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213화 (213/225)

외전 5

엘리가 설명을 계속했다.

“제국에는 마족이 존재하지 않아요. 전부 청소해 버렸거든요. 하지만 제국 바깥에는 많은 마족이 존재하고 있어요.”

“마족이라…….”

용우도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다른 세계의 거대하고 사악한 의지와 연결되어서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

‘그게 사실이라면 시청자 같은 놈들이라도 있는 거겠지.’

과거에 지구 인류를 위협했던 정보세계의 존재, 시청자.

용우의 손에 멸망한 그들처럼 정보세계의 고차원적인 존재가 인간과 연결되어 정신을 지배하거나, 힘을 보내주어 마족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용우의 기준으로는 그랬다.

“제국은 마족, 그리고 마족의 수하인 흑마법사들을 이용해서 타국 사람들을 인체 실험의 대상으로 쓰고 있어요. 이 정도면 화신님이 움직일 명분이 되지 않나요?”

“화신님이라…….”

용우는 이야기의 내용보다 엘빈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신경 쓰였다.

엘리가 그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뭐라고 불러드리는 게 좋으세요?”

“아니, 내 이름은 여기서는 이질적이니까 그냥 그렇게 불러. 그보다 네가 이야기한 내용을 뒷받침할 증거는 있는 건가?”

“제 머릿속에요.”

“…….”

“꿈의 세계에서 정보를 얻었어요. 그래도 당신이라면 제 말의 진위 여부를 알 수 있잖아요?”

“그렇긴 한데… 너 참 막무가내구나.”

실소한 용우가 말했다.

그는 엘리가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내준 숙제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너무나 잘 이해하고 실천하지 않았는가?

“좋아. 네가 바라는 대로 움직여 주지. 네가 말한 대로라면 내가 참 때려주고 싶은 놈들이라는 뜻이니까.”

“실망하지 않으실걸요.”

엘리가 주먹으로 가슴을 팡팡 치며 호언장담했다.

* * *

마족은 한때 인간이었던 존재다.

그들은 마계를 지배하는 거대하고 사악한 의지, 66마왕의 선택을 받아서 마족이 되었다.

그로써 그들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공포로부터 해방되었으며, 인간을 벌레 취급할 수 있는 강대한 힘을 손에 넣었다.

그들은 대륙 곳곳에 존재하는, 마경(魔境)이라 불리는 땅을 자신의 거점으로 삼고 인류를 위협해 왔다.

마경은 인간에게는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하지만 마족에게는 절대적인 유리함을 자랑하는 그들의 홈그라운드였다.

그렇기에 국가의 토벌대조차도 그들을 어쩌지 못했다. 마족이 토벌당하는 일은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용황제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용황제와 그의 축복을 받은 드라칸들은 기존의 상식을 초월하는 힘으로 제국의 영토에 자리했던 모든 마족들을 일소해 버렸다.

“하지만 그들이 토벌한 마족이 전부 죽은 것은 아니었어요.”

제국령에서 토벌된 마족 중 반수 이상이 제국 밖으로 도망쳐서 타국에 자리 잡았다.

대륙의 절반에 해당하는 땅에 50여 개의 마경이 새로 생겼다.

그리고 그 마경 주변에서 흑마법사들이 암약하며 인간들을 마족에게 가져다 바치고 있었다.

“암흑가에서 인신매매를 자행하는 노예상이 마족에게 제물로 바칠 인간을 공급하고 있어요. 전부터 그런 소문은 들었는데 제가 꿈의 세계에서 확인해 본 결과 사실이었어요.”

“그게 어디서 벌어진 일이지?”

“두탄 시요. 꽤 멀리 덜어져 있지만…….”

“가보자. 거리가 먼 건 나한테는 별로 상관없어.”

“마우디도 데려가면 안 될까요? 저는 전투 능력이 떨어지는 편이라서…….”

“네가 다칠 일은 있을 것 같아? 절대 없어.”

용우가 딱 잘라서 말하자 엘리는 할 말이 없어졌다. 정말로 그럴 것 같았기 때문이다.

* * *

테바스 왕국에는 노예제가 없다.

당연히 이 나라에 노예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랬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암흑가에는 노예상이라고 불리며, 그 호칭에 걸맞은 인신매매 사업을 하는 조직이 있었다.

불법을 자행해서 검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당연한 암흑가에서, 인간을 매매하는 것 따위는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노예상이라 불리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의 이권을 지킬 힘, 그리고 권력의 비호였다.

