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 ⓒ북홀릭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
군수산업 재벌2세의 몸과 이 시대에서는 엄두도 못 낼 군사기술이 손에 들어왔다.
[재벌][밀러터리][전쟁][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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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01화
2024년, 대한민국 방위산업은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
4.5세대 전투기의 제작을 비롯하여 전략 탄도미사일과 극초음속 순항 미사일. 그리고 AESA 레이더의 국산화까지.
얄궂게도 그 즈음, 주변 열강들에 의한 한반도 전쟁발발 가능성이 극도로 치솟았고.
국가의 존립위기를 염려한 정부는 주요 군사기술들을 하나의 데이터 칩에 포괄하려는 계획을 수립했다.
“우리 기술이 단지 군수 분야에 쓰였다는 것을 근거로 국가가 강제수용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당연하게도 각계각층에서의 반대의견은 속출했다.
특히나 소재 관련 원천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의 경우엔 더더욱.
하지만 정부는 기어이 수정된 국가비상사태 법을 근거로 의지를 관철시켰다.
“왜 굳이 달걀을 한 바구니에 두려는 겁니까. 혹여 있을지 모르는 내부자에 의한 유출은 어떻게 방지하려고요.”
당시 국방과학연구소의 책임자였던 나 역시 반대자들 중 하나였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지나치게 무모한 계획이라고 판단했으니까.
결국 내 염려는 단 1년 만에 현실이 됐다.
[오늘 오후, 방위산업기밀 데이터베이스를 탈취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주모자인 이호중은 칩의 보안에 사용된 양자암호기술 개발자였기에 탈취에 성공했다면 국가적 재난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국의 조치가 빨랐다는 거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과연 희생이 없었을까.
놈의 행동을 눈치채고 막아서던 난…… 결국 죽임을 당했다.
[정부는 범인 이호중에 의해 살해당한 ADD 소장 김준 씨를 부검하는 과정에서 위 속에 남아 있는 데이터 칩을 발견했습니다. 위급한 순간 그가 기지를 발휘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보국훈장 통일장을 수여하였습니다. 이로써 자칫 범인의 죽음으로 미궁에 빠질 뻔했던 칩의 행방은 안전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호중도 결국엔 죽음을 벗어나지 못했다.
놈과는 달리 난 영웅이 되었지만, 죽고 난 이후에 주어진 보상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나마도 위안거리가 있다면 영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건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가 자못 궁금하다.
이대로 사후세계로 가는 건가?
아니면 환생?
젠장, 정말로 환생 같은 것이 가능하다면 이번엔 좀 더 그럴싸한 삶을…….
***
“끄으윽!”
갑자기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이 엄습해왔다.
죽음 이후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던 감각.
덕분인지 희미해져 가던 의식이 한순간에 또렷해지며 저절로 눈이 확 떠졌다.
“살아있어!”
“젠장, 고작 그거 맞고 죽어버린 줄 알고 깜짝 놀랐네. 야, 이 새끼야. 너 때문에 부랄이 바짝 오그라들었잖아.”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나를 내려다보며 신경질을 부리고 있는 저 사내들은 누구며, 나는 또 왜 이렇듯 땅에 널브러져 있는 걸까.
주변 환경으로 봐선 분명 술집 같은 분위기인데, 내내 망자의 계곡을 떠돌던 내가 왜 이런 곳에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뭣들 하는 거예요!”
순간 웬 여인이 다급히 달려오며 나를 부축했다.
낯선 인물인 건 그녀도 마찬가지.
멍하니 쳐다보자 그녀가 눈앞에서 손가락 몇 개를 흔들어 보였다.
“상무님! 정신이 좀 드세요?”
“……여긴 어디지?”
여인은 충격을 받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마치 세상이 무너져 내린 표정 같다고 할까. 돌연 분에 겨운 표정으로 휙 하고 사내들을 쳐다본 그녀의 입에선 당찬 고함 소리가 뱉어졌다.
“이것들 보세요. 사람 머리를 병으로 내리치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당신 지금 우리 꼴은 안 보여? 먼저 병 휘두르고 난리 친 건 그 자식이었어!”
사내들은 여인의 항의에 반발했다.
엉망이 되어있는 그들의 행색과 나를 번갈아 살피던 여인은 잠시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가방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어 사내들에게 건넸다.
“이쯤에서 정리하죠. 여자들이 술 시중을 드는 곳에서의 싸움이니만큼 경찰서까지 가봐야 양측 다 곱게 보지는 않을 겁니다.”
봉투를 받아든 사내들은 휘둥그런 눈으로 서로를 향해 눈짓했다.
이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뒤돌아섰고, 그들을 무심하게 쳐다보던 여인은 다시 나를 부축하며 말을 걸었다.
“우선 병원으로 모시겠습니다. 겉으로는 크게 티가 안 나도 검사 정도는 해봐야 하니까요.”
“그쪽은 누구시죠?”
여인의 안색이 급격히 파리해졌다.
