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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인류가 가장 처음으로 도달한 지구 밖 천체.
대기권을 돌파해서 달에 도달하는 것으로 인류의 세계관은 넓어졌다.
우주를 그저 관측의 대상이 아니라 직접 날아가서 발 디딜 수 있는 세계로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20세기가 끝나고, 21세기가 온 지 30년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인류는 우주의 물리적 크기를 감당하기 버거웠다.
달은 인류가 도달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유일한 천제였다.
게이트 재해와 싸우느라 정신없던 인류는 2031년까지도 달 외의 천체에는 유인 탐사선을 보내지 못한 것이다.
그 달의 대지를 한 사람이 걷고 있었다.
누가 봤으면 영화 속 한 장면이라고 생각했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고밖에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대기가 없는 달의 지표면을, 우주복조차 입지 않은 검은 단발머리 소녀가 걷고 있는 것은 그만큼 비현실적이었다.
지구 중력의 6분의 1 중력이 적용되는 대지를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던 단발머리 소녀, 이비연은 문득 고개를 들어 지구를 바라보았다.
“왜요?”
달 위를 걷다가 지구를 보며 하는 말 치고는 너무나 뜬금없었다.
<일은 잘 되어가요?>
지구와 달의 거리는 평균적으로 38만 킬로미터를 넘는다.
물리적 거리가 너무 멀어서 전파통신으로는 실시간 통신이 불가능하고 약간씩 딜레이가 발생한다.
하지만 텔레파시 통신에는 그런 문제가 없었다.
“공사는 여기도, 화성도 잘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화성 쪽에는 두 시간쯤 후에 폭풍이 불 것 같아서 막으러 가야 할 것 같고.”
이비연의 눈이 달 주변을 돌고 있는 인공위성으로 향했다.
달 궤도를 관측하고 통신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띄운 인공위성 중 하나였다.
뿐만 아니다.
달 표면에는 무인 로봇들에 의해서 대규모 건설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인류가 꿈꾸던 달 기지 건설이었다.
인류는 달에 유인 탐사선을 보낼 수는 있어도 달 기지 건설을 할 수는 없었다.
만약 인류의 모든 역량을 동원했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까지 기자재를 쏘아 보내고, 그곳에서 건설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비용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팀 섀도우리스에게 의뢰하면 지구와 달을 직접적으로 잇는 워프 게이트를 열 수 있었으니까.
당연히 그들에게 어마어마한 대가를 주어야 했지만, 그것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것에 비하면 저렴한 비용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5개월 전부터 인류는 달 기지는 물론이고 화성 기지 건설까지 동시에 추진 중이었다.
이비연은 용우와 교대로 달과 화성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작업을 체크하고, 공사에 영향을 끼칠 현상이 일어날 경우 막아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근데 무슨 일이에요, 은혜 씨?”
텔레파시로 연락해온 것은 김은혜였다.
김은혜는 여전히 한국 이재민 구호사업을 총괄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 정세가 빠르게 안정되면서 구호사업의 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되어갔기에 그녀의 업무량도 줄었다.
그런 가운데 각국에서 팀 섀도우리스 멤버들의 진정한 힘을 필요로 하는 일이 생기자 다시금 매니지먼트 역할을 맡은 것이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일 말인데요. 미국이 예산안을 통과시켰다고 해요.>
“지난번이라면… 음, 스페이스 데브리 청소였던가요?”
<아뇨. 그건 한국과 미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하고도 협의 중이라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고요.>
인류는 우주사업을 시작한 이래 한 가지 심각한 문제를 만들었다.
스페이스 데브리, 즉 우주 쓰레기 문제였다.
인류가 우주사업을 벌이느라 지구에서 내보낸, 더 이상 쓸모없어져서 버려진 물질들.