“히이이익……!”

테바스 왕국 최대의 상업도시 두탄.

노예상은 환락이 넘치는 이 도시의 암흑가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거물이었다.

그에게는 수백 명의 부하가 있었고, 음지의 불법적인 사업을 통해서 벌어들인 거대한 재력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그 모든 것이 휴지 조각만도 못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귀인께서는 대체 누구십니까?”

노예상은 암흑가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지금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의 눈빛만 봐도 사람들이 오줌을 지린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지금 공포에 질려 있었다.

아지트 입구부터 자신의 앞까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걸어온 두 사람 때문에.

그리고 그 주변에 쓰러져 있는 자신의 부하들 때문에.

“앞으로는 이렇게 해야겠군. 일일이 싸워주기에는 너무 귀찮아.”

용우가 겁에 질린 노예상을 무시하고 중얼거렸다.

그의 주변에는 몇 명의 남자들이 잠든 것처럼 쓰러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 잠든 것처럼 쓰러져 있는 것만으로도 섬뜩한데, 쓰러진 그들의 얼굴을 보면 더욱 기괴하다. 그들은 초점이 나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렇게 기괴한 표정으로 쓰러진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이 건물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이 같은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다.

심지어 노예상은 자신의 호위들이 공손하게 문을 열어준 다음 실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쓰러지는 광경을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이 상황은 마치 호러 영화의 등장인물이 된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 세계에 호러 영화 따윈 없겠지만.’

실없는 생각을 하는 용우에게 엘리가 황당해하며 물었다.

“어, 진짜…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일하시네요.”

“뭘 기대했는데?”

“가로막는 걸 다 때려 부술 줄 알았죠.”

“내가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면 눈만 깜짝해도 주변이 다 증발하거든. 나랑 직접적인 원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조금 걸리적거린다고 다 죽여 버리면 이 세상에 인간이 하나도 안 남을걸.”

“…….”

용우의 힘을 아는 엘리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무시무시한 이야기였다.

말문이 막힌 엘리를 뒤로하고 용우가 노예상에게 다가갔다.

“아, 그렇지. 내가 누구냐고 물었지?”

“…그렇습니다.”

노예상이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산전수전 다 겪었기에 지금 고개를 뻣뻣이 들고 반항할 때가 아님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용우가 하얗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너한테 진실을 묻고, 그 대가를 치러주러 온 사람 정도 될까?”

노예상은 용우의 기준으로는 얼마든지 잔혹하게 대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용우는 그를 보며 느끼는 잔학성을 굳이 억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노예상이 용우에게 마족과의 연결 고리를 남김없이 고백하고, 자신의 전 재산을 바칠 테니 제발 죽여달라고 애걸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마경은 대체로 인간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무리 마경이 마족에게 절대적 유리함을 보장하는 홈그라운드라지만, 그래도 인간이 군대를 보내어 공격하기 쉬운 곳에 있다가는 버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족 제리크는 따분함을 느끼고 있었다.

인간을 고문하여 절망에 빠뜨린 후에 죽이는 것이 그의 낙이었는데, 마경에 제물로 바쳐진 인간을 모두 죽여 버렸기 때문이다.

흑마법사들이 인간을 구해 바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정말 일하기 싫군…….”

제리크가 지긋지긋하다는 듯 탄식했다.

많은 인간들이 공감할 것 같은 중얼거림이었다.

하지만 그가 일하기 싫어하는 것은 나태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본성이 추구하는 것, 마왕의 의지를 실천하는 것과는 상관없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용황제.”

제리크는 증오스러운 존재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용황제는 무시무시한 힘으로 제리크를 제압하고 그를 살려주는 것을 대가로 맹약의 낙인을 찍었다.

맹약의 내용은 자신이 지시하는 일을 시행하고, 일정 기간마다 성과를 내어 보고할 것.

용황제가 그에게 지시한 일은 마족의 특기 분야라고 할 수 있는 흑마법, 인간의 영혼을 유린하는 연구였다.

“후우.”

제리크가 자신의 처지에 한심함을 느끼며 일을 시작할 때였다.

콰광!

폭음이 울리며 그의 본거지가 뒤흔들렸다.

“뭐야?”

마족 제리크는 깜짝 놀랐다.

누군가 자신의 마경을 공격한 것일까?

‘그럴 리가.’

