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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세계의 귀환자-212화 (212/225)

외전 4

서용우는 시장 한복판에 위치한 건물 2층에서 별의 돌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신기하군. 이걸 어떻게 만든 거지?”

“인간이 그런 걸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머나먼 옛날에 신들이 위대한 성좌의 힘을 받아 만들어냈다고 해요.”

그의 맡은 편에 앉은 엘리의 말에 용우가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있나. 그럼 이게 왜 그 신들의 손에 있지 않고 인간인 네 손에 있었던 건데?”

“그야 우리는 알지 못하는 신화적인 이유가 있겠죠. 세상에 알려진 신화는 극히 일부일 뿐, 역사의 진실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럴듯한 이야기네.”

용우는 엘리의 말을 대충 흘려 넘기면서 별의 돌을 분석해 보았다.

별의 돌은 정말로 신기한 물건이었다.

새벽의 권능이 깃든 이것은 근본적으로는 용우가 가진 성좌의 무기, 군주 코어와 같은 물건이다.

단위 시간당 생산량에는 한계가 있지만, 아무런 연료 없이도 끊임없이 에너지를 생산한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상대적이지만 무한한 영구 동력으로 엔트로피를 역행한다.

하지만 그 성능 면에서는 성좌의 무기, 군주 코어보다 훨씬 떨어진다.

단위 시간당 생산량은 저 둘의 3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았고, 그 힘을 극대화시킬 구세록이나 왕의 권능 같은 거대한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신의 힘이라고 불리기에는 충분한 수준이지만.’

이 세계 인류는 문명 수준 면에서는 지구와 비교할 수 없었다. 용우가 경험한 곳은 중세보다는 좀 나은 정도였는데, 그걸 지구가 지나온 시대와 똑같은 기준으로 판단하기에는 애매하다.

왜냐하면 이 세계 인류는 마력의 존재를 알고, 그것을 활용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초인의 존재가 당연시되고, 원거리 통신이나 공간이동이 활용되는 세상을 지구와 똑같은 잣대로 잴 수는 없다.

특히 이곳에서는 다른 공간 간섭계 능력과는 별개로 텔레포트는 그렇게까지 희소한 능력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흔한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고위 마법사라고 불릴 정도면 텔레포트가 가능하다고 한다.

‘내 입장에서는 그냥 판타지 세계지.’

그렇게 부르는 게 딱 어울리는 세계였다. 아마 이곳만이 아니라 다른 유사인간계도 대체로 그렇지 않을까?

“제 말 듣고 있어요?”

“응? 아,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었어. 미안.”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냐고 물어봤어요.”

“글쎄. 그리 오래 있지는 않을 거야.”

이 세계에 오기 전, 용우는 혼자 왕의 섬에 있었다. 종말의 군단의 세계를 침식하는 혼돈과 싸워서 영적 자원을 생산하는 일을 위해서였다.

요즘은 그 작업을 일주일 단위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일주일이 지나도록 돌아가지 않으면 지구에서 걱정할 것이다.

‘비연이한테는 미리 말해둘까?’

용우는 고민했다.

이비연은 한창 세계 각국의 우주 사업에 협력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지구와 태양계 곳곳을 왕복하느라 바쁜 그녀에게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뭐 연락은 언제든지 가능하니까.’

구세록의 권능은 이 세계에서도 문제없이 기능했다. 지구로 돌아가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능한 일이었다.

“왜? 위험에서 벗어나고 나니까 이제 내가 귀찮아? 그럼 떠나줄게.”

“아니, 그건 아니고요.”

엘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궁금해서 그래요.”

“뭐가?”

“당신은 이 세계의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제국군을 살려서 보내줬다고 했잖아요. 그럼 알고 나서는 어떻게 할지 궁금해요.”

“…넌 좀 끈질기구나.”

“이방인, 아니 이계인인 당신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겠지만 우리에게는 정말로 중요한 일이니까요. 물론 우리 거래는 끝났지만,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으로 말하고 있는 거예요.”

“넌 내가 제국군을 다 때려잡아 주길 바라는 거지?”

“네.”

너무나 솔직한 엘리의 대답에 용우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건 참… 애매한 문제인데.”

