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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세계의 귀환자-223화 (223/225)

외전 15

달에 이변이 발생했다.

50미터를 넘는 거대한 괴물의 석상이 용우의 일격에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그 속에 봉인되어 있었던 영혼이 눈을 떴다.

<오오……!>

인류의 신화에 파괴신으로 기록된 존재, 다우바는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 환희에 젖었다.

<마침내 봉인의 힘이 다했는가? 마침내 파멸의 운명을 성취할 때가 왔구나!>

신들의 힘으로 석화되었던 그의 육체가 복원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용우가 중얼거렸다.

“영혼이 존재하는 한 불사라고 봐야겠군. 저 불사성 하나만은 대단한걸?”

육체에 종속된 존재, 즉 생명체라고 볼 수 없는 특성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지.”

<인간?>

깨어난 다우바가 뒤늦게 용우를 발견했다.

<네가 나를 봉인에서 깨웠느냐?>

“그래.”

용우의 대답에 다우바가 은은한 노기를 드러내었다.

<나를 봉인에서 깨어나게 한 공로는 크다. 그러나 하찮은 인간 주제에 위대한 신에게 무례한 죄 또한 크다. 입조심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우바의 마력이 개방되면서 달의 대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일반인이라면 접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박살 나버릴 것 같은 위압감이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용우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찮은 신 주제에 네 앞의 인간에게 무례한 죄는 크다. 판결을 내려주지. 사형이다.”

<뭐라고?>

용우는 다우바의 반응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가 거대한 양손대검-네뷸라를 휘두르자 그 궤적으로부터 섬광이 뻗어나갔다.

……!

일순간 1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에너지 칼날이 달의 지표 위를 가르고 지나갔다.

<끄아, 아, 아아아아……!>

텔레파시로 내지르는 다우바의 비명이 우주공간에 울려 퍼졌다.

오랜 세월 동안 석상이 되어 봉인당해 있던 파괴신은, 자유로워진 기쁨을 채 1분도 누리지 못했다.

<…….>

그 광경을 본 용황제는 아연해졌다.

<말도 안 돼…….>

신들조차 감당하지 못해 봉인한 파괴신 다우바가 단 일격에 쓰러지다니,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까지 무서워할 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했잖아. 마력만으로 따지면 지금의 네가 더 크지.”

그 말대로 지금의 용황제는 파괴신 다우바를 능가하는 마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별의 돌이 신들에게도 지고한 힘의 산물로 여겨졌던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이 영혼은 꽤 쓸모 있는 땔감이 될 것 같군.”

용우는 파괴신 다우바의 영혼을 소멸시키지 않았다. 행동 불능에 빠질 정도의 타격을 준 다음 포획하여 구세록의 지옥에 처넣었다.

“자, 그럼 하나는 해결됐지?”

신화의 존재를 너무나 간단히 처치해 버린 용우는 엘리와 함께 달에서 떠났다.

한 번의 텔레포트로 도착한 것은 지구가 속한 세계에서는 수성에 속하는 행성이었다.

그 지표면에는 60만 개체가 넘는 석상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다리가 여섯 개 달린, 주둥이가 길고 파충류와 포유류를 섞어놓은 것 같은 괴물들이었다. 그 덩치가 코끼리보다도 두 배는 더 컸고, 전 개체가 상당한 마력을 갖고 있었다.

“이 정도면 재앙의 악마라고 불릴 만은 하군.”

이런 괴물의 군세가 세상을 덮치면 확실히 속수무책으로 멸망하고 말 것이다.

‘최소 3등급 몬스터 수준이고 무리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놈들이 6등급에서 7등급 몬스터 수준, 그리고 제일 강한 놈은 9등급 몬스터보다도 훨씬 강하다.’

이 정도면 별의 운명을 좌우할 만한 군세라고 할 만하다.

‘이 세계의 신이라는 것들은, 확실히 신을 자처할 만한 존재들이었군.’

이만한 괴물 군세를 다른 행성에 봉인해 둘 정도였다면 그들은 신이라 자처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존재였으리라.

“맙소사…….”

엘리가 몸을 떨었다. 그녀도 대기 없는 죽음의 행성, 그 표면을 채운 괴물의 대군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 느낀 것이다.