우주에 버렸다고 끝이 아니다. 그것들은 지구 주변을 영원히 멈추지 않고 돌고 있었고, 인류의 우주 진출에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며칠 전 차준혁이 막아낸, 추락한 러시아의 인공위성 역시 파괴된 원인은 우주쓰레기와의 충돌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우주쓰레기가 증식하고 있고, 이대로 가면 인류는 우주쓰레기에 의해 지구 안에 갇혀 버릴 수도 있다는 예상까지 나오는 판이라 이것을 해결할 방법이 필요했다.
문제는 현재 인류의 기술로는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팀 섀도우리스라면 이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우주사업을 꿈꾸는 몇몇 국가가 모여서 이 문제에 대해서 협의 중이니 늦어도 내년쯤에는 행동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우주망원경이요.>
“아, 그거…….”
지구 인류는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우주망원경을 설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우주에 배치된 우주망원경들에게는 큰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우주왕복선 시대의 유산인 허블망원경을 제외하면 유지 보수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도 팀 섀도우리스를 거치면 해결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미국 항공우주국, 즉 NASA는 완전히 신이 났다.
달 기지와 화성 기지 건설 계획이 우선적으로 통과되었지만 그것 말고도 수많은 계획을 입안했다.
우주망원경 설치도 그중 하나였다.
‘현실적인 문제로 사이즈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기존의 우주망원경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운 우주망원경을 제작해서 설치하자. 허블망원경 궤도에도 설치하고, 라그랑주 포인트에도 설치하고, 아예 화성 기지하고 연동되게 화성 궤도에도 하나 띄우고, 명왕성… 아니 에리스 궤도에도 하나 띄우자!’
공돌이의 망상이 폭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팀 섀도우리스의 몸값도 워낙 거금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예산 문제로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우주사업에 있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예산안을 하나하나 통과시키고 있었고, 이제 우주망원경 계획의 차례가 온 것이다.
<상의해 본 결과 화성 궤도에 설치해서 화성 기지하고 연동하겠다고 하더군요. 통신 중계점 역할을 할 인공위성도 몇 개 추가하고…….>
“돈이 많아서 주체가 안 되나 보네요.”
<우주 개발이 단번에 반세기 이상 도약하는 거니까 그 정도 투자는 충분히 할 만하다고 하더군요. 아, 그러고 보니 캡틴은 뭘 하고 있는 거죠? 연락이 안 되는데.>
원래 김은혜는 이비연이 아니라 서용우에게 먼저 보고를 올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용우가 준 텔레파시 회선으로도 연락이 안 되어서 이비연에게 연락한 것이다.
이비연은 지구에서 시선을 떼며 말했다.
“오빠는 지금 에리스 궤도보다도 더 멀리 나가 있어요.”
<에리스라면… 설마 카이퍼 벨트 밖으로 나갔다고요?>
“네.”
<그럼 사실상 태양계 밖이라는 거잖아요?>
“맞아요.”
김은혜가 혀를 내둘렀다.
에리스는 태양계의 끝에 자리한 왜행성. 명왕성보다도 훨씬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였다.
지금도 달 표면을 지구에서와 다름없는 캐주얼한 복장으로 돌아다니는 사람과 텔레파시 통신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인간이 단독으로 태양계 바깥으로 나갔다는 소리를 들으니 한층 더 현실감이 없어진다.
<거기서는 텔레파시 통신이 안 되는 건가요?>
“텔레파시가 안 되는 건 지금 오빠가 긴급 통신 말고는 다 막아놔서 그래요.”
<설마 또?>
“바로 그 설마죠.”
이비연의 눈이 먼 곳을 향했다.
광활한 진공의 어둠 너머, 태양계 바깥에서 벌어지는 전투가 그녀의 눈에 비춰지고 있었다.
* * *
정보세계의 존재 ‘시청자’는 서용우에게 경고했다.
오버마인드와 자신들의 존재가 다른 무수한 외계 존재들의 눈이 지구로 향하는 것을 막고 있었다고.
자신들이 사라지는 순간, 무수한 외계 존재들이 탐욕과 악의로 지구를 노릴 것이라고.
