새삼 내가 다 미안해질 정도다.

'죄다 악몽 같은 기억들뿐이군.'

현승이에게 이 방은 끔찍함 그 자체였다.

매번 진 회장으로부터 꾸지람만 들었던 공간.

이젠 일부나마 기억을 공유하는 입장이다 보니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어디…….”

불쾌한 기분을 떨쳐내기엔 다른 것에 관심을 두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응?”

우연이었을까.

마침 진 회장의 책상위에 놓여 있는 서류뭉치들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화력시험 보고서?'

페이지를 넘기자 익숙한 단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개량중인 K1A1전차용 120mm ‘날개안정분리철갑탄’의 성능개선 평가보고서.

이후 주룩 이어진 수치들과 데이터를 출력한 결과물들로 봐선 아무래도 ‘텅스텐 탄자’의 관통능력을 개선하기 위한 테스트를 진행했던 모양이다.

'그렇고 보니 이 시기에 신형철갑탄의 개발시도가 있었던 같기도 하고.'

가물가물한 기억을 떠올리며 서류에 첨가된 사진을 쳐다봤다.

탄자의 모양으로 봐선 90년대에 보편적으로 쓰이던 스타일은 아닌 느낌.

재빨리 뒷장을 살펴보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쯧쯧, 이 시기에 미국이 사용하는 열화우라늄탄의 관통력을 넘어서는 텅스텐 탄을 개발하겠다니. 헛수고들을 하고 있군.'

그런 정도의 성능을 가진 철갑탄이 개발 된 것은 내가 회귀하기 직전 연도였다.

무려 30년 가까운 지속된 연구로 보다 진보된 자기첨예화(Self-sharpening)가 가능한 소재가 탄생한 덕분에.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2024년도의 일이고, 이 시대에 그걸 개발해 낸다는 것은 꿈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이걸 지금 기술로 개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말을 해줄 수도 없…….”

탄식하던 와중 돌연 손목에 있던 데이터 칩에 시선이 갔다.

대한민국이 2025년 당시 보유하고 있던 모든 군사 관련 기술의 집합체.

“이것 봐라?”

사실 내 계획은 보다 발전된 보안 관련 기술을 무기로 진 회장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었다.

어차피 현승이 놈이 맡은 회사와 관련된 분야였으니 그편이 자연스러울 테니까.

하지만 굳이 정문이 열린 마당에 뒷문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기왕이면 진 회장의 관심을 확 끌어당길 것을 가지고 기회를 잡는 편이 효과적일 거다.

'분명 데이터 칩엔 신형 날개안정분리철갑탄의 제작기술이 존재했지.'

내가 직접 관리하던 것이었으니 기억을 못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품 관련 폴더들 에 신형철갑탄의 제작에 필요한 소재들과 소결 법들이 죄다 기록이 되어있다.

'탄자의 소재 변화가 핵심이었나?'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만약 소재 자체의 미세조직제어 기술마저 재창출해야 한다면 그건 아무리 자료가 존재해도 근시일 내에는 개발이 어려울 테니까.

하지만 단순히 소재의 변화와 그 비율을 바꾸는 것이라면 딱히 문제 될 것이 없다.

'어차피 핵심 소스들은 내가 가지고 있고, 이미 설비와 기반 시설들은 재우탈레스가 갖추고 있으니 한 3, 4개월이면 가능하겠네. 뭐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얼핏 쳐다본 시계는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진 회장이 출근하기까지는 길어야 한 시간 정도.

그 전에 준비를 마치려면 서둘러야만 한다.

“누가 왔다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밖에서 진 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던 거지.

마침 작성을 끝낸 제안서를 두고 일어서자 그가 벌컥 문을 열었다.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군.”

힐끗 나를 쳐다본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소파에 자리했다.

이게 바로 내가. 아니 현승이가 처한 현실.

각오는 했지만 씁쓸함이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다.

“할 말이 뭔데?”

애초 쓸데없는 변명 따위는 차단하겠다는 의도였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젠 지칠 대로 지쳤다는.

단순히 잘못을 빌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지만, 일에도 순서는 있는 법이니 우선은 머리를 조아려야 할 듯하다.

“심려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네가 뭘 잘못 한 줄은 알고 하는 말이냐?”

“물론 알고 있습니다.”

“알기는 뭘 알아! IMF니 뭐니, 가뜩이나 나라가 망했다고 언론에서 떠들어 대는 시기에 여자들 끼고 노는 술집에서 싸움질이나 하고 돌아다니는 주제에.”

듣고 있자니 불현듯 생뚱맞은 생각이 들었다.

만약 역사가 그대로 흘렀다면 과연 저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싶은.

죽은 자식 부랄 만지는 것보다야 사고를 좀 치더라도 이렇듯 살아서 대면하고 있는 것을 감사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아무튼, 넌 이미 내가 준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가 날려버린 것이니 더는 변명할 필요 없어. 앞으론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네가 알아서 해. 네 회사는 계열사에서 분리하기로 했으니 그리 알고.”

계열사 분리까지 생각했다는 건 연을 끊겠다는 거였다.

고작 손바닥만 한 회사나 먹고 떨어지라는 거지.

하지만 난 그럴 생각이 없다.

지금 내겐 군수산업 회사인 재우탈레스의 기반이 절실히 필요하거든.

“무슨 처분을 내리시던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이걸 꼭 좀 봐주셨으면 싶습니다.”

진 회장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서류를 건네받았다.

이내 한참을 무표정한 얼굴로 살펴보는가 싶더니, 곧 눈이 부릅떠지며 나와 제안서를 번갈아 쳐다봤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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