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209화 (209/225)

외전 1

지구를 침략했던 외계 존재, 종말의 군단은 영원을 꿈꾸고 있었다.

이계의 일곱 성좌로부터 비롯된 위대한 권능의 산물들은 그 영원을 세우기 위한 기둥이었다.

성좌의 무기 일곱 개.

군주 코어 일곱 개.

이 보물들은 엔트로피에 역행하는 기적의 결정체들이었다.

단위 시간당 생산량에는 한계가 있지만, 아무런 연료 없이도 끊임없이 에너지를 생산한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상대적이지만 무한한 영구동력원이었다.

그 근본이 되는 이계의 일곱 성좌는 신화였다.

종말의 군단과 초월권족 둘 모두가 공유하는, 세계를 초월하는 신화.

그 신화의 근원은 그들에게 있어서도 ‘다른 세계’였다.

그들의 영적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가 파멸할 때, 그 세계의 중심에 있던 일곱 성좌가 그들을 가호하는 빛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런데 이 신화를 공유하는 것은 종말의 군단과 초월권족만이 아니었다.

‘들립니까?’

왕의 섬에서 와 있던 용우는 어느 날, 먼 곳으로부터의 목소리를 들었다.

‘위대한 성좌의 화신이여, 제 목소리가 들립니까?’

그것은 용우로서는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 * *

황제는 위대한 존재였다.

태곳적 혼돈으로부터 세상을 지켜 안주의 땅을 만들어낸 자들, 용의 피를 각성한 자.

선왕의 열여섯째로 태어났으면서도 형제들을 모조리 제압하고 제위를 차지한 그의 치세는 10년째 세상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왕이라 불렸던 그는 이제 더 이상 그렇게 불리지 않았다.

용황제.

어느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부하들 또한 그러했다.

용황제의 축복을 받아 인간을 초월한 드라칸.

새로운 세상의 유일한 지배계급으로 인정받은 그들은 압도적인 힘으로 세상을 짓밟고, 인간을 가축처럼 지배하고 있었다.

* * *

용황제가 지배하는 나라, 벨다드 제국은 대륙의 절반에 달하는 땅을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원한다면 국토 바깥까지도 얼마든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황실에 거역하는 반란 세력이 너희 나라로 숨어들었다. 그러니 우리가 너희 영토에 들어가서 군사 활동 좀 하겠다.’

그런 말도 안 되는 통보를 일방적으로 한 후에 군대가 국경을 넘어와도 타국이 반항하지 못했다.

반항한 나라는 전부 지도상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실상 벨다드 제국은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정복 전쟁을 계속해서 대륙 전체를 지배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 * *

엘리는 자신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평범한 아낙인 줄 알았던 어머니가 사실은 용황제와 같은 혈통을 이어받은 벨다드 황족인 것을 알았을 때부터일까?

아니면 그녀가 자신에게 넌 내 친딸이 아니라고 말하며 죽음이 예정된 곳으로 뛰어들었을 때부터일까?

어쨌든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특별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고도의 정신감응 능력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피하고, 누구든 속여 넘길 수 있었다.

꿈의 세계를 몽유하며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아낼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어느 날, 꿈의 세계에서 오랜 시간 동안 역사 속에서 잊혔던 보물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별의 돌.

이 세계의 창세신화에도 기록된 이계의 일곱 성좌, 그 무한한 힘이 담겼다고 일컬어지는 돌.

그중에서 새벽의 힘이 담긴 돌을 손에 넣은 엘리는, 열여덟 살이 되는 해에는 용황제에게 반발하는 저항군의 중심 간부가 되어 있었다.

* * *

쿠과광… 콰광……!

건물 밖에서 폭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금발의 소녀, 엘리는 저항군의 비밀 아지트 지하 깊숙한 곳에 있었다. 그녀는 지금 필사적으로 하나의 마법 의식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다.

“엘리! 사방이 다 막혔어!”

그때 한 사람이 엘리가 있는 곳으로 뛰어들어 왔다.

키가 큰 여자였다. 저항군의 간부이며, 엘리의 호위병이기도 한 마우디가 절망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엘리는 침착하게 물었다.

