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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세계의 귀환자-210화 (210/225)

외전 2

용우가 가리킨 것은, 엘리가 쥐고 있는 별의 돌이었다.

엘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하지만 당신이 정말 제가 말한 것을 이뤄줄 수 있는 존재인지 확신하기 전에는 줄 수 없어요.”

“후불이라 이거군. 좋아. 나중에 말 바꾸지만 마라.”

용우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물었다.

“의뢰 내용을 정리하지. 넌 제국군의 격퇴와 저항군의 탈출, 둘 중 어느 쪽을 우선해 주길 바라지?”

“그야… 후자지요.”

“네 의뢰는 어디까지나 이 국면을 타파해 주는 것에 국한된다. 의뢰를 확대해석해서 내게 추가로 뭔가 더 부탁할 생각은 하지 마.”

엘리는 그 말에 흠칫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마우디가 반발했다.

“젠장!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절박한 상황에 처했다고 너무 후려치는 거 아니야?”

“후려치다니?”

“별의 돌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가졌는지 아니까 달라고 하는 거잖아. 이 세상에 단 일곱 개밖에 없는 보물이야! 용황제도 혈안이 되어 손에 넣으려고 하는 물건이라고! 그걸 대가로 받으면서 고작 이 전투 한 번만 싸워주겠다고?”

“일곱 개? 아니, 그렇게 많지는 않아. 이 별에는 세 개밖에 없는데?”

“응?”

용우의 반문에 마우디가 눈을 크게 떴다.

“일곱 성좌의 힘을 가진 물건이라 일곱 개가 있다고 생각했나 보군. 근데 이 별에는 새벽, 광휘, 빙설 세 개밖에 없어.”

“…그걸 어떻게 아는데?”

“내가 너희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부르려고 했던 성좌의 화신이니까.”

용우가 피식 웃었다.

“어쨌든 모든 것의 가치는 상황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지.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다 끝장인 너희들을 살려서 다음 기회를 주겠다는데 그 이상을 바라면 날강도 심보 아닐까?”

“크윽……!”

마우디가 입술을 깨물었다.

엘리가 목숨을 걸고 만들어낸 기회다. 그래서 어떻게든 협상을 해보려고 했지만 상대는 그럴 여지를 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쪽 이야기만 듣고 판단할 수는 없지.”

“무슨 뜻이죠?”

엘리가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엘리, 당신이 말하는 게 진심이라는 건 알았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돼.”

“제가 거짓말을 했다는 건가요?”

“아니, 당신은 진심을 말했지. 하지만 당신이 알고 있는 게 진실인지는 알 수 없거든. 당신 의뢰는 받아들이겠지만 제국을 어떻게 할지는 그들과 이야기를 해보고 결정할 거야.”

“그런…….”

“자, 그럼 일단 의뢰를 수행해 볼까?”

용우가 천장을 바라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안티 텔레포트 필드? 아니, 좀 다르군. 오버마인드의 텔레포트 차단과 비슷한가?’

텔레포트가 차단된 것을 안 용우가 허공에 손을 뻗었다.

-오버 커넥트!

허공에 새카만 구멍이 뻥 뚫렸다.

엘리와 마우디가 놀라서 뒤로 물러나는데, 용우가 그 안으로 뛰어들어서 사라졌다.

“뭐, 뭐야?”

“공간이동? 하지만 결계가 펼쳐져 있는데?”

놀라는 두 사람에게 용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상에 나왔다. 지금부터 상황을 중계해 주지.>

그리고 마치 하늘 높은 곳에 떠서 지상을 굽어보는 것 같은 영상이 두 사람의 뇌리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 * *

용우가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그곳은 완전히 전쟁터 한복판이었다.

콰쾅! 콰과과광……!

하늘에서 커다란 불덩어리가 떨어져서 폭발했다.

물론 그것은 자연현상이 아니라 마력을 지닌 자가 가한 공격이었다.

용우가 주변을 둘러보자 통일된 검푸른 제복과 규격화된 무장을 갖춘 병사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이 싸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느 쪽이 제국군인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완전히 압살당하기 직전이군.’

용우가 혀를 찼다.

저항군의 아지트는 황야 한복판에 있는 유적이었다. 오래된 석재 건물 주변에 건물을 짓다 만 것 같은 벽들과 기둥들이 서 있었는데, 저항군은 그것을 방패삼아서 제국군과 맞서고 있었다.