그 말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허세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늘 나쁜 예감은 들어맞게 마련이지.”
용우는 우주공간에서 투덜거렸다.
그는 태양에서 가장 먼 태양계 왜행성, 에리스의 궤도 너머 130억 킬로미터 지점에 있었다.
오버마인드와 시청자를 절멸시킨 후, 용우와 이비연은 구세록의 관측 및 감시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태양계 전역에 외계 존재가 침입할 경우 즉시 추적해서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구세록의 권능과 왕의 권능을 더해서 조정하자 오버마인드처럼 지구를 관측하고 텔레포트로 넘어와도, 시청자처럼 정보세계에서 물질세계로 넘어와도 알아차릴 수 있는 체제를 완성할 수 있었다.
동시에 두 사람은 태양계 바깥에서 접근해 오는 존재에 대한 관측 시스템도 완성했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뭐지? 내 머릿속에… 뭘 한 거지?>
태양계 바깥에서 날아온 외계 존재가 혼란스러워하며 물었다.
“텔레파시가 통한다니 다행이군.”
외계 존재는 텔레파시를 쓸 줄 몰랐다. 하지만 용우가 텔레파시를 연결하자 대화가 가능했다.
그들은 거대한 세력이었다.
지금 용우와 대치하고 있는 무리의 머릿수는 무려 1,077만 6,711명.
그들의 외형은 금속 거인이었다.
크기는 천차만별이었다. 대다수는 키가 20미터에서 30미터 정도. 하지만 50미터 이상인 놈도 즐비했고 가장 큰 놈은 1킬로미터가 넘었다. 그리고 거대할수록 강력한 마력을 품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은 유기 생명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이지만 우주 저편에서 날아온, 완전히 이질적인 존재라는 점을 감안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인류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누가 봐도 ‘거인’이라는 호칭을 떠올리게 되는, 인류를 닮은 실루엣을 가진 것이다.
‘이놈들은 거인형인데도 오버마인드보다 더 생명체라는 느낌이 옅군.’
용우는 별로 어렵지 않게 그들의 존재를 받아들였다.
종말의 군단의 언데드, 제1세계의 초월권족, 제2세계의 암석인, 오버마인드, 시청자까지…….
그동안 용우가 본 외계 존재만도 다섯이다. 우주를 날아다니는 금속 거인 군단 정도는 별로 놀라울 것도 없었다.
<너는 뭐냐? 무슨 짓을 한 거지?>
“그건 내가 물을 말이다. 침입자들.”
<침입자? 너는 혹시 저 항성계의 원주민인가?>
“그래.”
용우의 대답에 금속거인들이 술렁였다.
텔레파시를 연결해놓고 있었기에 용우는 그들이 동요하는 이유가 적나라하게 읽을 수 있었다.
금속 거인들은 지구 인류가 우주로 나왔다는 사실 자체에 놀라고 있었다. 그들이 관측한 바로는 우주에 나올 수 없는, 행성의 중력에 속박된 하찮은 존재들이었으니까.
용우는 그들의 대화 방식을 알 수 있었다.
‘접촉을 통해서 정보를 전달하는군. 특이한데? 몸을 이루고 있는 금속에 그런 기능이 들어있는 건가? 아니면 코어의 마력에서 비롯되는 힘인가?’
용우가 보기에 그들은 지금까지 본 다른 종족에 비해서 몬스터에 가까웠다.
몸속에 마력 덩어리이며 의념이 들어 있는 그릇이기도 한 코어가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금속의 신체를 컨트롤하고 있는 것이다.
‘이놈들은 좀 붙잡아놓고 연구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용우는 금속 거인들에게 흥미를 느꼈다.
그들이 태양계로 접근해 온 방식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금속 거인들은 텔레포트나 워프 게이트를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종말의 군단처럼 물질세계와 정보세계 양쪽을 오가는 것도 아니었다.