그의 본거지는 험악한 산악지형 한복판에 위치해 있었으며, 반경 5킬로미터에 걸쳐 마경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마경 안으로 공간이동할 수 있는 것은 제리크 자신과, 그의 권속인 흑마법사뿐이다.

또한 그 주변에는 그의 권능으로 만들어낸 악마새들을 수백 마리나 배치하여 언제나 감시의 눈길을 늦추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본거지가 아무런 조짐도 없이 기습당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경이 뭔가 했더니 이런 곳이었군.”

제리크가 경계심을 끌어올리며 사태 파악에 나섰을 때, 폭음의 진원지에서는 용우가 재미있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가 제리크의 마경을 기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지상 1킬로미터 고도에서 초음속으로 지상으로 강하했으니까.

“확실히 홈 어드밴티지가 크네. 승률이 높을 만도 해.”

“뭘 파악하셨길래 그래요?”

엘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기에 물었다.

“지금 너는 내가 보호해 주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 느끼는 거야. 너 혼자 여기 왔다면 이상할 정도로 감정이 요동치는 압박감을 느끼고, 마력이 잘 통제되지 않고, 환각 증상에 시달리고… 그런 식으로 컨디션이 엉망진창이 될걸.”

“여기에 그런 힘이 있다고요?”

“적의 힘을 지속적으로 소진시키고, 그렇게 소진시킨 힘을 이 공간 자체가 흡수해서 주인과 아군으로 지정된 자의 힘을 증폭시켜 주기도 하는 것 같고… 꽤 여러 가지 효과가 붙어 있네.”

용우는 성큼성큼 걸으면서 말했다. 용우보다 훨씬 키가 작은, 150센티밖에 안 되는 엘리가 바쁜 걸음으로 그 뒤를 따랐다.

“넌 뭐냐?”

그 앞을 5명의 인간들이 가로막았다.

시커먼 옷을 입고 기분 나쁜 기운을 풍기는 자들이었다.

용우가 엘리에게 물었다.

“저게 흑마법사야?”

“네. 다들 마력에 비해 전투 능력이 뛰어나니 조심…….”

쾅!

폭음이 울렸다.

그리고 흑마법사 하나가 폭발해서 사라졌다.

용우가 물었다.

“조심?”

“…아니, 말이 헛 나왔어요. 마음대로 하세요.”

엘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용우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흑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뭐, 뭐야?”

“지금 뭘 한 거냐?”

그들은 패닉에 빠져 있었다. 상대가 뭘 한 건지도 모르겠는데 동료 중 하나가 폭사했으니 그럴 수밖에.

물론 용우는 대답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들을 압박하듯 느긋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간다.

“제기랄!”

흑마법사들은 그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공격에 나섰다.

-절규의 나선!

허공에 검은 소용돌이가 그려져서 용우를 덮쳤다.

파지지지직!

상대를 휘감고 강력한 저주의 음파를 퍼부어 대는 마법이었지만 용우에게는 통용되지 않았다.

용우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허공장에 막혀서 무력화된다.

당황하는 흑마법사에게 용우가 손가락총을 겨누고 쏘는 시늉을 했다.

“Bang.”

극초음속으로 날아간 에너지탄이 흑마법사에게 명중, 그를 먼지로 만들어버렸다.

에너지탄 사격계 스펠 중에서는 최하급, 기본기 중의 기본기인 마격탄도 용우의 손에서 펼쳐지면 막강한 위력이 나온다.

“크윽, 네놈이 누군지는 몰라도…….”

“이젠 됐어. 너희가 무슨 재주를 가졌는지는 봐주려고 했는데, 다 귀찮다.”

용우가 그렇게 말하며 손을 휘둘렀다.

-섬광참(閃光斬)!

일순간 엘리의 시야가 새하얗게 변했다.

놀란 엘리가 잠깐 눈을 감았다 떴을 때, 그곳에는 더 이상 아무도 없었다.

“…….”

엘리는 어떻게 됐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보기가 무서웠다.

‘흑마법사들을 이렇게 간단히…….’

엘리는 자신이 용우의 힘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국군을 후퇴시키는 모습을 보고 그가 강대한 힘의 소유주임을 알았다. 하지만 오늘 보여주는 모습은 그녀가 상정한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이 사람은 어쩌면 정말, 용황제보다 더 강할지도 몰라.’

물론 엘리의 이해는 여전히 용우가 지닌 권능의 편린을 상상하는 것에 불과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