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206화 (206/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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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도먼트는 HU 일본 오사카 지부의 연구 총책임자였다.

미국의 거대 제약회사 출신인 그녀는 작년 말, 직장 내부에서 위험한 연구를 하다가 발각당해서 해고당했다. 그리고 HU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일본으로 오게 되었다.

지금은 소멸한 거대한 범죄 조직 팬텀에서 만들어낸 신비의 약 ‘아니마’를 이용해서 일반인을 각성자로 만드는 연구였다.

다른 주제로 시작했다가 진행한 이 연구가 피험자로 나선 사람들에게 비인륜적인 실험을 강요했다는 이유로 그녀는 해고당했다.

하지만 HU는 그녀를 높이 평가하고,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었다.

그녀는 대도시 한복판에 건립된 거대한 연구 시설을 총괄하는 몸이 되었다.

불법적인 돈이기는 하지만 200만 달러의 연봉이 주어졌고, 최고의 설비와 다수의 똑똑한 연구원을 부하로 부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HU는 그녀는 연구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실험체도 아낌없이 제공해 주었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소모해도 되는 ‘인간’이라는 자원을.

* * *

쿠과과광!

닥터 도먼트가 총괄하는 연구 시설 한쪽 벽이 폭발했다.

그리고 그 벽으로 한 사람이 여유롭게 걸어 들어왔다.

“…….”

당당하게 걸어온 침입자가 흠칫했다.

HU 연구원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다. 분명 인간인데도 잘 만든 마네킹을 보는 것 같아서 섬뜩했다.

침입자, 서용우가 혀를 찼다.

“정체를 숨길 마음이 아예 없군?”

“이미 우리에 대해 알고 왔을 테니,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짓은 비효율적이지. 지구상에서 오버마인드가 사라졌더군. 당신이 한 일인가?”

칙칙한 금발의 중년 여성, 닥터 도먼트가 물었다.

용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것도 알 수 있나?”

“우리와 접촉했고 싸우기까지 했으니까. 더 싸우다가는 지구 인류를 멸망시킬 위험이 있어서 휴전 협정을 맺기는 했지만, 위험한 적의 동향은 항시 체크하고 있지. 하지만 그들의 소실 과정은 모르겠군. 그들의 거점이 공격받은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 후로는 관측할 수 없었어.”

닥터 도먼트는 그렇게 말하며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용우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희한한 놈들일세. 오버마인드도 희한했지만 네놈들, 오버마인드와는 극단적으로 다르군?”

“어떤 면에서 말이지?”

“모르는 건가?”

“아니, 당신의 견해를 듣고 싶다. 당신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지구인의 한계를 초월한 자여.”

“너희는 뭔데?”

“우리는 자신을 이름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구인의 방식을 따라 우리의 호칭을 정한다면… 그래. 시청자(視聽者) 정도가 적절할 것 같군.”

“시청자?”

용우가 의아함을 느꼈다. 꽤나 해괴한 호칭이 아닌가?

“TV 시청자 할 때 그 시청자 말인가?”

“정확하다.”

“이상한 놈들이군. 하긴 외계 침략자니까 이상한 놈일 만도 하지만…….”

용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말했다.

“오버마인드가 철저하게 물질세계에 뿌리내린 존재인데 비해 너희는 정보세계의 존재로군. 네놈들도 오버마인드가 했던 것처럼 홀연히 사라졌다길래 오버마인드처럼 연구시설째로 텔레포트하나 했더니만, 그게 아니라 이거 다 가짜잖아?”

용우가 주변을 휘 둘러보며 말했다.

오버마인드의 HU 거점이 그러했듯 이곳도 첨단 연구 시설이었다. 고학력자 연구원들이 자신의 두뇌를 활용하기에 완벽한 환경이다.

하지만 용우의 눈은 그 실체를 꿰뚫어보고 있었다.

이곳은 텅 빈 공간이다.

첨단 설비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에 실재하는 것은 인간뿐이다.

외계 존재에게 육체를 장악당한 인간, 그리고 그들에게 모르모트로 쓰이고 있는 인간.

그렇다면 이 연구 시설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단순한 환영은 아니었다.

“정보공간을 이런 식으로 구현하다니, 좀 놀랍군.”

그 속에 들어온 자에게는 실체와 다름없는 인식을 제공하는 정보공간이었다.

의자를 끌어와서 앉은 닥터 도먼트는, 사실은 의자에 앉은 자세를 하고 있을 뿐이다. 육체에 고통을 주는 투명의자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그 육체는 전혀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정말로 의자에 앉아 있다고 믿고 있고, 실제로 육체도 의자에 앉았을 때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 일화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과연 현실이란 무엇인가?