하지만 전세는 완전히 제국군이 압도하는 중이었다.

1,500명 정도의 병력으로 구성된 제국군은 놀랍게도 병사 모두가 마력이 깃든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병과는 창병 혹은 궁병이었는데, 창병도 창에 에너지탄을 쏘아내는 기능이 있어서 중거리 화력전을 담당했다.

콰과과과광!

게다가 후방에 자리한 자들이 쏘아내는 불덩어리가 너무나 강력했다.

저항군은 창병과 궁병이 쏘는 공격 때문에 방패막이로 삼은 곳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있다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리는 불덩어리의 폭발에 휩싸여 죽어가고 있었다.

“이야아아아아아!”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저항군 하나가 달려 나왔다.

‘호오.’

용우가 눈을 빛냈다.

달려 나온 저항군은 검사였다. 그가 나오자마자 제국군의 십자포화가 쏟아졌는데, 그는 빛을 발하는 검으로 날아드는 에너지탄과 화살을 모조리 쳐내면서 제국군 사이로 뛰어들었다.

푸화아아아악!

초인적인 신체 능력을 지닌 저항군 검사가 제국군에게 도달하기까지는 채 3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검을 휘두르는 족족 제국 병사들이 피를 흩뿌리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그는 검만 쓰는 게 아니라 마력을 제어해서 스펠 비슷한 힘을 쓰고 있었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충격파가 제국 병사들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접근을 막아냈다.

투캉!

하지만 그의 활약은 금세 가로막히고 말았다.

제국군 사이에서 이질적인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3미터의 거구에 용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 저항군 검사를 가로막았다.

“드라칸!”

용황제의 축복을 받은 존재, 드라칸.

검푸른 비늘 위로 검푸른 제복을 입은 드라칸이 그 거구에 맞는 거대한 검을 휘둘렀다.

드라칸은 3미터의 거구이기에 느릴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구의 격투기 선수로 치면 경량급, 그중에서도 톱 스피드를 자랑하는 선수보다도 두 배는 더 빠르다.

후우우우우!

저항군 검사는 아슬아슬하게 그 검을 피했다.

쾅!

하지만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드라칸의 다음 검격은 피하지 못했다. 검을 세워서 공격을 막은 저항군 검사가 그대로 튕겨 나갔다.

“크억……!”

가까스로 넘어지지 않고 착지한 저항군 검사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런 그에게 드라칸이 성큼성큼 다가오며 말했다.

“저항군에도 제법 기개 있는 자가 있군. 네 목은 내가 거둬주마.”

“용황제의 사냥개 주제에……!”

저항군 검사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하지만 일격을 받아낸 것만으로도 그의 육체는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다.

그때였다.

“괴물치고는 괜찮은 디자인이군.”

둘 사이에 용우가 사뿐하게 내려섰다.

드라칸이 흠칫했다.

“넌 뭐지?”

지금의 용우는 셔츠 위에 재킷을 입고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이 세계의 존재가 보기에는 너무나 이질적인 복장이었다.

게다가 용우의 이목구비 또한 이질적이기는 마찬가지다. 회색 피부를 가진 이곳 인간들의 이목구비는 동양인과는 많이 달랐다.

용우는 드라칸의 물음을 무시하고 중얼거렸다.

“성좌의 힘과 이어져 있는 걸로 봐서는 양산형 셀레스티얼 같은 건가? 이런 놈들을 계속 찍어냈다면 상당히 가격대성능비가 훌륭한걸.”

드라칸의 마력은 6등급 몬스터 수준, 그중에서도 상급이었다.

그에 비해 저항군 검사의 마력은 4등급 몬스터 수준에 불과하다. 지구인 각성자를 기준으로 보면 최상급이었지만 드라칸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게다가 이게 저항군 중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수준이고.’

저항군 생존자 중에 이 검사보다 마력이 강한 자는 엘리와, 그녀의 호위인 마우디뿐이었다.

그리고 이들 3명을 포함, 허공장 보유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러니 제국군에게 압살당하는 것도 당연한 결과였다.

“건방진 놈.”

드라칸이 분노를 드러냈다. 5미터 정도의 거리를 한 걸음에 좁히면서 검을 휘둘렀다.

