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그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두 가지씩이나?”
“일단 수신률 문제가 있다.”
“수신률?”
시청자가 각성자를 늘리고 싶어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일반인과 연결될 경우에는 자신들에게 전달되는 정보가 열화된다. 열화를 피하기 위해서는 많은 마력이 소모되기 때문에 지구인과의 연결 시간이 그만큼 줄어든다.
하지만 각성자와 연결될 때는 그런 문제가 현저히 줄어든다.
“일반인이 HD 영상이라면 각성자는 8K 영상이라고 할 수 있지. 그 두 규격의 화질, 음질 차이처럼 극심한 차이가 있고 그 차이를 메꾸기 위해서는 막대한 마력을 소모해야 한다.”
“…그거 참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비유로군.”
시청자는 1년 365일 언제나 지구 인류와 연결되어 있고 싶어 했다. 연결을 끊는 순간 그들은 다시 마음을 잃고 공허한 존재가 되어버리니까.
아무것도 몰랐을 때는 괜찮았다. 하지만 한번 지구 인류를 통해 마음을 손에 넣게 되자 그 공허가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통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태생부터가 지옥의 주민이었던 것이지. 우리의 존재에 빛을 준 지구 인류를 진화의 다음 스테이지로 올려놓고 싶었다.”
시청자는 모든 지구 인류를 각성자로 만들고, 그 누구라도 자신들이 연결하고 장악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기를 원했다.
즉 그들은 지구 인류가 정복당한지도 모르게 정복하겠다는, 소름끼치는 야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놈들도 코즈믹 호러군.’
특히 지구 인류 입장에서는 저항은커녕 인지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점이 끔찍했다.
“그래서 두 번째 이유는 뭔데?”
“인류를 위해서였다.”
“그 계획의 어디가?”
“인류는 이미 마력의 존재,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각성자라는 초인을 알았지. 결과적으로 게이트 재해를 통해서 인류라는 종(種), 그리고 인류가 이룩한 문명은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본다.”
전 인류가 각성자가 되는 것이야말로 당연한 진화의 벡터다. 시청자는 그렇게 주장하고 있었다.
“글쎄. 인류는 마력 없이도 잘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보는데.”
“그건 네가 여타 인류를 아득히 초월하는 권능을 가진 초월자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발상이다. 네가 인류에게서 각정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빼앗는다면, 그게 기득권자가 자신의 기득권이 침해당할 것이 두려워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과 다를 게 뭐지?”
“…….”
“네가 하는 짓은 인류의 권익을 침해하는 짓이다. 인류는 더 위대한 존재로 거듭날 권리가…….”
“아, 외계 존재란 놈은 왜 이렇게 하나같이 참신하게 미쳐 있지?”
용우가 시청자의 말을 자르며 탄식했다.
“이 드넓은 우주에서 이종족 지성체를 만나기도 참 어려운 일일 텐데, 왜 만나는 이종족 지성체마다 이 모양 이 꼴인지 모르겠군.”
“반박할 말이 없나 보군.”
“아니, 너무 어이가 없어서 반박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겠다. 이 외계인 관심종자야.”
“아아아아아악!”
용우는 나불거리던 시청자의 신경계가 불타오르는 격통을 선사해 주고는, 다른 시청자를 바라보았다.
“사실 전 인류를 각성자로 만들건 말건 상관없어. 인류의 미래를 위해 그런 연구를 할 수도 있지. 근데 말이지.”
용우의 눈빛이 살벌해졌다.
“그런 실험을 위해서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놈들이 뭐 잘났다고 숭고한 척이냐?”
동시에 인간의 몸에 갇힌 시청자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용우는 비명과 절규 속에서 말을 이어갔다.
“인간의 프라이버시를 콘텐츠로 삼아서 하악거리는 고차원적 관음종자 새끼들아. 그냥 관음하고만 살았으면 이럴 일도 없었을 텐데 참 욕망이라는 게 무섭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폭주해서 인간을 덮치고 있었으니. 이제 그 대가가 뭔지 배워보자고.”
“너, 너는 실수하는 것이다. 진정 지구 인류를 위한다면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려라, 지구인 초월자!”
고통 속에서 시청자 하나가 절규했다. 흥미를 느낀 용우가 그의 고통을 멎게 하고는 물었다.
“무슨 실수 말이지?”
“아직도 믿기 어렵지만 오버마인드를 없앤 게 사실이라면… 그 시점에서 너는 이미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왜?”
“지구 인류를 주목하는 게 우리뿐이라고 생각하나?”
“음?”