“양 비서? 당장 내려와요.”
곧 전화를 걸어 누군가를 찾는가 싶더니, 조금 후엔 문을 통과하기조차 힘들어 보일 정도로 거대한 덩치를 가진 사내 하나가 나타났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상무님.”
“…….”
거의 업히다시피 빠져나온 곳은 예상대로 술집이었다.
촌스럽다 느껴질 정도로 화려한 네온사인을 자랑하는 곳.
그러고 보니, 나를 지나치며 힐끗거리는 여인들의 헤어스타일도 무척이나 시대에 뒤처진 느낌이다.
'뭐야 이건…….'
끼익 소리와 함께 내 앞에 선 차량도 고전미가 넘치기는 마찬가지였다.
저게 대체 언제 적 벤츠지?
요즘은 도통 구경조차도 할 수 없는 크롬 도금의 범퍼가 유난히도 눈에 거슬렸다.
“타시죠.”
문을 여는 사내의 태도는 지극히 공손했다.
머뭇거리던 순간, 무심코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만!”
화들짝 놀라 손을 뿌리치곤 다시 창문에 얼굴을 비춰봤다.
이내 몇 번이고 눈을 비벼봤지만 창에 비친 것은 분명 내가 아닌, 웬 젊고 건강한 사내의 모습이었다.
'현승이?'
틀림없이 놈의 얼굴이었다.
나와는 대학 동기이자 둘도 없는 친구였던.
혹시나 싶어 이마를 살펴보자 놈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미친!”
“어머! 상무님.”
뒷걸음치려던 순간 여인이 다급히 다가와 내 몸을 붙잡았다.
그래서였던가.
이 여인이 나를 계속해서 상무라고 부르고 있는 이유가.
하긴, 대한민국 대표 방산 업체 중 하나였던 재우그룹의 둘째 아들에게 그 정도의 직함이 딱히 무리는 아니었을 거다.
'아니지.'
그거야 놈이 살아있었을 때의 이야기고.
분명 서른둘의 나이에 죽어버린 놈이 어떻게……
“미안하지만 지금이 몇 년도죠?”
의아해하는 여인의 시선을 무시한 채 대답을 재촉했다.
아니길 바랐건만, 눈을 끔뻑이던 여인의 입에선 청천벽력 같은 말이 뱉어졌다.
“1998년도요. 뜬금없이 그건 왜 물으시는데요.”
1998년이면 정확히 현승이가 사망한 해였다.
내 생일과 같은 날인 1월 5일에.
당시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나는 비자 문제로 장례식에 참석을 하지 못했고, 뒤늦게 그가 술집에서 일어난 싸움에 휘말려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설마 오늘이 1월 5일입니까?”
“네, 맞습니다.”
“…….”
아무래도 내가 조금 전 역사를 경험했던 모양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현승이가 사망했던 당시의 사건을.
하지만 왜.
순리대로라면 분명 시체가 되었어야 할 이 몸뚱이는 뭣 때문에 멀쩡히 되살아나 버린 것인지.
왜 하필 내가 그 주인이 되어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괜찮으십니까, 상무님?”
그때 문득, 망자의 계곡을 떠돌 당시의 기억이 어렴풋하게나마 떠올랐다.
몇 번이고 되뇌었던 삶에 대한 열망.
혹여 그게 이유일까?
누군가 그 바람을 이뤄주려 나를 되살려 놓은 건가?
“그렇다고 이렇게 남의 몸에 밀어 넣어 버리면 뭘 어쩌자는…….”
“양 비서! 뭐해요, 빨리 병원으로 모시지 않고.”
여인은 홀로 중얼대는 내가 이상해 보였던지 사내를 향해 소리쳤다.
우악스러운 힘이 느껴진다 싶더니 어느새 몸이 차 뒷좌석에 내던져졌다.
'기가 차서 원.'
창밖의 거리는 하나같이 과거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다.
특히나 여의도를 지나칠 무렵.
진즉에 재건축에 들어갔던 건물들이 떡하니 다시 서 있는 것을 본 순간 지금이 1998년도라는 사실을 더는 의심하지 못했다.
“내리시죠.”
어느새 도착한 곳은 재우그룹 산하 재단 소속의 종합병원이었다.
최근 내 기억과 비교하면 무척이나 초라한 규모.
향후 이 병원이 대한민국 최대의 종합병원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오로지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일 거다.
“MRI 검사결과 뇌내출혈은 없습니다. 외부에도 이렇다 할 상처가 보이지는 않는 것으로 봐선 옷에 묻은 핏자국은 비강 출혈에 의한 것으로 판단되네요.”
다행히도 몸에 큰 이상은 없었다.
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사건의 결과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
무언가 초자연적인 존재의 개입이 의심되는 순간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금 더 휴식을 취하시죠.”
여인은 괜찮다는 나를 끝내 침대에 눕혔다.
지금은 몰라도 차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나?
결국 한참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겨있던 와중 밖에서 갑자기 소란스러움이 전해져왔다.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벌컥!