턱.

하지만 인체를 산산조각 내고도 남을 그 검격은 아무것도 파괴하지 못하고 허공에 멈췄다.

용우가 아무렇지도 않게 맨손으로 그 칼날을 잡아버렸기 때문이다.

콰직!

그리고 약간 힘을 쓰자 검이 그대로 두 동강 났다.

“드라칸은 너 말고도 많으니까, 좀 현실 파악이 빠른 놈을 찾아서 대화하는 게 낫겠다.”

용우가 경악한 드라칸의 복부를 툭 건드렸다.

퍼엉!

동작은 가벼웠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용우의 손이 닿자 드라칸이 쏘아진 포탄처럼 날아가서 땅에 처박혔다.

“뭐, 뭐야?”

그 광경을 본 제국군은 얼이 빠져 버렸다. 지금 자신이 뭘 본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리모트 힐!

용우의 머리에 후광 같은 빛의 파문이 발생하면서 저항군 검사의 몸이 급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가 당황해서 물었다.

“다,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임시로 엘리라는 애한테 고용된 몸이야. 당신들을 최대한 살려서 탈출시켜 주기로 했으니까 일단 여기로 들어가. 허튼 짓 하지 말고 그냥 거기에 있으면 내가 상황을 해결해 주지.”

용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워프 게이트를 열었다. 허공에 열린 시커먼 구멍을 멍하니 바라보던 저항군 검사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안으로 뛰어들어 사라졌다.

“자, 그럼…….”

용우가 허공을 바라보자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퍼버버버버벙!

제국군이 쏘아낸 불덩어리들이 모조리 폭발해서 사라진 것이다.

놀란 제국군은 잠시 전술 행동을 멈추고 말았다.

그사이 용우는 살아남은 저항군 병사들에게로 향했다.

<엘리, 보고 있지?>

<보, 보고 있어요.>

엘리는 자신이 보는 것을 믿을 수 없는지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하나하나 붙잡고 설명하고 설득할 시간이 없어. 너희 편은 다 그쪽으로 보낼 테니까 설명은 네가 해라.>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곳으로 모여서 뭘 어떻게 하죠? 빠져나갈 길이 없는데요.>

<제국군을 물러나게 만든 다음 너희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주지. 그럼 되잖아?>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듯한 용우의 물음에 엘리는 할 말을 잃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은데, 지금 용우가 보여주는 능력은 그런 일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당신 뭐야?”

“으악!”

“무슨 짓을……!”

그리고 연속으로 저항군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용우가 총알처럼 다가가서 그들을 워프 게이트에 던져 버렸기 때문이다.

“37명. 생존자는 다 회수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훨씬 많은 숫자가 있었던 것 같지만, 지금까지 살아 있던 것은 그들뿐이었다.

<아직 제국군이 유적 안으로 진입하지는 않았군. 유적 안에 있는 너희 쪽 사람들은 알아서 한곳으로 모아두도록 해. 난 일단 제국군을 물러나게 만들고 나서 가겠다.>

그렇게 말한 용우가 제국군을 향해 다가갔다.

“어이, 거기 제국군 지휘관 나와봐. 이야기 좀 하자.”

느긋하게 손을 흔들며 말하는 그의 모습은 제국군에게는 황당함 그 자체였다.

당연하지만 토벌군으로서 이 자리에 온 제국군 입장에서는 용우와 대화를 나눌 이유가 없다.

“쏴라!”

전열을 갖춘 창병과 궁병이 용우를 향해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얼어붙은 듯 굳어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날아가던 에너지탄과 화살이 모조리 허공의 한 지점에서 정지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야기 좀 하자고 했는데 귀가… 아니, 뇌가 막혔냐?”

용우는 심드렁하게 말하며 멈춰 버린 그것들 사이를 빠져나와 계속 걸었다.

후두두둑…….

파직, 파지직…….

운동에너지를 잃은 화살이 떨어져 내리고, 에너지탄이 작은 스파크만을 남기며 흩어져 갔다.

“내가 까라면 까야 되는 군대의 입장을 이해하기 때문에 아주 관대하게 대해주려고 노력한다는 점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는데.”

“이놈……!”

이해할 수 없는 사태 앞에서 얼어붙은 병사들 사이로 다섯 명의 드라칸이 달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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