하지만 용우 앞에서는 치우기 좋게 한곳에 모아둔 쓰레기에 불과했다.

대기 없는 행성의 한쪽에서 눈부신 빛이 일었다. 수십만 킬로미터 저편에서 관측해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의 빛이었다.

그 빛에서 비롯된 충격파가 행성 전체를 뒤흔들면서 우주공간으로 퍼져 나가고…….

60만을 넘던 석상이 모조리 사라졌다.

<너, 는, 대체, 무, 무엇……?>

파괴신 다우바가 그랬듯이 괴물 군세의 우두머리 또한 불사성을 가진 존재였다.

석상이 파괴되면서 봉인에서 해방된 그 영혼이 두려움에 떨며 용우를 바라보았다.

“곧 알게 될 거야.”

용우는 괴물 군세를 전멸시키고, 그들의 영혼을 구세록의 지옥에 처넣었다.

신화에 기록된 재앙은 그렇게 사라졌다. 현 인류에게 그 존재를 알리지도 못한 채, 잊힌 존재로서 파멸해 버렸다.

“자.”

다음 순간, 용우와 엘리는 다시금 사막 한복판으로 돌아와 있었다.

“네가 걱정하던 것들은 전부 사라졌다.”

아연해진 용황제 앞에서 용우가 짙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안심할 수 있겠지?”

<이건 말도 안 돼! 이럴 리가 없다!>

“똑똑히 보여줬는데도 말인가?”

<나를 속여 넘기려 하는군. 정교한 환영이겠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

<…….>

“사실 그렇게 생각하건 말건 상관없어.”

용우가 한 걸음 내디뎠다.

용황제가 한 걸음 물러났다.

“어쨌든 이제 넌 쓸모가 없다. 네가 해온 일 모두, 쓸모가 없어졌다.”

용우가 또 한 걸음 내디뎠다.

용황제가 또 한 걸음 물러났다.

“평생의 소원이 이뤄졌으니, 죽어도 여한은 없겠지?”

용우가 도발하는 순간, 용황제가 움직였다. 겁먹어 물러나는 동안 은밀하게 모았던 마력을 폭발시켜서 기습을 가한다.

-광휘의……!

그러나 그 기습은, 시작도 하기 전에 저지당했다.

파악!

섬뜩한 소리가 울리며 그의 몸통이 깊숙이 베어졌기 때문이다.

<커, 억…….>

용황제가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그가 인지하지도 못하는 순간에 몸통을 반쯤 가르고 지나간 일격, 그 상처 부위로부터의 격통이 신경계를 타고 달려 나갔기 때문이다.

“왜 기뻐하지 않지?”

용우가 그 앞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네 소원이 이뤄졌잖아? 인류는 구원받았어.”

<그럴, 리가…….>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100만 명을 제물로 바치는 것 따위, 아무렇지도 않았잖아? 그럼 너 자신을 대가로 바치는 것도 아무렇지도 않아야 하는 거 아니겠어?”

용우가 용황제를 걷어찼다. 굉음이 울리며 용황제의 몸이 축구공처럼 바닥을 튕기며 날아갔다.

콰직!

그 앞에 나타난 용우의 일격이 용황제의 갑옷을 부수었다.

콰드드득……!

강력한 염동력이 용황제의 갑옷을 조각조각 뜯어내어 해체시킨다.

“이것들은 인류를 구해준 대가로 받아가지.”

용황제가 품고 있던 별의 돌이 용우의 손으로 넘어갔다.

제일 먼저 광휘가, 그 다음으로 빙설이, 마지막으로 불꽃이… 하나씩 하나씩 용우의 손으로 넘어갔다.

<안, 돼… 그건……!>

“그건?”

<그건 짐의 것이다! 오직 짐만이 그것을 가질 자격이 있어!>

“그랬던 적도 있었나 보군. 하지만 이젠 내 거야.”

동시에 용황제는 자신의 존재가 일순간에 텅 비어 버리는 것 같은 공허감에 사로잡혔다.

‘아.’

용황제는 어렵지 않게 그 감각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았다.

그의 것이었던 별의 돌 3개는, 용우의 손에 넘어가는 순간 그에게 장악되었다.

용황제가 별의 돌을 장악하는데 걸린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 아아악…….”