“뭐가요?”

“물론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놈도 있지. 내 눈앞에서 비인륜적인 짓을 벌이는 놈이 있다면, 나는 그런 짓을 저지른 놈을 죽도록 패주거나 죽여 버리거나 할 거야.”

“제국군이 바로 그런 놈들이에요. 여태까지 그놈들이 얼마나 끔찍한 짓을 많이 저질렀는지 아세요? 그놈들은……!”

“하지만 제국이 횡포를 부리는 건 어쨌거나 이 세계 사람들끼리의 문제야.”

용우는 울분을 터뜨리려는 엘리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다른 세계 사람인 내가 용황제와 제국이 악의 세력인 것 같으니까 다 때려잡는다고 해서 그게 좋은 일이 될까?”

“왜요? 그게 좋은 일이 아닐 리가 없잖아요. 그건 무조건 좋은 일이에요.”

“음. 네 입장은 확실히 알겠지만…….”

용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지구에서도 인류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판단되면 나서지 않는 것이 용우가 그어둔 선이었다. 그런데 다른 세계의 인류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 구축한 파워 밸런스를 뚝딱 바꿔 버리는 일이라면 신중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어쨌든 단순히 나 자신이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짧은 시간 동안 벼락치기 공부를 해봤자 피상적인 지식을 얻는 것에 지나지 않기도 하고.”

저항군을 황야의 유적 아지트에서 400킬로미터나 떨어진 도시로 탈출시켜 준 지 하루가 지났다.

용우는 하루를 무의미하게 소비하지는 않았다. 그는 모처럼 오게 된 이 유사인간계에 관심이 많았으니까.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그들로부터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아무도 용우의 존재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용우가 원하기만 하면 사람들은 그가 듣고 싶어 하는 정보를 줄줄 읊어주었다.

용우의 강력한 텔레파시 능력은 상대가 그런 일을 겪고도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

“네가 바라는 대로 내가 제국과 싸우려면, 최소한의 명분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어떤 명분이요?”

“내가 보는 앞에서 정말 부조리한 일이 벌어진다거나, 아니면 제국이 나와 싸워보자고 덤비거나.”

“정말 부조리한 일이라면 어떤 일을 말하는데요?”

“인신매매나, 인체 실험이나, 민간인 학살……. 뭐 그런 일들을 말하지.”

그 말에 엘리가 퍽 해괴한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용우가 물었다.

“왜?”

“아니, 그런 일들이야 어디서든 벌어지고 있는걸요. 제국군이 그런 짓을 한두 번 저지른 것도 아니고요. 특히 민간인 학살은 밥 먹듯이 저지르죠.”

“…….”

21세기의 지구 기준으로 민간인 학살은 아주 무거운 전쟁범죄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사건에 불과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제국이 제게 저질렀거나 저지르려고 했던 일들이에요.”

“그래?”

“거짓말 같아요?”

“아니.”

“그런데 뭐 반응이 그래요?”

“네가 별로 평탄한 인생을 살았을 것 같지는 않았거든. 그래서 그러려니 했지.”

“…….”

엘리가 새초롬하게 용우를 쏘아보았다. 그 얼굴이 귀여워서 용우가 킥킥 웃었다.

“하긴 당신은 인간이 아니죠. 인간의 고충 따위, 당신에게는 전부 작고 미약한 존재들의 일에 불과하겠네요.”

“그렇지 않아. 난 인간이야.”

“…네?”

엘리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인간이야. 다른 세계의 인간일 뿐이지.”

“혹시 당신 세계의 인간은 다 당신처럼 엄청난 힘을 가졌나요?”

“아니, 전혀. 내가 특별한 거지.”

“인간이 어떻게……. 아니, 성좌의 화신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선택받은 존재라면야.”

“선택받은 존재라…….”

선택받은 존재이긴 했다. 선택한 놈이 지옥에 가서 죽으라고 선택해서 그렇지.

“딱히 네가 생각하는 그런 선택받은 존재는 아니었어.”

그렇게 말하는 용우의 표정이 너무나 씁쓸해 보여서, 엘리는 말문이 막혔다.

