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
다섯 드라칸은 곧바로 산개해서 둥글게 용우를 반포위하는 형국으로 거리를 좁혔다.
순식간에 거리를 50미터까지 좁힌 그들 중 둘이 손을 뻗었다.
파지지지직!
시퍼런 전격의 사슬이 두 줄기가 용우를 강타했다.
화아아악!
뒤이어 반대쪽의 드라칸 두 명이 입을 벌려서 강력한 불을 뿜었다. 빠르게 날아든 불기둥이 용우에게 도달해서 폭발했다.
그 위력은 방금 전, 백 명이 넘는 병사가 날렸던 십자포화를 훨씬 능가했다.
“대화를 나누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는 걸 이해시켜 줄 수밖에 없겠군.”
다음 순간, 제국군이 경악했다.
용우가 아무렇지도 않게 폭발을 뚫고 걸어 나왔기 때문이다.
“설마 환영술인가?”
마지막 공격을 준비하던 중앙의 드라칸이 놀라서 중얼거렸다.
용우가 정교한 환영술로 자신들을 속여 넘긴 게 아니라면 설명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환영술? 너희들 상대로 그런 귀찮은 짓을 할 필요가 없지.”
용우가 피식 웃으며 드라칸에게 뛰어들었다.
그 속도가 너무나 빨라서 드라칸은 용우가 자신의 간격 안으로 들어온 후에야 움직임을 알아차렸다.
“큭……!”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드라칸의 신체 능력은 인간을 훨씬 상회한다. 인간은 마력으로 육체를 강화하는 기술이 달인의 경지에 오른다 해도 드라칸의 평소 상태와 필적하는 정도에 그친다.
그런데 용우의 속도는 완전히 드라칸의 반사 신경을 초월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걸 좀 어려워하는 편이야. 인간 상대할 때는 기준을 확실하게 잡았는데 너희처럼 어중간하게 인간보다 강한 것들은 어느 정도로 힘 조절을 해야 할지 헷갈리거든.”
용우는 공격하지 않고 속삭였다. 드라칸은 곧바로 뒤로 뛰면서 검을 휘둘렀다.
턱.
하지만 용우는 어린애 손짓을 붙잡듯이 그것을 막아버렸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용우는 드라칸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고민에 빠졌다. 덩치가 세 배는 큰 드라칸의 검을 붙잡은 채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 드라칸에게 기괴한 공포를 안겨주었다.
“크아!”
드라칸이 입을 벌렸다. 그러자 열린 입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오는 게 아닌가?
화아아아아악!
바로 앞에서, 그것도 얼굴에 불의 숨결을 직격당했으니 무사할 수 없으리라.
드라칸은 그렇게 생각하며 검을 들려고 했다.
‘뭐지?’
그런데 검이 안 움직인다.
드라칸은 자신의 검이 여전히 용우의 손에 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설마?’
드라칸의 동공이 흔들렸다.
“와, 불도 뿜냐? 깜짝 놀랐잖아.”
바로 그 설마였다.
용우는 털끝 하나 상하지 않은 채로 드라칸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희를 어떻게 패야 적당히 제압할 수 있을지 기준이 잘 안 서니까, 쉬운 방법으로 가야겠다.”
드라칸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음 순간, 갑자기 사고가 단절되면서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뭐, 지……?’
의문조차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기 전에 파편화되어 흩어지고, 드라칸은 그대로 흐느적거리면서 그 자리에 쓰러져서 혼절했다.
“그냥 좀 자라.”
용우가 쓰러진 드라칸을 보며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드라칸들이 달려들었다.
팍!
하지만 일제히 달려든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용우는 날아드는 창을 붙잡은 다음 끌어당기면서 드라칸과 눈을 마주쳤다.
“……!”
그러자 드라칸의 사고 흐름이 무수히 단절되고 파편화되면서 흩어졌다. 그 역시 눈을 까뒤집고 혼절하고 말았다.
이들을 상대로 어느 정도 힘을 써야 죽이지 않고 제압할 수 있는가?
용우 입장에서 그것은 꽤 까다로운 문제였다. 과연 벌레를 짓눌러서 죽이지 않고 의식만 끊어놓으려면 어느 정도 힘을 줘야 할까? 딱 그런 수준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용우는 자신이 힘 조절을 하는 대신 텔레파시의 검을 휘둘렀다. 의식을 끊어버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니까.
