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225화 (225/225)

외전 17

“일단 나한테 살의를 향했고, 장비가 통일되어 있던 놈들만 죽였는데…….”

용우가 엘리에게 물었다.

“죽어서 문제될 만한 놈 있었나?”

“당연히 있었지!”

벨론이 히스테릭하게 외쳤다.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아는 건가? 당신은……!”

“없어요.”

엘리가 벨론의 말을 잘라 버리며 말했다.

“절 구해주셨는데 이렇게 말씀드리기는 뻔뻔하지만… 하시는 김에 저 사람들도 좀 죽여주시면 안 될까요?”

“에, 엘리?”

벨론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하던 저항군 간부들이 다들 당황했다.

용우가 물었다.

“싹 다?”

“네.”

“해줄 수야 있는데… 내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말해봐.”

“어제 잔치를 벌이고 다들 술에 취해 있을 때 저놈들이 뒤통수를 쳐서 다 죽였어요. 상당수의 간부들을 생포했다고 하는데, 아마 신분이나 능력상 쓸모 있을 것 같은 사람만 살려둔 거겠죠.”

엘리는 그 이유도 짐작하고 있었다.

벨론은 브라인 왕국의 지원을 받아서 멸망한 아트나 왕국을 부활시킬 생각이리라. 다른 배신자들은 벨론에게 충성하는 자이거나, 아니면 브라인 왕국과 선이 닿아 있는 자들일 터.

“저항군이 한마음 한뜻일 수 있었던 것은 용황제라는 절대적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용황제가 쓰러진 시점에서 분열은 필연이었죠.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최악의 상황을 보게 되니 참 슬프네요.”

엘리는 서글픈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었다.

저들은 모두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목숨을 걸고 싸우던 동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동료들의 목숨을 빼앗고, 자신을 브라인 왕국에 팔아넘겨서 이익을 취하려는 쓰레기들이었다.

“그렇군. 자, 이걸 받아.”

용우가 엘리에게 뭔가를 휙 던져주었다.

“이게 뭔가요?”

엘리가 눈을 크게 떴다. 용우가 준 것은 영롱한 빛을 발하는, 직경 5센티 정도의 작은 구슬이었다.

“선물이다. 마왕들이 비축해 놓은 영적 자원의 양이 상당하더군. 그래서 별의 돌 제조법을 실험해 보는 김에 만들었어.”

용우는 지옥에 처넣은 황제에게서 별의 돌 제조법을 알아냈다. 그것은 용우에게는 굉장히 가치 있는 기술이었다.

“이름은… 아티팩트 스톤 정도로 해둘까?”

그것은 새벽의 권능이 깃든 보물이었다.

별의 돌과 비교하면 약했다. 출력도, 비축량도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특성만은 똑같았다. 단위 시간당 생산량에는 한계가 있지만, 아무런 연료 없이도 끊임없이 에너지를 생산한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상대적이지만 무한한 영구동력원.

이제 더 이상 용황제도, 드라칸도, 마왕도, 별의 돌도 없는 상황에서 이 아티팩트 스톤은 실로 막강한 힘의 원천이었다.

용우가 물었다.

“어때, 굳이 내 손을 빌리고 싶어?”

“아뇨.”

엘리가 눈을 빛냈다.

우우우우우!

강력한 마력 파동이 휘몰아쳤다.

“젠장! 막아!”

벨론이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그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엘리가 마우디의 손을 잡고 있었다.

“마우디.”

마우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설명을 들을 것도 없이 알 수 있었다. 엘리가 별의 돌을 갖고 있던 동안에는 수도 없이 겪어본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벨론의 지시를 들은 적들이 움직였을 때는, 이미 마우디가 그들에게 쇄도한 후였다.

새벽의 권능을 이용, 시공간 간섭으로 극한까지 가속한 상태로.

파악!

벨론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가장 뛰어난 전투원 하나가 죽었다.

죽은 자는 일대일로도 마우디가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실력자였다. 하지만 새벽의 권능으로 상대시간을 가속한 마우디가 기습을 가하자 맥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가속? 아, 안 돼!”

벨론의 표정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저항군의 핵심 간부인 그는 엘리가 별의 돌을 가졌을 당시의 일을 잘 알고 있었다. 엘리가 가속을 걸어준 마우디는 드라칸을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무시무시해진다.

“크악!”

“아, 아악!”

사방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브라인 왕국의 전투원들이 몰살당한 시점에서, 벨론이 거느린 병력은 채 열 명도 되지 않았다. 마우디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들을 쓰러뜨려 갔다.

“벨론.”

엘리는 전투기술이 일천하기에 직접 적을 베어 넘기는 것은 마우디의 몫이었다.

하지만 마우디가 적들을 수월하게 쓰러뜨리는 것은 엘리의 지원 덕분이었다.