물질이 실존하지 않는데도 인간이 그것을 실존한다고 믿고, 거기에 어떤 의심도 갖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현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닥터 도먼트가 말했다.

“가짜는 아니지. 실존을 의심하지 않고, 심지어 그 쓰임이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데 어찌 가짜라고 한단 말인가?”

“그래봤자 상자 속의 이야기지. 이곳에서만 실존한다고 믿을 수 있는, 밖으로 가져 나갈 수 없는 것. 가상현실을 진짜 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너무 낡은 인식이 아닐까? 50년쯤 지나면 아마 지구 인류는 현실에 대한 정의를 바꿔야 할 것이다.”

시청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용우가 물었다.

“그래서, 너희는 뭐지?”

“그 전에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겠나?”

“딱히 가르쳐 주고 싶지 않은데.”

“교섭할 생각이…….”

“응. 없어.”

용우가 피식 웃었다.

펑!

닥터 도먼트의 몸이 산산조각으로 터져 나갔다.

-몽환포영(夢幻泡影)!

그리고 용우를 중심으로 강력한 정신파가 퍼져 나갔다.

동시에 주변의 풍경이 변화한다.

용우가 텔레파시를 매개체로 삼아 구현한 정보공간이, 시청자가 구현한 정보공간을 침식해 버린 것이다.

“음……!”

시청자가 신음했다.

용우가 강력한 존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정보세계의 주민, 즉 물질세계의 존재인 인간보다 고차원적인 존재이기에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다.

“너희들의 생사여탈권은 이미 내 손에 있다.”

용우가 말했다.

“그리고 오해할 것 같아서 말해두는데, 네놈들이 강탈한 인간의 육체가 아니라 네놈들의 존재 자체를 말하는 거야.”

“지금 보여준 건 대단하지만 너무 자기 능력을 과신하는군.”

시청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은 정신을 가진 존재를 장악하고, 그 육체를 통해서 물질세계에 간섭할 수 있는 존재였다. 정보공간을 구현하여 현실을 조작하는 힘을 가진 그들에게 있어서 용우가 발한 몽환포영은 그렇게까지 놀라운 힘이 아니다.

그들의 정보공간을 침식한 것은 놀랍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몽환포영이 공격용으로 설계된 스펠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일시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전장을 구현하는 능력과 아무런 시간 제약 없이 현실과 몽상의 꿈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능력, 둘 중 어느 쪽이 대단한가는 말할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물질세계에서 그치지 않는 능력은 훌륭하다. 하지만 우리의 본질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은가?”

“있을 것 같은데. 정보세계의 존재를 한두 명 죽여본 것도 아니고…….”

씩 웃은 용우가 시청자가 장악한 연구원 중 하나를 붙잡았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끄아아아아악!>

육성이 아니라 텔레파시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정보세계에서 원격으로 인간의 육체를 조종하던 시청자의 영혼이 끌려오고 있는 것이다.

“봤지?”

용우가 가볍게 손을 흔들자 연구원의 육체가 터져 나갔고, 시청자의 영혼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것을 본 시청자들이 경악했다.

“무, 무슨…….”

“우리를 물질세계로 끌어온다고?”

“네놈들은 오버마인드하고는 다르군. 확실히 각 개체가 독립적인 모양인데?”

용우는 시청자들 하나하나의 반응이 다른 것을 보고는 그들이 독립된 개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잘됐군. 나도 그쪽이 편하거든. 오버마인드는 너무 크고, 많고, 힘만 센 놈이라 절멸시키기도 힘들었어.”

그러자 시청자들의 술렁였다.

“오버마인드를 절멸시켰다고?”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어.”

“놈은 물질세계에 속박된 저차원적인 존재지만 별조차 잡아먹을 수 있는 존재. 지구 인류의 모든 역량을 모은다 하더라도 오버마인드를 절멸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절멸시키기는커녕 타격을 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호오.”

용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네놈들은 오버마인드의 실체를 파악한 거군?”

“…….”

“아, 말하기 싫어? 그럼 그냥 입 다물고 있어. 곧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날 테니까.”

용우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 정보세계의 존재, 시청자들은 기원 이후 처음으로 영혼을 압도하는 공포를 알게 되었다.

* * *

스스로를 ‘시청자’로 칭한 존재에게는 마음이 없었다.

종말의 군단이 물질세계의 생명체였던 자신들을 정보세계의 주민으로 만든 것과 달리, 그들은 처음부터 정보세계에서 발생했다.

물질세계를 투영하는, 파편화된 세계가 혼돈에 잡아먹히는 과정에서 그들을 낳은 것이다. 그야말로 이론으로도, 확률로도 재단할 수 없는 혼돈의 산물이었다.