다섯 명의 드라칸이 제압되기까지는 채 20초도 걸리지 않았다.
“…….”
정적이 내려앉았다.
제국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용우를 바라보았다. 제국이 자랑하는 학살병기 드라칸을 어린애 손목 비틀듯이 제압해 버리다니, 어떻게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용우는 굳어버린 제국군 앞에서 손을 들었다.
“잘 봐라.”
그리고 손을 한번 털자 푸른 에너지탄이 쏘아져 나갔다.
꽈아아아아아앙……!
극초음속으로 날아간 에너지탄이 유적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대폭발을 일으켰다.
1킬로미터 바깥에서도 하늘로 치솟는 폭발이 보이고, 충격파가 그 자리를 때리자 제국군은 전의를 상실했다.
“지휘관 나와 봐. 얘기 좀 하게.”
제국군은 이번에는 용우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꿀꺽.
정적 속에서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 * *
엘리는 너무 놀란 나머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맙소사…….”
“뭐야? 어떻게 됐는데?”
그 옆에 모여 있던 저항군 간부들이 물었다. 눈을 감고 용우가 전달해 주는 지상의 상황에 집중하던 엘리가 눈을 뜨고 말했다.
“제국군이 후퇴했어요.”
“정말로?”
“네. 하지만 전사자는 한 명도 없는 것 같네요.”
“그럴 리가? 전사자 한 명 안 나왔는데 제국군이 토벌 작전을 포기하고 물러갔다고?”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다들 술렁였다.
엘리가 뭔가 말하려고 할 때, 그들 사이에 시커먼 구멍이 발생하더니 용우가 걸어 나왔다.
“바라는 대로 제국군을 물러나게 해줬다. 앞으로 네 시간 동안은 4킬로미터 안으로 접근하지 않기로 약속했어.”
“왜 그들을 하나도 죽이지 않은 거죠? 당신을 죽이려고 공격했잖아요.”
“말했다시피 난 이 세계의 사정을 모르니까. 나는 네가 나를 불러서 대가를 제시했고, 거래가 성립했으니까 네가 바라는 일을 해주고 있을 뿐이야.”
“제국군은 나쁜 놈들이에요.”
“세상에 전쟁이 벌어지면, 전쟁을 벌이는 이들은 서로 상대편이 나쁜 놈들이라고 말하지.”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거예요! 우리가 얼마나…….”
용우는 손을 들어서 목소리를 높이는 엘리를 제지했다.
“그래. 몰라. 모르니까 함부로 사람을 죽이진 않겠다는 거야.”
“…….”
부들부들 떠는 엘리를 보며 용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용우는 원래 적에게는 가차 없는 성격이다. 하지만 제국군은 지금의 그가 적으로 삼기에는 너무나 하찮은 자들이었다.
물론 그렇더라도 그들이 정말 사악한 괴물이라서 인류를 죽이고 착취하는 존재라면 가차 없이 손을 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용우가 휘말린 것은 어디까지나 이 세계 인류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인류 세력끼리의 분쟁이었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죽이는 일은, 그래야 할 이유가 분명해진 다음에 할 것이다. 그것이 이계로 날아온 용우의 입장이었다.
잠시 분을 삭인 엘리가 물었다.
“그들이 약속을 지킬 것 같은가요?”
“지킬 거야. 안 지키면 다 죽는다는 사실을 이해시켜 줬으니까.”
“당신은… 정말 무서운 힘을 가졌군요.”
“그런 힘을 가진 존재를 부르고 싶었던 것 아니었나?”
“용황제를 죽이고 제국을 전복시켜 줄 힘을 원했죠.”
“거짓말은 아니군.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그렇게 바라고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네가 당장 바란 것은 지금의 위기를 모면하는 거였지.”
“벌써부터 후회되네요. 설마 성좌의 화신이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힘을 가졌을 줄은 몰랐으니까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제 무지를 원망할 수밖에…….”
한숨을 쉰 엘리가 말했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를 탈출할 수 있게 해주신다면 약속대로 별의 돌을 드리겠어요.”
“그러지. 시간 여유가 좀 있으니 그동안 짐을 챙겨둬.”
“짐도 가져갈 수 있나요?”