“공간이동은?”

“막혔어. 결계를 파괴하러 간 사람들은 전원 연락이 끊겼고.”

“역시…….”

엘리가 나직이 탄식했다.

제국의 토벌대는 여기서 저항군의 수뇌부를 말살시키기 위해 단단히 준비하고 왔다.

인간을 초월하는 힘을 가진 용인 다수가 투입되었고, 그들의 지휘를 받는 상급 마법사가 즐비했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이미 모든 탈출로가 봉쇄된 후였다. 강력한 공간이동 봉쇄 결계가 최후의 희망까지 꺾어버렸다.

마우디가 말했다.

“너라도 도망쳐. 결계가 있다고 해도 너 혼자라면 몸을 뺄 수 있을 거야.”

“그럴 수는 없어.”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거야?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용황제에게 별의 돌을 빼앗기면 모든 게 끝장이야. 너라도 도망쳐서 희망을 이어야…….”

“아니, 마우디. 그런 뜻이 아냐. 나도 도망칠 수 없어.”

“뭐?”

그제야 엘리의 말에 담긴 심상치 않은 뉘앙스를 감지한 마우디가 흠칫했다.

엘리가 말했다.

“용황제가 직접 힘을 쓰고 있어. 내가 꿈의 세계로 도망치거나 아니면 새벽의 힘을 써서 달아나면 그 순간 용황제에게 포착될 거야.”

“그럴 리가. 아무리 용황제라도…….”

“이제야 알겠어. 그도 별의 돌을 가졌어. 그것도 새벽의 힘을 추적할 수 있는 유일한 힘, 광휘의 힘을…….”

“…….”

마우디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엘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하던 작업을 계속했다. 마우디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뭘 하고 있는 거야?”

“최후의 발악.”

마우디가 어리둥절해하자 엘리가 석판 위에 닭의 피로 신성한 고대문자를 쓰며 덧붙였다.

“성좌의 화신을 부를 거야.”

“그게 뭔데?”

“별의 돌에 담긴 힘의 근본이 되는 이계의 일곱 성좌, 그 힘을 가진 존재야. 전설에 따르면 그 힘은 대지를 부수고 하늘을 떨쳐 울릴 정도라고 해.”

“그런 게 있었어? 그럼 왜 여태까지 안 부른 거야?”

“그만한 권능의 소유자를 불러서 우리가 바라는 일을 시키려면 그만한 대가가 필요하니까.”

“무슨 대가?”

“내 목숨.”

비장한 표정을 지은 엘리의 대답에 마우디는 숨이 턱 막히는 감각을 느꼈다.

“말도 안 돼! 인신 공양을 하겠다는 거야?”

“인신 공양이라니 듣기 나쁘네. 숭고한 희생이라고 해줘.”

“때려치워! 엘리, 네가 목숨을 바쳐서 우리가 살아남아 봤자 뭐 해?”

“여태까지 많이들 그랬잖아.”

엘리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이제는 내 차례일 뿐이야.”

“엘리!”

“아무것도 못 해보고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용황제에게 최소한 자기가 짓밟으려고 하는 것들이, 밟히면 꿈틀거릴 줄 안다는 건 가르쳐 줘야지.”

엘리는 의식 준비를 마치고 일어나서 손을 툭툭 틀었다. 그리고 마우디를 보며 씩 웃었다.

“지금까지 고마웠어. 뒷일을 부탁해, 마우디.”

“뒷일이라니…….”

“성좌의 화신이 어떤 존재일지는 몰라. 하지만 최소한 우리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전달해 줄 사람은 있어야 할 거야. 부탁할게.”

“엘리…….”

마우디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엘리는 언제나처럼 씩씩하게 웃으며, 자신이 그린 마법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녀의 손에 들린, 어린애 주먹만 한 회색 돌이 영롱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위대한 성좌의 화신을 청합니다.”

엘리는 꿈의 세계에서 알아낸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마법이 발동하자 그녀가 눈을 감은 채로 물었다.

“들립니까?”

엘리는 자신의 의식이 아득히 먼 곳까지 뻗어나간 것을 느꼈다.