엘리는 몽상가 특유의 강력한 정신감응 능력을, 아티팩트 코어로 훨씬 증폭시켜서 적들의 감각을 조금씩 비틀어놓았다. 작은 허점조차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실전에서 그 지원은 너무나 강력했다.

“네가 이런 짓을 벌여준 덕분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정할 수 있었어. 그 점에는 감사할게.”

엘리는 앞으로 도래할 혼돈의 시대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저항군의 간부로서 그 시대를 맞이할 책임이 있는 게 아닐까 하고.

하지만 벨론 덕분에 그런 고민이 사라졌다.

이제 저항군의 간부라는 직책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만약 저항군 조직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벨론이 브라인 왕국을 끌어들여서 저항군 수뇌부를 학살한 시점에서 더 이상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당신만이 아니었어.”

엘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항군은 결코 독립적인 조직이 아니었다. 그 특성상 제국에 속하지 않은 많은 국가와 커넥션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의 지원 없이는 도저히 제국과 맞설 수 없었던 것이다.

즉 이런 상황이 되면 저항군 조직을 꿀꺽 집어삼키고 싶어 하는 국가도 한둘이 아니라는 뜻이다.

벨론은 어디까지나 가장 행동력이 뛰어났을 뿐이다.

벨론의 공격을 피해 달아난 자들이, 자신과 연결된 나라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처럼 할 수는 없을 거야.”

벨론은 어제 이미 브라인 왕국과 연락을 취해서 병력을 도시에 진입시켜 두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용우가 66마왕을 전부 몰살시켜 버렸다.

“더 이상 텔레포트로 병력을 투입할 수 없을 테니까.”

이 세계의 마법에는 시공간에 간섭하는 계통이 없었다.

텔레포트조차도 마왕의 권능에 기대고 있을 뿐, 마법사 개인의 성취가 아니었다.

즉 66마왕이 절멸한 시점에서, 이 세계에는 더 이상 텔레포트를 사용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는 뜻이다.

예외는 단 한 명, 새벽의 아티팩트 코어를 지닌 엘리뿐.

“벨론, 네 덕분에 내가 세상을 책임질 필요도, 이유도 없다는 걸 깨달았어.”

“엘리, 내가 잘못했다. 살려다오.”

마우디에게 동료를 모두 잃은 벨론이 바로 태도를 바꿔서 용서를 빌었다.

“살려줄 것 같아?”

“내 목숨은 나 하나만의 것이 아니다. 내가 이런 일을 한 것도 사욕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었다. 제국에게 짓밟힌 망국의 한을…….”

“그게 바로 사욕이야.”

엘리가 얼음장처럼 싸늘하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엘리! 자, 잠깐……!”

퍼억!

마우디가 가차 없이 벨론의 목을 베어버렸다.

잠시 바닥을 굴러다니는 벨론의 목을 바라보던 엘리가 용우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제 어쩔 거지?”

“당분간은 자유롭게 세상을 돌아볼 생각이에요. 그런데 이런 걸 저한테 주셔도 되는 거예요?”

“그 정도는 괜찮아. 네 한 몸 지킬 힘 정도는 줘야 할 것 같아서.”

용우에게 있어서 아티팩트 스톤은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는 양산품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용우는 그만큼 엄청난 영적 자원을 비축해 두고 있었다.

그리고 별의 돌 제작법을 연구하면 지금까지 용우의 손에 격파된 존재들, 오버마인드나 시청자, 크록시아의 특성을 담은 특별한 권능의 결정체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라면, 세상을 돌아다녀 봤자 별로 좋은 꼴을 보진 못하지 않을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도 가볼 거예요. 세상을 책임질 생각은 없지만 제 손이 닿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힘을 써보려고 해요.”

“그렇군.”

“이제 작별인가요?”

“일단은.”

“일단은……?”

엘리가 의아해하며 물었지만, 용우는 빙긋 웃을 뿐 명확하게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럼 잘 지내라.”

엘리와 마우디에게 짧은 작별 인사를 한 용우는 허공에 녹아들듯이 자취를 감추었다.

“가버렸네.”

마우디가 실감이 나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

엘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폭풍 같은 일주일이었어.”

“네가 저 사람 부른 그날이 일주일 전이 아니라 7년 전의 일인 것만 같아.”

“나도 그래.”

고작 일주일이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처음 용우가 나타난 그날의 기억은 아주 먼 옛날 일처럼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마우디, 그럼 가자.”

“어디로?”

“벨론 패거리에게 잡혔던 사람들을 풀어주고, 도피시켜 줘야지. 그리고…….”

엘리가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떠나자, 어디로든.”

* * *

눈을 떴을 때, 용우는 자신이 차가운 옥좌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웅장한, 하지만 아무도 없는 알현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의자에 앉아서 잠깐 졸았다 깨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야 돌아왔어?”

옥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발머리 소녀, 이비연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새초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용우가 피식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래.”