“그 정도는 내가 서비스해 주지. 하지만 어디로 갈지는 당신들이 정해서 알려줘야 해. 나는 이 세계에 온 지 한 시간도 안 된 몸이니까.”
“알겠어요. 일단 회의를 해보고 결정해서 말씀드리지요.”
곧 저항군은 탈출을 준비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용황제는 명상의 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주변을 두 개의 빛덩어리가 서서히 회전하면서 강력한 힘을 발한다.
그 빛덩어리들은 별의 돌이라 불리는, 아마도 이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권능이 담겼을 보물이었다.
‘힘을……!’
인간의 눈이 담을 수 있는 세계는 작다. 작은 존재인 인간은 평생 동안 세계의 진정한 크기를 알지 못하고, 자신이 보고 들은 작은 세계만을 알아가다가 죽는다.
‘인류를 구제할 힘을!’
그러나 용황제는 거대한 세계를 보고 있었다.
신화가 멸망의 흔적만을 남긴 이 시대, 인류의 인식이 미치는 곳은 팔라시아 대륙과 오디언 군도뿐이었다.
바다를 지배하는 괴물들 때문에 먼 바다를 넘는 해로가 막혔기에 인류의 항해술 발달에는 한계가 있었다.
오직 용황제만이 저 수평선 너머에 있는 세계의 나머지 부분을 알고 있었다.
팔라시아 대륙과 마찬가지로 문명을 꽃피운 인류의 존재가 있는 4개의 대륙을.
‘저 하늘 너머…….’
그리고 용황제의 인지 능력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이 시대의 학자들은 이미 세계가 평평하지 않고 둥근 구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학문적 성과였다. 이 세계의 전체상을 직접 본 자는 아무도 없었다.
용황제를 제외한다면 아무도.
‘별에 잠든 재앙에 대비할 힘을!’
그의 눈은 푸른 하늘 너머, 끝없는 어둠이 지배하는 우주를 보고 있었다.
광기의 근원이라 불리는 달, 그리고 그보다 열 배 이상 멀리 떨어진 죽음의 별…….
광활한 어둠 너머에는 언젠가 인류를 멸망시킬 재앙이 잠들어 있었다.
‘두 개로는 부족하다.’
용황제의 수중에 있는 별의 돌은 두 개.
광휘와 빙설.
용황제는 아직 이 둘의 힘을 완전히 끌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명실상부한 인류 최강의 존재,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신적인 존재였다.
‘일곱 개가 모이지 않으면, 인류는 멸망하고 말 것이다.’
용황제는 미래의 멸망을 확신했다.
그렇기에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별의 돌 일곱 개를 모을 생각이었다.
“무슨 일이지?”
문득 그가 눈을 떴다.
그의 은총을 받은 존재, 드라칸과 달리 그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딱히 용황제가 인간의 모습을 사랑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가 근본적으로 드라칸보다 격이 높은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모습도 보존된 것뿐.
“죄송합니다.”
명상의 방에 들어온 신하가 고개를 조아렸다.
“긴급히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하라.”
“토벌군이 실패했습니다.”
용황제는 그 보고를 듣고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차분하게 물었을 뿐이었다.
“분명 저항군을 토벌하고도 남을 충분한 병력이었을 터.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휘관의 무능을 단죄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음을 감안하고 용서해야 할 것인가?
용황제는 그 판단을 내릴 근거를 요구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존재가 출현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대마법사로 추정됩니다.”
“대마법사?”
용황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대마법사.
그것은 고대의 힘을 손에 넣어 신의 영역에 발을 들인 마법사를 말한다.
공식적으로 이 세계에는 네 명의 대마법사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제국 소속이었으며, 황제의 은총을 받아 인간을 초월한 드라칸이었다.
대마법사는 드라칸이 아니고서는 도달 불가능한 경지, 그것이 마학계에 통용되는 정설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제국에 속하지 않은, 심지어 드라칸도 아닌 인간 대마법사가 나타났단 말인가?
“대마법사가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힘의 소유자였다고 합니다.”
신하는 공손히 보고서를 용황제에 올렸다. 보고서를 받아서 읽어본 용황제가 중얼거렸다.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겠군.”
이 세계에 존재하는 별의 돌 3개 중 마지막 하나를 손에 넣을 기회가 날아가 버렸다.
용황제는 이 문제를 좌시할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