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218화 (218/225)

외전 10

“엄마는 도망치는 솜씨가 뛰어난 분이었죠. 그 후로 7년간이나 도망쳐 다니셨으니까…….”

다른 왕족은 모두 일찌감치 제국군의 손에 잡혀 죽었다.

용황제가 왕족 생존자의 위치를 찾아내어 추적자들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세상 어디로 가도 추적자들이 쫓아오는데 7년 동안이나 도망 다닐 수 있었던 것이 기적이었다.

“용황제가 직접 쫓아왔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용황제는 그러지 않았어요.”

끝없는 도망 생활 중, 엘리의 엄마는 한 가지 규칙성을 알아냈다.

한 달에 한 번, 만월에 차올랐을 때 용황제의 마법이 전대륙을 훑고 지나간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반드시 자신의 위치가 제국군에게 노출된다.

어디에도 안주할 수 없는 생활이었다.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천재라 불렸던 고위 마법사가 아니었다면 손쓸 도리 없이 잡혀 죽었으리라.

“엄마는 그 와중에 저를 발견하고 양녀로 삼았죠. 저는 한참 뒤까지 그 사실을 몰랐지만.”

엘리의 엄마는 용황제에게서 도망치기 위한 수단으로 전설상의 체질 ‘몽상가’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아직 생후 2년도 안된 어린 엘리를 찾아내어 자신의 딸로 삼았다.

친부모들에게서 그녀를 데려오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엘리는 그 시절에 이미 몽상가의 힘을 발현했고, 친부모들은 그런 엘리를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현실과 꿈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힘, 그것이 통제되지 않고 주변을 집어삼킨다면 사람을 미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엘리의 엄마는 자신이 지닌 강력한 마법의 힘으로 엘리기 지닌 몽상가의 힘을 안정시키면서 그녀를 길렀다. 그리고 엘리의 힘으로 용황제의 눈을 피해 다녔다, 아주 오랫동안.

하지만 그것은 실수였다.

“용황제는 엄마가 몽상가의 힘으로 자신의 추적을 피했다는 사실에 민감하게 반응했어요.”

용황제의 탐지는 더욱 꼼꼼해졌다. 추적은 더욱 집요해졌다.

그럼에도 고위 마법사와, 몽상가의 힘이 낳는 시너지 효과는 강력해서 꽤 오랫동안 도망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한계가 왔다.

용황제의 힘은 계속해서 강력해졌고, 엘리의 엄마는 아무리 도망쳐도 끝이 없다는 사실에 지치고 절망해 버리고 말았다.

마지막에 발목이 잡힌 것은, 어느 정도는 그녀가 자포자기한 결과였을 것이다.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엄마는 저를 저항군에 맡겼어요.”

그리고 엘리가 자신의 친딸이 아님을 알렸다.

“고마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더 이상 용황제에게 맞서지 말고 평범하게 살아가렴. 너는 그럴 수 있을 거야.’

그것이 엘리가 기억하는 그녀의 유언이었다.

그녀는 저항군에게 엘리가 새로운 삶을 살도록 도와줄 것을 부탁하고는 죽음을 향해 걸어나갔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죠.”

엘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요?”

지치고 절망한 것은 엘리의 엄마만이 아니었다. 엘리 역시 그녀의 옆에서 혹독한 시간을 함께 해왔다.

너무나 부조리하게 사람이 고통받고, 죽어가는 모습을 수도 없이 봐왔다.

몇 년 동안이나 내일이 보이지 않는 공포에 떨며 살아왔다.

“엄마도 자기가 억지를 부린다는 걸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래도 그 억지를 들어주길 바랐겠죠.”

하지만 엘리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눈을 감을 때마다 켜켜이 쌓인 증오의 울부짖음이 귓가를 맴돌아서 그동안의 삶을 내려놓는 것은 불가능했다.

“엄마는 용황제에게 맞서기 위해서는 별의 돌을 찾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도망 다니는 동안 많은 단서를 모았죠.”

그래서 엘리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별의 돌을 찾아 헤맸다.

마치 해변에서 특정한 모래알을 찾는 것 같은 작업이었으나, 어떻게든 단서를 모아 별의 돌-새벽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게 또 죽음을 부르는 일이 될 줄은 몰랐어요.”

별의 돌을 찾아내어 그 힘을 쓰는 순간, 엘리는 용황제의 표적이 되었다.

“막다른 곳에 몰렸을 때, 당신을 소환해서 일이 이렇게 되었지만요.”

어깨를 으쓱한 엘리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갑자기 지루한 이야기를 늘어놔서 미안해요. 그런데 여긴 왜 오신 거예요?”

21명의 마왕을 소멸시킨 용우는 하루 정도 유예를 두었다가 나머지 마왕을 사냥하겠노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하루가 지나고 나자 마왕 사냥을 재개하는 대신 엘리를 데리고 제국령 한복판에 온 것이다.

용우는 잠시 동안 엘리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용황제를 죽이려고.”

“…네?”