미처 확인할 겨를도 없이 방문이 열렸다.
곧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재우그룹의 총수이자 현승이의 아버지인 진현필 회장.
몇 번 실물을 마주한 탓도 있었지만, 워낙 얼굴이 알려졌던 인물이었던 터라 순식간에 알아볼 수 있었다.
“쯧쯧, 하고 다니는 짓이라고는.”
“…….”
쳐다보는 눈빛이 차갑기 그지없었다.
말투 또한 피붙이를 대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비록 내가 현승이는 아니었어도 서운한 감정이 절로 솟아났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다행히 별 이상 없다고 합니다.”
“이봐, 김비서. 내가 지금 그걸 묻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나?
“아! 상대편 사람들은 제가 다독여서 보냈으니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어지는 진회장과 여인의 대화에선 허탈함이 느껴졌다.
이래서였던가?
제 가족들을 끔찍하게 싫어했던 현승이의 태도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다.
“아무튼 이번 일을 절대로 언론에서 알아선 안 돼. 지금이 어떤 시국인 줄 알고…… 혹시라도 소문이 돌면 자네들도 각오해야 할게야.”
진 회장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돌아섰다.
안타까웠던 걸까, 여인이 슬며시 다가와 나를 위로했다.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상관없습니다.”
다짐과는 달리 내심 걱정스럽긴 했다.
어찌 됐든 이젠 평생을 이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입장이니까.
그나저나, 막상 진 회장의 태도를 직접 마주하고 보니 외려 현승이 놈이 꽤 오래 참아왔다 싶은 생각이 든다.
“지금이 1998년이면, 3년 전부터였던가?”
“네?”
“아, 상관하지 마세요. 그냥 혼잣말입니다.”
아마 4년이 채 안 됐을 거다.
놈이 망가지기 시작한 시기가.
친모의 죽음 이후 매섭게 돌변한 놈은 그때부터 친구들의 만류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절벽을 향해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저…… 죄송하지만 정말로 괜찮으신 겁니까?”
“…….”
“저에게 계속 존대를 하고 계셔서요.”
여인은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
당황스러웠던 순간, 누군가 내 머릿속을 휘젓는 느낌이 들며 저 여인과 연관된 기억들이 눈앞을 휙휙 스쳐 갔다.
“왜 현승이의 기억이…….”
“네?”
워낙 웅얼거리는 소리였던 탓에 제대로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수행 비서였던 건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치부나 다름없는 일들까지 비서가 도맡아 처리하고 있는 것은 좀 의외였다.
“김 비서.”
“네, 상무님. 이젠 절 알아보시겠어요?”
“내 비서로 일한지가 올해로 3년 째던가요?”
“그렇습니다만, 갑자기 그건 왜…….”
“그동안 좀 힘들었겠다 싶어서요.”
“…….”
“아무튼, 난 멀쩡합니다. 그러니 일단 집으로 가죠.”
“오늘은 그냥 병원에서 휴식을 취하시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어차피 휴식을 취할 거라면 집이 더 좋습니다. 차량이나 대기시켜주세요.”
일을 서두르는 것은 조급함 때문이었다.
기왕 현승이의 몸으로 회귀를 한 마당이면 하루라도 빨리 적응을 하고 싶었기에.
그런 의미에서 당장은 놈의 집에 남아있을 여러 흔적들은 꽤 도움이 될 거다.
***
'재벌은 재벌이라 이건가?'
현승이의 집은 청담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최상류층들만이 거주한다는 타운하우스 단지에서도 규모가 꽤 크다 싶을 정도.
그것도 놀라운 마당에 주차장엔 무려 다섯 대에 이르는 고급 스포츠카와 세단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럼 전 이만. 혹시라도 어디 문제가 있으신 것 같으면 바로 연락 주십시오.”
“그래요. 수고 많았어요.”
김 비서는 끝내 안심이 안 된다는 표정으로 돌아섰다.
겨우 홀로 남게 되는 순간.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서 하나라도 더 필요한 정보를 모으는 거다.
멈칫!
거실로 향하던 와중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일의 우선순위를 좀 바꿔야 할 것만 같은 느낌.
엉겨 붙은 핏자국은 둘째 치고, 온통 헝클어진 저 머리가 영 마음에 안 든다.
'응?'
목욕을 위해 시계를 풀어내려던 순간 손목에서 문신 하나를 발견했다.
문신 따위는 나약함을 가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더니.
놈의 주장과는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절로 고개가 갸웃해졌다.
'문신이 맞기는 한 건가?'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살짝 도드라진 피부. 그리고 꼭 반도체 칩의 형태를 한 것까지.
이건 문신이라기보다는 뭔가를 피부에 욱여넣은 듯한 느낌이다.
[설정된 암호를 입력하십시오.]
그때 느닷없이 머릿속에서 음성이 울렸다.
당황하고 있던 사이, 이번엔 눈앞에서 갑자기 네모난 창 하나가 휙 하고 떠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