용우가 엘리의 세계에서 보낸 기간은 일주일.

그 기간이 다 되기 전에 이비연이 그와 연락이 끊긴 것을 염려하여 연락을 해왔다.

용우는 이비연에게 간략하게 사정을 설명하고, 자신을 대신하여 군단의 세계에서 영적 자원을 생산하는 일을 맡겼다.

이비연이 말했다.

“그런데 유사인간계라니, 마침내 인류가 친구가 될 외계 존재를 만났다고 해도 될까?”

“아니. 딱히 저쪽에서 우리 인류를 만나러 온 것도 아니고, 서로 왕래할 방법도 없잖아.”

“오빠가 그 가교를 만들어줄 생각은 없고?”

“문명 수준 격차가 커서 좋은 결과가 날 것 같지 않아. 언젠가 자연스럽게 두 인류가 만나게 된다면 모를까, 굳이 내가 인위적으로 둘을 만나게 하고 싶진 않군.”

“그렇구나…….”

이비연은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용우가 그녀를 보며 씩 웃었다.

사실 그녀는 용우가 혼자서 말도 없이 유사인간계에 가서, 그 세계의 운명을 좌우할 커다란 사건을 겪고 왔다는 사실에 토라져 있었다.

용우는 이비연이 서운해할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연락을 늦췄다. 수많은 외계 존재가 지구를 노리고 있는 지금 자신과 이비연, 둘 모두가 지구를 떠나 있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저 세계에 가 있는 동안에도 구세록으로 지구의 상황을 상시 모니터링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 상대해 본 것보다 뛰어난 권능을 가진 외계 존재가 지구를 노린다면?

그들이 용우와 이비연이 다른 세계에서 지구로 귀환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면?

그런 경우가 없다고 단언할 수 없기에, 용우와 이비연은 함께 다른 세계로 가는 것을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왕 유사인간계의 존재를 알았으니까 가끔 놀러가 보는 건 괜찮겠지. 여행 가는 기분으로.”

“그거 좋네.”

이비연이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그녀는 곧 시무룩해졌다.

“그런데 우리 둘 다 지구를 비울 수는 없잖아?”

“따로따로 다녀오면 되잖아.”

“그건 또 싫어. 처음에는 오빠랑 같이 가서 가이드를 받고 싶어.”

“나도 일주일 동안 이놈 족치고 저놈 족치는 일만 반복해서 딱히 가이드할 만큼 지식이 풍부하진 않은데…….”

용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이번에 저쪽 세계에서 이것저것 많은 일을 해준 건, 저쪽에서 얻은 게 워낙 커서 그래. 너무 날로 먹는 기분이라 양심에 찔리더라고.”

“66마왕이라는 것들 해치우고 얻은 영적 자원이 크긴 했지. 시청자의 10배가 넘을 정도니…….”

66마왕은 저 세계에 있어서는 신적인 존재였다. 그들은 수천 년 동안이나 저 세계의 전 인류를 장난감 삼아서 괴롭히면서 영적 자원을 비축해 왔고, 그 비축량은 용우와 이비연도 놀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그거 말고.”

용우는 별의 돌 하나를 꺼내서 이비연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을 본 이비연이 깜짝 놀랐다.

“어, 뭐야, 이거? 군주 코어 마이너 버전이야?”

“비슷해. 저 세계에서 얻은 거야.”

용우는 별의 돌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자신이 그 제조법을 손에 넣었다는 것 또한.

“세상에…….”

이비연이 놀라서 숨을 삼켰다.

성좌의 무기와 군주 코어는 이 우주를 통틀어 14개밖에 없던 영구동력원이었다. 더 이상 누구도 만들어낼 수 없는 기적 그 자체였다.

바로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용우도, 이비연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그들의 손에는 막대한 영적 자원이 있었고, 그것을 소모하면 얼마든지 별의 돌을 만들 수 있었다. 어쩌면 일곱 성좌의 힘 말고 다른 힘을 담은 결정체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별의 돌을 일곱 개 한 세트로 만드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없는 동안 지구를 지키기에는 충분할 거야.”

두 사람을 제외하면 지구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팀 섀도우리스의 일원들, 그들의 전력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것이다. 우주적인 위협이 닥쳐와도 지구를 지킬 수 있을 정도로!

“좋네. 아주 좋아.”

이비연이 별의 돌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용우가 말했다.

“그리고 저 세계에 놀러가면 가이드해 줄 사람도 있어.”

“누군데?”

용우의 시선이 눈앞의 세계가 아닌, 머나먼 곳으로 향했다.

그의 눈에는 용우가 구해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잡힌 동료들을 구하겠다고 브라인 왕국에서 파견된 전투원들과 싸우고 있는 엘리와 마우디가 있었다.

“나한테 큰 선물을 준 녀석이지. 씩씩한 여자애야.”

용우는 머지않아 엘리와 재회할 날을 기대하며 미소 지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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