순간 엘리는 자기가 헛것을 들은 줄 알았다. 아니면 용우가 질 나쁜 농담을 했거나.

하지만 용우는 덤덤하게 벨다디아 중심가 저편의 웅장한 황궁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어째서 가, 갑자기 그런 마으, 음을 먹으신 건데요?”

언제나 담대하다는 소리를 듣는 엘리였지만, 이 순간에는 너무 놀라서 목소리가 덜덜 떨려 나왔다.

“용황제 그놈이 네 번째를 만들었어.”

“네?”

“이 세계에 별의 돌이 세 개밖에 없다고 했었잖아. 두 개는 황제에게 있고 하나는 나한테 있지. 근데 황제가 어제 또 하나를 만들었더라고.”

“네에?”

엘리는 용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껌뻑였다.

용우가 말했다.

“말한 그대로야. 황제는 별의 돌의 제작법을 알고 있었던 거지. 마족하고 손잡은 것도 그걸 위해서였고.”

“잠깐만요. 너무 놀라서 잘 못 따라가겠어요.”

엘리는 심호흡을 한번 해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물었다.

“그러니까… 황제가 마족을 통해서 생명의 돌을 만들게 한 게 별의 돌을 만들기 위해서였다고요?”

“잘 이해했네.”

“…….”

너무 갑작스럽고 엄청난 이야기라 엘리는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엘리 자신이 별의 돌을 가져봤기에 누구보다도 그 무시무시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자체로 신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 별의 돌을,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었단 말인가?

“참고로 황제가 만든 별의 돌은 ‘불꽃’이야. 이걸로 이 세계에 새벽, 광휘, 빙설, 불꽃 네 가지 권능의 산물이 나타났군. 남은 건 굉음, 대지, 뇌전인가?”

용우가 재미있다는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는 흉흉한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야. 이놈이 대체 뭘 하나 하나하나 뜯어보고 나서 없애 버리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

용우가 용황제를 죽여 버리겠다고 결정한 지는 좀 되었다.

첫 번째 마족과 격돌, 마왕-47을 처치하고 제국과의 거래 내역을 알아낸 시점에서 용우는 용황제를 살려둘 생각이 없어졌다.

하지만 당장 죽일 생각은 없었다.

용황제가 하루아침에 죽어버린다면 엄청난 혼란이 뒤따를 터. 저항군의 조직을 이용해서 이 세계 사람들에게 최대한 피해가 덜 가는 방법을 구상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별의 돌-불꽃이 탄생하는 순간, 용우는 마음을 바꿨다.

별의 돌-불꽃을 탄생시킨 영적 자원을 생산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제물이 필요했는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최소한 100만 명.’

현 시점에서 팔라시아 대륙과 오디언 군도의 인구를 전부 합쳐봤자 8천만 명에 불과했다.

용황제는 정복 전쟁을 통해서, 그리고 일부러 정복하지 않고 내버려둔 대륙의 절반에 자신이 제압한 마족들을 배치시킴으로써 100만 명 이상의 제물을 확보했던 것이다.

마족들이 제국에 공급한 생명의 돌은 별의 돌을 만들기 위한 재료였다.

“엘리, 마음의 준비를 해.”

“무슨 준비요?”

“네가 전에 말한대로 할 거야.”

“제가 말한대로요?”

“가로막는 건 다 때려 부수면서 용황제에게 간다.”

제국의 심장부에 광포한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 * *

용황제는 명상의 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주변을 세 개의 빛덩어리가 서서히 회전하면서 강력한 힘을 발한다.

각각 광휘, 빙설, 불꽃의 권능이 담긴 별의 돌이었다.

무한한 힘을 생산하는 별의 돌들은 이미 용황제의 의지에 종속되어 그에게 신화적인 권능을 빌려주고 있었다.

‘이제 됐다.’

용황제는 미소를 지었다.

별의 돌-불꽃을 장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광휘와 빙설, 두 개를 지닌 지 오래되었기에 그의 그릇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수준으로 확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새벽의 권능을 빼앗고, 나머지 셋을 만들어 인류를 구원할 것이다.’

용황제가 만족감을 느끼며 눈을 떴을 때였다.

“폐하!”

근위대장이 급히 뛰어 들어왔다.

기쁨의 순간을 방해받은 용황제가 불쾌감을 드러내며 물었다.

“비상사태입니다! 적이 황궁에 침입했습니다!”

“적? 어떤 놈인가?”

“단 두 명입니다. 그중 하나는 저항군의 간부, 엘리로 판명되었습니다.”

“그 계집애인가.”

용황제는 엘리가 별의 돌-새벽을 가졌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기에 그녀가 황궁에 쳐들어와서 난동을 부린다 해도 놀라지 않았다.

“어차피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찾아와 주다니, 수고를 덜었군. 대마법사들을 전부 투입해라. 나도 곧 가지.”

“그, 그것이…….”

근위대장의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말을 더듬었다.

용황제가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자 그가 황급히 말했다.