금속 거인들은 초광속 비행으로 날아왔다.
물리법칙상 불가능한 일이다. 빛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는 있을 수 없으니까.
물론 용우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상대시간 가속.’
대부분의 가속 스펠이 가속 효과를 발생시키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과연 그런 방식으로 초광속 비행을 해낸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리 봐도 다른 기술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너희들은 우리 지구인의 영역을 무단으로 침범했다.”
<지구인. 그것이 너희들의 종족명인가?>
가장 거대한 거인, 키가 1킬로미터가 넘는 존재가 대꾸했다. 아무래도 그가 이 무리의 대표인 것 같았다.
“그래. 너희들은?”
<크록시아.>
“나도 발음 가능한 이름이군. 그래서 크록시아, 너희들은 왜 여기에 온 거지? 우리의 별, 지구로 향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다가 우연히 이곳으로 들어선 것뿐인가?”
<지구. 그런 이름이로군. 우리는 지구로 향하고 있었다.>
“이유는?”
<지구라는 별을 먹기 위해서.>
“뭐?”
용우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지구라는 별은 대단히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우리는 그 별을 먹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여기까지 날아왔다.>
“…….”
용우는 황당한 나머지 잠시 말문이 막혔다.
“별을 먹는다고?”
<그래.>
“별을 먹는다는 행위 자체는 그렇다 치고… 별이라면 우주에 수도 없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지구야?”
<영적 에너지가 넘치는 별이기 때문이다.>
대표로 나선 거대한 크록시아는 용우의 물음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크록시아는 평소 행성을 이루는 물질 그 자체를 먹어치우면서 존재를 유지한다.
하지만 크록시아에게 있어서 대부분의 행성은 먹어치워 봤자 그저 존재를 유지할 수 있을 뿐, 그 이상을 바랄 수 없다.
오직 영적 에너지가 넘치는 별만이 크록시아에게 힘을 준다.
크록시아 개체가 덩치를 키워 더욱 강해지고, 개체수를 늘려서 종족의 번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적 에너지가 넘치는 별이 필요했다.
광활한 우주에서 그런 별은 흔치 않다.
그런 별은 지구처럼 생명이 꽃피고, 지성체가 문명을 일구면서 번성하거나 아니면 아주 특별한 역사를 가져야만 했다.
그렇기에 크록시아에게 있어서 지구는 그 존재를 알게 된 순간 돌격해 올 수밖에 없을 정도로 먹음직스러운 별이었다.
<우리는 지구를 먹을 것이다.>
“지구인인 내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냐?”
<물론이다. 이것은 그대들에 대한 예의다.>
“예의라니, 무슨 뜻이지?”
<그대는 우리에게 먹혀 사라질 별의 원주민이니까. 자신들이 사라지는 이유 정도는 알 권리가 있지 않은가?>
“하…….”
용우는 어이없어서 웃고 말았다.
“이번에도 꽝이군.”
<무슨 소리지?>
“사실 서로 다른 종족, 다른 문명이 만났을 때 유혈이 뒤따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지. 문명이 충돌할 때 서로에 대한 존중은, 서로가 자신을 지킬 무력을 지녔을 때 나오니까.”
서로 싸우기보다는 대화를 통해서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이득임을 알았을 때부터 긍정적인 관계 구축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그것도 상대가 타협 가능한 존재일 때나 가능한 일이다.
크록시아는 타협 가능한 존재가 아니었다.
“일단 너희들에게 기회를 주지. 좋은 말로 할 때 지구를 포기하고 너희 고향으로 돌아가라. 아직 지구에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았으니까 지금 물러나면 봐줄게.”
<들을 가치가 없는 소리구나.>
“역시나.”
<신기한 지구인이여, 지구로 돌아가서 네 종족에게 멸망을 알려라. 그것을 위해 네게 우리에 대해 설명한 것이니.>
“왜 친절하게 나불거리나 했더니 나를 심부름꾼으로 쓸 생각이셨어?”