잠시 조용해졌던 그녀가 말했다.

“…미안해요.”

“뭐가?”

“당신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는데 함부로 말한 거요. 당신은 신처럼 강한 사람이니까, 뭐든지 마음대로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을 줄 알았어요.”

그건 아마도 엘리가 지닌 동경과 환상이 자아낸 선입견이었으리라.

그녀는 늘 힘이 없어서 험악한 운명에 떠밀리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용우처럼 강대한 힘을 지닌 존재가 인간다운 아픔을 지니고 있으리라고는 상상 못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용우의 표정을 본 그녀는 깨달았다. 그 역시 사람의 마음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작게 한숨을 쉰 엘리가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어요. 성의를 보여 드릴게요.”

* * *

다음날, 엘리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잡았어요.”

“뭘?”

“제국군이 인신매매와 인체 실험을 하고 있다는 정보요.”

“…….”

빠르다. 그리고 집요하다.

‘이 녀석, 괜히 저항군의 간부를 하고 있는 게 아니군.’

용우는 그녀가 상당한 걸물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그렇지 않았다면 애당초 자기 목숨을 바쳐서 성좌의 화신을 초환(招還)하는 일을 실행에 옮기지도 않았으리라.

용우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자 엘리가 새가 지저귀듯 조잘거렸다.

“우리 세력은 여기저기 많이 심어져 있거든요. 암흑가에 침투해 있는 인원이 많아서 그런 정보는 잘 들어와요.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제 능력을 조금만 활용하면 사실을 확인하는 건 일도 아니죠.”

“그래서, 어디서 뭘 어떻게 하고 있는데?”

용우가 항복했다는 제스처를 취하자 엘리는 대답하는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어제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는 것 같던데 이 세계 사정은 좀 파악하셨어요?”

“어느 정도는.”

“제국이 사실상 세계를 정복한 상황이지만 뭔 이유에서인지 확장을 멈췄다는 것도 아세요?”

“응. 대체로 어차피 정복한 거나 다름없으니 내정을 다지는 단계라서 그렇다는 이야기들을 하던데.”

용우는 지금 있는 도시 사람들에게만 이야기를 들어본 게 아니다.

주변 도시는 물론이고 제국령까지 가서 제국 사람들에게도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렇게 해서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확실히 용황제는 독재자이며 정복자였다.

그는 막강한 힘으로 주변국을 침략하여 영토를 늘려왔다. 동시에 제국은 물론이고 정복한 지역의 사회구조를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기존의 지배계급이었던 귀족의 특권을 박탈하고,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드라칸이 된 자만을 지배계급으로 인정했던 것이다.

그 결과 오로지 인간이 아닌 자들만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구조가 성립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전쟁범죄가 일어났고, 저항운동을 탄압하면서 수많은 피해자들이 양산되는… 전형적인 폭군 독재자의 행보를 좀 더 그로테스크하게 부풀려 놨다고 할 수 있는데.’

용우가 보기에 용황제는 참 고민되는 존재였다.

이러쿵저러쿵 핑계를 늘어놓았지만 용우는 일단 자신을 이 세계로 부른 엘리의 입장을 우선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처한 어려움에 어느 정도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별의 돌은, 거기서 한번 싸워주는 대가로 받기에는 너무 큰 대가였지.’

용우 입장에서 보면 정말 몸풀기도 안 되는 일을 해주고 엄청난 보물을 받은 셈이다.

그런 부채감이 있어서, 용우는 아직 엘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제 그녀에게 말한 것은, 어떻게 하면 자신을 움직일 수 있는지 알려준 것이다.

‘나를 네가 바라는 일에 동원하고 싶다면, 성의를 보여라. 내가 거리낌 없이 이 세계의 일에 개입할 만한 명분을 제공해라.’

용우는 그런 뜻을 전달했고, 엘리는 아주 잘 이해했다.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놀라운 추진력으로 그 명분을 가져왔다.

엘리가 말했다.

“제국이 세계의 절반만을 지배하는 이유는, 나머지 절반에 사는 인간을 인간 취급하지 않기 위해서예요.”

“여전히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는데.”

“제국령이 아닌 땅을 모두 실험장 취급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실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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