용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시청자가 헐떡거리며 필사적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를 발견했고 우리를 발견한 자들, 그들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우리만이 아니라 무수한 존재들을 발견했다.”
오버마인드도 그랬지만 시청자 역시 군단의 실체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용우의 손에 끝장나기 전까지, 이들은 지구를 관측할 수 없었던 것이리라.
“우리는 한발 앞섰을 뿐이다. 우리는 다른 외계 존재의 은밀한 침투와 관측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오버마인드를 노출시킴으로써 물질세계의 존재들이 지구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방벽으로 삼았지…….”
시청자와 오버마인드가 휴전협정을 맺은 이유는 전쟁으로 인류 문명을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버마인드는 몰랐지만, 시청자는 오버마인드의 존재가 지구를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오버마인드는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마저 사라진다면 지구는 무수한 침략자의 존재에 노출될 것이다.”
지구의 존재를 알게 되는 외계 존재 중에는 지구 인류의 정신에 매력을 느끼는 오버마인드와 시청자 같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지구 인류가 너무나 취약하다는 점 때문에 침략하기 만만해 보인다고 여기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지구 인류는 다음 스테이지로 향해야만 한다. 마력을 손에 넣고, 그것으로 문명을 발전시켜 다가올 외압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되지 않으면 파멸만이 기다릴 뿐이다!”
시청자는 광기에 젖은 눈으로 열변을 토했다.
“우리처럼 지구 인류를 사랑하고, 이들의 정체성을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존재가 또 있을 것 같은가? 단언컨대 없다!”
시청자에게 있어서 지구 인류는 모든 것이었다.
그들의 마음이었고, 그들의 심장이었으며, 그들의 삶이었다.
그들만큼 지구 인류가 번영하기를 바라는 자는 없다.
“우리만큼 지구 인류를 사랑하는 자는 오버마인드뿐이었지! 그리고 이제 그들이 사라졌으니 오로지 지구 인류의 취약함을 노리고! 지구 인류의 자원만을 탐하는 괴물들이 몰려올 것이다!”
“…….”
“지구인 초월자여, 우리는 아직 대화로 서로를 이해할 여지가 있다. 지구 인류를 지키기 위해서는…….”
“아, 군단 놈들 진짜…….”
용우는 시청자의 열변을 자르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어차피 뒈질 거면 곱게 뒈질 것이지 이렇게 거하게 똥을 싸질러 놓다니.”
군단이 확보한 침략 대상 리스트를 발견했을 때부터 이런 가능성을 떠올리기는 했다. 하지만 오버마인드와 시청자를 치워 버리면 되지 않을까 낙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청자가 이야기하는 현실은 매우 혹독했다.
이제부터 지구는 도대체 몇이나 되는지도 모를 외계 세력들에게 침략당하게 될 것이다.
“그래. 알겠다…….”
용우가 힘없이 말하자 시청자가 반색했다.
“이해해 주는 것인가? 잘 생각했다! 우리는…….”
“일단 너희부터 치워 버리고 나서 찾아오는 놈마다 하나씩 하나씩 격파하면 되겠지. 온 우주에 소문이 나게 만들어야겠어. 지구를 건드린 대가는 파멸뿐이라는 것을.”
얼음장처럼 싸늘한 목소리가 시청자의 희망을 단칼에 잘라 버렸다.
타협의 여지는 없다. 그런 입장을 명확히 한 용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면 비극이로군. 정말로…….”
문명이 발달하고, 우주의 광활함을 인지하게 된 지구 인류는 고독을 두려워했다.
이 드넓은 우주에 문명을 이룬 지성체가 자신들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먼 우주로,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외계 지성체를 향한 메시지를 날리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용우는 알게 되었다.
인류는 광활한 우주의 공허 속에 고립된 고독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인류의 고독을 치유해 주는 외계 지성체는, 순진한 지성인들이 바라던 선량한 친구가 아니었다.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그 어떤 침략자보다도 두렵고 위험한 코즈믹 호러.
종말의 군단도,
구세록의 초월권족도,
오버마인드도,
시청자도…….
하나같이 인류의 친구가 될 수 없는 자들이었다.
심지어 인류에게 호의를 품고, 인류를 깊이 사랑하는 자들마저도 그렇다니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내가 해야 할 일을 알겠다.”
용우는 절규하며 죽어가는 시청자들을 보며 피로함을 느꼈다. 언제까지 이런 놈들과 싸워야 한단 말인가?
동시에 오기가 치솟았다.
“그렇게 많은 외계 존재가 있다면 그중에 하나쯤은 인류의 친구가 되는 해피엔딩이 있겠지. 어디 끝까지 가보자, 이놈들아.”