그것은 하늘 저편, 무수한 별들이 흩어져 있는 우주보다도 더 먼 것 같은 감각이었다.

“위대한 성좌의 화신이여, 제 목소리가 들립니까?”

엘리는 망망대해 속에서 혼자 외치는 것 같은 막막함을 느꼈다.

의식은 아주 먼 곳까지 날아갔는데 자신의 목소리가 어디까지 닿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혼자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은 공허함이 밀려왔다.

“부디 이 미욱한 존재의 부름에 응해주십시오. 위대한…….”

“별로 위대한 존재는 아니야.”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순간 엘리는 헉 하고 헛숨을 토하며 눈을 떴다.

“그리고 성좌의 화신도 적합한 호칭은 아니지. 그건 이미 사라졌으니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질적인 언어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생소한 발음의 나열임에도 엘리는 자신이 그 말뜻을 똑똑히 알아듣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그리고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

“정신감응…….”

“텔레파시를 그렇게 부르나 보군.”

엘리는 어느새 자신의 옆에 서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이질적인 외모의 남자였다. 이목구비도 그랬지만 복장도 이상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당신은… 성좌의 화신인가요?”

엘리의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존재는 더 이상 없어. 적어도 우리 우주에는…….”

“그럼 당신은 누구죠?”

엘리는 경계심을 보이며 물었다. 그녀의 옆으로 다가온 마우디가 조용히 검을 꺼내 들었다.

남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가 부른 존재에 가장 근접한 두 사람 중에 하나.”

“무슨 뜻이죠?”

“너와 거래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지.”

남자가 손가락을 한번 까딱거리자 구석에 있던 의자가 날아와서 그의 옆에 놓여졌다. 거기에 앉은 남자가 물었다.

“말해봐. 날 부른 이유가 뭐지?”

* * *

서용우는 눈앞의 이계인을 신기해하며 바라보았다.

그도 이계 진입은 처음이었다.

아니, 어비스의 경험을 이계 진입이라고 하면 두 번째일까?

하지만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이미 수도 없이 물질세계와 정보세계를 넘나들었고, 이계 진입 과정도 비슷했으니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따라서 다른 세계로 넘어와 보니, 인간과 상당히 흡사한 지성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과의 차이점이라면 피부는 옅은 회색을 띠고 있고, 이마에는 은은한 빛을 발하는 보석이 박혀 있다는 것 정도.

눈앞에 있는 두 여자는 모두 마력을 지녔는데, 이마의 보석이 뇌를 도와서 마력을 컨트롤하는 보조 장치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았다.

‘유사인간계로군.’

그것은 군단이 관측한 세계 중에서 지구 인류와 비슷한 종족이 문명을 일구고 사는 세계를 말한다.

용우가 종말의 군단을 끝장낸 이후로 만난 외계 지성체는 하나같이 이질적인 존재들이었다.

그에 비하면 초월권족이나 종말의 군단은 상당히 인간적인 자들이다. 종말의 군단은 구성원들이 정보세계의 존재인 언데드였지만, 그들도 물질세계의 존재일 때는 인간과 비슷한 생명체였다.

용우는 그런 인간을 닮은 지성체의 세계를 유사인간계라는 이름의 카테고리로 분류해 놓고 있었다.

“그러니까 날 부른 이유는 이 국면을 타개할 용병으로 쓰고 싶다는 건가?”

“…그렇게 되겠지요.”

엘리의 설명을 다 들은 용우가 묻자, 그녀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나타나서 당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대가로 제 목숨을 드리겠습니다. 부디 제국군을 격퇴하여 저항군에게 길을 열어주세요.”

“네 목숨? 그런 건 필요 없어.”

“네?”

용우가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엘리가 당황했다.

“당신이 왜 그런 대가를 주겠다고 하는지는 짐작이 가는군.”

용우는 어비스에서 수도 없이 봤던 성좌의 아바타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난 인신 공양 따윈 받지 않아. 그러니 대가로는 다른 걸 받기로 하지.”

“뭘 드리면 될까요?”

“그걸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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