“대마법사 네 분께서는 이미 전투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르잔 공이 전사했습니다.”

용황제가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 * *

용황제를 제외하면 제국 최강이라 불리는 대마법사 4명.

그들의 권능은 이미 인간의 영역을 초월하여 신의 영역에 닿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용황제의 축복을 받아 드라칸이 된 그들은 그만큼 강력한 존재였다. 일인군단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전략 차원에서 다뤄야 하는 특별한 인적 자원.

그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파악!

선혈이 튀며 잘린 드라칸의 팔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크악……!”

긴급 소집된 12장군 중 하나의 팔이었다.

대마법사들과 마찬가지로 12장군 역시 전원 드라칸이다. 그들 역시 대마법사보다는 못해도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자들.

그런 그들을 어린애 다루듯이 박살 내는 존재가 있었다.

“황궁에 뭔가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길래 기대를 많이 했는데… 효율이 꽝이군. 하긴 이 정도라도 구축을 해놓은 게 대단한 건가?”

거대한 황궁 정문을 부숴 버리고,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박살 내면서 여기까지 온 서용우였다.

황궁에는 용우가 지금까지 많이 보아온 형태의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

다수의 힘을 모아서 특정한 인물에게 공급해 주는 것.

다만 그 효율이 별로라서, 100명이 힘을 모아도 대상은 30명분의 힘만을 쓸 수 있다. 70명분의 힘이 손실되는 것이다.

수치상으로 보면 비효율의 극치였다. 그러나 머릿수보다 개개인의 강력함이 중요한 전장에서는 저 비효율성을 감수할 만한 전술적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으리라.

물론 용우 앞에서는 의미 없는 수작이었다.

“너희 같은 것들이 이 시스템 써봤자 낭비 아니냐? 차라리 용황제에게 다 몰아주지 그래?”

즉 대마법사들과 장군들은 본래의 자신보다 훨씬 강화되어 있다.

그런데도 전혀 상대가 안 된다.

-섬광참!

용우가 손날을 세운 채로 한번 손을 휘두르자 그 궤적을 따라서 날카로운 섬광이 뻗어나간다.

섬광이 공간을 베어내는 것은 잠깐이었으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쿠구구구궁……!

그 범위가 30미터에 달하며, 궤적에 걸린 그 누구도 막아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단 일격으로 장군 한 명이 또 죽어나갔다.

“이놈! 죽어라!”

장군들이 근접전으로 시간을 버는 동안 대마법사들은 큰 한 방을 준비하고 있었다.

-심판의 화염검 군단!

2미터에 달하는 불꽃검 수십 자루가 곡선을 그리며 용우에게 쏘아져 나갔다.

수십 발의 로켓탄이 한 지점을 집중 타격하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화염포식자.

그러나 용우의 옆에 나타난 광점이 그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말도 안 돼!”

대마법사가 경악하는 순간이었다.

-마격탄!

용우가 그를 향해 손가락총을 쏘는 시늉을 했다.

콰아아아아앙!

극초음속으로 날아간 에너지탄이 그를 관통했다.

그의 몸이 열과 충격으로 증발하고, 막대한 에너지가 폭발하면서 황궁이 무너질 것처럼 뒤흔들렸다.

“크윽! 이건 어떠냐?”

살아남은 대마법사는 이제 둘뿐.

그중 하나가 완성한 마법을 풀어내었다.

-열두 재앙의…….

퍼억!

그러나 그 마법을 완성하기도 전에, 그 앞에 나타난 용우가 로우킥을 날렸다.

로우킥이 그의 두 다리를 끊어버리자 마법이 실패하고 말았다.

“크아……!”

대마법사는 비명을 지르지도 못했다. 용우가 그의 주둥이를 붙잡고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

기다란 드라칸의 주둥이가 짜부라졌다.

쾅!

그리고 용우가 날린 주먹이 그의 몸통에 꽂히자, 폭죽 터지듯 몸이 터져 나갔다.

“관객이 필요해서 최대한 느리게 죽이려고 노력 중이었는데…….”

혼자 살아남은 대마법사가 몸을 떨었다. 견딜 수 없는 공포가 그를 잠식하고 있었다.

“이제야 오다니 누가 황제 아니랄까 봐 늑장 부리는 거만함이 몸에 배었군.”

그 말에 모두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한곳을 바라보았다.

용황제가 높은 곳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

용우는 그 질문을 무시했다.

퍼억!

용우가 주먹을 날리자 마지막 대마법사의 몸통이 터져 나갔다. 그리고 상처 부위에서 폭염이 일어나 남은 부위를 집어삼켰다.

“끄아아아아아아……!”

비명은 짧지만 끔찍했다.

모두가 공포에 압도된 가운데 용우가 엘리에게 말했다.

“엘리.”

“…네.”

용황제를 보고 굳어 있던 엘리는,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네 자리가 특등석이다. 눈 똑바로 뜨고 보고 있어라.”

용우가 용황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오늘 모든 게 끝날 테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