* * *
인류는 오랫동안 우주로 향하는 꿈을 꾸고 있었다.
20세기의 끝에 인류가 그린 미래의 모습에는 언제나 우주의 모습이 있었다. 21세기가 되면 달나라 여행이 해외여행만큼이나 일상적인 일이 되리라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우주 사업은 너무나 많은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우주 기술의 발달은 너무나 더뎠다. 분명 차근차근 발달해 왔지만, 20세기 인류가 꿈꾸던 수준에 도달하기에는 턱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인류가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 온 우주 사업은 무서울 정도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들을 가로막던 문제, 비용 대비 효율을 해결해 주는 구세주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 * *
2031년 9월.
종말의 군단이 멸망한 지 2년 4개월이 지난 시점에, 차준혁은 성층권 고도 30킬로미터 지점을 날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계속 도약 스펠로 뛰어오르고 있었으니 달린다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제로, 곧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한국 유일의 우주센터, 나로 우주센터에서 날아든 통신이었다.
한국은 작년에 선거를 치르고 새 정부가 출범한 후부터 우주 사업에 대해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유현애, 이미나, 차준혁을 중심으로 한 최정예 헌터 팀을 투입해서 재해지역 제주도를 정리한 다음 그곳에 탐라 우주센터를 건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탐라 우주센터가 완성되기까지는 아직 5년의 시간이 필요하니, 그때까지는 나로 우주센터가 한국 우주사업의 중추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발견했다.”
제로라는 코드네임으로 불리는 차준혁이 성층권의 허공을 밟고 도약하면서 말했다.
굳이 나로 우주센터에서 그의 헬멧 바이저에 표시해 주는 정보가 없더라도, 육안으로 표적을 관측할 수 있었다.
파괴된 인공위성의 잔해가 불타오르며 떨어지고 있었다.
오래된 러시아 인공위성이었다.
스페이스 데브리와 충돌해서 파괴된 러시아 인공위성이 하필이면 한반도를 향해 추락하고 있는 상황이라 차준혁이 나선 것이다.
“회수 작업에 들어간다.”
차준혁은 예지 능력으로 인공위성 잔해의 궤도를 파악한 뒤 스펠을 펼쳤다.
추락하는 인공위성을 피해 없이 막아내는 것 따위, 그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 * *
나로 우주센터의 연구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맙소사. 정말로 회수했잖아?”
지금 한국 언론은 인공위성이 한반도로 추락하는 것 때문에 난리가 났다.
정부는 추락 지점을 광범위하게 예상하고, 그 지역 주민들을 피난시키는 작업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 한편, 진실을 아는 자들이 차준혁에게 의뢰해서 사태 해결을 시도했던 것이다.
“막아내는 것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멀쩡한 형태로 회수해 오다니…….”
나로 우주센터에는 러시아 인공위성의 잔해가 입수되어 있었다.
차준혁은 인공위성의 추락을 막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직 형태를 보존하고 있던 모든 잔해를 회수해 온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중요한 연구 샘플로 활용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번 일을 위해 차준혁에게 500억 원이라는 의뢰금을 제시했지만, 그가 해낸 일을 보면 너무나 싸게 먹혔다고 할 수 있었다.
“도대체 정체가 뭐지?”
“아무리 뛰어난 각성자라지만 이럴 수가 있나?”
제로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각성자는 연구원들이 자기를 두고 수군거리는 것에 신경 쓰지 않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헌터로서는 대중에게 정체를 드러낸 차준혁이었지만, 그가 지닌 진정한 힘을 아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번처럼 인간의 한계를 훨씬 초월한 능력을 발휘할 때는 정체를 감추는 게 낫다고 판단, 용우가 쓰던 제로라는 코드네임을 쓴 것이다.
그만이 아니라 팀 섀도우리스 멤버들은 필요할 때면 전부 제로의 가면을 쓰고 활동하고 있었다.
2년 전만 해도 그들은 지구상의 재해지역이 정리되고 나면 더 이상 이 초월권적인 권능을 활용할 일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물론 아직도 지구상에는 많은 재해지역이 남아 있다.
그것은 인류의 전투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영토 소유권을 비롯한 여러 정치적인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크고 잦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지만, 팀 섀도우리스는 이런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이것은 한두 명의 초월자가 아니라 인류가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몬스터를 상대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인류가 그들의 힘을 써먹을 곳은 많았다.
이번 인공위성 추락 같은, 인간의 손으로 어쩔 수 없는 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막는 것부터 시작해서 인류의 영역을 우주로 확장하는 것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