갑옷이 깨져 나가자 용황제의 비명이 텔레파시가 아닌 육성으로 울려 퍼졌다.

파지직…….

그의 주변에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지직!

격렬한 스파크가 공간을 뒤흔들고, 그 중심에 있는 용황제의 몸을 잠식해 들어갔다.

“……!”

용황제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 소리는 격렬한 스파크에 묻혀서 그 자신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엘리가 놀라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죠?”

“대가를 치르는 거지.”

“대가요?”

“분수에 맞지 않는 힘을 품은 대가.”

천 명의 드라칸을 제물로 바쳐서 얻은 힘.

용황제는 별의 돌 3개가 주는 권능으로 그 힘을 감당해 내고 있었다.

하지만 별의 돌을 모두 용우에게 빼앗긴 지금, 용황제의 그릇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힘이 그를 파멸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파멸의 과정은 끔찍한 광경이었다.

인간이, 인간이 아닌 것으로 변모해 간다.

용황제의 몸 여기저기서 드라칸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이, 잔뜩 확장되고 일그러진 형태로 솟아났다가 부서지기를 반복한다. 그런 과정이 수십 번이나 계속되면서 용황제는 원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추한 덩어리로 변해가고 있었다.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보던 용우는 엘리를 바라보았다.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광경이다. 지옥이 실존한다면 바로 저런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엘리는 눈을 부릅뜨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용황제가 고통스럽게 파멸하는 과정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이쯤이 한계겠군.”

문득 용우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용황제를 파멸시키던 마력이 그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가면서, 공간을 찢어발기던 스파크와 진동이 잦아들었다.

“자, 엘리.”

용우가 엘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그 손을 맞잡은 엘리는, 용우가 자신에게 한 자루 검을 쥐어주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를 이 세계에 부른 것은 너야.”

엘리가 용우에게 지불한 대가는, 용우에게 있어서는 이 세계 인류를 신화 속 재앙으로부터 구해주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네가 이 세계를 구한 거다.”

그녀의 부름에 응했기에 용우는 이 세계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 많은 것을 얻어내었다.

“그러니까 네게는 이놈의 운명을 정할 자격이 있다.”

용우가 용황제를 가리키며 말했다. 용우가 무슨 수를 썼는지 추한 덩어리로 변했던 용황제의 모습이 다시금 인간의 그것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엘리가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제가 이놈을 살려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음? 그럴 생각이었어?”

용우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엘리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하지만 죽이거나 살리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잖아요.”

“아니야. 난 네게 다른 선택지를 줄 거야.”

“어떤 선택지를요?”

“이놈을 죽여서 해방시켜 줄 것인지, 아니면 육신을 죽인 뒤에 그 영혼을 지옥에서 계속 고통받게 할 것인지를.”

엘리가 흠칫했다. 용우의 목소리가 마치 악마의 속삭임처럼 그녀의 뇌리에 각인되고 있었다.

엘리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물었다.

“…지옥이라는 게 실제로 있는 건가요?”

“인위적으로 만든 거지만, 있지.”

“거기로 가면 어떻게 되는 거죠?”

“여기 사후세계가 어떤 형태인지는 모르겠군. 내가 가진 지옥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시설이야.”

“잠깐만요.”

엘리가 눈을 크게 떴다.

“지옥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지금?”

“그랬는데?”

“…….”

“특별한 목적으로 설계된 건물 같은 거야. 영혼을 가둬두고 고통받게 하는 게 목적일 뿐이지.”

잠시 용우를 바라보던 엘리는,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물었다.

“지옥에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데요?”

“살면서 겪은 ‘특별한 체험’을 영원히 반복하면서 영적 자원을 토해내게 되지. 그 영혼이 완전히 말라비틀어져서 소멸할 때까지 계속.”

“그러니까… 영원히 고통받는다는 거죠?”

“영원히는 아니고, 영혼이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

“그럼 지옥으로 보내주세요. 사후세계가 진짜 있다면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의 사유재산이나마 지옥이 있어서 저놈을 거기 처넣을 수 있다니 참 좋네요.”

“그럴 줄 알았다.”

용우가 피식 웃고는 용황제를 가리켰다.

“그럼 이제 죽여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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