정보를 존재 기반으로 삼는 그들은 지성을 가졌으나, 그것을 움직일 마음이라는 동력원을 갖지 못했다.

어떠한 욕망도 없이 그저 존재할 뿐.

하지만 현실세계를 투영한 정보가 계속 유입되는 과정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종말의 군단이 그들을 관측했다.

그리고 그들 또한 종말의 군단을 알게 되었다.

같은 정보세계의 주민이었지만 물질세계의 욕망을 고스란히 보존한 그들과, 마음이 없는 존재인 시청자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하지만 그들의 관측은 시청자에게 한 가지 욕망을 일깨워 주었다.

지성체의 정보를 알고자 하는 욕망을.

그 욕망에 따라 시청자는 종말의 군단을 추적했다.

하지만 그들은 오버마인드와 똑같은 문제에 가로막혔다.

종말의 군단은, 구세록의 규칙에 갇혀 있는 동안에는 모든 간섭을 무력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청자는 기다렸다.

마음이 없는 그들에게는 초조함이 없었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인내심도 필요 없었다.

장벽 너머에서 종말의 군단을 관측하며 그들의 실체를 알 수 있기를 기다릴 뿐.

그러던 중 변화가 생겼다.

관측을 막던 장벽이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그 장벽 너머에는 종말의 군단이 존재하지 않았다.

“지구와, 지구 인류만이 있었다.”

시청자는 숨을 헐떡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금까지 그들에게 있어서 인간이 겪는 공포, 절망, 그리고 고통은 모두 콘텐츠였다.

그로 인해 자신의 존재를 위협받을 일이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그들의 현실이 되었다.

용우의 손에 끌려와 인간의 육체에 갇힌 시청자들은 처음으로 존재를 위협하는 진짜 고통과 공포를 알게 되었다. 그 위협을 견뎌내는 방법도, 그리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기에 그들은 쉽게 용우의 의도에 굴복하고 말았다.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고 싶었다.”

시청자는 지구를 관측했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지구 인류를 관측하는 것만이 아니라 직접 간섭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자신을 인간의 정신과 이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어짐을 통해서 인간의 정신을 장악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인간은 물질세계에 속박된 존재이기에 육체, 그것도 제한된 영역만을 뜻대로 다룰 뿐 정신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을 통해 우리는 결여를 채울 수 있었다…….”

마음이 없는 시청자는, 인간과 연결됨으로써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인간은 그들의 꿈이었다.

인간에게 그 감각을 설명하려면 TV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자신을 다수의 인간과 연결할 수 있었고, 원하는 때 마치 TV 채널을 돌리듯이 연결되는 인간을 바꿀 수도 있었다.

그들이 자신을 ‘시청자’라고 이름 붙인 것도 그런 특성에서 기인했다.

하지만 시청자가 인간을 보며 얻는 것은 인간이 TV 시청으로 얻을 수 있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인간이 보는 것, 만지는 것, 듣는 것, 냄새 맡는 것, 맛보는 것, 생각하는 것…….

그 모든 것을 특정한 인간과 연결된 시청자 역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서 지금처럼 그 인간의 몸을 장악해서 자신의 육체처럼 쓸 수도 있었다.

“그렇군. 관음증 환자 노릇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정신기생체가 되었다 이거지?”

마음이 없던 그들은 지구 인류와 연결됨으로써 마음을 얻었다.

오로지 지구 인류를 통해서만 존재를 실감할 수 있게 된 그들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폭주하기 시작했다.

인간을 보고 구경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직접 인간으로 살아가며 세상에 영향을 끼치길 바라게 된 것이다.

TV에서 제공해 주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직접 콘텐츠 생산에 나선 개인 방송인 같은 꼴이었다.

그렇게 직접 인간으로 위장해서 살아가는 시청자의 경우는 다른 시청자의 연결도 허용하는데, 흥미로운 삶을 살아가는 존재일수록 많은 시청자와 연결된다고 한다.

‘완전히 시청률 경쟁이군. 이놈들도 만만치 않게 골 때리네.’

개체 하나하나의 전투 능력은 약하지만 정말 끔찍한 침략자가 아닌가?

HU를 통한 연구처럼 눈에 띄는 짓을 하고 있기에 망정이지, 조용히 지구 인류를 관음하는 것에 만족했다면 그 존재를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거기까지는 알겠어. 그런데 왜 이런 짓을 하고 있었던 거야?”

시청자가 지구 인류를 재미있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TV 채널 취급한다는 것은 이해했다. 인간의 몸을 차지하고, 인간들 속에서 살아가면서 다른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는 콘텐츠 생산자가 되길 바란다는 것까지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HU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 대체 왜 지구인을 인위적으로 각성자로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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