용우는 질렸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고는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아공간에서 거대한 양손대검이 소환되어 그 손에 쥐어졌다. 궁극의 융합체-네뷸라였다.
“미리 말해두는데 크록시아, 너희들은 다섯 번째야.”
<다섯 번째?>
“종말의 군단, 구세록의 초월권족, 오버마인드, 시청자……. 지구를 어떻게 해보겠다고 덤볐다가 내 손에 멸망한 놈들의 이름이다. 너희들 이름이 이제 그 리스트의 다섯 번째를 채우게 될 거야.”
용우가 마력을 개방하자 우주공간에 거대한 마력의 해일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벌써 다섯 번째인데, 이번에도 배드엔딩이라니 유감이야. 하지만 이 넓은 우주 어딘가에는 해피엔딩이 있겠지. 어디 끝까지 해보자고.”
오기를 불사르는 용우와 크록시아가 격돌하며 우주 공간에서 현란한 빛이 폭발했다.
그리고…….
* * *
서기 2031년 9월.
아직 인류는 친구가 되어줄 외계 존재를 만나지 못했다.
<완결>
작가 후기
매번 그렇지만 하나의 장편을 끝내고 나면 묘한 기분에 휩싸이고는 합니다.
끝났구나.
이제 더 이상 이 뒷이야기를 생각할 필요가 없구나…….
그건 드디어 끝냈다는 후련함과 함께 묘하게 쓸쓸한 느낌이기도 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이야기를 놔주는 순간이니까요.
작가로서 글을 쓰는 경력이 길어질수록 그 순간이 기껍고 후련하기보다는 쓸쓸한 여운이 강해지는 것 같군요.
‘헌터세계의 귀환자’는 참 우여곡절이 많은 글이었습니다.
무료 연재 당시에 제목과 내용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지속적으로 받아서 제목이 한번 바뀌기도 했고, 한차례 내용을 대폭 수정하는 일도 있었죠.
초반부터 중반까지의 집필-연재 과정을 생각하면 정말 악전고투(惡戰苦鬪) 네 글자밖에 떠오르지 않아요.
쓰면서 참 고생이 많았던 글인데, 이렇게 무사히 끝마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시작은 단순했습니다. 약간 SF하고 밀리터리한 느낌도 나는 현대물… 이라기보다는 근미래물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생각도 못한 문제가 계속 튀어나와서 정말 애먹었지요.
전작인 ‘성운을 먹는 자’를 워낙 긴 시간 동안, 긴 분량으로 써서 이번 것은 짧게 쓰자고 생각했습니다.
장편은 늘 계획한 것보다 길어지게 마련이고, 이번에도 그랬습니다만 그래도 그럭저럭 오차 범위 안에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저를 힘들게 한 마지막 변수는 에필로그였죠. (한숨)
원래 최종권을 쓰면서, 최종전까지 써도 분량이 책 한 권을 채우기에는 많이 모자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에필로그를 좀 길게 구상했어요. 언제나 후일담 스타일의 에필로그를 써왔는데, 이번에는 TV 애니메이션이 끝나고 나서 나오는 후일담 극장판 같은 느낌으로 구상을 했죠.
내가 왜 그랬을까…….
지금이라도 과거의 내게 날아가서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데 타임머신을 빌려줄 고양이 로봇 친구가 없군요.
‘성운을 먹는 자’ 에필로그를 쓰면서 정말 이거보다 긴 에필로그를 쓸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본편이 길었던 만큼 에필로그도 정말 길었거든요.
하지만 미래는 늘 예측불허죠.
그러니까 ‘이제 다시는 뭐뭐 할 일 없을 거야’ 같은 생각은 안 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작 그런 상황이 닥치면 자꾸만 과거의 나를 때려주고 싶어지니까요.
저는 좀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한 후에 신작을 들고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그때까지 지구가 외계 종족에게 침략당하는 일 없이 평안하기를.
2018년 7월
김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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